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한 '퍼즐' 플랫포머의 정석


세상에는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있지만, 아마 퍼즐만큼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장르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실에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있는데, 게임에서도 문제풀이에 공을 들이고 싶지는 않은 것도 당연하니까요. 그렇지만 이열치열이라고 하던가요, 때로는 다른 종류의 문제를 고민하고 풀이하다보면 풀리지 않았던 현실의 숙제는 잠시 잊고 몰입하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는 장르이기도 합니다.

물론 문제푼다는 진입장벽이 꽤 큰 만큼, 좀 더 많은 유저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스토리를 가미하거나 암시와 복선을 도처에 깔아두면서 유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등 퍼즐 역시도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왔습니다. 때로는 다른 장르에서 퍼즐 요소를 가미해서 레벨 디자인을 하듯이, 퍼즐 또한 다른 장르의 게임플레이와 디자인을 흡수해서 적용하고는 했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루모트'는 처음에 조금 낯설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게임 소개에서는 바이오버스니 마스터모트니 하는 존재들의 대립이 설명됐는데, 그런 것 하나 없이 갑자기 퍼즐이 가득한 세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태죠. 거기다가 퍼즐 게임을 즐긴다면 여러 차례 보아왔을 3D 플랫포머와 결합된 퍼즐의 전형적인 구도까지 정통파 그 자체의 구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퍼즐 애호가라면 아마 그 맛과 풍미가 먹어보지 않아도 알 법한 집밥 같은 친숙함이 느껴질 겁니다. 요는 그 집밥 같은 느낌을 어떻게 완성도 있게 만들어냈냐의 승부겠죠.

게임명: 루모트(Lumote: The Mastermote Chronicles)
장르명: 퍼즐 플랫포머
출시일: 2022. 04. 21
리뷰판: 1.01버전
개발사: 루민어썸 게임즈
서비스: 에이치투 인터렉티브
플랫폼: PC, PS, Switch
플레이: PS5

관련 링크: '루모트' 오픈크리틱 페이지



퍼즐, 플랫포머 양쪽 다 기본기가 잘 잡힌 광활한 퍼즐의 세계


게임은 '루모트'라는 마스터모트가 바이오버스가 장악해버린 플랫폼 위에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설정에 대한 설명은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대사 없는 무언극에, 바이오버스에 대한 것도 초반엔 힌트도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확인은 어렵죠. 이 내용은 설명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서 개발자가 스팀페이지에 쓴 소개문을 인용한 것이고, 그 말 없이 게임에 들어가게되면 바닷속 같은 곳에 해파리와 우무문어 사이에 있는 뭔가 이상한 생물이 꿈틀대거나 찰싹 붙어대거나 이단점프하면서 퍼즐을 풀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게 전부라고 느낄 겁니다.

루모트의 룰은 퍼즐을 많이 해보지 않았더라도 플랫포머를 해봤다면 다 알 법한 방식입니다. 각종 플랫폼들로 구성된 퍼즐을 풀면서 블록을 스위치까지 옮긴 뒤, 스위치를 작동시켜서 앞으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구도죠. 그렇게 해서 바이오버스가 장악해서 빨갛게 오염되어린 월드를 다시 원래의 파란색으로 되찾아간다는 이야기를 심플하게 그려냈습니다.

▲ 이렇게 튜토리얼에 기본적인 조작법만 알려주는 것 빼고는 글자나 말 하나 없이 진행됩니다

▲ 요는 저 말미잘 비슷하게 생긴 스위치에 저 블록을 갖다두는 겁니다

룰과 도전 과제가 단순명료한 만큼 유저가 할 플레이도 명확합니다. 어찌보면 고전 퍼즐 명작 '소코반'을 3D 플랫포머에 맞춘 셈이니까요. 거기에 고전적인 퍼즐 플랫포머 느낌이 짙다보니 다소 식상할 수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몇 번 움직이다보면 기본기가 잘 잡혀있는 것이 느껴져서 나름의 '손맛'도 느껴집니다.

