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행동으로 영을 뒤집어쓴 주인공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즉석카메라로 한 장 한 장 찍어나가는 영화 '셔터'의 장면. 어두운 공간과 플래시를 통해 무언가 등장하리라는 긴장감도 분명 공포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데 한몫했습니다. 여기에 카메라라는 다른 눈으로 담아낸 사진이 보이지 않는 이형의 존재가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는 데서 심리적 불안감은 한층 높아지죠.

즉석카메라를 게임 전면에 둔 이 작품도 비슷합니다. 감히 대항할 수 없는 무언가의 존재는 구간 구간 플레이어를 덮칩니다. 여기에 끈적끈적한 심리 묘사는 이 세계에 몰입되는 건지, 아니면 몰아치는 멀미와 초자연적인 현상에 현실 감각을 잃은 건지 제대로 느낄 수 없게 하고요. 단둘이 만들어 PC, PS, Xbox로 출시한 매디슨(Madison)은 그래서 더 놀랍고 무섭고, 혼란스럽습니다.


게임명: 매디슨(MADiSON)
장르명: 호러 / 어드벤처
출시일: 2022. 7. 8.
리뷰판: 1.0.13
개발사: 블러디우스 게임즈
서비스: 블러디우스 게임즈
플랫폼: PC/PS/Xbox
플레이: PC/XSX

관련 링크: 메타크리틱 페이지 / 오픈크리틱 페이지



1. 길고 긴 복도

코지마 히데오의 '사일런트 힐즈' 맛보기 게임이었던 '플레이어블 티저(P.T.)'는 좁고 긴 복도가 주는 공포를 놀라울 정도로 효과적으로 그려냈습니다. 게이머는 물론 수많은 공포 게임 개발자가 여기서 깊이 있는 영감을 얻었죠. 이후 대형 게임사에 인디 개발사까지 P.T.의 공포 요소를 구현하고자 했고요.

물론 매디슨이 무한정 반복되는 좁은 복도 안에서의 P.T.식 공포로 한정된 건 아닙니다. 복도의 연속 대신 공간 자체는 저택으로 확장되어있고 때로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를 통해 게임이 이루어지는 영역 자체를 넓게 그렸죠.

하지만 게임이 주는 근본적인 공포는 P.T.의 연장선에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건 개방된 공간마저도 마치 복도처럼 만들어 낸 게임 디자인 탓, 혹은 덕이라 할 수 있죠.

▲ 가장 아늑한 공간이어야 할 집을 공포의 전당으로 만드는 복도

매디슨에서의 배경이 되는 저택은 인간에게는 가장 안정적인 공간이어야 할 집입니다. 그리고 복도는 아늑한 공간들을 서로 잇는 통로고요. 하지만 이 공간은 굉장히 이질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양옆이 가로막힌 좁은 복도는 나의 생명을 위협할 무언가가 등장했을 때 피할 수 없는 장소가 되죠. 즉 괴물이나 귀신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 상황에서의 공포감은 한층 배가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매디슨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 그리고 과거 있었던 사건을 직접 겪는 듯한 환상 속에서 게임의 무대를 종종 저택 밖으로 옮겨내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저택 안이지만요. 어찌 보면 그나마 탁 트인 공간이 게임의 배경이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양옆이 탁 트인 공간에서는 빛을 제한해 플레이어의 시야를 한정시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건 복도 벽처럼 막혀버린 어둠과 내 눈앞의 공간뿐이죠.

지금 있는 장소가 어디든 마치 좁은 복도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 즉, 장소와 관계없이 복도가 주는 공포가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 어둠과 복도, 모퉁이의 조합

시야를 멀리 복도 끝으로 밀어내면 또 다른 공포가 이어지죠. 시야 끝에 걸리는 흐릿한 무언가는 플레이어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충분합니다. 매디슨에서는 멀리 깜박이는 불빛 아래 괴생명체의 모습을 그려놓는 구간이 꽤 자주 등장합니다. 분명히 지금 나아가야 할 곳이 이 복도 너머인데 그 끝에 뿌옇게 보이는 괴물이 서 있으니 진행 자체를 망설이게 되죠.

물론 이런 이형의 존재는 단순히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의 진행을 돕는 식으로도 쓰입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또렷해지는 괴물의 모습. 하지만 그 앞에 꺾이는 갈림길이 존재하기에 이쪽으로 몸을 우선 피하게 되죠. 그리고 그 길이 게임 플레이의 다음 목적지인 식입니다.

복도와 그 복도에서 발생하는 공포 요소들은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별다른 힌트가 주어지지 않는 게임의 길 안내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저 플레이어를 괴롭힌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사실 꽤 영리하게 공포 요소를 활용하고 있는 셈이죠.




