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가 지난 10월 '배틀 크러쉬'의 글로벌 CBT에 이어 11월 16일부터 19일까지 지스타 현장에서 '배틀 크러쉬'를 비롯한 3종의 신작을 현장에서 시연 기회를 마련한다. 그리고 현장 시연에 앞서 미디어를 초청, 시연 빌드를 미리 플레이할 수 있는 미디어 시연회를 마련했다.

그간 실사풍, 혹은 압도적인 그래픽과 기술력을 전면으로 내세웠던 엔씨소프트였던 만큼 '배틀 크러쉬'는 다소 낯선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배틀 크러쉬' 시연은 여러 모로 의미가 있었다. 그간 말로만 나왔던 '엔씨소프트의 콘솔 게임'을 국내 유저에게 선보이는 자리인 만큼,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울러 지난 10월 글로벌 CBT에서도 결국 닌텐도 스위치 버전 테스트가 무산된 터라, 이번이 최초로 엔씨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닌텐도 스위치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 엔씨 마스코트뿐만 아니라 신화와 전설 속 영웅이 등장하는 '배틀 크러쉬', 시연은 팀 배틀로얄로 진행됐다

한편, '배틀 크러쉬'는 이미 지난 2월 최초 공개 당시 유저들에게 친숙한 '난투'와 '배틀로얄'이라는 키워드에 맞춘 게임플레이를 티저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다. 물론 티저 영상인 만큼 실제 게임플레이는 다소 다르겠지만, 이미 '난투+배틀로얄' 조합은 그간 여러 게임사에서 선보인 방식에 글로벌 지향의 캐주얼 그래픽 자체도 크게 내세울 만한 요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무게감은 다소 떨어지는 느낌도 있었다. 자기장 대신에 땅이 꺼지면서 전장이 좁아진다는 설정은 소소해도 큰 차이를 유발할 만한 요소긴 하지만, 배틀로얄의 기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실 '난투'라는 게임플레이 방식을 설명할 때 그 기원이 되는 작품 자체가 원체 가벼운 게임 아니던가. 물론 깊이 파고들면 상당히 다르지만, 어쨌거나 가드 시스템이고 필살기 게이지고 복잡한 시스템 없이 간단한 기술로 무슨 수를 써서든 상대를 두들겨서 날려버린다는 단순함이 핵심이다. 조작감도 명쾌하고, 상대를 때릴 때 프레임이니 이런 시시콜콜한 걸 따지면서 플레이하는 경우도 드물다. 이에 영향을 받아서 상대를 킬하거나 다운시키지 않고 링 밖으로 날려버리는 유형을 선택한 게임들은 대체로 가볍고 경쾌한 조작감을 채택하니, 그저 빠르게 투닥투닥 치고 받고 좁아지는 링에서 아둥바둥하는 그런 게임이 연상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본 '배틀 크러쉬'는 완전히 달랐다. 캐주얼한 그래픽과 달리, 캐릭터의 움직임이 전혀 가볍지가 않고 묵직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리니지의 캐릭터 이동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보다는 상당히 빠르기는 하지만, 캐주얼한 그래픽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에 비교하면 느려서 그런 괴리감이 잠시 느껴졌다. 더군다나 점프가 없으니 더더욱 갑갑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그래서 처음에는 왜 '난투'를 붙였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나마 낭떠러지에서는 회피기가 점프로 변경되고, 스태미나가 바닥나기 전까지 연속으로 점프를 활용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등 '난투'에서 보이는 요소들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그 요소와 그로기 상태인 적을 날려버린다는 것 외에 플레이 감각 자체가 다소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배틀 크러쉬'가 아예 근본 없고 느리기만 한 게임이라는 소리는 아니었다. 묵직한 조작감을 선택한 만큼, 스태미나를 기반으로 해서 하나하나 동작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하는 액션 체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배틀 크러쉬'에서는 공격과 회피 모두 스태미나를 소모하고 스태미나가 소모되면 그 두 가지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마구잡이로 날뛰기보다는 적의 스태미나 상황 그리고 전체적인 전황을 살펴보면서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마치 포아너 같은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멋도 모르고 공격하다가 정작 중요할 때 스태미나 부족으로 못 피해서 끔살당하는 것처럼, 배틀 크러쉬도 소위 '막공격'을 하다보면 스태미나 부족으로 기어다니다가 집단으로 두들겨맞고 링아웃되기 십상이었다. 특히 배틀 크러쉬는 공격과 회피에 소모하는 스태미나량도 많아서 여러 차례 공격을 날리기도 어렵고, 피격 시에 경직도 길어서 자칫 한 번 실수하면 그냥 두드려맞다가 ABC를 당해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았다.

▲ 시작 지점을 선정한 뒤

▲ 아이템 파밍하고

▲ 부시에 숨어서 적을 기습하는 배틀로얄 특유의 신중한 플레이에 더 집중했다

심지어 파밍도 빠르게 슥슥 아이템만 훑고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상자의 잠금장치를 풀고 아이템을 가져가는 방식이라 긴장감은 배가 됐다. 특히 저등급 아이템이라도 장비했을 때 효과가 바로 체감될 정도인데, 그에 비해 아이템 상자는 타 배틀로얄 대비 밀도가 낮아서 상자를 두고서 눈치 싸움이 상당히 치열했다. 각 섣불리 상자에 손을 대자니 선공을 뺏겨서 불리하고, 그렇다고 손 놓고 보자니 점점 안전 구간이 좁아지면서 파밍할 시간은 더더욱 없어지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었다. 상자 수도 부족해서 무기, 투구, 갑옷, 장갑, 신발을 파밍만으로 얻기 어려웠고, 자연히 적을 기습해서 한 파츠씩 뺏는 그런 운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것도 이런 신경전과 눈치 싸움이 벌어지는 이유였다.

