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인디 개발사, 킥스타터를 통한 펀딩,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기괴하면서도 눈이 튀어나오는 매력적인 픽셀 아트 연출. 그런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내용이다. 수많은 펀딩 잔혹사가 그랬듯, 오히려 겉이 너무 번지르르하니 혹시 속은 텅텅 비어 '이게 정말 제대로 출시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은 커진다. 그렇게 정말로 끝내지 못한 게임 펀딩은 지금도 산더미다.

'블라스퍼머스(Blasphemous)'는 정말로 달랐다. 여타 게임이라면 가장 장점으로 내세울 만한 기괴한 연출은 오히려 게임의 여러 특징을 살리는 장치 중 하나였다. 소울 본 스타일의 액션 구조와 절망적인 세계, 그리고 각각의 구역을 잇는 세계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2편에서는 전작과 DLC에서 그렸던 이야기의 연결과 함께 거의 모든 부분이 확장되고, 마침내 완성됐다.

게임명: 블라스퍼머스2
장르명: 액션/메트로배니아
출시일: 2023.8.25
리뷰판: 1.0.5-cs43681
개발사: 더 게임 키친
서비스: 팀17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다시 일어난 참회자. 그리고 땅에 가라앉아 예전의 모습을 겨우 찾아볼 수 있는 쿠스토디아에서 찾을 수 있는 건 모호함, 기괴함, 분명함이다. 이걸 하나로 묶어서 보면 도저히 같이 둘 법한 단어 조합인가 싶지만, 게임이 강조하는 각각의 특징은 이걸 너무나 반짝반짝 드러내고 그것이 블라스퍼머스2라는 게임을 완성하는 요소들로 플레이어를 반긴다.


모호함은 이 게임의 커다란 축 중 하나다. 단순히 '불분명하다'라기 보다는 정확히는 수많은 이야기와 지식을 어렴풋이 보이는 이야기와 배경 속에 여기저기 흩트리고, 흐릿하게 문질러 뿌옇게 그려졌음을 의미한다.

사실 블라스퍼머스를 정의하는 단어는 메트로배니아와 소울본이었다. 이 중 다크 소울, 블러드 본 등을 위시로 이어지는 소울본 시리즈는 불합리하다 싶어지는 액션 시퀀스를 기반으로 한 난이도와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에 둔다.

이렇게 구분하면 블라스퍼머스2의 소울본스러움은 더 희석되어 찾아보기 어려운 편이다. 소울본의 스토리텔링은 퀘스트 마크 대신 탐험, 발견이라는 가치를 우선에 두고 내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게 만든다. 블라스퍼머스2는 외적인 존재의 길 안내, 그리고 끝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목표를 직접 제시하고 그에 따라가기 바쁘다. 사실 여러 엔딩 분기를 고려하지 않고 클리어에 목적을 둔다면 그저 경주마처럼 보스 마크만 보고 따라가면 된다.

▲ 맵마커를 통해 정해진 목표가 분명하고

▲ 게임 안에서도 직접 목표를 지목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과 대사, 그리고 설정 하나하나는 소운본처럼 분명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대사를 하나하나 곱씹을수록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는 헛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상관없는 인물들이 내 진행에 혼란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이 모호함은 스페인 스튜디오인 게임 키친이 담아내고자 한 스페인에 있다. 작품 전체에 존재하는 뒤틀린 세계관은 단순히 중세 분위기를 어둡게만 그린 다크판타지와는 다르다. 마치 가톨릭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눅눅한 종교와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신비로움과 역겨움, 그리고 수많은 아이템을 일종의 그림 안에 존재하는 상징물로서 분석하게 하는 도상학, 안달루시아 지역의 민속적 특징을 그려냄과 동시에 꼬아 담았다.

영어와는 달라 이질적인 분위기만을 전하는 스페인어 음성만이 아니라 스페인을 더 이질적이고 신비롭게 구현하고, 그걸 이야기에 녹여내는 게 게임의 모호함으로 드러난 셈이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겉멋 위한 뜻 없는 흐릿함이 아니라 종장에 갈수록 뚜렷하게 보이는, 신비로움이 벗겨져 나가는 모호함으로 게임의 질을 높이는 장치가 됐다. 굉장히 종교적이면서도 오늘날 종교에 빗대면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은 게임 제목이 의미하는 신성모독과도 맞닿아 있다.


희석된 소울본스러움의 특징은 게임의 분명함과도 이어진다. 이번 작품은 전작에서 구현된 메트로배니아를 전통적인 장르 수준에서 보다 높게 담아내고자 했다. 이걸 위해 개발진은 이미 준수한 평가를 받은 전작의 코드를 그대로 옮겨오지도 않았고 리소스 재구축을 위해 1년 반을 다시 쏟아부었다.

그런 변화의 대표가 플랫폼 액션의 비중, 그리고 3개의 무기다. 메아 쿨파 1개만 존재하던 무기는 그것과 비슷한 루에고 알 알바, 거대한 플레일의 베레딕토, 빠르고 짧은 찌르기 검 조합인 사르미엔토와 센텔라로 바뀌었다. 적의 공격 몇 번 맞고 나가떨어지기도 하고, 패링이나 회피로 적의 공격을 완벽하게 흘려내는 게 중요한 건 이번에도 비슷하지만, 훨씬 다양한 적들의 형태와 그 공격 패턴에 맞춰 각각의 무기를 상황에 따라 바꿔 상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액션을 수행하는 주인공의 움직임, 점프 활용 등이 굉장히 더 매끄럽고, 직관적이다. 점프를 통한 이동, 주인공 참회자의 공격이 적과 반응하는 상호작용은 매끄럽게 이어져 1:1 상황에서 적을 물리치며 앞으로 나가는 대신 뒤를 돌거나 피해가는 방법을 고민하기 더 수월해졌다. 반격, 회피, 공격, 혹은 그걸 피해 나갈 방법까지 보다 분명하게 이루어지는 판정 덕에 분명한 액션이 가능해졌다.


