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계사는 대형 회계법인에서 만 9년을 일한 뒤 현재 스타트업에 조언하는 일을 한다. 주로 스타트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분석하고 사업계획을 숫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도움을 준다. 엑셀을 펼치고 5년 후에 어떤 회사가 될 것이며, 기업가치는 얼마를 찍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게임을 좋아한다. 올해 GOTY(올해의 게임)론 '젤다의 전설: 왕국의 눈물'을 예상했다.

▲ 이재용 회계사

이 회계사는 사업적으로 봤을 때 게임사는 제약사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예로 제약사의 새로운 약이 미국 FDA를 통과하듯, 게임사도 하나의 게임이 성공하는 게 중요하다. 재무제표도 과거 산업처럼 재료비가 들지 않고 대부분 인건비, 광고, 수수료로 채워져 있다. 크게 성공할 수 있는 만큼 크게 실패할 수 있다.

그는 게임사의 숫자를 볼 때 게임별 매출액 추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게임의 수명이 긴지, 성장하는 지를 살펴본다. 국내 게임산업은 모바일 위주로 되어있다. 보통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의 수명은 1~2년 정도다. 이 주기에 따라 게임사는 신작을 내놓는다. 신작의 성과는 여러 갈래로 나눈다. 기존 게임을 재활용해 이룬 성과인지, 정말 새로운 게임을 내놔서 이룬 성과인지다.

아울러 인건비를 점검한다. 이 회계사는 1인당 매출액, 전체 매출액을 임직원 수로 나눈 금액을 중요하게 여긴다. 1인당 매출액을 전년과 비교하면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광고선전비는 비교적 덜 중요하다 보고 있다. 신작이 나올 즈음에 늘어날 단기 비용이어서다. 지급수수료는 매출에서 PC와 모바일의 비중을 살펴볼 수 있다. 구글과 애플 등 양대마켓 수수료가 30%여서, 지급수수료가 30%에 가까울수록 모바일 의존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재용 회계사는 전체 매출액, 1인당 매출액, 매출의 포트폴리오를 보면 게임사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림이 나온다고 본다.

이 회계사는 모바일 의존도가 높은 게임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재무적으론 좋으나 사업적으론 좋지 않다고 평가한다. 대표적으로 확률형 아이템 상품이 있다. 이 모델은 소수 유저가 많은 돈을 쓰기에 상대적으로 기업의 노력이 많이 안 들어간다. 콘텐츠 제공, 고객관리 등 매출에 비례해 비용이 늘어나는 변동비가 많지 않다. 매출 덩어리가 크기에 영업이익률은 좋다. 소수 고래를 끌어들이는 사업모델이 재무적으로 좋다는 건 지난 몇 년간 증명이 됐다.

소수 고래에 의존하는 사업모델은 앞으로도 유지는 되겠으나, 서서히 우하향할 것으로 이 회계사는 내다봤다. 그는 "사람들의 눈은 점점 높아지지만, 게임사의 콘텐츠가 따라가지 못한다"라며 "결국 누가 봐도 끝이 보이는 사업모델이니, 그래서 소수 고래에 의존하는 게임사 주가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게임사들은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으로 많은 돈을 번다. 그러나 미래도 그럴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이러한 우려가 주가에 나타난단 것이다.

회계적으로 건강한 게임사인지 판단할 때는 성장성, 안정성, 효율성을 본다. 성장성은 말 그대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는지다. 안정성은 많은 현금을 보유해 실패 부담이 적은지다. 효율성은 성장해야 하는 과정에서 현금을 많이 안 써도 되는지다. 이 회계사는 "게임산업은 원래 성장성이 높은 산업이었는데, 요즘 국내에선 많이 떨어진 듯하다"라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아직 다른 산업 대비 높지만, 국내에선 성장성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엔씨소프트를 예로 들면, 현재 안정성은 좋은 회사다. 엔씨는 유동자산을 2.6조 원어치 들고 있다. 이 회계사는 엔씨가 조 단위 매출의 실적안정성을 기반으로 현금을 쌓아뒀지만, 앞으로도 좋은 영업이익이 계속될지 생각하면 약간의 불안함을 느낀다고 평가했다.

