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나무 상자와 큼지막한 버튼, 그리고 연식을 한눈에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아 보이는 헤드폰. BIC 페스티벌 2022 제1전시장에 위치한 '모스' 부스에 위치한 이 물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기에 충분했다. 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차례대로 자리에 앉아 낡은 헤드폰을 쓰고, 게임 화면의 지시에 따라 모스 부호를 입력한다. 화면 없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흡사 첩보 영화의 한장면을 연상시킨다.

이 신묘한 컨트롤러와 함께 BIC 2022에 참가한 ALJO Games의 디렉터 알렉스는 세계 최대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에 매년 열리는 이색 컨트롤러 전시회 alt.control.GDC에 꾸준히 참여하는 디자이너다. 흔쾌히 현장 인터뷰를 수락한 그는 이색 컨트롤러를 가지고 한국을 찾은 이유와 함께, '모스'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알렉스 요한슨(Alex Johansson) ALJO Games 디렉터


■ 독특한 컨트롤러에 '진심'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

Q.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 영국 요크셔에서 게임 개발을 하고 있으며, 올해로 약 10여년 간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은 알요게임즈(ALJO Games)의 디렉터로서 '모스'의 개발을 시작한지는 1년 정도 지났다.


Q. 이번 BIC 페스티벌 2022는 어떤 계기로 참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 곧 개최되는 도쿄 게임쇼(TGS 2022)에만 참가할 계획이었는데, 지난 3월 GDC에서 만난 한국인 개발자가 도쿄에 갈 계획이라면 그 전에 BIC에도 꼭 지원해 보라고 적극 추천했다. 덕분에 지금 한국에서 정말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각종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도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Q. 혹시 이전에 한국에 방문해 본 적이 있나.

= 아시아에 방문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웃음). 그 전까지 가장 동쪽으로 멀리 갔던 건 튀르키예 정도이니까. 부산에 내려오기 전에 서울에 며칠간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오른쪽 버튼으로 모스 부호를 전송하고, 왼손으로는 발사 명령을 내리는 컨트롤러

Q. 이번에 출품한 '모스'는 어떻게 개발하게 된 작품인지?

= 사실, '모스'는 나름대로 역사가 있는 게임이다. 개인적으로도 물리 설계쪽에 배경을 두고 있다 보니, 독창적인 컨트롤러를 개발하는 alt.control.GDC같은 쇼케이스에 자주 나가는 편이다. 오래 전 실험적인 디자인과 관련한 워크샵에서 아주 기본적인 스위치와 배선을 연결해 전신기를 만들고, 보드 게임 '배틀 쉽' 스타일의 간단한 게임을 만든 적이 있다.

그 이후, 상당히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해서 게임을 플래시 버전으로 다시 만들었는데, 당시에도 락 페이퍼 샷건 같은 매체에 소개가 되면서 꽤 많은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모스'의 전신이었던 그 게임은 오랜 기간 묵혀둘 수밖에 없었다.

플래시 기반의 게임을 유니티 엔진에서 다시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뒤로 약 5년이 지난 후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게임 개발 지원을 받아서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그 개발 과정에 따라서, 처음에는 상당히 엉성했던 컨트롤러도 오늘 부스에 전시된 것 같은 버전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Q. 정말로, 부스에 놓여 있는 엔틱한 컨트롤러 장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 아마도 이 행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오래된 하드웨어 컨트롤러를 전시하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다. 헤드폰만 해도 거의 100살이 다 된 1930년대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 헤드폰이 1930년대 물건이란 것을 알게 된 건 이전에 영국에서 진행한 행사에 방문한 어떤 가족 덕분이었다. 한 아이와 아버지가 부스에 방문했는데,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컨트롤러와) 똑같은 헤드폰을 쓰고 찍은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는 2차 대전 시절 해군으로 복역한 시절에 전신 기사였다고 한다.

또 이벤트 현장에서 관객에게 게임을 선보이는데, 마우스와 키보드는 너무 흔하다는 생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alt.control 씬에 몸을 담고 있는 만큼, 실험적인 컨트롤러를 선보일 수 있어 기분이 좋다.


Q. 아니, 도대체 1930년대 헤드폰은 어떻게 구할 수 있었나.

= 이베이에서 찾았지(웃음). 사실, 친하게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을 보고는 이베이에서 꼭 주문하라며 링크를 알려준 적이 있다. 그때는 잊어버리고 한동안 기억을 못했는데, 어느날 다시 만났더니 헤드폰을 직접 전해 주더라. 그렇게 받은 헤드폰을 실제로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손봤고, 현장을 방문한 게이머들에게 사실적인 경험을 줄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


Q. 게임은 어떤 전쟁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스토리인지 궁금하다.

= '모스'는 가상의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역사적으로는 기록되지 않은, 어두운 곳에서 암약하는 비밀스러운 작전들과 1급 기밀을 다루는 게임이다. 이를테면 전쟁에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 아주 결정적인 임무들이지만,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들 말이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전신 기사가 되어, 모스 부호와 다양한 정보를 통해 거대한 전쟁을 해결해 나가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 컨트롤러 옆에는 모스 부호도 친절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체험할 수 있는, 적 보트를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형태로 모스 부호가 사용될 수도 있을까?

= 이번 현장에서 전시한 것은 게임의 트레이닝 모드다. 본격적인 캠페인을 경험하기 전 여러분의 민첩성을 훈련하고, 모스 부호와 게임플레이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준비한 콘텐츠인 셈이다.