2. 즉석카메라와 어지럼증

거대한 저택과 맵 곳곳에 존재하는 복도 형태의 구성이 긴장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괴물과 현실 감각을 없애는 주인공의 심리 구현은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공포심을 불러오죠.

게임이 강조하는 점프 스케어(Jump Scare, 갑작스럽게 플레이어를 놀라게 하는 연출)는 플레이 내내 유저를 괴롭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길고 긴 복도를 걸어가다 길이 막혀 뒤를 돌아보자 갑자기 괘종시계가 나타난다거나 눈을 깜빡이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게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즉석카메라 역시 플레이어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공간을 밝히기 위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게 되는데 그때 갑자기 괴물과도 같은 무언가가 눈앞에 잡히게 되죠. 플래시는 정말 잠깐만 시야를 밝히기에 곧이어 다시 어둠이 내리깔리고 방금 접한 존재에 관한 의문과 공포는 저절로 커집니다.


즉석카메라에서 나온 사진도 보통은 찍은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는 데 기괴한 무언가를 만났을 때만큼은 아무리 사진을 흔들어 현상하더라도 제대로 된 이미지가 잡히지 않아 공포 요소에 대한 의문은 커지죠. 다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기 전까지 기괴한 음성과 소리는 긴장감을 높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플래시를 다시 터트릴 수 있게 되어 불을 밝히면 무언가의 존재는 전보다 더 가까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요.

특히 주인공 루카가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구간에서는 이러한 존재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고 플레이어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기도 합니다. 카메라로 정확히 존재를 찍어 잠시나마 죽음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긴 합니다만, 점멸하듯 깜빡깜빡하며 다가오는 존재에 대한 공포는 게임 후반까지 쉬이 적응되지 않죠. 물론 영화나 게임 속 점프 스케어 자체를 싫어하는 플레이어가 워낙 많은데 그것이 게임 전반에 계속 발생하다 보니 피로감을 느낄 유저도 많겠지만요.


점프 스케어가 쉴 새 없이 플레이어의 심장을 괴롭힌다면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여러 차례 꼬아서 현실 감각을 흐리는 이야기와 심리 묘사는 플레이어의 뇌를 혼란스럽게 하죠.

악마 빙의나 인신 공양, 토막 살인, 게임 속 사건이 일어나는 과거로의 이동, 그리고 그것이 현실인지 착각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구성되는 연출은 비교적 담백한 이야기에 혼선을 가합니다. 직접적으로 다른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재생하며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귀로 들어 유추하는 과정이 더해지며 이야기는 플레이어가 무엇이 진실인지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게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듯 휘적휘적 몸을 흔들며 움직이는 주인공의 모션도 1인칭 시점으로 게임이 진행되며 마치 멀미를 느끼듯 혼란스럽게 그려집니다. 1인칭 게임의 특징상 플레이어의 시야가 주인공과 동일시되는데 타들어 가는 듯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눈에 맞춰 뿌옇게 흐려지고 흔들거리는 화면이 불편함을 더하는 식입니다.

▲ 몸 상태를 반영해 휘청거리는 움직임, 뿌연 시야 등 의도적으로 머리를 유발하는 연출이 곳곳에 존재

이야기의 불친절함, 초현실적인 공간에서의 인지, 멀미를 유발하는 움직임, 성우들의 대사와 화면 연출로 이어지는 불안한 심리 묘사 등이 어우러져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깜짝깜짝 놀라는 요소가 흩뿌려져 있는 저택 안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어느 한 곳에 집중하기 어렵고 주인공의 불안한 감정은 플레이어에게 그대로 전이되고요.



3. 뭘 빼먹었는지 모르는 퍼즐

무언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복도, 혹은 중간중간 등장하는 점프 스케어보다 더 무서운 건 게임의 퍼즐입니다. 이건 플레이어에게 그다지 많은 정보를 내주지 않는 퍼즐의 구성과 연관되어 있죠.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매디슨의 퍼즐은 논리성과 모호함, 이 둘을 기본으로 합니다. 썩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겠지만, 게임 내에서 실제로 이 두 특성을 기반으로 퍼즐이 구성되죠.

우선 퍼즐 자체의 풀이 과정은 억지로 답을 맞혀나가는 방식은 아닙니다. 오히려 게임 안에서 분명한 힌트가 주어지고 플레이어는 단서들을 모아 정확한 답안을 찾아내야 하죠. 퍼즐 자체의 풀이 과정이 정확한 논리를 필요로하도록 만들기 위해 게임은 많은 해답 루트를 제공하지는 않고요.

