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본 네트워크 우중 PD

서브컬쳐 게임을 논할 때 '소녀전선'은 지금도 빠질 수 없는 작품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서브컬쳐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였지만, 2017년 '소녀전선'이 국내에 출시되면서 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소녀전선'은 화려하지는 않아도 자신만의 특색을 살린 게임플레이와 진중하고 깊이 있는 아포칼립스 세계관과 스토리, 매력 있는 캐릭터를 살리면서 호응을 얻었다. 그러면서 서브컬쳐 게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뒤로 6년이 지난 현재, 국내에는 다양한 서브컬쳐 게임이 개발되거나 혹은 해외 서브컬쳐 게임들이 유입되어 시장의 한 축을 구축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소녀전선'은 한층 더 발전된 스토리와 캐릭터 빌드업을 보여주면서 지금도 꾸준히 서브컬쳐 팬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뉴럴 클라우드', '역붕괴: 베이커리 작전', '소녀전선2' 등 신작으로 그 세계관을 넓혀가고 있다.

작은 동아리에서 시작해 서브컬쳐의 한 축을 담당하는 작품과 그 세계관을 만들어낸 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중 PD는 IGC 2023 강연에서 '정서적 가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본 강연은 이해를 돕기 위해 강연자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저는 항상 게임을 개발할 때 유저에게 본질적인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세 가지로 나누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왜 우리가 정서적 가치에 주목해야 하며, 왜 그것이 지금 유저에게 부족한 것인가? 또 무엇이 유저에게 정서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까?

즉 오늘은 정서적 가치가 중요해졌다고 강조하면서, 주제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희는 어떤 콘텐츠나 플레이 방식이든, 결국 게임이 유저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즐거움이 어느 정도 수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저희만의 노하우는 아닙니다. 이미 예전 개발자들이 발견했던 것을 저희가 새삼 알게 된 것이죠. 고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은 게이머의 마음이라는 말로 유명한 GDC 키노트 강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중에는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엔터테인먼트의 형태라는 우리의 본성이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의 매개체와 같이,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반응들을 이끌어 내야 한다. 웃음, 두려움, 기쁨, 매력, 놀람, 그리고 무엇보다 성취. 결국 플레이어로부터 이러한 감정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판단력이다. 이것이 우리의 성공의 척도이다”라고요.

▲ "제 마음 속의 저는 게이머입니다"로 유명한 고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의 GDC 발표를 인용했다

최근 사회가 변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산업이 유저에게 제공하는 서비스 또한 유저의 수요 변화에 따라서 같이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죠. 우리는 게임의 본질, 즉 상호 작용이 가능한 특징이 있는 게임을 통해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는 방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서적 가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유저들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통해 일상에서 얻기 어려운 정서적 가치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그것을 제공하는 수단이 되고 있죠. 공포 게임을 예로 들자면 무서운 광경을 보고 비명을 지르고 그 무서움을 체험하면서 어떤 해방감, 새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죠. 힐링 게임에서는 마음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고, 그밖에 다양한 게임에서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체험을 통해서 느끼는 어떠한 고밀도의 감정, 느낌, 정신적 해방감,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만족감을 '정서적 가치'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열정, 신뢰, 긍정적인 마인드 등 여러 가지 심리 상태를 얻을 수 있겠죠. 그 정서적 가치를 얻은 뒤, 유저는 더 다양한 체험을 하고자 콘텐츠에 접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이 콘텐츠의 전개를 가속화하고 그러면서 다양한 감정을 더 증폭하는 삼각형의 도식 관계가 이루어지겠죠.


그렇다면 게임에서 어떤 정서적 가치를 제공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대부분은 캐릭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상 깊은 캐릭터는 유저에게 정서적 가치를 전달하기 좋은 매개체니까요. 또 단순한 캐릭터로는, 유저 입장에서는 너무 평면적이라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고요. 그렇기에 좀 더 진심을 담아서, 진실되게 정서적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캐릭터가 유저에게 정서적 가치를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리얼리티 그리고 유저와 정서적 공감으로 보았습니다.

