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커피 타는 법도 팩스를 보내는 법도 아닌 메모하는 습관이었다. 신입부터 밖으로 다니는 환경이었기에 물리적으로 놓치는 것들이 많았고, 무엇보다 연달아 미팅이나 회의가 잡힐 경우 핵심 내용만 머릿속을 둥둥 떠다닐 뿐 앞뒤 사정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이렇게 정리를 했으면 공부 꽤나 했을 텐데. 가끔 정리를 위한 정리를 위한 정리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변해가는 세상 속에 꽤나 고리타분한, 젊은 사람(?)치곤 나름 경쟁력 있는 패시브라 자부하고 있었다.

이것도 혼자 일할 때나 가능하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예전 직장이야 체계도 없는 소규모 회사였다 보니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만 잘하면 되는 환경에 있었으나, 개인 창업과 재취업을 거쳐 근속연수가 쌓이면서 나 혼자 해나갈 수 없는 일이 많아지더라. 제아무리 번뜩이는 아이디어라 한들, 내 식대로 정리된 메모장은 몇 년이 지난 나도 알아보기 힘든데 그 누가 알아볼 수 있을까.

정리를 위해 메모를 했는데 그 메모를 보고 다시 누군가에게 공유하기 위해서 정리를 한다니,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독백하는 미생의 장그래가 스친다. 물론 내 노트를 보며 "당신 실패하지 않았어"라며 간결하지만 달달하게 조언해 주는 김대리 대신에, 그거 미련한 고집이다, 시대에 맞게 효율적으로 살아야 된다는 직장 상사의 훈화말씀 비슷하게 긴 얘기가 이어졌지만 이것도 감지덕지다. 픽션과 현실의 차이인 것도 있고, 나도 T라서 부드러운 권유보단 이 편이 확실하고 편하다.

이상하게 볼 수 있겠으나, 나는 메모에 미쳐있을 시절에도 '도구'에 집착이 심했다. 지금은 정도가 덜 하지만 한창일 땐 휴대와 카트리지 교체가 쉬운 만년필, 값비싼 메모장 그것도 이상한 강박이 있어 잘 팔지도 않는 흰색을 고집하곤 했다. 필요 이상으로 덕지덕지 붙여놓는 포스트잇 플래그는 덤. 이 연결고리가 가늘게 이어져서 키보드를 비롯한 각종 사무용 기기, 더 나아가 하드웨어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 아닐까.

자, 이렇게 얘기하면 몇 십만 원 대의 태블릿을 산 내가 가정의 평화를 챙길 수 있을까? 집에 AAA급 게임을 찍먹할 수준은 되는 사양의 PC도 있고 미팅 및 취재를 위해 1.4kg대의 사무용 노트북도 갖고 있으며 어느 날 모바일 게임에 제대로 꽂혀 샀던 아이패드까지 갖추고 있는데 말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사실 공적인 자리에서 보기가 좀 별로라 그렇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메모가 되고 더 나아가 음성을 인식하는 메모 애플리케이션까지 지원되는 세상인데, 사무용 태블릿까지는 좀 과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럼 "쟤는 장인이 아니라서 템빨이라도 좀 받아야 된다"라는 귀여운 애교로 봐주시면 어떨까. 내가 태블릿을 보며 체크했던, 고려해야 할 것들에 대해 나열해 봤다.

▲ 태블릿을 사기 전, 꿈꾸는 이미지는 이런 건데.. 내가 쓰면 사뭇 느낌이 좀 다르긴 한 게 아쉽기도 하다.




운영체제
PC 기반의 윈도우 vs 모바일 기반의 안드로이드

▲ 안드로이드 태블릿 vs 윈도우 태블릿. 당신의 선택은?

가장 먼저 소개하게 되는 파트가 용도나 가격이 아닌, 운영체제라는 부분에 있어 의아할 수 있겠다. 하지만 디자인과 성능, 가격까지 모든 것을 절충한 뒤 구매 버튼만이 남았는데, 의외로 운영체제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꽤 있어서 먼저 언급하게 되었다.

휴대가 간편한 PC로 쓸 건지, 혹은 화면이 큰 스마트폰으로 쓸 건지는 사용자의 취향이기에 무언가를 강요할 수 없지만 구매 전엔 어떻게 사용할 건가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 보는 것이 좋겠다. 이 경우엔 후술할 '사용 목적'과도 이어질 수 있겠는데, 나 같은 경우엔 노트북보다 휴대가 간편한 PC라는 목적으로 콘셉트를 명확하게 잡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머리론 메모의 한계를 깨닫고 업무 도구를 활용하여 일을 해야 한다는 것,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미팅이나 회의 때마다 노트북을 끼고 다니는 게 생각보다 정말 번거롭더라. 효율적인 일을 위한 변화인데 몸은 효율적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조삼모사의 느낌이 드니 자기발전이 되고 있는 건가 싶기도 했고.