우선 밀고 끌고 할 것도 없이, 상자 위에 루모트가 달라붙은 뒤에 컨트롤하면 점프 빼고는 자유자재로 움직이니 컨트롤도 더 편합니다. 루모트의 점프력도 생각보다 출중해서 통상의 퍼즐하면 생각나는 답답함은 딱히 없죠. 조금 멀어보여서 신뢰의 도약을 여러 차례 뛰어도 어지간하면 닿을 정도고, 플랫포머에 익숙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미끄러짐이나 점프 후에 한 발짝 더 가서 아차하는 그런 현상도 별로 없어 손을 탓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일을 최소화했습니다.

퍼즐 게임이 으레 그렇듯이, 가면 갈수록 목표 지점에 블록을 놓기 위한 과정이 복잡해집니다. 처음에는 블록을 단순히 플랫폼을 타고 이동시키거나, 혹은 같은 색의 물체를 올려두면 늘어나는 말미잘 같은 수상쩍은 파이프를 활용해 벽을 넘어가는 정도에 불과해보이지만 응용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지죠. 더군다나 2D가 아닌, 3D라 플랫폼 구조도 약간의 시각적인 트릭이 있어 카메라를 돌려보지 않고 무턱대고 가거나 점프했다가 비명횡사하는 구간도 있습니다.

▲ 물론 가면 갈수록 기믹이 복잡해지는 건 퍼즐의 전통이죠

▲ 아뿔싸 이런 실책을...하지만 페널티는 없으니 안심하고 리트라이 Go

그런 상황에서 어색하게 플랫포머를 도입해서 컨트롤이 삑사리나는 일이 많으면 더 스트레스 받겠지만, 다소 여유로운 모서리 판정과 정확한 제동 때문에 조작감의 스트레스는 거의 없는 편이죠. 아울러 종종 퍼즐보다는 플랫포머에서 보던 빠르고 정확한 점프 착지나 다소 여유로운 끄트머리 구간을 활용한 꼼수(?) 플레이도 가능하게끔 유연하게 맵이 짜여있어서 하다보면 "이렇게 해도 되나? 이거 말고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싶은 때가 있긴 합니다. 어쨌든 미션 클리어, 썩세스하면서 넘어가곤 하지만요.

통상적으로 퍼즐과 플랫포머가 결합된 게임은 주로 스테이지 방식을 취하곤 하는데, '루모트'는 이동은 제한적이지만 어쨌거나 하나의 거대한 월드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초반에는 주어진 대로만 진행하지만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그 동일한 층위 안에서 다른 퍼즐로 이동해서 먼저 풀어도 무방하게끔 짜여져있죠. 마치 던전의 한 층을 클리어할 때 방을 다 클리어해야하긴 하지만, 그 방의 순서는 유저가 원하는 대로 정해도 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 어 여긴 뭔가 애매한데? 싶으면 다른 곳부터 먼저 풀고 오면 됩니다

퍼즐 자체가 자유도가 높지 않은 장르인 만큼 다른 장르의 자유도에 비하면 좀 조촐해보이지만, 퍼즐을 풀다보면 문제를 골라서 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되곤 합니다. 즉 플레이하면서 안 풀려서 지루해진 나머지 중단하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 그런 불상사를 막아주는 셈입니다. 보통은 한 층에서 다른 구간으로 가도 일정 난이도 이상의 퍼즐이 등장하기 마련이지만, '루모트'는 중간중간 쉽고 그 층의 핵심이 되는 기믹에 대한 힌트들이 있는 구간들이 섞여있어 문제를 풀러 이곳저곳을 넘나들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아울러 '퍼즐'하면 보통 갑갑하게 갇혀있거나 혹은 무간지옥처럼 스테이지 하나만 덜렁 있는 그런 구간이 연상되곤 합니다. 그런데 '루모트'는 이를 온전히 개방시켜둬서 방대한 퍼즐의 규모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나아갈 수 있죠. 스테이지들의 기믹이나 진도까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더라도 어쨌거나 하나하나 클리어할 때마다 조금씩 파랗게 변해가는 세계를 보면서 성취감도 느껴지고, 하늘 높이 뻗은 퍼즐의 탑들이 은은한 푸른빛과 붉은빛 그리고 보랏빛이 어우러지는 광경은 꽤나 장관이라서 퍼즐을 풀려고 카메라를 돌리다가도 잠시 멈추게 되는 맛이 있습니다.