리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저희가 신경을 쓴 부분은 단순히 캐릭터 이미지를 멋지게 꾸미고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되어 핍진성을 확보하는 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소녀전선2에서는 캐릭터의 디테일한 연출, 표현을 많이 보여주면서 캐릭터의 다양한 매력을 유저에게 진실되게 드러내고자 했죠. 그러면서 유저가 캐릭터와의 친밀도를 더 많이 요구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예쁜 모습이 아니라, 그 캐릭터의 디테일한 면, 진실된 면, 성격까지도 유저들이 알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캐릭터의 디테일 및 마이크로 액션 표현에 공을 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강조하고 있는 또다른 파트는 유저와 캐릭터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연출하느냐였습니다. 평면 모니터에서 보이는 캐릭터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해야 마치 진짜 눈앞에 살아 숨쉬고 같이 함께한 것처럼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죠. 이 부분을 위해서 소녀전선2에서 컷씬 연출을 근거리 카메라 구도뿐만 아니라 1인칭 시점 등, 여러 가지 기법을 가미해서 상호작용의 느낌을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디테일을 강화하고, 여러 연출 기법으로 상호작용의 느낌을 살렸다

유저와의 공감대를 이야기해왔는데, 이 부분은 사실 누구나 다들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저희도 그렇고요. 캐릭터를 리얼하게, 마치 살아숨쉬는 듯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이제는 어렵지는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공감대'를 형성하는 캐릭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개발 시간만의 이야기가 아니죠. 캐릭터와 같이 해온 시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캐릭터를 만들 때 한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품을 넘나들면서 유저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소녀전선 초창기부터 등장해 외형뿐만 아니라 성격, 개성으로 여러 유저들에게 친숙한 ‘HK416’을 예로 들어보죠. 몇 년 동안 축적된 이야기를 통해서 유저들은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마음 속에 응어리진 것을 풀어왔는지 그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소녀전선뿐만 아니죠. ‘뉴럴 클라우드’에서의 행보를 살펴보면, HK416은 ‘교수’가 된 유저를 쫓아와서 위기에 처한 유저들을 도와줍니다. 또 아직 출시되지는 않았지만, 소녀전선2에서도 ‘클루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HK416은 새로 팀을 조직, 유저와 다시 만나 힘을 합쳐 새로운 위기를 극복해나가고자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긴 여정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유저는 HK416과의 기억과 추억을 계속 떠올리게 됩니다. 그간 유저와 함께 일구어낸 것, 7년 그리고 그 이상의 시간을 거쳐 함께 해온 것들이 유저에게 정서적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깊은 연이 다른 작품에서 혹은 소녀전선 내에서 HK416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건, 유저에게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게 됩니다.



▲ 소녀전선 초창기부터 이후 작품까지 유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HK416의 사례가 언급됐다

이를 그래프로 보면 처음에 유저와 캐릭터의 만남은 호기심, 두근거림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죠. 조금 더 지나 좌절, 실패를 맛보고 유저와 캐릭터가 함께 우울감과 여기에 지지 않겠다는 호승심을 느끼게 될 겁니다. 그에 저항하면서 일구어내고, 성장하는 과정에서는 신뢰감을 회복할 테죠. 그 뒤에 찾아오는 또다른 도전에 좌절하다가도, 다시 그에 같이 맞서면서 성장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더욱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캐릭터와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정말 많은 추억이 떠오르게 되겠죠.

이런 정서적 파동은 캐릭터와 함께 하게 되는 다양한 콘텐츠, 스토리를 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을 함께 한 유저만이 캐릭터와 함께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인 것이죠. . 그렇지만 동반자가 되어서 같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내는 것은 사실 굉장히 길고 어려운 작업입니다. 하나의 작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른 작품에서 유저와의 재회 그리고 또다른 이야기를 통해 그 연과 감정을 오래도록 이어나가고자 했습니다.

이제 저희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자 합니다. 저희는 그럼 여러분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드리고자 하며, 또 어떤 게임을 제공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우선 저희 작품을 위해 피드백을 아끼지 않은 모든 소녀전선 시리즈 유저에게 감사드립니다. 콘텐츠 제작 과정은 사실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캐릭터 구축, 스토리 설정, 게임 제작 자체에 있어서 여러 가지 혼란한 점도 많았고 서로 간의 오해도 많았죠. 방금 전 말했던 이 내용은 어떻게 보면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오래도록 고민하면서 생각해낸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자면, 그간 우리 작품에 나왔던 모든 캐릭터들이 저 기준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반성이기도 합니다. 좋은 캐릭터를 설정하고 구축하기 위한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금 말하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저희는 계속 다듬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캐릭터뿐만 아니라 기존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계속 최적화하고 구축해나가고 있죠. 특히 '소녀전선2'에서는 가장 좋은 퀄리티의 캐릭터를 유저에게 제공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정서적 공감대를 만들 수 있는 게임을 앞으로도 계속 제공할테니, 기대해주세요.