나 같은 경우엔 사무용 업무 도구가 대부분 브라우저에서 가볍게 사용하는 것들이기에 윈도우 기반의 제품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윈도우와 안드로이드, 애플 중에 내게 가장 익숙한 운영체제가 윈도우인 것도 있고. 물론 정 반대의 시각으로 접근할 수도 있겠다. 예를 들어 아이폰을 쓰는 누군가는 "PC는 윈도우, 스마트폰은 애플, 태블릿은 안드로이드로 삼위일체를 구현하겠다"라며 안드로이드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 결국 모두 취향 문제다.

다만 나와 같은 생각으로 윈도우 기반의 태블릿을 선호한다면, 안드로이드 기반 제품 대비 떨어지는 성능 및 호환성, 특정 브랜드의 해당 시장 지배력, 무엇보다 2-in-1 기능을 지원하는 초경량 노트북의 등장 등으로 선택지가 넓지 않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란다.



사용 목적
본 목적 말고, 좀 더 세부적으로

▲ 같은 업체의 비슷한 외형의 태블릿이지만 크기에 따라 목적이 명확히 다르다.
(좌: 11인치 - 레노버 탭 P11 2세대 / 우: 7인치 - 레노버 탭 M7 3세대)

보통 태블릿 구매를 생각하는 이유가 대부분 비즈니스 용도이기 때문에, 이럴 땐 본 사용 목적보다는 그 외에 뭘 할지를 고려하는 것이 제품 선택에 많은 도움이 된다.

나 같은 경우엔, 정말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대내외 회의를 위해 태블릿을 구입했다. 꾸준히 즐기고 있는 모바일 게임이 있었다면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 아니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집에서 잘 쉬고 있는 아이패드를 꺼냈을 것이다. 내가 결국 아이패드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그 부분은 2편인 주변기기 파트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나야 사무실에 태블릿을 방치하고 다니지만, 혹시 출퇴근길에 유튜브나 OTT 서비스를 이용한다거나 여가 시간엔 캐주얼한 게임 정도는 할 계획이라면 그에 맞는 선택을 해야 될 것이다. 전자의 경우 디스플레이나 무선 인터넷 환경 그러니까 셀룰러 기능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후자의 경우엔 앞서 언급한 운영체제뿐만 아니라 태블릿의 물리적인 사양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다만 가벼운 캐주얼 게임이 아닌, 어느 정도 사양이 필요한 게임까지 생각하는 경우엔 태블릿보다 앞서 언급한 2-in-1 노트북을 고려하는 편이 좋겠다. 사양 좋은 태블릿, 분명 존재하지만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성능적으로 만족하기 힘들뿐더러 선택지도 2-in-1 노트북 쪽이 훨씬 다양하기 때문에 무게와 부피만 타협할 수 있다면 이쪽이 좋겠다.

드로잉까지 고려한다면 인근 매장에서 직접 활용해 보시는 걸 추천한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인 것도 맞지만, 전체적인 후기나 주변에 물어봤을 때 물리적인 펜의 그립감부터 시작하여 필압과 필기감, 심지어 "뭔가 긁히는 느낌이 나서"라며 좋다는 사람도 싫다는 사람도 공존하는 등 개인차가 너무도 극명하기 때문이다.

▲ 예산도 빵빵하고 게임도 하고 싶다면 세기의 괴물과도 같은 '에이수스 ROG FLOW Z13' 같은 제품도 있다.

▲ '레노버 요가 페이퍼'는 진짜 드로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위한 제품이라는데, 한번 사용해보고 싶긴 하다.




