비운의 명작이라는 말, 게임 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나 당시 빛을 보지 못한 작품들에게 주어지는 안타까운 칭호죠. 분명히 잘 만들었고 기억이 될 법한데 더욱 큰 강자가 있어서 가려진 경우도 적지 않았고요. 게임에서도 이러한 비운의 명작들이 적지 않았죠.

1998년 등장한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는 전 세계 게임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죠. 게임이 뉴스에 보도되기도 하고, 전 세계적인 인기에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을 정도로 엄청난 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PC방'이라는 한국 특유의 게이밍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요.

오늘 소개할 게임은, 바로 이 '스타크래프트'에 가려져서 빛을 다소 아쉽게 받았던 게임입니다. 같은 RTS장르지만 스타크래프트와는 다른 방향을 추구했던 게임. '대규모 전장'을 구현하고 사실감있는 그래픽과 물리효과 등으로 전략적인 차별성을 꾀했었죠.

바로 케이브독이 개발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오늘 IP를 찾아서를 통해 소개할 게임입니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굉장히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할 만한 시도들이 있었고,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아직도 간혹 회자되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IP를 찾아서' 기사 모아보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무슨 게임입니까?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의, '대규모 물량전' RTS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1997년 케이브독 엔터테인먼트에서 개발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입니다. 이 시기, 특히나 1992년 '듄 2'가 스스로 RTS를 표방한 이후 역사적으로 중요한 RTS들이 발매됐을 정도로, 1990년대는 RTS의 장르를 설명할 때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1990년대의 끝자락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 으뜸은 한국의 민속놀이로 잡은 '스타크래프트'가 아무래도 제일 유명하겠죠? 물론 전장의 안개라는 개념을 도입했다고 할 수 있는 '워크래프트2'도 중요한 위치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에 C&C 레드얼럿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도 빼놓을 수 없는 위치이기도 하고요.

▲ 인상적인 인트로(출처 : Miikka Sohlman 유튜브)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에 대해서 다뤄보도록 하죠. 우선 이 게임은, 인류가 크게 번영하여 은하계 전역으로 식민지를 건설한 미래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코어'라는 인공지능의 도움을 크게 받았죠.

코어와 기술은 점점 발전해서, 마침내 인류는 하나의 칩 안에 의식을 전송시켜서 '영생'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코어는 전 인류에게 기계로 의식을 이식할 것을 '명령'을 해버립니다. 당연히 이에 불응한 인간들도 대항했고, 이들은 '암(Arm)'이라는 조직으로 발전했습니다.

암과 코어는 지속해서 게릴라전을 벌였고, 은하계 전역으로 이러한 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이 끔찍한 전쟁은 4천 년이라는 무시무시한 세월 동안 이어졌고, 두 진영의 증오로 황폐해진 은하계 속에서도 멈출 줄 몰랐습니다. 결국 두 진영의 해답은 한쪽 진영을 전멸시키는 것. 그것이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목표입니다. 게임 이름처럼 말이죠.

▲ 암 vs 코어의 전쟁. 한쪽이 '전멸'해야 이야기가 끝이 날 판까지 최악의 상황이죠.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당시 PC 환경으로는 꽤 높은 사양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게임에 폴리곤 방식의 3D 그래픽이 적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불완전한 당시 3D 폴리곤 방식의 그래픽 기술로도 상당히 부드러운 유닛들의 움직임이 보일 정도로 완성도가 좋았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그래픽도 한몫을 했지만, 무엇보다도 혁신적인 점을 매우 많이 도입했던 게임입니다. 이게 좋고 나쁨을 떠나서, 전략 시뮬레이션에 매우 흥미로운 요소이자 선택적인 시스템으로 도입을 고려해볼 만한 시스템들입니다.


우선 적을 추적하거나, 회피만 하는 등의 AI 조절이 가능했습니다. 단순한 순찰이나 지역 보호와 같은 개념이 아니라, 유닛들의 공격성과 이동에 대한 수준을 지정할 수 있었죠. 그래서 경호, 추적과 섬멸 등 매우 세밀한 임무 지정이 됐습니다. 이게 '유닛마다' 가능했다는 점이 놀랍죠.