▲ 캐릭터와 처음 만나서 같이 어려움을 겪고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감과 신뢰가 형성된다


IGC 2023 우중 PD 강연 Q&A

Q. 소녀전선이 어느덧 서비스 7주년이 지났습니다.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까요?

= 저희는 소녀전선 이후 후속작을 통해 좋은 스토리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소녀전선에서도 대형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소녀전선에서도 어느 정도 마무리는 필요하겠죠. 앞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지어야 후속작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충돌이 발생할 테고, 이를 어떻게 줄여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소녀전선2에서는 전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위기가 찾아올 것입니다. 이를 준비하면서도 다른 스토리도 계속 마련하고 있죠. 소녀전선, 그리고 그 이후에 나올 캐릭터들도 계속 보여주고자 하고요. 소녀전선의 원만한 엔딩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소녀전선이 초반에는 지휘관이 과묵해서 유저 자신을 대입할 여지가 있었는데 후반, 그리고 후속작으로 가면 지휘관, 교수라는 별도의 인물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강연에서 언급한 정서적 가치, 감정 전달에 어느 쪽이 더 좋다고 보고 있나요?

= 처음 소녀전선이 시작됐을 때는 지휘관을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을 전체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과묵한 캐릭터로 설정한 것이 맞습니다. 그때는 유저들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죠. 그러다가 피드백을 받고, 또 개발을 지속하면서 점점 지휘관이 이 세계관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를 바꿔나가는 인물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명을 이루는 사람이 주관이 없어보이는 셈이니까요. 그래서 지휘관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빈도를 조금씩 높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저가 스토리에 참여하는 느낌, 개입하는 듯한 느낌이 좀 줄어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지휘관으로서 전장에서 참여하는 파트는 여전히 핵심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유저와 캐릭터의 ‘관계’를 만드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휘관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게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그 안에서 동고동락하는 캐릭터와의 관계 형성이라는 점에 좀 더 초점을 맞췄습니다.

소녀전선에서는 좀 더 가벼운 환경에서 분위기에서 정서적 공감대가 이루어졌던 것 같습니다. 소녀전선2에서는 유저들의 지휘관의 행동을 선택하면서 지휘관의 정체성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깊이 공감할 수 있게끔 옵션을 주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Q. 강연 내내 상호작용을 중시해왔는데, 요즘 게임이 확실히 유저를 지칭하는 말에서 볼 수 있듯 몰입하게끔 만드는 부분에 힘을 쏟는 것 같습니다. AI 기술, 가상현실, 버튜버 등 앞으로 발전할 기술이 어떤 형태로 유저와 캐릭터 사이에 연결하는 느낌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으며, 이 기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 그간 캐릭터 메이킹과 연출에 대해 얘기했는데, 앞으로 저희는 후속작을 통해 유저들이 더욱더 많은 캐릭터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희 게임에서는 유저가 지휘관의 신분으로 캐릭터와 더 자유롭고 폭넓은 교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죠.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1인칭 시점이나 근거리 카메라 등은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했던 것이니까요. 이렇듯 기술의 발전은 더더욱 다양한 상호작용의 연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유저에게 더 심도 있는 상호작용을 제공하리라 기대합니다.



Q. 스토리에서 캐릭터가 주인공과 유대감을 쌓는 과정을 설명했는데, 스토리를 진행하다보면 그런 캐릭터들이 퇴장할 시기가 오게 됩니다. 선본에서는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요?

= 스토리를 설정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관점, 주제에 맞춰 제시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캐릭터의 '리얼리티'라는 점이죠.

소녀전선의 스토리는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충돌, 위기, 음모, 갈등 등 여러 가지가 혼재되어있죠. 이런 스토리에서는 모두가 행복하게 아름다운 결말을 맞이할 수는 없습니다. 희생이 필요하기 마련이죠. 이를 위해, 또 세계관을 형성하고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 캐릭터의 퇴장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유저 입장에서는 어찌보면 캐릭터를 죽이기 위해서 스토리를 썼다 혹은 죽이고 싶어 죽였다 이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지금 스토리도 여러 캐릭터에게 상처가 될 부분이 많고, 이미 그렇게 떠나간 캐릭터도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스토리의 리얼리티, 균형감을 위해 이런 것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Q. 최근 현실적이고 무거운 이야기 외에도 원신처럼 여러 방식으로 캐릭터와 상호작용, 교류 비중을 높인 게임이 트렌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 사실 저희가 만든 세계관, 스토리를 보면 좀 무거운 느낌이긴 합니다. 그 외에 여러 게임을 살펴보면 하드하거나 라이트한 게임 다양하게 펼쳐져있죠. 어떤 방향이든 스토리를 통해 캐릭터를 부각하고, 이들과 교류하면서 정서적 가치를 얻고 공감하고자 하는 그런 목적은 비슷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선호도를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나면 저는 다양한 게임을 하긴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 더 도전적이고 하드코어한, 무게감 있는 유형의 게임을 좀 더 선호하고 있죠.


Q. 서브컬쳐 게임에서 캐릭터와의 교감 외에 다른 전달할 수 있는 정서적 가치가 무엇이 있을까요? 또 소녀전선 외에 뉴럴 클라우드 등 다른 작품에선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나요?

