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점차 다양한 장르가 섞인 이른바 퓨전 게임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시도는 익숙함 속에서 의외의 신선함을 찾아내고 전에 없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줬지만 되려 어중간하게 만들 경우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잡탕이 되기도 한다.

앰필튜드 스튜디오에서 출시한 엔드리스 던전은 타워 디펜스에 탑다운 슈팅과 로그라이트라는 세 가지 장르를 섞어 만들어 낸 퓨전 오브 퓨전 게임이다. 수많은 게임 장르 중에서도 정적인 타워 디펜스와 정반대로 바쁘게 총 쏘면서 컨트롤해야 하는 탑다운 슈팅의 만남을 개발사는 어떻게 풀어가고자 했을까.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상반되는 두 장르 간의 밸런스 하나는 기막히게 잡아냈다는 것이다.

게임명: 엔드리스 던전
장르명: 로그라이트, 탑다운 슈팅, 타워 디펜스
출시일: 2023.10.19
리뷰판: 1.1
개발사: 앰필튜드 스튜디오
서비스: 세가
플랫폼: PC, PS, Xbox, NSW
플레이: PC


액티비티로 가득한 디펜스 게임

앞서 언급했듯 엔드리스 던전은 타워 디펜스와 탑다운 슈팅 그리고 로그라이트라는 세 가지 장르가 섞여 있는 게임이다. 타워 디펜스 장르의 긴 역사만큼 이 게임 이전에도 퓨전 장르를 선보인 게임은 여럿 있었다. FPS를 접목한 '오크 머스트 다이'와 탑다운 슈팅을 더한 '엑스모프: 디펜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여러 장르를 섞을 땐 수용할 건 수용하고 뺄 건 과감하게 빼면서 장르의 특색이 퇴색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앰필튜드 스튜디오는 이 부분에 있어 장르의 특징을 뒤죽박죽 섞는 게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해 주는 방식으로 설계해 익숙하면서 새로운 재미를 추구했다. 장르마다 아쉽게 느껴질 수 있는 단점을 타 장르의 장점으로 채운 셈이다.

예를 들어 타워 디펜스 장르는 플레이어가 전투에 직접 가담하지 않으니 다소 정적일 수밖에 없고 플레이 방식이 단순해 반복 플레이 과정에서 지루해지기 쉽다. 탑다운 슈팅은 1인칭, 3인칭과 달리 전장을 넓게 볼 수 있으니 시원하게 슈팅하면서 적을 소탕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그만큼 게임이 쉽고 전략적 깊이가 얇은 편이다.


엔드리스 던전은 타워 디펜스지만 탑다운 슈팅 방식의 전투를 통해 직접 전투에 가담할 수 있다. 덕분에 적들이 몰려오는 웨이브 상황에서도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총을 쏘면서 이곳저곳을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단순한 던전 탐색도 본진을 지켜야 한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하며, 방어를 위해 타워 설치를 고민하는 전략적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세세하게 살펴보면 엔드리스 던전의 목표는 '크리스탈봇'을 지켜내면서 동시에 우주선을 탐사하는 것이다. 단순히 거점을 막기만 해선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즉, 디펜스 장르와 로그라이트의 던전 크롤러 두 가지 방식이 결합된 목적을 갖는다.

거점 수비와 탐사를 동시에 충족하기 위해 엔드리스 던전은 기존 디펜스 게임과 차별화된 시스템을 갖췄다. 대표적으로 자원의 습득과 웨이브의 변화다. 가령, 일반적인 타워 디펜스는 몰려드는 몬스터를 처치했을 때 자원을 얻는다. 그 때문에 웨이브마다 획득할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활용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반면, 엔드리스 던전은 몬스터가 리젠되는 위치가 탐사할수록 많아지고 탐사를 위해 문을 열거나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일정 확률로 웨이브가 발생한다. 판마다 웨이브가 고정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플레이어의 진행 속도에 따라서 웨이브의 횟수가 달라지는 셈이다.

만약, 기존 방식대로 자원을 획득한다면 시간을 소모해 이득을 취하는 스톨링이 가능해지고 이는 게임의 난이도를 낮추는 주범이 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고자 엔드리스 던전은 탐사를 위해 문을 열 때마다 정해진 자원을 획득하도록 만들었고 추가적인 자원을 제공해 주는 장치를 맵 곳곳에 둬 탐사할수록 위험도가 높아지지만 그만큼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크리스탈봇의 체력이 낮아 빠른 진행을 원한다면 최대한 안전한 방향으로 탐사를 진행해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 만약 여유가 충분하다면 후반을 위해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적극적으로 탐사를 진행하는 등 전략적인 플레이를 할 수가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 플레이어에게 다가오는 불합리한 요소는 없었으며, 잘 짜인 액티비티 코스를 따라다니는 듯한 즐거움만 안겨줬다.



