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고르기 어려운 PC 관련 제품군은 무엇일까요? 제원만 보면 무슨 소린지 도통 알 수가 없는 메인보드, 같은 칩셋인데도 불구하고 수십 가지 제품이 존재하는 그래픽카드, 제품의 성능, 색감은 물론이고 AS 인프라까지 고려해야 하는 모니터 등등.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CPU와 메모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하드웨어들이 선택 장애를 유발하곤 합니다.

그중 최고로 고르기 어려운 제품을 꼽아보라면 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헤드셋의 손을 들어줍니다. 앞서 설명한 파츠들처럼 PC의 필수 구성 요소는 아니지만 게이머라면 모름지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할 제품이죠. 일단 헤드셋은 제원만 봐도 머리가 지끈지끈 합니다. 클럭 수, 스위치 수명, 주사율 등 단순 수치로만 성능 파악이 가능했던 타 하드웨어들과 다르게 주파수, 임피던스 등등 마치 외계의 존재가 서술해놓은 듯한 괴상한 항목들로 가득합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거야"라는 주입식 교육 환경에서 자라온 우리 게이머들에게 특히 치명적이죠.

헤드셋은 당장 필요하지만 어떤 제품을 구매해야 할지 모르시겠다면 제가 직접 사용해본 게이밍 헤드셋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IT 기자라는 타이틀 덕에 다양한 제품들을 사용해 볼 기회가 있었고, 그 덕에 어떤 게 좋은 제품이고 아닌지는 파악할 수 있는 안목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헤드셋은 워낙 취향이 갈리는 제품군이다 보니 순위가 아닌 '취향별 추천 헤드셋'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네요.





[1] 가벼운게 최고야
하이퍼엑스 클라우드 스팅어 코어 무선
(HyperX Cloud Stinger Core Wireless)



처음 소개해 드릴 제품은 하이퍼엑스의 경량 헤드셋 '하이퍼엑스 클라우드 스팅어 코어 무선'입니다. 첫인상은 그저 그랬던 제품으로 기억합니다. 전체적으로 무난한 디자인, 약간은 조약해 보이는 플라스틱 소재로 큰 기대는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직접 착용해 보면 꽤나 반전입니다. 일단 너무나도 가볍습니다. "아, 조약해 보이는 플라스틱 소재 하우징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깃털같은 착용감이 일품입니다. 제원상 무게는 245g으로 무선 헤드셋 중에서는 아주 가벼운 편에 속하는 제품입니다.



간혹 그런 제품들이 있습니다. 경량화를 위해 기능들을 덜어내고 덜어내다 보니 결국엔 성능까지 가벼워진 제품들 말이죠. 하지만 이 녀석은 헤드셋의 기본기는 충실히 수행합니다. 가상 7.1서라운드 음향을 지원해 사운드 플레이에 능하며 기존 단방향에서 양방향 마이크로 변경되어 마이크 품질 또한 향상됐습니다. 거기에 회전식 음소거 기능까지 더해져 약간의 편의성도 제공하죠. 가격은 129,000원 입니다.

음질에 큰 강점이 있는 제품은 아니니 음악이나 영화 감상용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사운드 플레이가 필요한 게임을 장시간 즐기는 유저들에게 추천할 만한 제품입니다. 약 5시간 이상 사용해도 목에 통증 없이 편안합니다. 약간 저렴해 보이는 생김새도 눈감아줄 수 있는 관용은 필수.





[2] 순백의 깔끔한 헤드셋 어디 없을까요?
레이저 바라쿠다 X 머큐리
(Razer Barracuda X Mercury)




화이트 컨셉의 게이밍 데스크 셋업을 꿈꾸는 유저라면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한 레이저의 머큐리 시리즈, 그중 무선 게이밍 헤드셋 제품군인 '레이저 바라쿠다 X 머큐리'입니다. 처음 국내 시장에 등장했을 때 임팩트가 상당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토록 깔끔한 순백의 헤드셋을 10만 원 초반대에 만나볼 수 있다니. 그것도 레이저 로고가 각인된 제품을 말이죠.