엔씨의 미래 불안감은 주가에 반영된다. 엔씨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479억 원이고, 최근 시가총액은 6조 원이다. 영업이익의 11배 정도가 시총인 셈이다. 이 회계사는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이 없을 거라고 보는 기업의 영업이익 대비 시총이 10~12배 정도 나온다"라며 "엔씨가 앞으로도 지금 정도의 영업이익은 벌겠지만, 그 이상은 어렵다고 보는 게 지금 시장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엔씨가 만일 차기작 'TL'이 실패한다면, 시총은 6조 원보다 더 내려갈 거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재용 회계사는 엔씨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엔씨는 TL이 망해도 10년은 버틸 수 있는 자산이 있다. 그는 "중요한 것은 TL이 망하는 미래에서, 김택진 대표라는 경영인이 무엇을 배울지가 중요하다"라며 "아직 엔씨는 경영진이 개입하지 않고 여러 게임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시간과 자금이 있다"라고 말했다.

투자 관점에서는 재무제표보단 사업보고서를 주목하라고 이 회계사는 강조했다. 어떤 게임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지, 회사가 게임산업이란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시각이 나타나서다. 또한, 숫자만큼 중요한 게 사람이다. 잘하는 사람이 떠나고 부족한 사람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회사에 망조가 들었는지 예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가장 위인 창업자가 중요하다.

이 회계사는 "해외 게임사의 경우 창업자가 '덕후'인 경우가 많고, 게임 그 자체를 좋아하는 창업자와 대표가 많은데,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게임사의 인적 구성은 조금 아쉽다"라고 덧붙였다.


이재용 회계사의 생각
게임사, 패키지, 앞으로에 대해

▲ "재무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게임사는 넥슨"

- 게임사에 관하여

이 회계사는 재무적으로 봤을 때 펄어비스와 네오위즈는 신작의 중요성을 더 크게 봤다. 펄어비스는 '붉은사막', 네오위즈는 'P의 거짓'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다면, 회사가 크게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엔씨소프트와 크래프톤은 적어도 배가 부른 상황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안전하게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해도 된다. 그러나 펄어비스와 네오위즈는 명품을 만들어 입증해야 회사의 미래를 논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게임업계에서 가장 바람직한 재무제표로 넥슨을 꼽았다. 넥슨은 지난해 매출 3.4조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9% 증가한 모습을 보였다. 매출은 PC에서 2조 원, 모바일에서 8천억 원 정도다. 결국 게임산업은 모바일보다 PC가 길게 간다고 본다. 현시점에선 모바일 비중이 높은 엔씨보다는 넥슨이 더 건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게임의 생명이 길고, 구글과 애플에 수수료를 내지 않아도 되며, 소수의 고래 유저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최근 상장을 준비하는 게임사가 인력 감축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인건비라는 비용을 줄여 재무제표를 좋게 만드는 작업이란 해석이 있다. 이 회계사는 "회계적인 마사지라고 하는데, 내부 사정이야 복잡하겠지만 외부적으로 봤을 때 상장을 고려하더라도 긍정적인 메시지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만일 운영 중인 게임이 2~3개가 있다면, 인력을 조정해 경쟁력을 강화할 수단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업 아이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인력을 내보낸다는 것은 내부적으로 사업 아이템이 많지 않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특히, 내보낸다는 거 자체가 성장성에 의문을 남겨서 IPO에 긍정적이지 않다고 봤다.


