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티' 엄성현은 2017 시즌에 데뷔했다. 데뷔 당시 정글 유망주로 이름을 떨쳤던 '엄티'지만, 여러 팀을 거치며 우승은커녕, 그 근처와도 인연이 없는 선수였다. 데뷔 초부터 경쟁하던 선수들이 하나, 둘 은퇴를 선언하는 사이에도 '엄티'는 LCK의 한 자리를 꿋꿋이 지킨 베테랑 선수다.

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소위 '엄티'를 저격하는 안티 팬들도 적지 않았다. 기량과는 별개로 단순히 오래됐다는 이유로 폄하를 당하기도 했고, 산전수전을 겪은 선수다. 그럼에도 '엄티'는 포기하지 않았다. 매년 메타가 바뀌고 새로운 선수들이 등장해도 '엄티'는 계속 배우려는 자세를 유지하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리고 2024년, 오랜 게이머 생활에 해외 진출이라는 큰 도전을 결심했고, LCS 팀 리퀴드로 이적해 첫 시즌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데뷔 8년 만에 첫 국제 무대 데뷔를 앞두고 있다.


Q. 반갑다. LCS 우승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

한국에 들어온 뒤 '연'과 함께 LCK 결승을 관람했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도 만나고, 솔랭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연'이 LCK 결승을 관람한 뒤 규모에 깜짝 놀랐다. 이번 LCS 결승은 규모가 크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직관 오는 팬들 중 여성 팬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놀라더라. 또 작년의 경우 훨씬 큰 무대였다고 말하면서 여름에 더 큰 무대에서 같이 해보자는 말을 했다.


Q. 한국에 머물며 전 브리온 동료들을 만난 것으로 안다. 다들 축하해주던가?

기본적으로 다들 축하해주는 분위기였다. 다만, '헤나' 선수는 펜타킬을 기록한 걸 질투 났다고 말하더라. 예전에 '헤나' 선수가 펜타킬이 필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후회하냐고 하니까 후회한다고 하더라(웃음).


Q. 북미행, 즉 LCS를 선택하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

개인적으로 배우고 싶어 하는 신예 선수들에게 지역을 떠나 팀을 바꿔보는 걸 추천한다. 달라진 환경 속에서 실력이 느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브리온에 있으면서 매번 빠른 재계약보다 다양한 방향을 고려하고 있었고, 이번에는 팀 리퀴드와 잘 맞아서 LCS로 가게 됐다.


Q. 팀 리퀴드로 새로운 도전, 기대감이 컸나? 아니면 낯선 곳에 대한 부담, 두려움이 더 컸나?

처음에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있었다. 그런데 막상 부딪혀보니 그런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한국에서 영어를 못하는 선수들이 막연하게 두려움을 가지는데, 한 달 정도만 지내보면 선수로서 팀게임을 하는 건 크게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다.

생활적으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건 생활 반경에 대한 것이었다. 편의점을 가려고 해도 차로 나가야 하고 집 근처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오히려 게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장점은 주변이 확 트여있고, 시야가 좋아서 눈이 덜 피로한 게 느껴졌다.


Q. 팀 리퀴드에는 북미에서 오래 활동하고 있는 '임팩트', '코어장전'이 있다. 적응에 많은 도움이 됐는지?

일단 '연'이나 'APA'의 경우 자꾸 뭘 사주려고 해서 금방 친해졌다. '코어장전'과 '임팩트' 선수는 생활하는 데 있어 실질적인 팁을 많이 알려줬고, 쉬는 날에 같이 해변도 가고, 쇼핑몰 구경도 하면서 지냈다. 두 선수 모두 팀 리퀴드에 오기 전까지 친분이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친해졌다.

'연'과도 많이 친해졌는데, C9과 정규 시즌 경기 전날 나한테 라면을 끓여달라고 하더라. 그러면 무조건 자기가 내일 경기에서 캐리해준다고 했다. 아쉽지만 당시 경기는 패배했는데, 나에게 캐리를 명분 삼아 라면을 부탁하는 일이 많아졌고, 이제는 '연' 전담 라면 요리사가 된 것 같다.


Q. 미국에서의 연습은 어떤지?

연습 환경 자체는 굉장히 좋다. 장비는 당연히 최상급이고, 일정 자체는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팀 리퀴드의 경우 전력 분석관이 따로 있는데 정말 사소한 것까지 챙겨 주니까 나는 다른 부분에 더 신경을 쏟을 수 있어 좋다.

