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세상이 멸망해야만 제 값을 하는 게임



섀도우 워리어3가 출시되었다. 다수의 명작 인디 게임과 맛이 가버린(좋거나 나쁜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대작 시리즈의 유통사로 자리매김한 디볼버 디지털이 유통하는 게임 답게 섀도우 워리어 시리즈는 여러 가지 의미로 앞서 나간 게임이긴 했다.

한도 끝도 없는 가벼움과 본능 그 자체에 충실한 게임 디자인. 풍자를 온몸으로 두른 오타쿠 닌자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악당들을 토막내며 평화를 추구한다는 저세상 컨셉. 섀도우 워리어는 절대로 최고의 자리에 머물 수 있는 게임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의 인기는 꾸준히 유지해 온 시리즈다.

게다가, 이번에는 한국어화까지 달고 나왔다. 꽤 중요한 부분이다. 컷신의 절반 이상이 언어 유희와 말장난으로 이뤄진 게임인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게임의 궁극적인 재미가 전달이 안 될 테니까. 이전까진 매니악함에 더불어 한국어 미지원이라는 문제 때문에 국내 팬덤이 사실상 전멸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품은 국내에 시리즈 팬덤이 만들어질 계기가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 종합된 평가는 다소 미묘하다. 70점대 중반이라는 애매한 점수. 흔히 말하는 '호불호의 영역'이다. 80점만 되어도 평범하게 좋은 게임인 마당에 이 점수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물론 근래에는 리뷰 점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대세이지만, 그래도 여러 리뷰가 종합되어 나오는 점수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게임명 : 섀도우 워리어3 (Shadow Warrior3)
장르명 : 슈터
출시일 : 2022.03.02.
개발사 : 플라잉 와일드 호그
서비스 : 디볼버 디지털
플랫폼 : PC, PS4, Xbox One

관련 링크: '섀도우 워리어3' 오픈크리틱 페이지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 보십시오.

TV나 유튜브에서 명상 관련 콘텐츠를 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복잡한 생각과 집착을 버리고 머리를 비우라 하는데, 사실 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게 생각이 되고, 잊으려다가 또 생각해버리는 경험은 그리 오래 살지 않았다 해도 한 번쯤은 느껴볼 경험이니 말이다.

하지만, 쉬운 방법이 있다. '섀도우 워리어3'를 하면 된다. 이 게임은,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게이머에게 딱히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먹이를 위해 쓰레기통에 돌맹이를 넣는 까마귀처럼 딱 그 정도의 사고만 하면 된다. 기본적인 게임 디자인부터가 딱히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레일 슈터인데다 이렇다 할 퍼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적들을 분쇄하기 위해 특별히 계획을 짤 필요도 없다. 그냥 잘 썰고, 잘 쏘고, 잘 죽이면 된다.

▲ 빙빙 돌면서 우클릭만 연타해도 게임은 진행된다.

바로 이 점이 '섀도우 워리어3'의 본질이자 장점, 그리고 약점이다. 게임 내내 플레이어는 별다른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면 된다. 섀도우 워리어3의 전투 사이클은 상호 보완적으로 이뤄져 있어 칼로 처치하면 탄약이 떨어지고, 총으로 처치하면 체력이 떨어진다. 'Q'키를 눌러 발동되는 처형은 전투 상황의 유일한 변수인데, 이를 통해 적의 무기를 뽑아 쓰거나, 잡졸의 뚝배기를 뽑아내 일시적으로 체력을 두 배로 올리는 등 보너스를 얻어낼 수 있다.

그 밖의 다른 시퀀스. 그러니까 새로운 아이템을 얻거나, 경로를 개척하거나, 맵이 변하는 등의 순간들은 죄다 컷신으로 처리되어 있다. 게이머가 새로운 지형 개척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도 없고, 새로운 아이템이나 무기를 얻기 위해 맵을 헤집고 다닐 필요도 없다. 그냥 필요한 시점에 눈 앞에 딱 나타나고, 연출이 어려운 부분은 말장난과 함께 하는 컷씬으로 해결된다.