- 패키지 게임에 관하여

PC나 콘솔의 패키지 게임 개발 및 판매가 국내 게임사 도전할 시장이란 의견이 있다. 과거 블루홀이 '배틀그라운드' PC/콘솔을 전 세계 7,500만 장 판매로 큰 성공을 거뒀고, 지금 크래프톤의 기반이 됐다. 이제 시장은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반면 이미 몸집이 커진 게임사가 패키지 판매로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겠느냔 의견도 있다. 최근 넥슨은 '데이브 더 다이버'를 100만 장 팔았다고 발표했다. 좋은 성과이지만, 매출로 보면 250억 원 정도다. 연 매출 3조 원의 넥슨에 재무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이재용 회계사는 "그래도 패키지 게임 개발 및 판매가 게임사의 미래라고 볼 수는 있다"라고 말했다. '데이브 더 다이버'는 100만 장 판매가 끝이 아닌, 앞으로도 계속 팔릴 수 있다. 재밌는 패키지 게임은 계속해서 팔린다. '위쳐' 시리즈와 'GTA5'가 대표적이다. '데이브 더 다이버' 경우엔 향후 DLC와 플레이스테이션, Xbox, 닌텐도라는 플랫폼 확장도 노려볼 수 있다. 좋게 평가한다면 '데이브 더 다이버'가 1천억 원 매출을 기록하리란 전망도 허황되지 않다고 봤다.

중요한 것은 게임사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힘, 신작을 만들어 낼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회계사는 현재 입증하지 못하는 게임사의 주가가 내려가고 있고, 이를 입증해 내야 주가가 회복될 것으로 봤다.

일반적으로 패키지 게임은 단일 매출, 확률형 아이템 위주의 모바일 게임은 반복 매출이라 본다. 이 회계사는 좋은 패키지 게임은 차기작을 통해서 반복 매출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게임사가 작은 게임을 시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경험을 쌓고, 사내 분위기가 달라지는 과정에서 반복 매출이 가능한 패키지 게임이 나온다는 것이다.


- 게임의 틱톡화(TicTok 化)

이재용 회계사는 국내 게임은 틱톡이 유행하는 것과 결이 비슷하다고 봤다. 유저에게 더 쉽고 자극적으로 다가간다는 것이다. 점차 레벨 디자인이 짧아지고, 뽑기의 자극은 강해진다. 그 결과 게임의 본질적인 즐거움도 많이 놓치게 될 것이라 우려했다.

그는 "국내 게임이 틱톡화될 수록 해외 게임과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다"라며 "쉽게 얻은 감동은 감동적이지 않은데, 최근 모바일 게임의 퀘스트는 기억에 남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예로 높은 매출을 기록하는 모바일 게임의 퀘스트는 화면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시작부터 진행, 관련된 사냥, 완료까지 진행된다. 또한 변신 뽑기는 점차 화려해지고 간편해진다.

이는 사업의 지속성에 문제가 된다. 단기 매출은 괜찮을 수 있으나 지속성 있는 사업으론 만들기 어렵다. 쉽게 들어온 유저는 쉽게 빠진다. 이 회계사는 모바일 게임의 생존주기도 점차 짧아질 것이라 내다봤다.


- 새로운 게임사업 트렌드가 올까

많은 게임사가 인력 감축에 나선다. 코로나19 초기 시절 개발자 인건비가 크게 늘었다. 인건비가 늘어나는 것은 고정비가 증가하는 것이다. 신생 게임사로서는 투자를 더 많이 받아야 하는데, 목표로 하는 매출액이 더 커져야 한다. 시장이 커지지 않으면 목표 매출액을 늘리기 어렵다. 동일한 상황에서 신생 게임사가 점차 나오기 어려워지고 있다. 근본적으론 높아진 개발자 인건비가 이유로 꼽힌다.

이 회계사는 MZ 세대의 특성이 게임산업에도 작은 변화를 일으키길 기대했다. 월급보다는 주식을 받아 도전하는 젊은 개발자들이다. 그는 "엔씨에 가서 리니지를 유지하기보다, 작은 회사에서 내 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개발자들이 나올 수 있다"라며 "이러한 기회가 있을 수는 있으나, 우선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사례가 나와야 한다"라고 전제했다.

더 크게 보면 경기가 회복되어야 한다. 투자 시장도 말라 창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개발자 임금 상승은 한동안 정체될 것이다. 게임사들에 숙제는 '마스터피스'와 같은 패키지 게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다. 기존 게임시장의 틀을 깨야 하는 숙제다. 능력의 틀을 깨는 게임사가 재무제표의 틀도 깰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재용 회계사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선 대형 게임사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 봤다. 주가는 떨어지지만 현금은 넉넉하다. 그는 대형 게임사들이 가진 현금으로 잘하는 스튜디오를 인수하거나, 직간접적인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