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사, 첩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미국에 갈 수도 있으니 준비해둬라"

이 말로 끝. 정해진 일자가 10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난 내가 뭐 때문에 미국을 가는건지, 아니 그 전에 가긴 가는건지도 몰랐다. 그리고 가까스로 비행기표를 끊을 때가 되서야 알았다. '마블 스파이더맨2'의 프리뷰 행사라는 걸.

그 정도로 소니는 이번 행사의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엠바고(보도유예)를 엄청나게 강조했는데, 오죽하면 보안을 위한 NDA 문서에서 '어기는 순간 두고보자'라는 어둠의 메시지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LA에 도착했고, 홍콩, 일본, 대만 등지에서 건너온 기자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들어도 모를 꼬부랑 외국어로 말하는 기자들까지 한 자리에 모였다. 대체 무슨 용도인지 감도 안 잡히는 허름한 건물 앞에 말이다.

▲ 겉으로 봐선 전혀 모를 것 같이 생긴 비밀(?) 행사장

▲ 인줄 알았는데 모퉁이에 포스터를 붙여놨다. 이럴거면 왜 비밀이라 했담

건물 모퉁이에 걸쳐진 현수막이 묘하게 거슬리긴 했지만, 어쨌거나 기자들이 얼추 다 모이자, 현장 스탭들이 마치 양떼를 모는 목동처럼 기자들을 울타리 너머로 몰았다. 대체 뭔가 싶었는데, 들어가 보니 차량용 엘리베이터를 개조한 낡은 리프트였다.

▲ 뒤로 보이는 울타리 너머가 행사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탔는지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바람에 일부가 다시 내리는 해프닝이 지나가고,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오스코프' 테마의 리셉션이 보였다. 대학 시절 산업시찰을 가면 딱 이 기분이었던 것 같다. 으스스하게 꾸며졌지만 움직이질 않아 다소 시무룩해 보이는 심비오트 모형을 옆에 두고 접수를 끝내자 이름표와 손목 밴드를 받을 수 있었다. 대기업 소니의 인정을 받은 게임 기자이자, 엠바고를 깨지 않을 믿음직한 기자에게만 수여되는 합격 목걸이다.

▲ 여기서 인턴쉽하면 다 끝이 안 좋던데...

▲ 그에게 주어지는 합격 목걸이... 근데 이름 철자 틀렸어요

그리고 이어진 짧은 브리핑. 크게 대단한 내용은 없었다.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어서 고맙고, 게임 재미있게 즐기고, 궁금한 점은 언제든 물어보라는 언제나와 같은 브리핑이다. 이 자리에서 새로운 영상이 공개되어 꽤 신났는데, 엠바고 시점 전에 소니가 알아서 풀어버렸다. 무엇인고 하니 바로 이 영상이다.


행사장 내부는 '마블 스파이더맨2'에 등장하는 인물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두 명의 스파이더맨. 잠시 스파이더 Man이 아닌 Men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아 넘어갔다. 어쨌거나, 행사장 한복판엔 두 주인공의 등신대와 한정판 구성품으로 들어간 스태츄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 생각보다 키가 크지 않았다.

▲ 심비오트에 침식되어가는 거미-맨을 형상화한 조형물

이쯤되서 궁금한 건, 두 주인공 중 누가 메인이냐는 것. 주인공이 계속 바뀌면 플레이어의 감정선도 유지가 어렵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의문에 개발진이 직접 답해줬다.

개발사인 인섬니악이 말하는 이번 작품의 중심 서사는 각각 다른 두 이야기가 얽히는 그 자체다. 두 사람의 목적과 동기가 얽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갈등과 오해, 그리고 유대와 이해에 이르는 그 자체가 바로 본작의 중심 서사다.

이왕 말을 섞은 김에 몇 가지를 더 물어봤는데, 개발 과정 중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냐 묻자 '무엇을 넣고 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과정이 가장 어려웠다고 답했다. 게임 개발 과정은 마치 뷔페와 같아서 맛있는 걸 전부 넣고 싶지만, 결국 먹을 수 있는 분량은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라 어울릴만한 음식들을 잘 고르는게 중요하다면서 말이다.

▲ 다양성보단 선택과 집중이란 말이 어울리는 시리즈다

또 다른 어려웠던 점은 '웹 윙'이라는 새로운 이동 수단을 넣으면서 기존의 '웹 스윙'이 죽지 않도록 조절하는 과정이었다고 답했다. 이는 실제 게임 체험(체험기는 기사 하단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에서 확인해볼 수 있었는데, 꽤 놀라운 수준으로 조절되어 있다. 웹 윙과 웹 스윙 중 하나만 쓰면 묘하게 답답하고, 둘을 잘 섞으면 게비스콘이 속을 뚫듯 시원하게 쭉쭉 나아가는 주인공을 볼 수 있다.

개발 기간 중 COVID-19 판데믹이 겹쳐 있었기에 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다른 개발사에 비하면 영향이 적었다고 답했다. 인섬니악의 경우 판데믹 전부터 각 사무실이 꽤 멀찍이 떨어져 있었고, 원격 근무가 꽤 잦은 근무 환경이었다 보니 재택 근무 체계로의 전환이 크게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 흔쾌히 답변해준 자넷 리 프로젝트 디렉터(좌)와 마이크 피츠제럴드 코어 테크 디렉터(우)

이렇게 게임과 관련된 스몰토크를 나누다 안쪽으로 들어서 보니 이제 기자들이 중간 중간 업무를 보거나, 취재 내용을 정리할 수 있는 작은 카페테리아가 나왔다. 행사장 곳곳에 작은 핑거푸드가 놓여 있어 뭘 먹기보다는 잠깐 앉아 업무를 보는 공간에 가까웠는데,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점심시간을 넘기는 행사임에도 뭘 먹는 기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물론 난 참지 않았다.