예를 들어 주어진 힌트에 따라 대성당에서는 성화 아래마다 적절한 색의 촛대들을 두고 그걸 모두 제대로 완료했을 때 다음 공간으로 가는 열쇠를 얻죠. 또 그 열쇠에 맞는 문을 열면 다음 지역으로 가는 힌트와 아이템을 획득하게 됩니다.

즉, 다양한 퍼즐이 줄지어 이어지며 명확한 하나의 루트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있는 셈이죠. 여기에는 문제를 색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갈 창의성보다는 지금 상황에 적합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논리만이 존재하죠.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퍼즐 풀이가 이어지기에 이런 모습은 일견 방탈출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 논리적 힌트 활용과 유추를 통해 비밀번호를 하나씩 얻는 구간

하지만 이 논리적 문제 풀이를 쉽지 않게 만드는 게 바로 제한된 정보와 그로 인한 모호함입니다.

매디슨의 스토리는 주인공이 기괴한 환상을 보며 풀어나가는 부분, 게임 중간중간 전화 녹음테이프를 얻고 이를 재생해 얻는 부분, 그리고 여러 문서나 물건 등을 통해 얻는 부분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를 풀어나갈 힌트도, 다음에 나아가야 할 장소에 대한 정보도 얻게 되죠.

만약 그저 주인공의 독백, 혹은 뒷이야기 담은 노트 정도로 무시하고 지나갔다간 게임의 진행 자체가 어려워질지 모르죠. 또, 이러한 힌트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않고 그저 여러 시도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요행을 바랄 수도 있는데요. 그게 잦아진다면 게임이 강조하는 논리적 문제풀이가 그저 플레이 타임을 늘리려는 개발진의 꼼수처럼 보일 여지가 있습니다.

▲ 운 좋게 때려 맞출 수도 있지만, 알고 풀어야 맛이 나는 퍼즐들

제한된 정보 탓에 플레이어가 개발진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거죠. 여기에 문제 풀이의 순서와 방식이 정해져 있다 보니 상황에 맞는 아이템을 입수하고 이를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의 수는 8개뿐입니다. 사실 카메라, 사진 등 몇몇 키 아이템은 항상 들고 다니니 여유는 더 적어지겠죠.

기껏 다음 상황으로 나아갈 아이템을 찾았는데 인벤토리가 꽉 차 들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저장해주는 금고에 쓸모없어 보이는 아이템을 보관해뒀는데 또 어떤 구간에서는 그 보관한 아이템이 필요할 때가 있고요. 결국 다시 금고를 찾기도 하고, 필요한 아이템을 찾아 그냥 지나쳐 왔던 길을 수도 없이 다시 돌아가야하기도 합니다. 내가 뭘 놓쳤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 그것 자체가 무서운 일인 겁니다. 여기다 되돌아가는 길목에서 또 정체 모를 괴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공포 체험을 다시 하기도 하고요.

▲ 8칸뿐인 인벤토리. 필수 아이템을 빼면 창고 정리 잘 해야 멀리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런데 뭐가 필요 아이템인지는 모름

재밌는 건 분명 한번 돌아왔던 길, 겪었던 괴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기괴한 소리와 패턴을 달리하는 존재들은 겪을 때마다 심장 박동수를 높이곤 합니다.



뇌를 문지르는 심리 호러. 플레이어에게 위해를 가하든, 가하지 않든 심장에 영 좋지 않은 괴물의 등장. 이러한 요소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명의 개발자로 이루어진 블러디우스 게임즈는 쉴 새 없이 몰아치고, 또 때로는 영악하게 플레이어를 긴장시키며 AAA 호러 게임 이상의 공포 감각을 전하고 있습니다.

콘솔 버전의 경우 도전과제만 따면 저장 없이 게임이 타이틀로 넘어가는 버그도 있었지만 발 빠르게 수정 패치를 내놨고 멀미가 심할 수밖에 없던 카메라 흔들림을 줄이는 등 개선 요구도 꾸준히 이뤄가고 있습니다. 게임만큼은 악랄할 정도의 공포를 무기 삼았지만, 개발진의 세심한 노력이 돋보이는 부분이고요.

반복되는 점프 스케어에 퍼즐의 논리 구성을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 등 분명 맛을 느끼기에는 장벽이 높은 게임입니다. 전체적인 점수와는 별개로 극단적인 평가가 유독 많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고요. 하지만 도전적인 퍼즐 풀이, 혹은 담대한 심장을 시험하기 위한 타이틀이라면 신작 중에서는 매디슨만 한 게 또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