사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이전에 출시했던 '레이저 오퍼스 X'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겠습니다. 하지만 오퍼스는 블루투스로만 연결이 가능하며 별도의 외장형 마이크도 탑재되어 있지 않아 게이밍 헤드셋으로 사용하기에는 역부족이었죠. 반면 레이저 바라쿠다 X 머큐리는 태생 자체가 게이밍 헤드셋입니다. USB 동글을 통해 안정적인 무선 연결이 가능하고 탈착식 플렉시블 마이크도 탑재해 오퍼스 X 대비 더 나은 게이밍 성능을 자랑합니다.



레이저의 제품 + 10만 원 초반대라는 조합에 당연히 보급형 헤드셋 정도의 사운드 품질을 예상했으나 가격 대비 상당히 괜찮은 수준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고음역대는 살짝 아쉽지만 강하게 때려주는 베이스 사운드가 특징이며 영화 감상용으로도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가격은 139,000원.

사진으로만 봐서는 엄청나게 예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가득하지만 실제 제품은 고급짐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플라스틱 소재가 사용되어 가벼운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경량 플라스틱 소재 덕분에 무게는 250g으로 상당히 가벼운 편에 속합니다. 편의성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용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마이크의 품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이크 성능을 모두 빼고 사운드에 몰빵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요. 게임 내 음성 채팅 용도로 사용하는데 큰 문제는 없으나 파열음을 걸러주지 못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약간의 불편함을 유발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하이퍼 클리어 카디오이드 마이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에는 무리이지 않을까 하는 애매한 성능.





[3] 나에게 딱 맞는 소리를 만들고 싶어
로지텍 G PRO X 무선
(Logitech G PRO X Wirless)



다음은 게이밍 헤드셋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로지텍의 G PRO X 무선'입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두 제품들과 다르게 스튜디오 헤드폰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디자인이 특징입니다. 디자인뿐 만 아니라 무게도 370g으로 묵직합니다. 하지만 알루미늄과 스틸 소재가 사용됐기 때문에 고급스러움과 견고함 또한 무게와 비례합니다.



전반적인 헤드셋의 만듦새도 상당히 우수하지만 전용 소프트웨어인 Logitech G HUB가 주는 편의성이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볼륨 설정은 당연하고 저음, 고음역대를 내 입맛에 맞게 간편하게 설정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날 기분에 따라 플랫한 소리로, 또는 베이스가 풍성한 소리로 설정해가며 하나의 헤드셋으로 다양한 소리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앞서 설명한 Logitech G HUB를 통한 커스텀 EQ 설정뿐 만 아니라 프로게이머가 사용 중인 EQ 설정도 불러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장비병 환자들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기능이죠. 클릭 한 번으로 LCK 선수들과 같은 세팅의 소리를, 해외 리그 브로드캐스터와 같은 설정의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기능입니다.

로지텍 G PRO X 무선은 별도의 설정을 거치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순정 그대로의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추천할 수 있을만한 제품은 아닙니다. 별도의 EQ 설정 없이는 여타 보급형 헤드셋과 다를 바 없는 아주 플랫한 소리를 들려주거든요. 큰 장점이 없는 소리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 내 귀에 딱 맞는 소리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유저들에게는 적극 추천할 수 있을만한 제품입니다. 첫 단추만 잘 꿰매준다면 DTS 2.0, BLUEVOICE 기능을 통해 굉장히 선명한 소리를 들려주고 또 내보낼 수도 있으니 말이죠. 가격은 269,000원 입니다.

아, 옆으로 넓은 두상을 가진 게이머라면 한 번쯤 착용해 보고 구매하는 것을 권장 드립니다. 헤드셋의 장력이 꽤 강한 편이라 압박감이 다소 느껴지는 편이니까요.





[4] 대두 안경러들의 희망
터틀비치 스텔스 700 Gen2
(Turtle Beach Stealth 700 Gen2)




미국의 게이밍 헤드셋 전문 제조업체인 터틀비치의 '스텔스 700 Gen2'게이밍 헤드셋입니다. 전체적인 만듬새, 성능 등은 모두 평균 이상이고 특허받은 '안경 릴리프 시스템'만으로도 구매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그런 제품입니다.