▲ 컷씬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섀도우 워리어3'이 보여주는 재미의 결은 여러모로 최근의 다른 게임들과는 차이를 보인다. 솔직하게 말하면, 게임으로서의 재미 보다는 드라마나 영화에 가까운 재미다. 물론, 이 방법 자체가 그른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뇌 비우고'하는 게임 중에도 명작은 수없이 많으며, 애초에 생각할 필요 없는 게임을 선호하는 게이머 계층도 존재한다.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신나는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적합한 게임이기는 하다. 시종일관 이어지는 농담과 말장난에 피식 웃으며 눈앞을 가로막는 모든 적들을 쏘고, 썰고, 조각내면 된다. 이 시간은 명백히 즐겁고 재밌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섀도우 워리어3는 그 이상의 재미를 만들어내질 못한다. 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단순함이 섀도우 워리어3의 장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되는 이유다.

▲ 신나기 짝이 없는 디스코 수류탄

단순 비교하자면, 대작 중 장르적으로 섀도우 워리어3와 가장 유사하다 볼 수 있는 '둠(리부트)'의 경우 생각보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 깊게 고민해 퍼즐을 풀어내고, 맵의 비밀을 밝혀내는 성격은 아니지만, 보다 효율적인 전투를 위해 짧은 시간 안에 수십번의 판단 과정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섀도우 워리어3'는 그렇지 않다. 보통 난이도 기준으로 웬만한 적들은 그냥 칼만 가지고도 다 썰어버릴 수 있으며, 체력이 모자랄 땐 잡졸의 머리통을 한 번 뽑아주면 다시 쭉 차오르는 체력을 볼 수 있다.

게임의 시작부터 끝까지 '섀도우 워리어3'의 재미는 오로지 썰고 죽이는 재미와 말장난&농담이라는 두 필러를 기준으로 이뤄져 있으며, 게임 플레이 한 시간이 지날 때쯤엔 더이상 이 게임에서 이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적이 나오고, 새로운 무기가 나오는 게 유일한 신선함과 새로움일 뿐, 게임 플레이 자체는 게임의 첫 시작부터 엔딩에 이르는 순간까지 계속 똑같기 때문이다.

▲ 게임 플레이는 거진 비슷하니 농담 보는 재미로 계속 하는 게임



요즘 게임들은 왜 항상 최적화가 문제일까?

생각을 요구하지 않는 게임 디자인이 호불호가 나뉘는 영역이라면, 게임의 아쉬운 마감새는 명백하게 '불호'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섀도우 워리어3' 또한 작년부터 꾸준히 이어지는 '멀티플랫폼 게임의 PC 버전이 보여주는 아쉬운 최적화 퍼포먼스'의 유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권장 사양의 비디오 카드가 GTX 1080인데, 두 세대 위의 퍼포먼스 카드인 RTX 3080'으로도 간헐적인 프레임 드랍이 느껴진다. 프리 렌더링이 이뤄졌을 컷씬에서도 스터터링이 생기는걸 보면 단순히 비디오 최적화의 문제 뿐만 아니라 다른 결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16:9 비율을 초과하는 해상도의 모니터에서는 사실상 게임 진행이 매우 어렵다. 기자 본인이 쓰는 모니터는 32:9이고, 보통 게임을 할 때는 21:9의 창 모드로 게임을 진행하는데, 게임의 기반 해상도인 16:9 이상의 와이드 해상도에서는 화면 비율이 영 이상하게 바뀐다.

▲ 16:9 비율의 무기 노출(위)과 32:9 비율의 무기 노출(아래), 실제로 해보면 엄청나게 답답하다.

일반적으로 슈터 게임은 가로 해상도가 높아지면 화면 중앙은 그대로 16:9 비율을 유지하는 형태에서 좌우의 시야가 늘어나는 형태를 띄게 되는데, '섀도우 워리어3'는 기존의 화면을 두 배로 늘리고 위아래를 잘라내는 형태에 가깝게 변한다. 화면만 커졌을 뿐, 게임 감각은 마치 확대 렌즈를 끼고 게임을 하는 듯 한 어지러움과 어색함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런 시야 처리가 너무 불편해 16:9 창모드로 실행하려 하니 해상도가 1280 x 720으로 고정된다. 21:9 해상도에서는 정해진 프리셋대로 해상도 조절이 가능한데, 16:9에서는 그 기능이 아예 잠겨 있으며 창 끝을 마우스로 드래그해 억지로 늘려도 적용을 누르는 순간 다시 조그마한 창으로 변해버린다. 결국, 리뷰를 하는 내내 어딘가 불편한 시점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손 보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게임 플레이에서는 무척 불쾌한 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게임의 매력 포인트이자 3편의 최고 장점 중 하나인 '한국어화'도 완벽하지 않다. 게임 중 '마우스 중간 버튼을 길게 눌러 충전'이라는 문구를 보고 무기 조작법의 일종인줄 알았는데, 뜬금 다른 무기로 바뀌는걸 보고 뭐가 잘못됐나 싶었는데, 'Change'를 'Charge'로 보고 오역했음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 충전(charge)? 아니다. 교체(change) 맞다.