솔랭은 확실히 한국보다 떨어진다. 일단 지망생 자체가 많지 않다. 즐기는 유저나 장인 유저가 많은 편이다. 팀의 승리보다 본인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고, 인상적인 장인 유저도 많다. 개인적으로 북미에 어떤 라인이든 파이크를 하는 파이크 장인이 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


Q. 정규 리그 성적은 7승 7패로 4위를 거뒀다. 만족스러웠던 성적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당시 상황이 궁금하다.

한국에서는 우리에 대한 평가가 높은데, 북미에서는 시즌 전 예상 평가가 5위였다.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정규 시즌 초, 중반에는 확실히 뭔가 어긋나는 게 있었는데, 경기를 거듭할수록 미드-정글 합이 맞아갔고, '임팩트' 선수도 안정감이 더 올라가며 팀이 좋아졌다.

그리고 정규 시즌 성적이 좋진 않지만 쇼피파이와 할 때 힘들었다. 등수와 별개로 짜임새 있게 잘하는 팀이다. 임모탈스도 최하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꽤 괜찮은 팀이라 생각된다. 내 생각인데, 단판이라 변수가 많아 모든 팀이 상대하기 어려웠다.


Q. PO 1라운드에서 플라이 퀘스트에게 2:3으로 패배했지만, 이후 연승을 달리며 결승, 그리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뒤늦게 시동이 걸린 것인가?

플라이 퀘스트에게 졌을 때, 화가 나기보다는 피드백을 통해 보완하는 데 집중했다. 내부에서는 패자조로 가서 더 많이 배운 덕에 우승했다고 말한다. 만약 승자조를 갔다면 경기 수도 적고 어려웠을 것 같다. 우리의 경우 정규 시즌(14경기)보다 PO에서 더 많은 게임을 했다. 나는 스크림에서 10%를 배우고 대회에서 90%를 배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전제는 진짜 체력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Q.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다. 그리고 마침내 트로피를 들어 올렸는데, 당시 헹가래를 받으며 펑펑 울더라. 어떤 감정이 들던가?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넥서스를 파괴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APA'가 나를 보고 일어나서 품에 안기더라고 하더라. 그래서 뛰어들었다. 처음 데뷔했을 때와 브리온을 갔을 때 기억이 많이 났다. 참았던 뭔가가 터진 기분이었다. 처음 데뷔했을 때 의기양양 했다가 쫄딱 망했고, 브리온에 들어갈 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열심히 하는 기분이었다.

진부한 말일 수도 있는데, 나는 '스스로를 믿자'는 마인드가 강하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남의 평가는 신경 쓰지 않고 경력이 오래됐어도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KT 이후로 커뮤니티도 보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작년에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프로 생활에 있어 정말 열심히 했던 한 해다. 그렇게 하니까 성적이 좋지 않은 건 아쉽지만, 후회는 없더라.


Q. 몇 년 동안 LCS에 대한 평가는 점점 하향세다. 이번 시즌 LCS에서 뛰어본 소감은?

팀적으로 완성되는 팀이 많지 않은 느낌이다. 요즘에는 실제로 육성보다는 에이스를 영입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지 않나. 팬들이 보기에도 하나의 팀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진 않은 것 같다. 팀 리퀴드의 경우 팀만 북미지, 한국과 같은 시스템이다. 서로 계속 부딪히면서 경기도 같이 보고, 생활부터 경기까지 모든 걸 같이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Q. 스프링을 치르면서 팀원들에 대해 느낀 점이 궁금하다.

'APA'는 이기적인 승리를 추구한다. 그래서 처음에 조율하기가 힘들었는데,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합을 맞추면서 느끼는 건 이런 선수가 정말 보석이 될 수 있는 선수라고 느낀다.

'연'은 애초에 재능이 있는 선수고, 토론 같은 걸 즐긴다. 열정적이고 게임에 진심인 선수다. '임팩트' 선수는 말하길 롤은 다른 게 아니라 맞고, 틀리고만 존재한다고 한다. 게임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다. 나는 게임을 보는 시각의 차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임팩트' 선수는 오답과 정답이 있는 것 같다.

''마타' 형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확실히 우승을 많이 해본 선수들은 자신만의 확고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Q. MSI는 처음이다. 기대가 많이 될 것 같은데?

냉정하게 LCK나 LPL에 비해 전력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번 MSI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강한 팀들과 붙어봐서 우리가 생각했던 게 맞는지 시험하는 무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바텀과 탑이 강한데, 어떤 구도든 좋은 라인전이 되니까 이게 맞는 구도인지 체크할 좋은 기회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슬퍼하고, 아쉬워했던 팬들이 많으셨을 텐데, 나를 통해 용기를 얻는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