그리고 유닛이 사망하면, 엄청난 대미지를 받은 게 아닌 이상 '잔해'가 남았습니다. 이러한 잔해는 은엄폐물로도 활용될 수 있었고, 전장의 구도를 바꿔놓기도 했죠. 또한 전장에도 지형에 따른 고저차가 적용되어 있어서 높은 지역이 유리했고, 유닛 자체가 이동하면서도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현실적으로 모든 유닛이 대공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효율이나 탄도를 맞추긴 힘들지라도, 일단 쏘는 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시야가 닿지 않는 전장의 안개로 가려진 지역의 유닛들이나 적들도 레이더를 통해 파악하고 전략을 꾸릴 수 있었고, 이러한 레이더에 걸리지 않는 스텔스 유닛과 탐지를 막는 재머도 있었고요.

▲ 이런 치열한 전장이 거의 맵을 가로지르듯이 생겨납니다. 와장창 펑펑 터지죠.

아무래도 이렇게 돌아볼 때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현실적인 유닛과 전장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실제로 게임 속에서 오발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고, 유닛들의 병과와 병종을 세분화했죠. 그리고 이런 유닛을 생산과 동시에 전장에 배치하거나, 수비를 시키거나, 정찰까지 명령을 '미리' 보낼 수 있었습니다. 건설 유닛도 다수의 건설 예약을 기본이고 잔해 회수나 철거도 섞어서 명령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공중 유닛들의 경우는 경합을 벌이는 과정에서 단순히 쏘고 맞는 게 아니라, 전투기들이 서로 회피 기동을 포함한 '도그파이트'를 볼 수 있었습니다. 미사일이 빗나가고 터지는 잔해가 아군에게 튀기도 했어요. 특히나 폭발 효과가 끝내줘서, 대규모 전면전에서는 끝도 없이 터지는 장관을 연출하죠.

또 하나 재미있는 게, 유닛마다 일정 킬 수를 올리면 '베테랑'이 되어서 점차 강해집니다. 공격력과 체력, 반응 속도나 명중률 같은 게 상승해서 점차 성장하는 느낌이랄까요. 일종의 경험치 시스템인데, 이러한 경험치는 유닛뿐 아니라 방어 건물에도 적용됐습니다.

▲ 지금도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면, 대부분 대규모 전장에서 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독특한 특징은 또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의 흐름에서도 드러납니다. 기본적으로 특정 유닛이 특정 건물 혹은 시설에 '자원'을 축적하는 형태가 RTS에서 많이 나오는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이러한 방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원이 유한하지도 않았죠. 즉,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에너지와 메탈에 채취 시설을 만들어 두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무한정 자원을 생산해내고 축적합니다. 듄2에서 정립됐던 공식이 깨진 거라고 볼 수 있죠. 건물과 유닛을 생산하고 배치하는 순간 '초당 자원 생산량'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그리고 특수 유닛 '커맨더'가 주어지는데, 이는 플레이어입니다. 엄청 강한 로봇인데, 거의 만능이에요. 자원도 수거할 수 있고 적 유닛을 포획해서 아군 생산 라인에 편입시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클로킹도 가능한 데다 자동으로 회복하고 건설 유닛의 특수 기능인 흡수도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망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서 주변이 다 쓸려버립니다. 그렇지만 이 커맨더가 사망하면 게임 오버라는 룰이 일반적으로 멀티에서 기용됐을 정도죠. 상대방의 커맨더는 체력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전략의 핵심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러한 커맨더는 사실상 승패의 핵심으로, 워크래프트3나 삼국지 천명에서 도입된 '영웅' 유닛과는 다른 개념으로 봐야 합니다.

에너지는 태양광이나 지열 등 여러 가지 요소로 생산이 가능한데, '메탈'은 의외로 수급이 매우 어렵습니다. 물론 맵마다 다른 점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메탈은 자원이 있는 곳이 얼마나 부유하느냐에 따라서 채취량이 갈렸죠. 이러한 메탈은 심지어 폭발한 유닛 잔해에서도 채취가 가능하곤 했습니다. 사실상 채취를 시작하면 자원은 무한정 채취가 되는데, 쌓이는 속도보다 소모가 빠르면 문제가 되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간혹 유닛 중에서 발사할 때 에너지가 소모되곤 하는데, 게임의 자원이 무한한 특성상 대규모 물량전이 일반적으로 성행하여 이러한 순간적인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큰 부담이자 고민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이런 개념을 도입한 것 역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처음이었죠.

▲ 사실상 멀티가 매우 불편해서 싱글 위주로 했던 것 같은데, 스토리는 좀 별로였습니다.