이 액션에서의 분명함은 일반적인 필드 위만이 아니라 보스전에서도 명확해진다. 게임은 분명 전작만큼이나, 때로는 더 어렵고 참회자 역시 쉽게 죽어 세이브포인트인 기도대로 돌려보낸다. 대신 눈으로 분간할 수 있는 분명한 판정과 패턴이 존재하고 무엇으로 이를 어떤 액션, 어떤 무기로 파훼할지 알아차려나가며 액션에서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쉽게 상대할 수 있는 보스 대전에서 이런 성격은 더 강해져 성장한 자신을 체감하고 어려웠던 적을 보다 간단하게 물리쳐나가게 된다.

무기의 다양화는 메트로배니아의 특징 강화와도 이어진다. 이들은 적 때려 부수는 데 말고도 맵의 여러 기믹을 활용하는데에도 쓰인다. 거대 플레일로 종을 울리면 맵에 있는 숨겨진 발판이 활성화되고 한손 검으로 높은 곳에서 낙하 공격을 하면 일부 특수 벽을 파괴할 수 있다.

다양한 맵을 탐험하며 새로운 능력을 얻고, 그 능력으로 제한된 길을 새롭게 개방하며 탐험 구역을 확장시키는 메트로배니아의 핵심 특징이 보다 분명해졌다.

물론 메트로배니아의 특징 강화로 보다 다채로운 능력이 게임 속도, 플랫폼 액션의 난이도를 낮추긴 했지만, 맵 하나하나를 잇는 수준 높은 레벨 디자인 덕에 아쉬움보다는 만족감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 3개의 무기 획득을 통해 맵 기믹을 풀어나가게 된다. 다른 능력도 여럿 있고

기괴함이 주는 신비로움은 시리즈를 상징하는 요소다. 성스러운 존재여야 함에도 뼈와 피가 거리낌 없이 드러나고 잘린 단면이 그대로 보여진다. 축복은 불쾌함이 드러날 정도로 불안한 이미지를 가진다.

이러한 명확한 아트 디렉션과 내러티브를 구현하는데 있어 게임이 가진 2D 픽셀 그래픽은 제한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전작처럼 픽셀 그래픽이 기괴함을 더 역겹게 그려내는데 적합할 정도다.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내장을 그려낸 듯한 그로테스크함, 철이 가지는 현대/미래 문명의 상징이 주가 되는 SF와 달리 블라스퍼머스2는 가톨릭과 고딕풍 양식의 혼합이 이루어진 기괴함을 가진다. 이는 픽셀 아트가 주는 특유의 정제되지 않은 거침과 고풍스러움 안에서 더 빛이 난다.

덕분에 2D 안에서도 여전히 잔인하고, 잔혹하고, 역겹다. 그리고 그래서 매력적이다.


기괴함이 주는 만족감 만큼이나 매력적인 배경, 맵 디자인 등이 주는 순수한 만족감 역시 기대 이상이다. 게임의 전체적인 그래픽 퀄리티 상승에 맞춰 멀리 흐릿하게 표현되는 원경 위주의 배경은 상황에 맞춰 보다 다양하게 그려졌는데 게임의 분위기는 물론 인게임 플레이 시 시야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을 수준에서 적합하게 아름다움을 낸다.

여러 요소를 더한 게임만큼 그 배경이 된 스페인, 안달루시아의 여러 민속 특색, 다양한 종교, 양식을 살려 어느 한 분위기에 편중되지 않은 다양한 게임 음악 역시 이런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는 초현실성을 더한다.

대신 게임의 분위기가 살아있는 컷신 애니메이션을 외부 스튜디오에서의 셀 애니메이션으로 바뀐 부분은 미학적 통일감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변화한 애니메이션 방식이 이야기와 상황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고, 개발진 입장에서 효율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했다지만, 덕분에 특유의 역겨운 감성은 덜어낸 게 사실이니 말이다.


블라스퍼머스2는 분명히 자리 잡은 게임의 기반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메트로배니아라는 고전적이면서도, 인디 게임에서 더러 볼 수 있는 장르적 특색의 강화를 시도했다. 게임 디자인 부분에서 더 탄실한 노력이 있어야 했고 그것은 강화된 액션과 함께 제대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이런 게임적 요소를 자랑할 만한 역겨움 위에 완성된 세계관으로 쌓아올렸다.

덕분에 시각적인 예술성, 액션 게임으로의 플레이, 게임 디자인 모두 특정 수준의 성장을 거뒀다. 여전히 모호하고, 기괴하고, 어렵지만, 누군가에겐 극복할 여지를 줬고 게임의 특징이 만족스러운 이들에겐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으로 자리 잡는다.

천천히 탐험을 하면서도 십수 시간 남짓에 엔딩을 봤지만, 이후의 탐험이 강조된 메트로바니아인 만큼 맵의 빈곳을 더 채울 수도 있다. 엔딩 분기도 길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만큼 다회차보다는 완벽한 한번의 플레이가 가능한 점도 할 게임 많은 바쁜 요즘 플레이어겐 반길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