이 공간은 전작의 무대인 '맨해튼'외에 새롭게 등장하는 브루클린과 퀸즈 중 브루클린에 자리한 유서깊은 관광지인 '코니 아일랜드'를 테마로 꾸며졌다. 새로 추가된 브루클린과 퀸즈는 기존 게임 무대였던 맨해튼에 비하면 고층 빌딩이 턱없이 적은 지역인데, 이번 작에서 새롭게 추가된 이동 기능이자 앞서 언급한 '웹 윙'이 이 지역을 보다 자연스럽게 이동하기 위해 추가된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개발진은 이 지역이 맨해튼과는 완전히 다른 뉴욕의 면모를 보인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느낀듯 싶었다. 마이크 피츠제럴드 코어 테크 디렉터는 게임 내에 구현된 브루클린과 퀸즈가 맨해튼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무대이며, 탐험 자체로도 즐거운 경험을 주는 공간이 될 것이라 언급했다. 본인들이 뉴욕에 직접 살지 않다 보니 더 즐거운 작업이었다고도 말했는데, 작업 과정에서 직접 가 본적이 없냐고 묻자 담당 직원이 따로 있어 못 가 봤다며 억울해했다.

▲ 사진 찍는다니 바로 쌍따봉 발사해주신 바리스타님

▲ 치는 순간 행사장 내 모두의 시선을 받는 오함마 게임

▲ 실제로 미니 게임도 할 수 있고, 사은품도 줬다.

카페테리아를 지나자 미리 공개된 대표 빌런들의 컨셉으로 꾸며진 세트장이 이어졌다. 이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공간은 '크레이븐 더 헌터'의 컨셉으로 꾸며진 방이었는데, 진중하면서도 집착으로 가득한 사냥꾼답게 온갖 트로피와 사냥 도구들, 그리고 이유는 모르지만 그냥 멋진 중갑옷까지 늘어서 있었다.

▲ 크레이븐 더 헌터의 컨셉으로 꾸며진 공간

참고로 크레이븐 더 헌터는 앞서 잠깐 대화를 나눈 '자넷 리' 프로젝트 디렉터가 자신의 최애 빌런으로 꼽은 인물인데,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길래 "혹시 잘생겨서?"라고 묻자 황급히 "흥미로운 배경 서사를 지니고 있어서요!"라고 답했다. 그것뿐이냐고 묻자 "잘생기기도 했고"라고 씁쓸히 덧붙였다. 실제로 게임 상에서 '크레이븐 더 헌터'는 그저 흉악해 보이던 선공개 이미지와 꽤 수려한 외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코믹스에서 종종 썼던 흉악한 기술도 쓰지 않는다.

▲ 솔직히 내가 봐도 멋지게 나오긴 했다.

▲ 쓰는 순간 체면이 무너질 이 기술도 안쓰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맞은편은 또 다른 빌런이자 크레이븐의 사냥감 역할(...)도 하는 '리자드', 커티스 코너스 박사의 컨셉으로 꾸며져 있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지닌 등장인물이기도 한 리자드는 랩틸리언에 가깝게 그려진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속 모습과는 달리 엄청나게 흉악한 모습으로 나왔다. 코어 테크 디렉터인 마이크 피츠제럴드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내 빌런이며, 이유도 매우 명확하고 간결한데, 다름아닌 '디자인이 너무 잘 뽑혀서'. 실제로도 게임 내에서 보면 이걸 어떻게 이기나 싶은 박력이 있다. 베놈보다 나아보일 정도다.

▲ 개인적으로는 영구와 공룡 쭈쭈가 자꾸 생각나던 '어스파'속 리자드

▲ 확실히 입술이 없었어야 했다

▲ 요기가 코너스 박사님의 비밀 연구실

▲ 자세히 보면 별거 아닌 식들인데 되게 있어보이게 써놨다

▲ 이구아나도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지(인형이다)


이렇게 꾸며진 공간을 돌다 보니 어느덧 게임을 직접 체험하는 시연 공간이 나온다. 시연 공간은 엄청나게 넓게 마련되어 있었는데, 50여 명이 한 번에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규모로 꾸며져 있었다. 흔히 말하는 '사장님 소파'와 각각 배정된 55인치 TV까지, 완벽한 환경이었다. 다만, 이 공간은 촬영이 불허되어 있어 직접 모습을 담지는 못했다.

게임 플레이를 마치고 감상을 정리하며 나오던 중, 앞서 대화를 나눴던 개발자들을 다시 만났다. 전세계에 수많은 스파이더맨 팬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게임을 선보이는 기분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지금 수십 명 상대로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수백만 명이라 생각하니 그냥 아득하기만 하다'라고 답했다. 아무래도 아직은 긴장이 풀릴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행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하루 짜리, 그것도 반나절만 진행한 짧은 행사였지만, 확실하게 느껴진 건 소니가 이 게임을 밀어주고 있다는 것. 전작은 서울 강남에서도 쇼케이스를 진행했던 바 있는데, 한국에서 진행하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행사의 퀄리티 자체가 남달랐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단일 게임의 쇼케이스를 진행하면서 이 정도로 행사장을 꾸며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때문에, 원래도 기대하고 있던 타이틀이지만 마음 속에 기대감의 블록을 하나 더 얹었다. 두 명의 스파이더맨이 찾아오는 날은 10월 20일. 한 달이 조금 더 남았다. 아마, 평상시보다는 조금 더 긴 한 달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