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사로잡는 특별함보다 기본에 집중한 게임


지난 22일, 인디 개발사인 그림바트 테일즈에서 2.5D 플랫포머 게임 '이토라'를 정식 출시했습니다. 몽환적인 그래픽 연출과 잔잔한 OST로 출시 전부터 여러 게임쇼에서 수상을 받는 등 꽤 기대를 받았던 게임이었죠.

개인적으로 이전부터 눈여겨두고 기다렸던 게임이었기에 출시가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이토라'를 기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플랫포머이자 메트로배니아 장르였기 때문인데요. 로그라이크와 더불어 많은 인디 개발사에서 도전하는 장르가 메트로배니아지만 그중에서도 명작의 반열에 이름을 올린 게임은 '오리와 도깨비불', '할로우 나이트' 등 소수에 불과합니다. 단순한 플랫포머 스타일이 아니라 짜임새 있는 맵 구조, 그리고 레벨 디자인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만큼 재미있고 잘 만들기 어려운 장르인데요. '이토라'는 출시 전부터 여러 차례 수상을 받기도 했고 트레일러의 연출과 액션도 흠잡을 데가 없어 내심 기대가 됐습니다.

정식 출시부터 공식 한국어를 지원하니 언어의 장벽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고 출시 후 곧바로 할인에 들어가 큰 부담 없이 게임을 즐겨볼 수 있었습니다. 메트로배니아 게임으로서 '이토라'는 어떤 모습이고 또 앞서 언급했던 게임과 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지 지금부터 세세하게 파헤치며,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임명: 이토라(ITORAH)
장르: 플랫포머, 메트로배니아
출시일 : 2022. 3. 22
개발 : Grimbart Tales
배급 : Assemble Entertainment
플랫폼: PC



스토리 중심의 메트로배니아

메트로배니아 장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각종 능력을 획득하고 새롭게 얻은 능력을 사용해 예전에는 못 가던 지역을 갈 수 있는 진행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가령 1단 점프로 갈 수 없는 벽이 나중에 얻은 2단 점프로 갈 수 있는 식이죠. 이때 갈 수 있는 지역과 갈 수 없는 지역을 억지로 나누려고 하지 않고 유저 스스로 찾아갈 수 있게 만드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스토리로 가이드 라인을 세워두고 이를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능력도 얻고 길도 뚫을 수 있게 만드는 게임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토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으로 인류의 유일한 생존자인 주인공의 서사를 그린 게임입니다.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역병에 점차 죽어가고 있으며, 주인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도 풀고 역병도 해결해야 하죠.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스토리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앞서 언급한 두 가지의 방식 중 후자에 해당하죠. 따라서 어느 정도 자유도를 보장하던 '할로우 나이트'와 달리 스토리에 따라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정해지며, 게임의 진행 방식만 본다면 '오리와 도깨비불'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합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서 던전에 향하게 되고 이후 또 다른 던전을 차례대로 격파하는 방식이죠.

스토리 진행에 따라 맵을 돌아다니는 방식이라 길을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는 편입니다. 친절하게 맵에 목적지 마크를 띄워 줘서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죠. 많은 게이머가 메트로배니아 게임에서 길 찾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접근성 면에선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목적지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메트로배니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탐험의 재미는 다소 부족한 편입니다.


그렇다면 탐험의 부족한 점을 스토리가 완벽하게 채워줄 수 있는가가 중요한데 전체적인 흐름에서는 나쁘지 않았으나 세부적인 이야기에서 개연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령, 게임의 첫 도입부는 주인공이 눈을 뜨고 이후에 거미에게 쫓기다가 뜬금없이 말하는 도끼를 얻게 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도끼를 휘두르고 이후 말도 없이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다니게 됩니다.

본인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기억을 못하는 주인공과 도끼인지라 부연 설명 없이 바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점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수인족과 마지막 생존자인 인류를 갑자기 만났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수인족 마을 주민들, 그리고 부연 설명 없이 이어지는 여정과 뜬금없이 나타나는 알 수 없는 저주는 어딘가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습니다. 급하게 진도를 빼려다 회수를 못하고 어영부영 넘어가려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죠.