이러한 자원에 기반하여, 중후반까지 게임이 흘러가면 진짜 '물량전'에 의한 단판 승부가 되어버리는 게 특징입니다. 무지막지한 자원 생산에 기반해서 매분 수백의 병력이 생산됩니다. 그리고 육해공으로 다양한 병력이 전장에 투입되고, 이 전선에서 밀리는 쪽이 집니다. 이 전투에서 밀려도 어떻게든 부활을 도모할 수 있느냐? 아니요, 그냥 게임 오버입니다. 심지어 극한의 전쟁에서는 핵전쟁이 일어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기본 유닛 제한이 200인데, 다들 설정 파일 바꿔서 높게 두고 시작할 정도 물량전이 매력적인 게임이었죠. 국지전을 지향하던 다른 RTS와는 다른, 대규모의 전쟁 자체를 매우 중심으로 잡힌 게임 플레이가 인상적입니다.

이외에도 게임 내에서 공기가 없으면 공중 유닛 사용 불가라던가, 유닛에 관성이 적용돼서 바로 못 멈추기도 하는 등 매우 사실적이면서 독특한 부분이 많은 게임이었습니다. 게다가 물리 엔진 적용으로 중력에 따른 탄도도 다르게 적용됐고, 엄호 사격도 있을 정도로 독특한 전략 게임이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었습니다.

▲ 느릿-느릿-한데 맵은 진짜 엄청 넓습니다. 게임 템포 자체는 좀 느렸죠.

자,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매우 신선한 시도들이 많은 게임이었는데, 이 게임은 유독 한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죠. 물론 명작으로, 인생 게임으로 기억하는 분도 적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매력적인 게임이었으니까요.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치명적인 단점은 일단 사양입니다. 수많은 물량이 등장하는 만큼 게임 자체가 상당히 고사양을 요구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반에 들어서 수많은 물량이 쏟아지면서 미친듯한 프레임 하락이 있었어요. 그래서 당시 거의 최고 사양을 기준으로 플레이를 했어야 했죠.

게다가 1997년 기준으로 128MB 혹은 256MB 규모의 램에서만 돌릴 수 있는 맵도 있었을 정도로 사양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고해상도, FHD급의 해상도를 지원하기도 했고요. 참 이상한 게임이었습니다. 아무리 PC가 보급되었다고 하지만,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소화하기에 부담이 없는 사양들은 많지 않았죠. 결국 '물량전'이 핵심인데, 이를 소화할 여건이 충분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죠.

또 하나의 단점은 멀티 플레이의 부재입니다. 물론 멀티 플레이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사양도 엄청 좋아야 했고 모뎀을 사용했기에 아주 불편했습니다. 차후 개선을 한 버전이 나오긴 했지만 너무 늦었죠. 스타크래프트는 '배틀넷'이라는 혁신적인 멀티 플레이 방법을 도입해 유저들이 꽤 자유롭게 대전할 수 있었지만,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그게 없었다는 점이 뼈아픈 단점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전장과 유닛들이 느릿느릿해 속도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실제로 맵의 크기를 고려해보면 꽤 빠른 편이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관성이 적용돼서 방향 전환도 빠릿빠릿하지 않고 느려요. 의외로 이런 와중에 양 진영에서는 유닛별로 대응 유닛들이 있어서 밸런스는 꽤 맞는 편인 게 다행이었죠.

추가로는 한 판에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게임이었습니다. 대부분 게임이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되고, 장관을 연출하는 전선에서 빠른 승부가 일어나는 점은 드물었죠. 실제 게임 내에서 존재하는 미션 중에서도 짧게 하고 끝낼 만한 미션이 열 개가 안 될 정도로 전투들이 대부분 중장기전입니다.

이런 여러가지 단점들이 크게 작용하여 한국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게임이기도 합니다. 그전에 출시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는 느린 속도감에도 꽤 성공했던 걸 기억하면,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사양의 문제도 적지 않았다고 봅니다. 대규모 물량전을 시작하는 후반이 되면 프레임이 급격히 떨어지기에 플레이 감각이 너무 안좋았죠.

설상가상으로 당시 영어로만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었고, 시스템 자체도 상당히 어려웠는데 멀티 플레이도 매우 불편하고 미비했고… 거기에 유닛도 너무 많아서 딱 봐도 '복잡하다'라고 느낄 만한 부분이 큰 진입장벽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가 조금 아쉬웠다고 할 뿐이지, 게임 자체는 확장팩에 합본까지 나온 데다가 글로벌 판매량 150만 장을 넘게 기록하여 결코 상업적으로도 실패한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그만큼 해외에서는 꽤 인기를 끈 게임이기도 합니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IP의 소유주는 누구?
아타리를 거쳐 '워게이밍'의 품에 들어가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제작사인 '케이브독'은 휴멍거스 엔터테인먼트(Humongous Entertainment) 산하의 개발사였습니다. 그리고 휴멍거스가 1996년 GT인터랙티브에 인수되면서 함께 소속됩니다. GT인터랙티브는 당시 이드소프트의 '퀘이크'의 글로벌 출판권을 획득하면서 꽤 유명해졌고, 디어 헌터와 듀크 뉴캠등 여러 가지 타이틀에 대해서 판권을 확보하기 시작했죠.