▲ 좋아 많이 풀었군 & 아직도 할 게 많다니 좋군, 퍼즐팬이면 이만큼 반가운 이야기도 없죠



말 한 마디 없는 고독한 세계 속 은은한 퍼즐의 묘한 감각, 그러나 '한 방'은 아쉽다


아마도 그렇게 감상에 젖게 되는 이유를 꼽자면, '루모트'가 정말 말 한 마디 없이 홀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게임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튜토리얼부터 중간중간 아래로 내려가는 구간까지, 그 어떤 대사도 없습니다. 마치 컵헤드의 튜토리얼처럼 맨처음 시작할 때 기본적인 조작법만 화면에 뜰 뿐이죠. 그마저도 점프, 달라붙기, 이단점프밖에 없어서 금방 지나가버리고, 그 뒤로는 계속 망망대해 같은 어둠과 빛이 나는 플랫폼 사이를 오가면서 위에 달라붙으면 꿈틀거리는 블록들과 갖가지 기믹들을 보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머리를 굴리는 게 전부죠.

퍼즐로서 기본은 잘 갖춰져있고,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면서 세상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가는 모습이 눈으로 보이니 성취감도 있긴 합니다. 생각보다 필드도 넓은 편인데, 그 넓은 필드 곳곳에 있는 퍼즐들을 보면서 앞으로 풀 것들이 이리도 많다는 생각에 행복회로(?)를 돌리며 플레이하기도 좋고요. 그런데 그곳에 홀로 덩그러니 놓여 퍼즐을 굴리는 '의미'가 모두에게 와닿을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퍼즐이 일단 눈에 보이면 풀어봐야 직성이 풀리다보니 그 퍼즐의 미로를 어떻게 공략할까 하는 생각부터 했지만, 모두가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아울러 최근에는 퍼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너무 오래 걸리면 힌트 같은 것도 종종 주곤 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루모트'는 클래식 그 자체입니다. 그저 여러 번 캐릭터를 움직이면서 시행착오를 겪어야하죠. 처음에 블록 관련 부분은 설명이 되어있지만, 붉은 빛을 받으면 블록이 빨갛게 된다던가 실이 늘어나는 한도 내에서는 거의 무제한으로 둥실 떠다닐 것 같은 해파리가 실제로는 움직임에 규칙성이 있다던가 하는 건 직접 알아서 활용해야만 풀 수 있습니다.

그 고독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퍼즐 게임에는 음악도 상당히 중요한데, 이 부분도 약간 묘한 느낌입니다. EDM 베이스지만 BPM이 빠르지도 않고, 마치 해류마냥 은은하게 녹아들어가는 분위기를 지향하다보니 있는 듯하면서도 없는 듯하고 막상 신경을 안 쓰다보면 들리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죠. 그러다가 플랫폼 같은 걸 올라타거나 해파리를 타고 둥실 떠다닐 때, 늘어나는 말미잘 위에 올라탈 때 다소 생경한 효과음과 그에 맞춰 커지는 음악의 기이한 조화는 생각지도 못한 리듬감이 느껴져서 처음엔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지루해질 무렵이면 주요 오브젝트 구성이 바뀌게 디자인을 해두면서 루즈해지지 않게 다듬었죠.

▲ 동일한 색이 닿으면 늘어나고 아니면 줄어든다는 성질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어서 눈치껏 풀어야 합니다