그 외 고려해야 할 것들
가볍고 예쁘고 성능 좋은 것들 중 저렴한 제품은 없다

노트북이야 집에서 시즈 모드(?)로 쓰건 남 눈치 잘 안 보는 성격이라 외부에 어떻게 보여도 상관이 없다고 한들, 성능만을 본다거나 특정 브랜드에 대한 좋은 인식 등 구매로 직결되는 요소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태블릿의 경우, 사무실 혹은 회의실에서 멋지게 일하고 있는 지적인 나를 상상하며 구입하는 경우도 많다. 제아무리 유행에 관심 없는 공대 오빠라도, 취향이 아무리 이상하더라도 외부 시선에 대해 본능적으로 의식을 할 수밖에 없는, 그걸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잘 사지 않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가격도 포기할 수 없다. 누군가는 전천후 올인원 PC로서 큰마음 먹고 큰 예산을 들여 살 수 있겠으나, 전체적으로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부품 또한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기에 용도에 적합한, 쉬운 말로 '급나누기'가 잘 형성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가격에 덧대어 이 말을 하는 이유는, 태블릿은 원체 무거운 작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즉 무거운 작업은 PC나 노트북에 맡기고 태블릿은 그 역할에 맞는 사양으로 고려하는 것이 가격을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무게 또한 마찬가지. "사무실에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이 필요해"라는 기준을 잡고 제품들을 찾다 보면 어느덧 400만 원짜리 최신식 초경량 노트북의 판매 페이지를 열어놓은 나 자신에 애꿎은 지갑 탓만 할 수도 있다. 이 돈의 반으로 150만 원의 가성비 좋은 게이밍 PC 한 대와 50만 원 수준의 태블릿을 살까라는 계획에도 없는 소비 심리는 덤.

▲ 나이가 드니 알겠다. '이 제품을 살 수 있는 사람' 안에서도 무리해서 산 사람과 그냥 예뻐서 산 사람이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원래 휴대용 제품들이 대부분 그렇다. 기본적으로 가격과 성능, 휴대성을 세 꼭지로 두고 그 안에서 내 개인적인 취향까지 곁들여 밸런스 게임을 해야 하는 영역이기에 더욱 힘들다. 몇몇 콘텐츠에서도 부정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여러 커뮤니티의 후기나 리뷰는 참고만 하는 것이 좋다. 철저히 신뢰했다가는 나와 맞지 않은 무언가에 의해서 후회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할인 소식을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작년과 재작년, 이렇게 말하니 너무 과거 얘기 같으니 2022년과 2023년만 해도 태블릿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던 사람들조차 줄 서서 구입했을 정도로 파격적인 특가가 서너 번 정도 있었다. 의외로 태블릿 시장은 특가가 자주 있는 편이니 급한 것이 아니라면 구정까지 좀 기다려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제아무리 제품이 저렴하게 나온다 한들, 첫째로 휴대용 기기 분야의 특성상 물리적으로 제품 내구성이 좋은 분야는 아니기에 신뢰할 수 있는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두 번째로는 내부 구성 부품이 너무 구식은 아닌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고 구입하는 것이 좋겠다.



마치며
아이패드는 1황이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태블릿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돈 되면 다 아이패드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정말 관심을 갖고 찾아본 결과, 내가 선택한 제품은 방 안에서 굴러다니는 120Hz 주사율의 아이패드 프로가 아닌, 해당 분야에서 평가가 썩 좋지 못한 태블릿이다. 심지어 생각했던 예산 이상으로 지출을 해버리는 바람에 아끼는 키보드 하나를 중고로 처분했다.

내가 해당 제품을 선택한 이유는 별거 없다. 비교적 최신식 프로세서를 지원하는 윈도우 기반의 태블릿이며 디자인이 무난하고 마그네틱 형식의 탈부착 키보드 겸 커버를 공식 사이트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힙스터 기질도 다분하여 내 주변에 이 제품을 쓰는 사람을 못 봐서라는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주력 게임이 모바일 환경이었다면, 드로잉 등의 창작 활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작년에 맥북한테 패배하지 않고 애플 생태계에 잘 적응했다면, 유튜브나 OTT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면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포함되었다면 내 선택은 달라질 수 있었다. 하지만 3주를 고민한 선택은 새로운 윈도우 태블릿이었고, 120Hz 주사율을 갖춘 내 아이패드는 여전히 와이프의 유튜브 머신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다음엔 사무용 주변기기에 대해 얘기해 볼 예정이다. 2편에서는 여기에 다 풀면 다음 기사에서 소재가 떨어질 것 같아 말을 아낀 "내가 아이패드를 집에 고이 모셔둔 이유"에 대해 본격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힌트를 주자면 아마 나처럼 어느 날 폭풍처럼 밀려오는 애플 생태계에 대한 욕망에 맥북을 구입했다가 눈물의 급처를 해본 경험이 있는, 애플 패잔병들의 따봉을 적극 받을 수 있는 얘기가 되지 않을까.

▲ 왜 멀쩡한 아이패드를 두고 새 제품을 샀을까? 2편에서 사무용 주변기기와 함께 얘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