여기서 우리는 GT 인터랙티브의 행보에 조금 더 주목해야 합니다. 1995년 이후 GT 인터랙티브는 급성장을 이루고 다양한 스튜디오를 편입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휴멍거스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였고, 추가로 시드 마이어가 설립했던 마이크로프로즈(MicroProse)까지 인수를 시도하는 공격적인 행보를 보입니다. 실제로 마이크로프로즈가 인수됐더라면, 아마 EA와 더불어서 가장 큰 규모의 게임사로 이름을 알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수하면서도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100만 장 이상 팔렸고, 언리얼과 디어헌터2도 8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실적도 괜찮게 나오는 듯싶었죠. 워낙에 공격적인 행보를 보인 탓에 1997년 순손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듬해 흑자 전환을 하면서 새로운 역사가 열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1999년, GT 인터랙티브는 끔찍한 불황에 시달려야 했고, 당시 2억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손실을 기록합니다. 사실상 파산 직전인 셈이죠. 600명이 넘는 직원들을 해고하면서 구조조정도 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불황으로 인해 소프트웨어 판매량이 급감하면서 큰 위기를 맞이했던 겁니다. 이러한 큰 위기에서, GT 인터랙티브의 가능성을 본 다른 하나의 회사가, 결국 GT 인터랙티브를 인수하는 강수를 둡니다.

바로 인포그램입니다. 우리에게 '아타리'로 잘 알려진 그 회사입니다. 인포그램 엔터테인먼트는 GT 인터랙티브를 인수하고, GT 인터랙티브는 '인포그램 인터랙티브'로 사명을 변경하게 됩니다. 이후로 아타리의 행보는…. 아마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이후 씁쓸한 행보를 보이며 파산해버린 아타리는 가지고 있던 파산 경매에서 IP와 저작권을 팔게 되는데, 이때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판권을 한 전략 게임 회사에서 인수합니다. 그리고 함께 가지고 있던 '마스터 오브 오리온'도 같이 가져가죠. 이렇게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MMO 전략 게임의 대명사인 '워게이밍'이 판권을 소유하게 됩니다.

워게이밍은 이때 획득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2015년 12월 16일 스팀을 통해 재발매합니다. 오래된 고전 게임이 정식으로 재출시되는 일은 매우 드문데, 팬들에게는 참 좋은 소식이었죠. 이후 워게이밍은 마스터 오브 오리온을 새롭게 출시하면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함께 증정하기도 했습니다.

▲ 스팀과 GOG를 통해 플레이해볼 수 있는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부활 가능성은.... 어?
공식 후속작은 아닌데, 정신적 후속작 상태가 심상치 않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는 현시대에서 '메이저'라고 부르기는 애매한 장르입니다. e스포츠에서 가장 선구적으로 연구됐던 장르 중 하나이며 e스포츠화도 가장 빠르게 진행됐지만, 현재로서는 MOBA 장르에 다소 밀리죠. 그렇지만 꾸준한 팬층과 수요층이 있고 여전히 리그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완전히 '마이너한 장르'라고 하기도 애매합니다.

게다가 동 장르(RTS)에 워낙에 출중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게임들이 있기에, 부활해도 성공적인 e스포츠나 판매량이 보장된다고 하기 어려운 장르입니다. 물론 최근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4' 등 과거 명작으로 꼽혔던 전략 시뮬레이션이 발매됐기도 하고, 프로스트 자이언트가 새로운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고 있기도 합니다. 나름 팬층과 수요가 있기에, 개발할 가치는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앞서 소개한대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시대보다 앞서간 다양한 전략 요소들을 선보였습니다. 물론 모두가 호평받은 요소들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의미'를 둘 수 있는 선구안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이러한 요소들은 게임을 복잡하게 하기도 하지만, 전략의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는 분명한 요소입니다. 그리고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에서 보여줬던 다양한 요소들이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도 연구되고 도입된 걸 볼 수 있죠. 물론 이게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는 애매하지만, 분명히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시대를 앞서 연구했던 증명이 될 수 있습니다.

