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잘'하다를 찾았다. 옳고, 바르고, 익숙하고, 충분하고. 긍정적인 뜻이 무려 14가지나 된다. 유저와 국회가 게임법 개정안에 확률 정보를 넣자고 할 때 업계는 말했다. 그동안 자율규제로 잘하고 있었는데 왜 법으로 규제하느냐고. 이제 돌아보니 잘하던 게 맞았다. 잘은 잘인데 국어사전에 그 많은 긍정의 뜻 중에 겹치는 게 없다.

그래, 알아서 정말 '잘'도 하고 있었구나.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 웹젠의 '뮤 아크엔젤', 위메이드 '나이트 크로우'. 잘하고 있다던 게임사의 확률 표기 정정 공지가 근래 연달아 쏟아졌다. 입장은 비슷하다. 전수 조사를 하며 발견한 실수와 오류란다.

실수와 오류는 공교롭게도 하나같이 이용자에게 불리하게 고지되어 있던 부분에서 나왔다. 높은 등급, 희귀한 아이템의 획득 확률이 실제 획득 확률보다 훨씬 높게 표기됐다. 많게는 8배까지 차이가 났다. '뮤 아크엔젤'에는 아예 특정 구매 횟수를 넘겨야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구간을 넓게 잡아 마치 1회 뽑기부터 확률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표기했다. 일종의 바닥이 존재함에도 알리지 않은 셈이다. 그게 게임사가 말하는 실수와 오류였다.

실수를 발견한 시기도 적절하다. 이번 게임법 개정안은 유권자 표밭을 청년층으로 확대하려는 정치권과 게임 이용자의 목소리가 맞물려 이루어졌다. 시행에 더없는 관심이 쏟아졌다. 이런 상황에 제재 1호 게임사에게 갈 비판은 분명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개정안은 1년의 유예기간을 가지고 시행됐다. 그럼에도 본회의 통과 이후 약 1년의 유예기간이 지나, 22일 시행 전후에 겨우 정정 공지가 나왔다. 제재로 더 커질 비판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는 시기를 골랐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실수도 있고, 오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수 조사가 시행령을 앞두고 부랴부랴 이루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게 그간 한국게임산업협회가 자신하던 자율규제의 민낯이었다.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 관련 입법 논의가 한창이던 2021년.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의견서를 통해 의무 공개에 반대 견해를 또렷이 했다. 그리고는 같은 해 5월 자율규제 강화를 알렸다. 규제 이전에 자발적으로 이용자 권익을 보호하겠다며 호소했다. 자율규제가 제구실을 잘하고 있다는 시위에 가까웠다.

여기에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는 매월 확률공개 미준수 게임물 리스트를 공개해왔다. '에이펙스 레전드', '도타2', '라이즈 오브 킹덤즈'처럼 해외 게임들만이 이름을 올렸다. 마치 보도자료를 들이밀며 한국 게임, 협회 회원사들은 확률을 잘 공개하고 있다는 말하는 듯이 말이다. 공정위로부터 시정명령과 과징금 부과 결정이 난 '메이플 스토리'의 넥슨, 웹젠과 위메이드는 협회 부회장사며 그라비티는 일반 회원사 중 하나로 자율규제 속에서 확률을 공개했다.

하지만 정보 공개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회원사의 확률 정정이 이어졌다. 협회는 그간 자율규제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게임사 표현을 빌려 '실수'는 잡지는 못했다. 개정안이 없었다면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실수든 오류든 그 잘못된 확률을 그대로 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실 게임사가 공개한 확률을 이용자가 직접 검증할 방법은 많지 않다. 외부에서 게임에 적용된 복잡한 계산식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재화를 모아 직접 사보는 방법이 그나마 현실적이다. 하지만 소수점 이하 몇 자리 단위의 아이템 확률을 계산하기 위한 막대한 투자 역시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이용자는 공개된 확률을 믿을 수밖에 없는 위치다. 적어도 게임사가 잘 준비했다며 자랑스럽게 흔드는 확률표 가장 아래 수십만 분의 1이 진짜라고 믿어야 돈을 낼 수 있다. 그래야 11만 원짜리 패키지를 질렀을 때 돌아오는 허무함을 내 운에 탓할 수 있다.

하지만 공개된 확률이 정확하다는 전제 없이는 그 최소한의 믿음은 사라진다. 오히려 일련의 확률 정정에 확률 정보 공개 의무화 효과만 증명됐다. 규제만큼이나 반드시 필요한 게임 산업 진흥의 목소리는 스스로 힘을 잃는다. 개정안에 아직은 허점이 많다는 신중론도 덧없는 외침이 된다.

알아서 '잘'한다던 자율규제에 게이머의 믿음이 게임을 떠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