= 사실 캐릭터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서적 가치는 서브컬쳐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캐릭터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콘텐츠의 제작자라면 누구나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질 겁니다. 스토리를 통해 만들어내는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역할과 이를 통해 유저가 느끼는 인상 이 모든 것은 어느 게임에서나 통용되는 것이니까요.

그 중에서 긍정적인 정서는 창작에서 굉장히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게임의 스토리는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창조물인데, 그 과정에서 민감한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야 하고 때로는 배제해야 할 부분도 많죠. 거기에 여러 긍정적 가치,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짜내고자 부단히 노력해야 하고요

좋은 작품은 현실 속에서 여러 정서적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가공해서 유저들이 체험할 수 있도록 작품 내에 녹아들어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좋은 개발자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겠죠.


Q. 소녀전선이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상당히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시점을 기준으로 스토리가 많이 업그레이드된 느낌인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나요?

= 소녀전선의 스토리를 만들 때 시놉시스를 다양한 방면에서 접근하게 됐기 때문이라 봅니다. 코로나19 시기의 저희는 실망스러웠죠. 왜 그랬나 고민했는데, 시놉시스를 만들던 초창기에는 중요 포인트만 적곤 했습니다. 그것이 어찌 보면 한계에 다다른 거죠. 이때 저희는 여러 가지로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스토리에 핵심 파트뿐만 아니라 디테일도 다양하게 부여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창작자로서 그 시기 그리고 지금까지를 돌이켜보면, 그 이후로 즐겁게 작업을 했던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일이 아닌, 취미이자 덕업일치라고 해야 할까요? 스토리에 대해 좋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 성취감뿐만 아니라, 안 좋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도 고통스러우면서도 이를 이겨내고 개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그런 게 있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스토리를 만들어갔다고 할까요.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Q. 소녀전선에서는 다양한 철학적 이념이나 이데올로기가 많이 차용된 느낌이었는데, 스토리를 쓸 때 전문가를 초빙하는지 혹은 서적을 참고해서 녹여냈는지 그 방법이 궁금합니다.

= 스토리 창작할 때 제일 먼저 어떤 긍정적인 관점이나 주제를 던져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을 먼저 생각합니다. 창작 초기에 주로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이 토론하고는 하죠. 클래식 명작이나 사회 문제, 오랜 시간 고민해왔지만 답을 찾지 못한 역사적 난제 같은 것을 다 참고해보고 고민하고는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창작자와 유저 간의 교류 포인트라고 보고 있습니다. 좋은 작품은 그 안에서 답을 주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질문을 던져서 유저와 창작자 그리고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답안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문제를 접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발현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천 명의 독자는 천 가지의 생각을 갖기 마련입니다. 창작자로서 저희는 게임에서 유저와 함께 나눌 그런 질문을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렇게 해서 피드백을 받으면, 이를 시점으로 해서 고민이 생기고 이 고민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차기 스토리에 반영하기도 하죠. 또 그러면 그 스토리로 새로운 문제나 견해가 유발되고, 혹은 그게 차기작으로 이어지는 등 얽히고 설키면서 이야기가 이어질 것입니다.


Q. 정서적 가치와 감정, 서사의 중요도뿐만 아니라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소녀전선에서 감정 연출이 우중 PD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나요?

= 창작자가 성장하는 것처럼, 캐릭터는 창작된 이후에 혼자 스스로 성장하게 됩니다. 어떤 캐릭터는 6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캐릭터는 자신만의 생명력을 갖춘 존재니까요. 유저의 사랑 그리고 그밖에 여러 가지가 영향을 끼치기도 하고요. 어찌 보면 모두가 함께 키워나가는 존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초창기에 캐릭터를 구상할 때를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유저의 생각이 반영된 것도 아니었죠. 그러다가 유저의 생각한 캐릭터의 이미지, 사람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반영하게 되었죠. 그것을 잘 활용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래서 저희는 쭉 변화해왔습니다.


Q. 캐릭터를 만들다보면 가끔씩 자신이 이해하던 캐릭터와 편차가 생기고는 합니다. 그런데 한 캐릭터를 여러 작품에 등장시키게 되면 그 캐릭터의 개성, 중심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여러 작품에 캐릭터를 등장시키기 전에 그 핵심 성격을 정해두고 유지하면서 각 세계관에 캐릭터를 녹여내는 게 중요하죠. 물론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또 그 코어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모든 작품에서 유저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도 아니니까요. 캐릭터가 스토리에 녹아들게 하고, 캐릭터와 유저 사이의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결국은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캐릭터의 코어가 너무 변하지 않게, 어떤 룰을 미리 정해둘 필요가 있겠죠. 그래야 너무 갑작스런 변화가 유발되지 않고, 유저들이 그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