특히 이동 속도나 공격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타 배틀로얄에 비해 빠르게 안전 구역이 좁아지는 터라 게임을 플레이하면 할수록 처음 조작했을 때의 갑갑한 느낌은 사라졌다. 그것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이 지반이 빠르게 가라앉는 터라 동선과 전략을 빠르게 생각해서 움직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기본 이속이 그리 빠르지 않으니, 빠르게 안전구역으로 도망쳐서 미리 자리잡을지 혹은 중간에 있는 적을 때려눕히고 물약과 아이템을 챙길지 전략을 짜고 움직여야만 전략적으로 우위를 잡을 수 있었다. 점프도 제한적으로만 사용 가능하고, 중간중간에 장애물은 회피로 못 넘어가는 등 이동에서 여러 모로 제약이 많기 때문에 먼저 지형을 파악하고 동선을 짜는 것이 굉장히 유리했다.

▲ 조금만 신경을 끄고 있어도 지형이 금방 좁아져서 탈락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움직이자

캐릭터 스킬도 이동기보다는 공속 강화나 슈퍼 아머 혹은 투사체 발사 등 이동기보다는 특수 효과나 특수 공격에 많이 편성되어있고, 궁극기는 변수를 만들 만한 강력하지만 게임 내에서 아무리 쥐어짜내도 최대 3번 정도 쓸 정도이기 때문에 함부로 쓰기는 애매했다. 그래서 각 캐릭터마다 개성과 조합을 파악하기에는 이번 시연은 상당히 제한되어있었다. 그렇지만 캐릭터 스킬이 아닌, 리니지처럼 다양한 주문 스크롤을 추가로 확보하고 적재적소에 활용해서 또다른 변수를 창출하는 요소는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주문 스크롤은 순간이동뿐만 아니라 장애물을 뛰어넘는 도약 등 이동기가 많은 터라 마지막 최후의 결전에서 의외의 변수를 만들어낼 여지도 많았다.

빠르게 변하는 필드 특성상 전체적인 정보를 신경 쓰기 어려웠는데, 이를 의식한 듯 전설 등급 이상의 장비를 획득한 유저의 정보는 아나운서의 안내로 공유가 됐다. 또한 최종 단계 직전부터 신화 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자가 생성된다는 안내가 나오기 때문에 맵을 보지 못해도 화면에 뜨는 채팅과 아나운서의 음성만으로 중요한 정보는 체크할 수 있게끔 했다.


▲ 캐릭터마다 보유한 궁극기와 특수기로 전황을 바꿀 수도 있지만, 궁극기는 자주 사용할 수 없으니 주의

이렇듯 '배틀 크러쉬'는 단순하고 캐주얼한 감성에 여러 액션과 체계를 더하면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게임을 선보였다. 캐릭터 디자인이나 밸런스에 대해서는 최근 테스트와 시연 빌드를 만든 만큼 여러 모로 조율이 필요하겠지만, 그런 점을 차치해두고 봤을 때 이번 엔씨소프트의 시연작 중 가장 전체적인 짜임새가 좋았다. 장르의 문법에도 충실한 플레이에, 전혀 예상치 못한 요소들을 가미하면서 그 특유의 개성을 빚어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 접했을 때는 캐주얼한 외형과는 완전히 다른 플레이스타일에 다소 괴리감을 느끼겠지만, 몇 번 하다보면 왜 그렇게 기획했나 의도가 바로 보일 정도로 짜임새가 확실했다. 이속이 느려서 게임 자체가 느리게 느껴지지만, 게임 페이즈 자체는 상당히 빠르고 그에 맞춰 바쁘게 아이템을 파밍하고 전투하다보면 어느새 캐릭터가 좀 빨라져있고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리듬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의 가볍게 즐기는 캐주얼 배틀로얄과 완전 방향성이 다른 만큼, 이를 기대했던 유저들에겐 갭이 너무 커서 단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 캐주얼하게 한 판 한 판 빠르게 돌리고 그냥 부담 없이 전장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 전투 한 번 한 번이 아무 생각 없이 훅훅 휘두르고 스킬 날리고 쏘면서 적을 날려버리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앞서 포아너를 예로 든 것처럼, 신중함에 신중함을 기해서 공방을 겨루는 하드코어한 액션 게임의 DNA에 MOBA의 조작법, 캐주얼한 그래픽에 맞춰 게임을 심플하게 다듬은 결과물이 '배틀 크러쉬'가 아닌가 싶었다. 이런 긴 설명보다는 난투+배틀로얄을 앞세우는 게 더 간단한 만큼 홍보에서는 그런 문구가 주로 나오는 것일 테지만, 그 문구만 단순히 슥 훑어보고 예상 그대로네 하고 실망하기엔 이른 것이 '배틀 크러쉬'의 묘미였다. 가벼워보이는 그래픽과 단순한 시스템, 다소 느린 듯한 이속과 제한된 스태미나 그리고 빠른 경기 템포라는 굉장히 모순되는 요소들을 잘 끼워맞춰서 자신만의 템포를 만든 하이브리드 액션의 재미가 두어 판만에 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배틀 크러쉬가 자신만의 방향성을 조금 더 어필하려면, 이번 지스타뿐만 아니라 국내와 글로벌에서 유저 피드백을 받고 진입장벽의 높낮이를 조율하면서 완성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 팀 배틀로얄 외에도 다양한 모드를 준비 중인 '배틀 크러쉬', 과연 어떻게 그 특유의 재미를 완성해나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