개인적으로 세부적인 개연성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고 생각하는 터라 어느 정도 흐름만 이어진다면 무시하는 편이었는데 모든 부분에서 이질감이 느껴지다 보니 스토리에 몰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다만, 게임을 어느 정도 진행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계관과 관련된 정보가 쌓이고 전체적인 틀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부터는 나름대로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유저가 흥미를 붙일 수 있는 부분을 앞으로 끌고 왔다면 지금보다 매끄럽게 게임을 즐길 수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최후의 인류를 만난 자의 유일한 감상평



밋밋하게 느껴지는 게임 플레이

'이토라'를 플레이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게임이 너무 밋밋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재미의 굴곡을 선으로 그려보자면 거의 직선에 가까운 편이랄까요. 초반 몰입도를 방해하는 스토리를 제외하더라도 게임 플레이 자체에 굴곡이 거의 없는 편이었습니다.

보통 액션 게임에서 게임의 몰입도를 올리고 밋밋함을 없애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난이도의 조절입니다. 난이도의 강약을 조절해서 게이머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볼 때 '이토라'의 게임 난이도는 너무 쉽게 느껴졌습니다. 일단, 등장하는 적들이 아주 착합니다. 선공하는 몬스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공격 1~2대만 맞으면 죽어버립니다. 심지어 때릴 때 반항을 하지 않는 몬스터도 있죠.

공격 패턴도 너무 단순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적에게 닿았을 때 피해를 입는 방식인데 적들은 천천히 다가오거나 혹은 공격을 하기 전에 굉장히 긴 시간 동안 공격 모션을 잡기도 하죠. '이토라'의 조작감은 매우 빠르고 정확해서 적이 공격을 하는 순간에 구르면 대부분의 공격을 무난하게 회피할 수 있어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게임의 후반으로 갈수록 높은 체력을 가진 선공 몬스터의 비중이 커져 그나마 괜찮았지만, 초중반 부분의 지루함은 너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 이래 봬도 세계관에서 나름 비중있는 적입니다

한편, 난이도를 쉽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적의 공격이 아프지 않고 죽음에 대한 페널티가 적다는 점입니다. 다크소울 시리즈가 어려운 게임으로 꼽히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적의 공격이 굉장히 강력하고 죽음의 패널티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토라'는 적들의 공격에 맞아 죽는 게 죽기보다 어렵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체력 회복 수단도 있고 체력 최대치를 높이는 것도 금방 할 수 있었죠.

이 역시 후반부에서는 꽤 강력한 몬스터가 등장하고 공격 패턴도 다양해졌지만, 후반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임 플레이 극 초반까진 아니더라도 두 번째로 방문하는 지역부턴 어느 정도 난이도 곡선을 높였다면 지금처럼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죽음의 패널티도 적은데 심지어 죽기도 어려우니 게임의 긴장감이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난이도를 선호하는 유저도 있을 테니 호불호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스토리 위주의 게임이라면 어려운 난이도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 길거리 풀만 베어도 돈은 충분히 벌고 수집품도 특별한 게 없다

한편, 게임을 밋밋하게 만드는 요소는 난이도뿐만 아니라 스토리 외에 특별한 콘텐츠가 없다는 점도 있습니다. 보통 메트로배니아 게임은 게임의 재미와 플레이 타임을 늘리기 위해 수집품을 넣거나 혹은 탐험할 수 있는 영역을 많이 만들어두는 편입니다. 특히, 수집품은 도전 과제와 맞물려 게임의 엔딩을 보더라도 더욱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이토라' 역시 수집품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너무나 쉽게 먹을 수 있고 게임 내에서 비중이 없는 편이라 이를 모으고 싶다는 욕구가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특별한 기능이 있거나 혹은 캐릭터를 강력하게 만들어줘 어딘가 수집하고 싶다는 욕구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죠.