뿔테안경을 착용하는 게이머들에게 장시간의 헤드셋 사용은 고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몇 년 전 PUBG 열풍이 불었을 때 그 고통이 극에 달했죠. 저 역시 뿔테안경을 착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터틀비치의 헤드셋을 그 당시 사용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터틀비치의 스텔스 헤드셋 라인업은 특허받은 'PROSPECS™' 안경 릴리프 시스템이 적용돼 이어컵이 안경테를 누르는 압박감을 최소화시켰습니다. 장시간 헤드셋을 사용하는 게이머이자 안경 착용자라면 상당히 매력적인 설계 구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경 착용자들을 위한 설계뿐만 아니라 게이밍 헤드셋으로써의 성능 또한 훌륭합니다. 중, 고음역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밸런스가 잘 잡힌 플랫한 소리를 들려줍니다. 언제 들어도 거북하지 않은 그런 사운드 말이죠.

그리고 FPS 게임에서 적군의 발소리, 상호 작용 소리 등의 미세한 소리들을 증폭시켜주는 '슈퍼휴먼 히어링(Superhuman Hearing)'모드를 제공해 게이밍 환경에서 더 선명한 소리를 들려준다고 합니다. 사실 저는 이 기능이 크게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순정 상태에서도 충분히 잘 들리거든요.

가격은 159,000원으로 우리나라에서 터틀비치라는 브랜드의 네임 밸류에 비해 살짝 부담스러운 수준이긴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입지, 그리고 제품 자체의 성능으로만 봤을 때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만한 금액입니다. 거기에 무선뿐만 아니라 블루투스까지 지원하니 다방면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큰 이점이 될 수 있겠네요.





[5] 제일 좋은거 주세요
하이퍼엑스 클라우드 Orbit S
(HyperX Cloud Orbit S)


앞서 추천드린 4종의 헤드셋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헤드셋은 꼭 무선으로 구매하라고 추천합니다. 게이밍 헤드셋을 품격 있는 음악 감상용으로 사용할 유저도 몇 없을뿐더러 마우스와 키보드 근처에서 걸리적거리는 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다방면으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헤드셋이 필요한 사용자라면 유선 제품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하이퍼엑스 클라우드 Orbit S'입니다.


사실 오디지 펜로즈와 하이퍼엑스 Orbit S 중 어떤 제품을 추천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수 시간의 고민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Orbit S 를 추천할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펜로즈의 경우 게이밍 헤드셋이라고는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의 가격이니 말이죠. 반면 Orbit S는 펜로즈와 동일한 100mm 평판형 마그네틱 드라이버를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329,000원(작성일 기준)으로 비교적 저렴(?)합니다.



전체적으로 중, 저음역대가 강조된 소리를 들려주며 끝판왕 게이밍 헤드셋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음감용 헤드폰 못지않은 해상력을 자랑하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거기에 전용 소프트웨어를 통해 EQ 세팅, 3D 튜닝 등 다양한 설정을 통해 사용자에게 딱 맞는 정교한 설정도 가능하죠. 심지어는 머리둘레 수치까지 설정이 가능해 완벽한 나만의 커스텀 헤드셋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Waves Nx™ 완전 몰입형 3D 오디오 기술이 탑재돼 풍부한 공간감과 정확한 방향감을 제공합니다. 사용자의 머리 움직임을 감지해 사운드의 밸런스를 조절해 주는 기술로 고개 움직임에 따라 소리의 방향이나 공간감을 실시간으로 튜닝해 주는 셈이죠. 애플 디바이스의 공간 음향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가의 헤드셋이다 보니 장점만 가득할 것 같지만 예상외로 단점도 존재합니다. 평판형 드라이버 특성상 다이나믹 드라이버 대비 충격에 약하다는 점이죠. 가끔 책상을 내리치거나 헤드셋을 내던지는 퍼포먼스가 필요한 인터넷 방송인들에게는 다소 위험한 제품이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