▲ ??? 아까까지 잘만 헤엄치던 해파리가 갑자기 왜 추락하는 겁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은은한 느낌에 초점을 둔 나머지, 시선을 끌어당길 법한 강렬한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게 이 게임의 난점입니다. 퍼즐을 좋아하고, 플랫포머도 좋아하는 유저들이라면 자연스레 녹아들게 설계가 되어있고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도 없이 은은하게 빠져들게끔 했는데, 그 방향으로만 설계가 되어있다보니 이 장르에 흥미가 없는 유저들이 한 번 '찍먹'을 해보게 할 법한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루모트의 디자인이나 은은한 분위기의 필드는 '오리' 시리즈나 여타 분위기 있는 플랫포머의 느낌도 나긴 한데, 긴장감을 유발하는 요소나 어떤 내러티브를 추측하는 것도 없이 오직 퍼즐만 풀고 나아가는 그 기본에만 집중하도록 모든 것이 디자인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런 플랫포머류를 기대하고 플레이하면, 아마 실망할 확률도 상당히 크죠. 퍼즐만 있는 망망대해에서, 그 산적해있는 문제를 홀로 도움 없이 풀어가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정통파 퍼즐 그 자체니까요.

▲ 어려워서 전전긍긍하던 문제를

▲ 풀고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갔을 때의 그 쾌감이라니





퍼즐은 뼈대 있는 장르고, 매니아층도 확고하지만 그만큼 호불호도 갈리는 장르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여러 퍼즐 게임들이 외연을 확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섞고 그쪽을 강화하거나 내러티브를 가미하기도 하고, 짧지만 강렬한 기믹을 넣어서 '밈'화하는 등 여러 시도가 이어져왔죠. 한편으로는 더 발전된 기술로 고전 게임 시절에는 선보일 수 없었던 더 복잡하고 기발한 문제들을 고안하거나, 볼거리를 가미해서 퍼즐 그 자체를 어필하고는 했습니다.

'루모트'는 그 중 후자에 가까운 케이스입니다. 스토리가 있긴 하지만 결국 퍼즐을 풀고 앞으로 나아가서 세상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둔다는 그런 의미만 전달하는 장치에 불과하죠. 퍼즐과 더불어 비디오 게임에서 유서 깊은 또다른 장르 중 하나인 플랫포머를 도입했지만 이를 기발하게 변주한 최근의 플랫포머가 아닌, 지극히 정통적인 요소를 채택했습니다. 얼핏 봐서는 힐링 느낌이 물씬 풍기는 플랫포머의 느낌을 담아냈던 터라, 이를 기대하고 접근하면 다소 실망할 수 있는 그런 게임인 셈이죠.

▲ 슥 훑어보면 액션 플랫포머 같아보이지만, 결국 '퍼즐'이 핵심입니다

그렇지만 '퍼즐'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루모트는 기본도 확실하고, 몰입하기 위한 장치도 잘 갖춰진 작품입니다. 탁 트인 시야에 자신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퍼즐과 해결한 퍼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오픈해둔 필드, 단순한 룰을 하나하나 조립해나가면서 짜임새 있게 구성한 레벨 디자인에 중간중간 순서를 바꿔서 진행해도 무리가 없는 유기적인 설계까지 빈틈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제한시간이나 턴 제한 같은 것도 없고, 플랫포머로서 조작감도 준수하고 장치를 발동할 때의 약간의 텀도 있어 소위 컨트롤을 활용한 꼼수까지 어느 정도 용인됩니다. 그래서 될 듯 안 될 듯한 시도를 몇 번 뚫고서 얍삽하게 풀어가는 맛까지 더해서 중간중간 루즈함을 덜어냈습니다. 형형색색의 빛과 어우러지는 은은한 음악에 귀여운 루모트의 소리는 감초처럼 감칠맛을 더해주고요.

그런 저력을 인정받아서 PAX WEST 쇼케이스에서 인디 메가부스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클래식한 구성을 벗어나서 기발한 반전은 보여주는 작품이 아니다보니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권할 픽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퍼즐에 흥미가 있다면,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운 작품입니다. 어찌보면 불순물 같은 요소들은 다 덜어내고, 순수하게 문제를 풀고 즐긴다는 그 맛을 100% 이끌어내는 것에 집중한 작품이니까요. 퍼즐 외에 다른 요소를 결합했어도, 그 순수한 맛을 끌어내기 위한 조미료처럼 쓴 그 결과물은 퍼즐팬이라면 꽤나 그럴싸한 코스 요리를 보는 듯한 느낌일 겁니다.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돌입하자마자 스피드런식으로 바로 트릭을 술술 푼다고 가정해도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갖가지 퍼즐의 향연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