게임 내에 등장하는 수집품은 앞서 언급했던 체력과 스태미나의 양을 늘려주고 회복 능력 강화 등에 사용되는데 구석진 곳에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길을 따라가다 보면 바닥에 떨어져 있어 수집하기가 너무 쉬웠습니다. 또한, 게임의 난이도가 워낙 쉽다 보니 캐릭터를 굳이 강하게 만들겠다는 욕구가 들지 않는다는 점도 수집품의 매력을 떨어트리는 데 한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이토라'만의 재미는 분명히 있다

그런데 게임이 마냥 재미없고 못 만든 게임이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게임은 단조롭고 어딘가 밋밋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거부감없이 술술 넘어가는 묘한 매력도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

일단, 액션이 생각보다 엄청 좋은 편입니다. 앞서 몬스터가 너무 약하고 난이도가 낮다고 언급했지만, 액션이나 타격감이 워낙 좋아 때려잡는 맛이 훌륭합니다. 키보드 커맨트를 입력해서 특별한 강공격을 펼치기도 하고 게임을 진행할수록 공격 액션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타격감을 제공해줍니다. 후반에는 나름 상대할 맛 나는 몬스터들도 등장하니 '이토라'의 액션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 나름 짜릿한 느낌을 주는 추격전

또한, 플랫포머 게임으로서 점프 퍼즐의 구성이 상당히 알찹니다. 일단 점프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퍼즐은 구현되어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퍼즐이 다양했습니다. 이후 2단 점프와 벽치기 등의 점프 기술이 더해지면서 다양한 동작을 소화할 수 있었고 던전마다 특색있는 점프 퍼즐이 등장해 이를 풀어가는 재미가 꽤 좋았습니다. 특히, 앞서 말했듯 게임의 조작감이 굉장히 좋으므로 액션과 점프 퍼즐이 스트레스보단 재미로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쉬운 난이도가 게임을 밋밋하게 만들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쉬운 난이도 때문에 부담 없이 게임을 쭉 플레이 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게임이 너무 어렵기만 하다면 되려 빠르게 흥미를 잃고 떠나게 됩니다. 반대로 너무 쉬워도 떠나긴 합니다만, 어쨌든 적절한 난이도로 유지가 되고 그 외에 요소만 적절히 더해진다면 어려운 게임보다는 더욱 오랫동안 즐길 수 있게 됩니다.

분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보스전도 존재하고 적당한 난이도의 퍼즐 요소도 등장하니 쉬운 난이도에서 오는 편안함과 나름의 성취감을 통해 정말 말 그대로 부담 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이토라'를 플레이하다 보면 '오리와 도깨비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탐험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에 집중한 메트로배니아 게임이라는 점과 알 수 없는 역병을 해결하는 스토리에서 비슷한 점이 꽤 많은 편이죠. 그래픽에서도 어딘가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느낌을 주기 위한 연출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특정 장소에서는 이러한 연출을 살리기 위해 아예 조명을 어둡게 만들거나 혹은 시야의 줌인을 통해 적절하게 조절하는 기법을 사용하기도 했죠. 많이 신경을 썼기 때문인지 확실히 게임의 분위기만큼은 뛰어난 편입니다. 때론 잔잔하게, 때론 격정적인 느낌을 주는 OST도 분명 게임의 재미와 몰입도를 더해주는 장치가 되었죠.

다만, 앞서 언급했던 밋밋한 게임 구성과 개연성 부족 탓에 공감이 가지 않는 스토리 라인, 부족한 콘텐츠 등 아쉬운 점도 많았습니다. 게임의 분위기와 배경에 신경을 쓴 만큼 메트로배니아와 액션, 레벨 디자인에도 더욱 신경을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따라서 어렵고 복잡한 게임에 지쳐서 힐링이 필요하다면 '이토라'를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적어도 게임 분위기와 술술 넘어가는 게임 진행만큼은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분위기만큼은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