▲ 슈프림 커맨더(위)와 플래니터리 어나이얼레이션(하)

또한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자체는 그리 인기 없는 게임이라고 치부하기도 그렇습니다. 단번에 끝날 게임이었고 한 때 반짝했던 게임이라면 '정신적 후속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이 등장하지 않았을 테죠.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가장 큰 매력은 '대규모 물량전'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다소 느린 호흡을 갖게 하지만 다른 전략 시뮬레이션들은 쉽게 따라 하지 못하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은 후속작 '토탈 어나이얼레이션: 킹덤즈'가 1999년 발매됐죠. 이쪽은 SF가 아닌 판타지 전략 게임이며, 네 개로(확장판에서 추가되어 다섯 진영) 나뉜 진영의 특색도 괜찮게 살아있고 판타지적 요소들이 전략적으로 잘 가미된 나름의 수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단점도 있기는 했지만, 특색 자체는 잘 살렸다고 본 게임이죠.

또한, 게임의 메인 디자이너였던 크리스 테일러는 향후 '슈프림 커맨더'의 제작에 참여했고, 본격적인 대규모 물량전을 보여주는 정신적 후속작으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2014년에는 토탈 어나이얼레이션과 슈프림 커맨더를 개발했던 제작진들이 킥스타터로 시작했던 '플래니터리 어나이얼레이션'이라는 게임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두 게임 모두 정신적 후속작으로, 전투의 스케일이 매우 큰 점이 특징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후속작도 나왔을 정도로 꽤 기억하는 유저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규모 전투는 특유의 매력이 있어서, 시장에서 이를 구현한 게임들도 꽤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대규모 병력을 지휘하고 싸우는 '토탈워' 시리즈가 자신만의 영역을 잘 다듬은 편이라고 할 수 있죠. 또한 '홈 월드'도 대규모 접전의 묘미가 있었으니까요.

앞서 소개한 대로 이 게임은 워게이밍이 판권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정식 후속작에 대한 프로젝트는 아직 발표된 바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새로운 프로젝트가 발족 중입니다. 이쪽은 정신적 후속작이긴 한데, 정체성이 매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과 유사하죠.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진행 중인 'BEYOND ALL REASON(이하 BAR)'입니다.

▲ 때깔이 심상치 않은 정신적 후속작 BAR.

▲ 여기도 대규모 전장의 매력이 잘 살아있긴합니다.

BAR는 실시간 전략을 재정의한다는 목표를 갖는 프로젝트로, 실시간으로 모든 유닛의 발사체가 시뮬레이션 되는 게임입니다. 탄도, 폭발, 물리학 및 지형에 대한 영향을 받으며 수천 명의 군대를 지휘하는 게임이죠.

과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 단점이 있는 만큼, 이를 개선하여 현시대에 맞는 대규모 물량전과 전략을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뭐, 따지자면 '시대에 맞는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할까요. 일단 홈페이지에 나온 첫 문구만 봐도, 케이브독의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의 이상을 추구한다고 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 공식 홈페이지에 작정하고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언급할 정도니...

커맨더로 게임을 시작하면 드랍 지점을 선택한다거나, 유닛 선택창이 늘어나기도 했으며 추출기 건설도 편해졌죠. 그렇지만 여전히 '메탈'과 '에너지'를 사용하며,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처럼 유닛의 수도 대단히 많고 진영도 둘로 나뉘었습니다. 앞서 짧게 언급한 것처럼 모든 발사체가 폭발하고 폭발에 의한 물리효과와 지형 변형이 이뤄지기도 하고요. 실질적으로 오늘날 인기 있는 전략 게임들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죠.

해당 프로젝트는 현재 오픈소스로 개발되고 있는 만큼, 무료로 즐겨볼 수 있습니다. 실질 개발비는 기부를 통해 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기부 내역도 공개하고 있죠. 물론 스팀에 정식으로 출시된 만큼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을 직접 즐겨보실 수도 있겠지만, 현대적으로 발전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으시다면 BAR에도 관심을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신적 후속작 프로젝트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팬들에 의해 실제로 개발되고 있는 점은 또 다른 IP의 확장이자 새로운 개념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단순히 IP의 소유주가 부활해주길 바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팬들이 감성을 살려서 부활 시키는 움직임은 참 긍정적인 모습이 아닐까요. IP의 정체성은 다소 옅을지언정 '정신적 후속작'으로 다시금 추억을 되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