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스포츠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많다. 직접 대회 경기에 출전해 기량을 뽐내는 프로게이머나 이들을 규합하고 지도하는 감독과 코치진도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는 e스포츠 전문가들이 있다. 대회 경기를 중계하는 캐스터와 해설위원들도 그렇고 경기 내용을 분석하고 설명해주는 분석가들도 전문가의 범주에 들어간다. 중계 화면을 맛깔나게 표현해주는 옵저버라는, e스포츠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직군도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시각을 넓히면 더 많은 전문가들이 있겠지만, 보통 이 정도가 e스포츠 전문가 하면 곧장 떠오르는 인물들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스포츠 전문가들이 해당 종목 게임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보통 게임 실력은 각 게임의 랭크나 티어로 구분하기에, 최상위권 혹은 상위권 랭크를 기록하는 사람들 말이다.

질문은 여기서 출발한다. e스포츠 전문가들은 무조건 게임 내 최상위 랭크에 기록된 사람이어야 할까?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과연 이들의 게임 실력이 곧 그들의 전문성을 대표하는 요소일까? 이는 e스포츠 관련 커뮤니티마다 종종 화제가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 스포츠 실력과 전문성, 과연 비례할까

e스포츠도 스포츠라는 인식이 더 넓게 퍼지고 있는 요즘. 기성 스포츠에서도 위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을지 알아봤다. 그러던 중에 한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보게 됐다.

한국 농구계의 전설로 불리는 문경은과 현주엽이 현역 여성 프로 농구 선수들과 2:2 농구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문경은과 현주엽은 프로 농구 지도자의 길도 걸었던 바 있다. 아무래도 신체 능력을 요하는 농구인 만큼 여성이 남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현역 여성 프로 농구 선수들이 문경은과 현주엽을 상대로 승리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었고 2:2 농구 대결은 변수가 많지만, 한 종목의 전설이더라도 현역 선수보다 더 플레이를 잘할 순 없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위 두 명이 현역 선수들보다 농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거나 분석력에서 밀린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이들 모두 선수 출신이고 현역 시절 최고였기에 그 누구보다 해당 종목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분석력 역시 최고 수준일 터.

▲ 축구 같은 기성 스포츠에선 전문가의 스포츠 실력을 평가 기준으로 두지 않는다.

비단 선수 출신 전문가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선수 출신이라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관련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축구 해설위원들을 댈 수 있다. 축구 팬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한준희, 장지현, 서형욱 해설위원 등이 그렇다.

특히 한준희, 장지현 해설위원은 스포츠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았다. 선수 출신은 커녕 관련 종사자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인의 관심사였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현재 위치에 올랐다. 이들은 비선수 출신이기에 선수 출신들만이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 있지만, 그에 못지 않은 방대한 지식과 정보, 이를 바탕으로 구축된 전문성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해설위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종합해보면, 선수 출신이나 비선수 출신을 가릴 것 없이 현재 그들이 관련 스포츠 종목을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는 전문가라는 분야와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인다. 스포츠 전문가들이 현역 선수 수준, 혹은 그에 필적하는 수준의 실력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 된다.


◎ 유독 e스포츠에서는 왜?

유독 e스포츠에서는 감독이나 코치진, 해설위원, 분석가와 같은 전문가들이 현역 선수급, 혹은 그에 준하는 게임 실력을 가져야만 한다는 인식이 있다.

팬들 입장에서 봤을 때 비슷한 전문성을 보인다면 당연히 게임까지 잘하는 전문가가 더 인정받는다. 자신의 능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상위 랭크 점수 등을 들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A라는 사람은 토익 900점이지만 회화는 불가능하고, B라는 사람은 토익 900점에 회화도 유창하다면 B에게 눈길이 더 가는 건 당연한 이치다.

e스포츠는 기성 스포츠보다 훨씬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돌아간다. 상황에 따른 유불리나 경기의 흐름이 한눈에 쏙 들어오지 않는다. AOS를 예로 들면, 글로벌 골드나 포탑 파괴 정도, 킬 포인트에서 밀려도 조합상 불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e스포츠의 경기 흐름 자체가 워낙 순식간에 바뀌기에 방금 했던 분석이나 설명이 1초 뒤엔 전혀 맞지 않는 경우도 발생한다. FPS에서 방금 전까지 팀에 한 명만 남아 누가 봐도 패색이 짙었던 상황에서 상대 여럿을 다 잡고 승리하는 상황도 꽤 자주 나온다. 그만큼 e스포츠 경기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건 어렵고 복잡한 일이며 기준도 모호하다.

그렇기에 한눈에 보이는 랭크 점수나 티어 같은 것들이 그 사람의 분석력이나 전문성을 판단하는 직관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님 티어가?'라는 표현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1차 검증의 관문인 셈이다.


또, 기성 스포츠와 e스포츠의 차이도 '전문가는 게임 실력도 좋아야 한다'는 분위기에 힘을 실어준다. 기성 스포츠를 시청하고 관람하는 팬들 중에 실제로 그 종목을 직접 꾸준히 하는 사람의 비중은 많지 않을 거다. 하지만 e스포츠는 해당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주 시청자층이다. 그런데 e스포츠 전문가의 게임 랭크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다면? 그 사람의 능력보다는 당연히 랭크 점수가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게임 실력과 게임 이해도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는 요소라는 의견도 있다. 기사 초반부에 예로 들었던 문경은과 현주엽, 축구 해설위원들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예다. 인지도나 해설 실력, 분석력과 통찰력이 뛰어난, 한마디로 전문성이 높다고 평가받는 그 어떤 스포츠 전문가도 현역 선수 만큼 혹은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게임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굳이 게임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해당 게임을 꾸준히 시청하고 공부하고 분석하다보면 자연스레 e스포츠 종목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분석력 등이 상승한다. 물론,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고 실력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 그 사람의 현재 게임 실력(랭크)이 전문성을 그대로 대변한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분석이나 설명이 높은 확률로 정답 혹은 그에 가깝다면, 그의 능력을 게임 실력이 낮다는 이유로 폄하하긴 더욱 쉽지 않다.

e스포츠 전문가가 선수 출신인지 비선수 출신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프로게이머 출신이라도 해당 게임에 대해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본인의 게임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전문성을 인정받긴 어려울 거다. 요점은 선수 출신이나 비선수 출신 모두 게임 실력보다는 게임에 대한 공부와 분석 능력을 갖추는 것이 더 우선시된다는 점이다.

프로게이머가 대회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게임 실력을 갈고 닦는 노력을 하는 것처럼, 각 분야에서 활약 중인 e스포츠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 맞는 능력을 갈고 닦고 있다. 각자에게 똑같이 부여되는 시간을 자신의 역할에 따라 다르게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인식과 분위기의 변화는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좀 더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볼 수 있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