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브컴에서 강연을 진행하는 우크라이나 게임 산업 종사자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 어느덧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전쟁이 시작한지 얼마 안 돼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에는 폭격이 가해졌고, 북동부 하르키우나 동부 돈바스 등 지역에서는 더욱 치열한 전투가 펼쳐졌다. 지난 6월 대반격 작전을 개시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최근까지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해 게임스컴에서는 전쟁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게임 산업을 성장시키려 노력하는 우크라이나의 게임 산업 종사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게임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들은 데브컴에 참여해 강연을 진행하는 등 쾰른에 모인 전 세계 게임인들에게 우크라이나이의 현 상황을 공유했다.

그뿐만 아니다. 우크라이나는 게임스컴이 개최한 이래 처음으로 B2B 홀에 부스를 내고 공식적인 참여를 알렸다. 우크라이나 부스에서는 스토커2 개발사인 GSC 게임월드는 물론, 다양한 게임 관련 기업과 인디 개발자들이 참여해 활발하게 방문객을 맞이하기도 했다.

▲ 게임스컴이 열린 이래 최초로 참가한 우크라이나 부스

데브컴에 참가한 우크라이나 게임 산업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된 지난해 2월은 완전한 패닉 상태였다. 이전부터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은 돌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이는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 러시아의 크림반도 점령을 지켜 보거나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들 일부는 미리 직원들을 안전한 위치로 옮길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이처럼 대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강연자들에 따르면 전쟁이 개시한 이후 가장 급하게 챙겨야 했던 것은 자신의 가족과 직원, 그리고 직원 가족등 사람들의 안전이었다. 전쟁의 영향에서 비교적 안전한 곳에 있던 이들은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수도인 키이우를 거점으로 한 회사의 경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이들 중 미리 대비할 수 있었던 회사는 안전한 국경 인근에 비상용 가옥을 마련해 모두와 함께 생활했으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폐 공장에서 2주 가까이 생활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전한다.

▲ 부스에서는 전쟁과 관련한 게임들의 시연이 많았다

이처럼 급박한 전쟁 상황에도 게임 산업 육성을 위한 우크라이나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데브컴에 참가한 게임스 개더링 컨퍼런스(Games Gathering Conference) 비즈니스 디렉터 이리나 숌카(Irina Syomka)에 따르면 전쟁의 패닉에서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모든 이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한다"는 의식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각자 상황에서 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일상 업무로 돌아가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동유럽권 개발자들의 네트워크를 다지고, 나아가 우크라이나 게임 산업을 이웃 국가에게 소개하는 목표를 가진 컨퍼런스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전쟁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왔다. 이리나 숌카 디렉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폭격이 잦아든 이후 정상적으로 진행한 컨퍼런스에서는 1800여 명의 게임 산업 관계자가 참여하는 성과를 거둘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키이우 지역 한 호텔에서 진행했던 컨퍼런스는 비상 상황에 대비해 인근 지하철 역 등 폭격에 대비한 시설을 준비해야만 했다.

▲ 데브컴에서 발표를 진행한 이리나 숌카 GGC 비즈니스 디렉터(왼쪽)

더구나, 전쟁 이전 러시아 기업과 많은 협업을 해 오던 우크라이나 게임업계는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전체 수익이 50%가량 감소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강연에 참가한 이들은 모두 이같은 상황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산업을 성장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다른 국가에게 우크라이나 개발자의 역량을 소개해야 한다는 결정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과 같은 맥락에서 올해 게임스컴 비즈니스 부스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게임스컴에 마련된 우크라이나 부스에서는 활발한 비즈니스 미팅이 이뤄지고 있었으며, 한 편에서는 우크라이나의 인디 개발자들이 직접 개발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시연대에 놓여진 대부분의 게임들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거나 지뢰를 제거하는 시뮬레이터 등 전쟁과 관련된 게임의 비중이 많았다. 직접 겪은 잔혹한 전쟁이 반복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했다.


또 한 가지 눈여겨볼 수 있었던 것은, 부스를 운영하는 이들 중 여성의 성비가 굉장히 높았다는 것이다. 부스에서 인디 게임의 시연을 돕던 한 관계자는 "전쟁이 진행중인 우크라이나에 있는 남자들은 국경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이번 게임스컴에는 여성들이 대부분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게임스컴 현장에 참여한 남성 우크라이나 개발자는 전쟁 전 또는 전쟁 초기에 인근 국가로 거주지를 옮긴 이들이 대다수였다.

데브컴 강연에 이어, 우크라이나 부스에서도 만날 수 있었던 이리나 숌카 디렉터는 "많은 친구와 가족들이 죽거나 다치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현재는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며, 앞으로도 자국의 게임 산업 발전을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개발자들이 주최하는 게임스 개더링 컨퍼런스는 오는 9월,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다시 한 번 개최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