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팬이자, 해적 미디어의 팬으로서 참 오래도 기다렸다. 수년 전 출시된 '어쌔신 크리드4: 블랙 플래그'는 딱 내 취향을 저격하는 게임이었는데, 게임에 등장하는 네 종류의 전설 함선을 모두 때려잡고 모든 물음표를 지우고도 그냥 재미있어서 한참을 더 플레이했다. 그런 나에게, 이 해상전만 뚝 떼서 멀티플레이 게임으로 만든다는 기획은 그 자체로 흥분제가 따로 없었다.

문제는, 만든다고 해 놓고는 수년째 제대로 된 정보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 짧은 뉴스로, 혹은 단신으로 2022년 중 출시될 거란 소식은 들었지만, 게임업계에서 출시 연기나 프로젝트 철수는 일상다반사다 보니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개발 중인 게임이 영 엉망진창이라는 루머도 번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기대심 자체를 놓았던 것 같다.

하지만, 유비소프트는 결국 돌아왔다. 현지 시각 7일 저녁, 한국 시간으로는 8월 새벽 3시에 유비소프트 공식 채널을 통해 '스컬 앤 본즈'에 대한 본격적인 소식이 공개되었다.




'스컬 앤 본즈', 어떤 게임인가?

'스컬 앤 본즈'는 해적들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던 18세기 초의 인도양을 무대로 하는 게임이다. 넓은 대양을 배경으로 하는 오픈 월드 게임으로, 작은 배를 기선으로 시작해 자신만의 배와 해적단, 나아가 함대를 꾸릴 수 있는 게임이다. 명확한 사실은, '스컬 앤 본즈'가 단순히 싱글 플레이 패키지 게임이 아닌 라이브 서비스를 지향하는 게임이라는 것. 유비소프트의 작품 중에서 비교하자면 '톰 클랜시의 더 디비전'이나 '포 아너'와 비슷한 경우다.

게임이 시작되면, 게이머는 난파선의 유일한 생존자가 마다가스카르 북동쪽에 위치한 생뜨 안느 섬(Saint anne)에서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플레이 초기에는 인도양에서 흔히 사용되던 소형 함선인 다우선(Dhow)를 몰게 되지만 플레이 과정에 따라 다양한 함선들을 몰게 된다. 곳곳에 위치한 해적 소굴(Den)은 마을 역할을 하는데, 계약을 수주하거나 새로운 배, 무장, 물자 등을 보충할 수 있다.

▲ 마을 역할을 하는 해적 소굴

튜토리얼을 따라 초보 해적을 벗어나 인도양에 도달하면, 그 때부터는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된다.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매우 다양한데, 보물 지도를 해독해 위치를 찾아내는 보물 발굴부터 탐험과 채집, 사냥, 그리고 무역선 약탈과 해적 사냥꾼과의 쫓고 쫓기는 전투, 요새 강습전과 정착지 약탈 및 전함의 보호를 받는 대선단 습격에 이르기까지 지금껏 해적 관련 미디어에서 표현된 해적들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이중 대부분은 '계약(Contract)'과 '악명(Infamy)'이라는 시스템으로 엮여 있다. 플레이어의 모든 행위는 악명을 증가시키며, 높은 수치의 악명은 더 많은 계약의 수주와 강력한 해적단 구성으로 치환된다. 결국, 게임의 목적은 다양한 해상 활동을 통해 악명을 쌓고, 넘볼 수 없는 해적단을 구축함으로서 인도양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레벨'의 개념에 가까운 '악명' 시스템

중요한 건, 이 모든 콘텐츠를 솔로 플레이로 즐길 수도 있지만, 스컬 앤 본즈의 근본은 세션제 멀티플레이라는 것. 레드 데드 온라인이나 GTA 온라인처럼 최대 16명(테스트 영상 사양)이 한 세션에 접속할 수 있으며, 이중 PVP 세션에서는 아무 제한 없이 다른 플레이어를 공격할 수 있다. 육성 방식에 따라 강력한 서로 다른 스타일의 함선들을 몰 수 있기에 다른 플레이어나 친구들과의 연합도 중요한 부분이다.




'해상전'의 정수를 담은 게임 디자인

'스컬 앤 본즈'의 핵심이 넓은 인도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상 콘텐츠라면,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항해,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어지는 해상전이다. '스컬 앤 본즈'의 해상전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해상전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왔는데, 마스트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상대 배와 무역로, 시설 등을 탐색한 후, 선장의 입장에서 조타와 공격을 모두 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 마스트에 올라 상황을 파악한 후 행동에 들어가는 건 필수

'블랙웨이크'나 '시오브시브스'처럼 여러 명이 하나의 함선에 올라 각자의 역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각 함선이 한 명의 플레이어가 된다는 것. 때문에 '스컬 앤 본즈'에서 실질적으로 다른 MMORPG의 '캐릭터' 역할은 게이머가 모는 '함선'이 맡게 된다.

이 때문에, '스컬 앤 본즈'에는 굉장히 많은 함선 옵션이 존재한다. 빠르고 조타가 쉽지만 툭 치면 침몰하는 경량함부터 충각 돌진과 백병전을 수행하는 돌격함, 그리고 묵직하고 강력하지만 비교적 둔중한 중량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급의 함선들이 존재하며, 어떤 형태로 꾸미냐에 따라 체급의 구분 없이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배를 개조할 수 있다.

