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색약이 있는 게이머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된 적 있다. 빨간색과 녹색을 구분하기 어려운 유저였는데, 보스 몬스터의 패턴변화를 보스의 색 변화로 알아내야 하는 구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흔히 착각한다. 모니터 너머에서 나와 함께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똑같은 사람일거라고. 그 사람이 나와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게임을 하지는 않는다.


이 이야기가 화제가 된 것은 바로 그 부분을 환기시켜줬기 때문이다. 게임을 만드는 개발사도, 게임을 함께 하는 우리도 다른 사람이 게임을 할 때 어떤 점에서 불편할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장애학생e스포츠대회에서 기자는 또 한 번의 환기를 겪었다.



▲ 전국에서 1,700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 개막식을 시작으로 이틀 동안 진행된다



국립특수교육원이 2005년부터 매년 개최해 올 해로 6회째를 맞는 이 대회는 장애학생의 건전한 여가생활 개발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장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고 있는 행사.


이번 대회에는 위 스포츠 볼링, 오델로, 피파 온라인, 마구마구, 에어라이더, 사천성, 오목과 같은 게임들이 공식 종목으로 지정되었다. 매년 공식 종목이 조금씩 바뀌는데 선정 기준이 뭐냐고 물어보니 ‘인기도순’이라고 한다.


인기도 순이라니. 그럼 장애학생들이 게임을 그렇게 많이 한다는 말일까? 그래서 물었다. 장애학생들도 평소에 게임을 많이 하는지.


기자를 응대하던 행사 관계자는 순간 당황했다. 전혀 그런 질문을 예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똑같습니다.’



▲ 게임을 많이 하냐고? 게임하러 왔다.



잠깐 다른 이야기.


장애학생e스포츠대회의 홍보대사로는 이민석 씨가 위촉되었다. 그는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으로, 각고의 노력 끝에 키보드의 단축키와 유닛, 건물의 소리를 구분해 스타크래프트를 플레이할 수 있게 되면서 화제가 되었다. 앞을 보지 못하는데도 스타크래프트를 한다는 소문은 블리자드에까지 전해져, 테란의 황제 임요환 선수와 특별경기를 하기도 했다.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인 스토리에 열광하는 우리에게 이민석 씨의 사례는 ‘매우 특별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떻게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게임을 할 수 있을까. 그의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애정이 너무도 남달랐고, 그의 노력 또한 대단했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더라도 노력하면 해 낼 수 있다는.


하지만 이런 극복 스토리는 양날의 검처럼 일반 장애인 대중에 대한 망각을 무의식 속에 심어두는 부정적인 면 또한 가지고 있다. 게임을 하는 장애인은 특별할 거라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정도로 장애인이 게임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일 거라고. 그래서 게임을 하는 장애인들은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 전국 예선을 뚫고 올라온 선수들. 그 규모가 작지 않다.



행사 관계자가 잠시 침묵을 지켰던 것은 ‘당황’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YES’라고 대답해도 되었을 질문이었지만, 장애인은 게임을 할 때도 비장애인과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철없는 기자에게 어떤 단어로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똑같다’는 그의 대답에 기자는 ‘환기’되었다. 나는 왜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학생이 어떻게 위 스포츠 볼링을 칠 것인가. 앞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오델로 같은 보드 게임을 할 것인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게임을 할 것인가. '우리'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장애학생들은 정말 그의 말 그대로 ‘똑같았다’. 여느 학생들이 게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임에 몰두했고 결과에 즐거워했다. 주최측은 ‘휠체어에 의지해 스포츠의 경험과 느낌을 체험할 수 없는 지체장애학생들이 간접적이나마 스포츠를 체험할 수 있다’고 긍정적인 면을 강조했지만 그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가 바로 지금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 ‘우리’는 장애학생, 장애인도 포함되어 있는 그런 의미의 우리다.



ps. 대회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본다.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