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픈 앞둔 스타2 흥행 적신호 ▲ 스타2의 운명 바람 앞 촛불 ▲ 스타2 클베 반응, 썰렁 그 자체 ▲ 스타2, 스타1에 발목 잡히다 ▲ 스타2 이름값 못하고 흥행 저물어 ▲ 스타2 고전, 블리자드 고민 ▲ 스타2, 첫 주말 10위 안에도 못 들어 ...


스타크래프트2의 오픈베타를 전후로 어떤 게임 전문 매체에 스타크래프트2 관련 기사들로 이런 내용들이 줄줄이 올라왔다면 어떨까요.


제목만 봐서는 스타크래프트2가 망해도 보통 망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오픈도 하기 전에 흥행에 빨간불이 켜졌던 스타2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흥행은 물 건너가, 블리자드가 고민에 빠질 지경입니다. 첫 주말 게임순위에선 10위권 안에도 들지 못했다는 수치까지 언급됩니다.


위에 기사 제목들은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지만, 실제로 몇 몇 게임 전문 매체에는 스타크래프트2의 오픈베타를 전후로 이런 류의 기사들을 쏟아낸 것이 사실입니다. 아마 관심 있게 지켜본 분들은 위와 비슷한 제목들의 기사를 여러 차례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스타크래프트2가 전작만큼 폭풍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주 인벤 게임순위에서는 리니지를 제치고 6위에 오르는 등 꾸준한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고, 전 세계 판매실적이 이틀 만에 150만 장을 넘으며 손익분기점을 가뿐히 넘어서는 등 '별 거 아닌'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스타2'가 흥행을 했느냐 안했느냐를 따지려는 건 아닙니다. 어떤 현상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정말 다양한 방법이 있을 테니까요. 특히 언론 매체는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떤 주의를 가지게 되며 그 주의가 현상을 해석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그래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기대 이하'일수도 있을 겁니다. 또는 '기대 이하'가 되길 바라는 걸 수도 있겠죠.



▲ 이번 주 인벤 순위 6위에 오른 스타크래프트2. 스타2가 망한 게임이면 그 아래 순위 게임들은?



요즘은 신문, TV를 포함한 언론들이 뉴스를 다루는 기법이 잘 알려진 시대입니다. 기본 원칙은 이렇습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소식은 가장 먼저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가장 많이 노출하기. 이는 거꾸로 말하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가장 오래 노출되는 뉴스가 중요하게 여겨진다는 뜻도 됩니다. 이런 점은 지난 독재정권 시대에는 '여론 조작 기법'으로 악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사건이라도 1면에 5단 가득 실으면 아주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요. 반대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도 하단에 작게 처리해버리면 그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지기 마련이죠.


다행히 정권에 의해 강제적으로 보도지침이 뿌려지고, 언론사는 편집권을 잃은 채 눈물을 머금으며 독재정권이 시키는 대로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해야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 호도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뭔가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생길 때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살펴보면 말입니다. 어떤 사건을 집중적으로 연달아 보도하는 와중에 중요한 법안이 통과된다던지,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언급되지 않거나 살짝 맛만 본다거나 하는 일들은 지금도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을 다루더라도 왜곡된 시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죠. 바꿔 말하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런 뉴스 기법이 여전히 효과를 보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 보도지침이라는 이름 아래 언론을 통제했던 과거의 정부.
현재는 사라진 관행이지만 여전히 정치적 언론은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스타크래프트2 관련 기사들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흥미로웠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기사만 보고 있으면 '아, 스타2는 망한 게임이구나'라고 생각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한 번 걸러내는 자정 작용이 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가면서 기사의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함께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블빠'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스타크래프트2를 마냥 찬양하는 것 또한 게이머들은 경계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스타크래프트2에 대해 과도하게 긍정적인 소식을 쏟아낸 한 언론에 대해서 관련 기사 목록을 공유하며 그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습니다.


무슨 '여론 호도 면역 스킬'이라도 장착한 것도 아니고, 기사가 전달하려는 뉘앙스를 그대로 받아들이긴 커녕 오히려 역공을 펼치는 어쩌면 당혹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스타크래프트2 캠페인에도 여론조작을 일삼는 정치언론 UNN이 등장한다.
그리고 주인공(=게이머)는 결국 UNN을 전복시킨다.



하나는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은 시대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말한 매체들의 기법이 잘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안티조선운동과 같은 미디어 바로보기가 일상화되기도 했으니까요. 매체들이 자충수를 두기도 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자극적인 제목과 보다 자극적인 내용을 사실 확인보다 우선시 했습니다. 찌라시 뉴스, 찌라시 기자라는 단어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요즘입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언론매체의 수가 상당히 늘어났다는 것도 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매체들이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기술했는지를 비교해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같은 인터뷰라도 '이 매체에서는 이렇게 정리했는데 저 매체에는 저렇게 정리했으므로 원래 발언의 의도는 이랬을 것이다'라는 식의 기사 분석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독자들은 그렇게 뉴스를 소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온라인 게이머들의 높은 인터넷 활용능력도 중요한 원인입니다. 애초에 온라인 게임이 인터넷을 통하지 않고는 즐길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게임을 좀 더 잘하기 위한 방법, 퀘스트 공략 등 온라인 게임과 관련된 커뮤니티와 정보를 누리고 찾기 위해서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한 두 매체의 어떤 주장만 덜컥 믿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이 사람이 가르쳐준 퀘스트 공략대로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한두 번 쌓이고 나면, 인터넷의 정보라는 것은 결국 본인 스스로가 다양한 정보의 소스를 섭렵하고 그를 스스로 해석해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셈입니다.


게다가 '게임 뉴스'에 대한 게이머들의 해석 능력은 뛰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워낙 다양한 신작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런 신작들은 대부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게임이든 바로 즐겨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즉, 게임에 대한 '뉴스'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사실 확인을 할 여건이 갖춰져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접자 폭주라는 뉴스가 나와도, 바로 게임에 접속해 사실은 사람이 없어서 방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는 게 한국 게임시장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게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게이머입니다. 비약이 심할지도 모르겠지만, 3년 동안 하나의 게임만을 바라보며 만들어 왔던 개발자보다, 3년 동안 300개의 게임을 수박 겉핥듯 스쳐 보낸 게임 기자보다, 3개의 게임을 심도 있게 플레이 한 게이머가 더 깊은 경험을 가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의도적인 게임 깎아내리기나 게임 띄워주기는 게임의 '존재'를 환기시켜주는 이상의 효과를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 깎아내리든 띄워주든, 재미있는 게임은 성공한다



이런 이유로 게임에 대한 왜곡된 정보는, 게임 뉴스를 소비하는 게이머들에 의해 너무도 간단히 분쇄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반복된 매체에 대한 신뢰도도 급격히 하락합니다.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게임이 재미있느냐 재미없느냐', '내 시간과 자원을 들여 즐길 만한가 아닌가'이며 게임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이머들은 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해져 있습니다. 다른 어느 매체 소비층보다 더 말이죠.


이렇게 기사가 나오면 이렇게 흔들리고, 저렇게 기사가 나오면 저렇게 흔들리는 갈대 같은 게이머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 바로 최근의 스타크래프트2를 둘러싼 언론의 태도와 그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이냐고요? 무슨 업계의 무슨 매체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게임 매체의 독자는 위대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가 게이머 출신이었던 것처럼, 게임을 게임으로 정확히 바라보고 그에 대해 진실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다짐했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