▲ 개조하기 따라 플레이 스타일은 달라진다

현재까지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함선 구분은 큰 범주에서 화물선(Cargo Ship), 항행선(Navigation Ship), 화력선(Firepower Ship)으로 나뉘어진다. 화물선은 비교적 느리지만 엄청난 양의 전리품과 상품을 운송할 수 있으며, 항행선은 매우 빠르지만 화물 선적량이 적고 선체 체력이 낮다. 화력선은 많은 무장 수송 능력을 갖추고 있어 강한 공격력을 뽐내지만 묵직한 무게 때문에 기동력이 매우 낮다.

등장하는 함선의 기본 종류 또한 다양하다. 게임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어쌔신 크리드4'에는 건보트부터 슬루프, 브리건딘과 프리깃, 전열함(맨오워)등이 등장했지만, '스컬 앤 본즈'는 인도양이 무대인 만큼 유럽에서 쓰이던 함선 구분 외에도 술라웨시(인도네시아) 섬 인근에서 사용하던 '파데와캉(Padewakang)이나 아랍 인근에서 쓰이던 '삼부크(Sambuk)'등의 함선도 존재한다.

▲ 약점을 노려 쏘는 것도 가능

함선의 성능과 플레이 스타일은 큰 범주에서 앞서 말한 구분을 따르지만, 보다 세부적으로는 무장과 장갑으로 만들어진다. 스컬 앤 본즈에는 기존의 구포나 포도탄, 함포를 포함해 다양한 무장이 등장하며 중에는 사실성을 다소 해치는 무기들까지 존재하는데, 근접 거리에서 상대 배를 불사를 수 있는 '그리스의 불'이나 다연장 로켓 발사대, 어뢰 등이 그것이다. 장갑 또한 여러 갈래로 나뉘기 때문에 상대의 공격에 따라 적당한 함선을 전열에 세우는 식으로 전략적 전투를 벌일 수 있다.

▲ 뭔 어뢰가 있어

결과적으로, '스컬 앤 본즈'의 해상전은 적의 공격에 얼마나 적절하게 대응하는지, 그리고 빠르게 상대의 취약점을 찾아내고 알맞은 공격 형태를 찾아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정 체력 이하로 떨어진 상대 배는 원전과 마찬가지로 갈고리를 걸어 백병전 단계로 돌입하게 되는데, 게임의 초점이 해상전에 맞춰져 있다 보니 백병전은 단순히 애니메이션으로 대체 표현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바다에서 플레이어에게 위협을 가하는 것이 단순히 적선만은 아니라는 것. 작은 크기의 함선을 몰 때는 상어나 하마, 악어 등의 야생 동물도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각 무역 거점을 지키는 요새는 강력한 무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잘못 접근하다간 침몰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또한, 식량이 부족하거나 선원 사기 관리가 미흡할 경우 선상 반란이 벌어져 별다른 전투 없이도 리스폰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배가 침몰할 경우 플레이어가 지니고 있던 물자는 바다에 그대로 남는데, 리스폰 이후 다시 해당 위치로 가서 물자를 수거할 수 있다. 물론, 다른 플레이어가 이를 그대로 들고 가버릴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스컬 앤 본즈'의 모든 게임 디자인과 콘텐츠 플로우는 해상 활동을 중심으로 짜여져 있으며, 이 중에서도 핵심이 되는 것은 '해상전'이라는 뜻이다.

▲ 바다의 다양한 기상 상태도 구현



'스컬 앤 본즈'를 말하는 유비소프트의 자세

게임의 출시까지는 아직 4개월 남짓 남은 상황. 유비소프트는 쇼케이스를 진행하면서 몇 가지 약속을 했는데, 그 중 하나는 게임에 대한 지속적인 업데이트다. 발표 중에는 앞으로 수 년은 꾸준히 콘텐츠와 이벤트를 업데이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미 개발팀 중 일부는 이 '사후 업데이트'를 작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는데, 유비소프트는 지금껏 게임 자체가 별로 재미 없었던 적은 있어도 업데이트에서 게을렀던 적은 없다. 오죽하면 '포 아너'도 아직까지 업데이트를 하고 있을까.

또한, 출시 전후로 '선창(The Deck)'이라는 이름의 개발자 라이브스트림을 운영한다. 게이머는 이 채널을 통해 게임의 개발 상황을 살피고, 피드백과 의견 개진을 할 수 있으며, 출시 이후에도 개발자들과 소통하며 함께 게임을 만들어갈 수 있다.

▲ 개발자 라이브스트림 The Deck

지금까지 공개된 '스컬 앤 본즈'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면 이와 같다. 개인적인 걱정으로는 대항해시대의 해상전이라는 시대적 배경, 컨셉의 한계 때문에 플레이 방향이 획일화되고, 이로 인해 원활한 콘텐츠 순환이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음이 우려되긴 한다. '더 디비전'이 몰입감과 퀄리티는 잡았으나 게임 플레이 자체가 늘 비슷해 위기를 겪었듯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해적질'과 오픈월드로 구성된 바다의 '탐험', 그리고 '해상전'이라는 핵심 테마는 잘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스컬 앤 본즈'가 게이머들에게 기대심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이유이자, 게임의 핵심이기도 한 이 테마만 잘 살아 있다면, 다른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거다. 아직 출시까지는 꽤 시간이 남은 상태이지만, 충분히 기대를 걸어도 될 게임이란 뜻이다.

'스컬 앤 본즈'는 11월 8일, '소니'의 기대작인 '갓오브워: 라그나로크'에 하루 앞서 출시될 예정이다. 올해 GOTY를 노리게 될 게 거의 확실한 '갓오브워'와 '스컬 앤 본즈'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을지, 오는 2022년의 늦가을을 기다려 봐도 좋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