조화로운 디펜스와 슈팅 대비 아쉬운 로그라이트 경험

엔드리스 던전에서 타워 디펜스와 탑다운 슈팅의 특징을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심어둔 장치는 다양하다. 사실 이러한 과정을 살펴볼 때 놀라웠던 점은 상반되는 두 장르가 섞였는데도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타워 디펜스로서 타워의 성능과 효과가 뛰어났다면 어땠을까. 플레이어는 굳이 총을 쏠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그저 반복적으로 문을 열고 타워를 설치하는 행위만 반복했을 것이다. 총의 성능이 압도적으로 좋고 타워의 성능이 낮다면 반대로 총만 쓰고 타워가 버려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이런 상황 자체를 막기 위해서 타워는 만능이 아니었고 총 역시 압도적인 숫자로 몰려드는 물량을 잡아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물론 후반으로 갈수록 타워의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맞다. 자원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타워를 설치할 수 있고 적절한 타워 효과를 조합한다면 총 한 번 쏘지 않고 막아내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렇게 안정적인 상황 자체가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는데 일단 모든 스테이지에서 자원을 공유하므로 A에서 과한 자원을 투자했을 때 B에서 자원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 그리고 크리스탈봇은 탐사 과정에서 몇 번이고 위치를 옮겨야 하므로 튼튼하게 구축한 방어선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유저가 총을 쏴야 하는 상황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타워 설치와 슈팅 사이의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자동 타겟팅 및 무한 탄창 시스템을 더해 편의성도 챙겨뒀다. 정리하자면 어떤 상황이든 타워와 총을 적절하게 섞으면서 쉼 없이 움직여야 스테이지를 깰 수 있을 정도로 이상적인 레벨 디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모든 게 완벽한 것은 아니다. 엔드리스 던전에서 아쉬웠던 점이라면 로그라이트 경험을 꼽을 수 있다. 이 게임은 스토리를 따라 한 번의 플레이로 모든 경험을 얻기 어렵다. 탐사와 죽음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강해지고 익숙해지면서 더 높은 고지를 향해 가는 로그라이트 시스템을 근간으로 삼았다.


아쉬운 점은 로그라이트로서 반복 플레이 과정에서 겪게 되는 랜덤 변수가 적고 성장의 고점이 낮다는 데 있다. 게임 내에는 고유의 스킬과 필살기, 패시브를 갖춘 8종의 캐릭터와 속성별 권총, 중화기가 존재하며, 특성과 무기 강화 등의 해금 및 성장 요소가 준비되어 있다.

반복 플레이 과정에서 특정 목표를 달성하면 캐릭터와 여러 능력이 해금되고 클리어 자원을 모아서 강화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게임을 몇 판만 해도 웬만한 총은 거의 다 강화할 수 있고 캐릭터 및 능력 해금도 조금만 신경 쓰면 금방 해낼 수 있다.

층마다 다양한 맵이 존재하지만 결국 등장하는 몬스터는 대체로 비슷하며, 층이 높아질수록 엘리트 몬스터의 비중이 높아지는 방식일 뿐이라 색다른 적을 상대하는 느낌이 덜하다. 맵 구조도 비슷하고 랜덤 요소로 나오는 기습 이벤트와 토큰들 역시 그리 많지 않아 몇 번 해보면 익숙해진다.


보스 몬스터 3종도 처음 상대할 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줬지만 로그라이트 특성상 반복 플레이가 선행되므로 3번째 만남부턴 그냥 체력 좀 많고 귀찮은 몬스터1로 전락해 버리기 쉽다.

게임의 엔딩을 보기까지의 분량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이는 로그라이트의 장르적 특징에 의해 늘어졌을 뿐 실제 플레이 과정에서 느껴지는 분량은 다소 아쉬운 게 사실이다. 적어도 플레이에 변화를 주는 요소들이 후반으로 갈수록 조금씩 해금되는 방식이거나 혹은 매 판마다 플레이 전략을 바꿀 수 있게 해주는 전략적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리하자면 엔드리스 던전은 타워 디펜스와 탑다운 슈팅의 재미를 모두 충족하는 잘 만든 게임이다. 게임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참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며, 만약 지인들과 3인 멀티 플레이로 게임을 즐긴다면 혼자 했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들과 재밌게 즐길 게임을 찾거나 혹은 약간의 전략성을 겸비한 슈팅 게임을 찾는다면 엔드리스 던전을 한 번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