실제 게임에서는 육해공 3개의 주된 전장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아군의 잠수함이나 함선을 호위하는 임무를 받을 수도 있고, 육지전에서는 참호전이나 적군의 터널을 찾아내는 미션, 공중전으로는 적군의 정찰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빠르게 격추시키거나, 적군이 뿌리는 선전물을 파괴하는 등 다양한 미션이 준비되어 있다.


Q. 스테이지마다 특정한 단어가 아래쪽 그리드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 또한 트레이닝 모드에서 단어를 학습하기 위함인지?

= 현 시점에서는 세계 대전과 충돌과 관련된 600개 정도의 단어가 리스트되어 있다. 이러한 그리드의 목표는 캠페인에서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따라 해당 단어를 배치하는 용도로 활용하고자 했다.

개인적으로 '모스'에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내러티브 요소와 게임플레이를 한번에 내포하는 시스템이다. 구현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플레이어의 의사 결정이나 내러티브 진행에 따라 중간에 단어가 변경되는 것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아군의 참호를 지키는 미션 도중 적군의 가스탄이 진영에 떨어지면, 단어가 suffocate(질식사하다)나 chlorine(염소)로 바뀌는 것이다. 그 외에도 내러티브적인 요소가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기믹들을 고안하고 있다. 독일 요원이 당신의 인터페이스를 방해한다든지,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Q. 추후에 모스 부호 힌트를 주지 않는, 하드코어한 난이도도 기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 현재로서는 난이도에 대해서 두 가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하드 모드가 존재는 하지만, 이를 잠금해제하는 방법은 여러분이 찾아내야 할 것이다. 하드 모드는 인터페이스가 제한되고 게임이 더 어려워지는 등 일반적으로 난이도가 올라가는 선에서 계획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전신기 커뮤니티의 열정을 게임에서 충분히 살릴 수 있도록 이들을 위한 모드를 추가할 계획이다. 옵션 메뉴에서 모스 부호의 점과 선을 인식하는 시간을 조절 가능하도록 해서, 진짜 전신기사처럼 빠르게 코드를 입력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스피드러너들에게도 만족할만한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Q. 스팀 페이지에서 확인해 보니 한국어는 지원하지 않는다고 표기되어 있었다. 추후에라도 현지화된 언어를 지원할 계획이 없는지 궁금하다.

= 사실, 현재는 퍼블리셔를 물색하는 단계이고 물론 더 많은 언어를 지원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의 언어를 지원하게 되더라도 게임의 핵심 요소인 모스 부호나 전장의 그리드의 영단어 등은 변경되지 않을 것이다.

모스 부호의 흥미로운 점이 나라마다 다른 체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인데, 예를 들어 중국의 커머셜 코드는 무려 2,000자에 달한다. 언어가 달라질 때마다 이 모두를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전장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정도가 될 것이고, 그 외에 내러티브 요소나 튜토리얼, 메뉴 언어들은 로컬라이징 계획을 가지고 있다.


Q. 출시 일정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 현재는 '모스'가 어떤 게임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데모 버전이 스팀을 통해 공개되어 있는 상태고, 퍼블리셔가 성공적으로 구해진 이후에는 그 당시부터 약 1년 정도면 게임을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모바일 게일 쪽에서 커리어를 쌓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모스' 또한 최대한 많은 플랫폼을 통해 선보이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 처음에는 PC를 통해 출시되지만, 이후에도 순차적으로 다른 플랫폼에 출시할 계획이다. 기사를 보고 계신 퍼블리셔 담당자 분이 계시다면 연락 부탁드린다 (웃음).


Q. 솔직히 말하면, '모스'를 집에서 플레이할 때마다 오늘 경험한 엔틱 컨트롤러가 생각날 것 같다. 비슷하게라도 가정에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 실제로 그 부분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고 있다. USB로 연결할 수 있는전신기가 만약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면, 게임 컨트롤러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또, 공식 굿즈 측면으로는, 일단 계획은 게임이 많이 알려져 킥스타터를 진행할 만큼 인지도를 높이면, 한정된 수량으로 오늘 전시한 것과 유사한 컨트롤러를 제작하는 것에 대해 고려하고 있다. 아니면 조금 더 작은 사이즈로 해서, 자신만의 모스 전신기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개발하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일 것 같다.

한가지, 저렴한 방법으로 전신기 느낌을 내는 방법이 있긴 하다. 여러분이 쓰는 마우스를 180도로 돌려 놓고 모스 부호를 입력하듯 클릭하면, 생각보다 괜찮은 느낌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웃음).


Q. 끝으로, 이번 BIC에 참가한 소감과 한국 게이머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 지금까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음식을 먹으며, 이벤트 자체도 상당히 아이디어 넘치는 게임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고 BIC에 지원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실제 한국 해군 장교가 부스에 찾아와 시연을 했다는 것이다. 모스 부호에 대해서도 정말 잘 알고 있고, 한쪽 손으로 헤드폰을 잡는 것이 정말 남다른 분위기였다고 할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게이머 여러분에게 '모스'는 지금 즐기는 게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직접 해 보니 즐거운 게임이었다고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다. 또 모스 부호를 잘 익히면, 나중에 퍼즐 게임이나 방탈출방에 갈 일이 있을때 의외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내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