다행이도 게임 플레이 내내 이어지는 말장난과 농담은 비교적 괜찮게 번역되어 있으나 인터페이스에서는 꽤 많은 오역이 보이는데, 이 때문에 게임 내내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면서 영어 발음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영어 실력을 늘리는 데는 꽤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지만, 엄연한 마이너스 요소다.



장점 하나에 올인, 해답이 될 수 있을까?

한 마디는 꼭 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게임은 정말 재밌다'

말하다 보니 게임의 부정적인 부분을 줄줄 읊어버렸지만, 이는 일반적인 게임의 구성 요소와 수준을 기준으로 삼을 때를 논한 것일 뿐, 게임의 본질은 '재미'라는 점을 생각하면 '섀도우 워리어3'는 명백히 이를 충족한다. 어쩌면, 그 덕분에 수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70점대 중반이라는, 흔히 '호불호의 영역'에 걸치는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게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패러디와

때문에, '섀도우 워리어3'라는 게임의 평가는 좋은 게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소 논쟁적으로 번질 여지가 있다. '재미' 그 자체에 두면 합격이지만, 게임의 다른 부분을 조명하면 낙제점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짧은 볼륨도 평가 기준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게임의 모습에 한 몫을 한다. 빠르면 네 시간, 길어 봐야 여섯 시간이면 끝나 버리는 게임 볼륨, 그리고 멀티플레이와 뉴게임+의 부재로 2회차 플레이 가치가 전혀 없다는 점은 명백한 단점이다. 내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나름 즐겁게 즐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게임 외적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그 최초의 여섯 시간이 엄청난 재미를 준다는 점이 짧은 볼륨이라는 단점을 희석한다. 게임의 여러 부분이 그렇다. 플라잉 와일드 호그는 마치 작정한 듯 단점을 없애기보단 최초의 싱글 플레이 경험이라는 단 하나의 장점을 통해 다른 모든 것을 뭉개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 뭔가 그냥 뻘하게 웃기는 구도까지 재미 하나는 확실

탐험 요소가 존재했던 1편, 그리고 루트 슈터에 가까웠던 2편에 비해 한없이 가벼워졌지만, 그만큼 고민할 필요 없이 본능에 몸을 맡겨도 된다는 점은 시리즈의 발전 방향이 어떻게 잡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섀도우 워리어3'는 매우 재미있는 게임이지만, 두 번 플레이할 가치가 없고 게임 외적인 문제가 불거지는 작품이다. 한 번의 싱글플레이 경험을 무기로 삼은 게임은 수없이 많았고, 그 중 명작들도 다수 존재하듯, 섀도우 워리어 또한 그 중 하나가 되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게임은 너무 짧고, 가격은 너무 높다. 정가 51,000원. 그 어떤 게이머도 한 시간에 만 원 이상을 지불하며 게임을 하길 원치는 않는다.

재미는 있다. 하지만 그 뿐이다. 게임은 모름지기 계속 하고 싶어야 한다. 섀도우 워리어3는 그게 안 된다. 한 번은 재미있지만, 다음이 없다. 그리고 그 한 번 마저도, 너무나 단순한 디자인 때문에 두 번, 세 번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런 주제에 싸지도 않다. 오늘이 인생 마지막 게임이기에 남은 소중한 시간을 그나마 재미있게 보내고 싶다면 꽤 괜찮은 선택이 되겠지만, 요즘같이 게임이 많은 시기에 굳이 팬이 아니라면 이 게임을 고를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 그 볼륨에 그 가격은 너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