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스타크래프트2 리그(이하 GSL)이 처음 등장할 당시, 사람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스타크래프트 1편이 아무리 국민 게임으로 불릴 정도의 위치에 있으나 발매된 지 어느새 13년, 월등하게 좋아진 그래픽이나 게임성에 대한 기대는 제쳐 놓더라도 'Blizzard'라는 이름이 가진 매력에 수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수년 같이 버텨온 사람들에게 새로운 e 스포츠의 미래가 될지도 모를 GSL은 가뭄에 내린 한줄기 빗줄기였다.


그리고 2010년 9월 기다리던 스타크래프트2의 리그가 처음 시작되었다. 결과는 흥행 참패.





초기 GSL 시청자들의 이탈률이 높은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경기를 단조롭게 끌고 나가는 요소들이다. 이는 경기가 펼쳐지는 맵의 문제일 수도 있고, 종족 간의 밸런스 문제로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결승전과 같이 중요한 무대에서 ‘치즈러쉬’로 불리는 초반의 강한 압박 플레이로, 기대했던 경기들이 너무 간단하게 끝나버리는 일들도 흥미를 떨어뜨린다고 지적되었다.


임요환, 이윤열, 박성준 등 이른바 ‘네임 밸류’가 있는 선수들이 GSL의 문턱을 밟으면서 초창기에는 곰TV의 서버가 폭주할 만큼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끈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선수들이 예상외로 부진한데다, 매 경기 프로게이머들의 실력이 들쑥날쑥하게 느껴질 정도로 예측이 힘들다는 점, 전체적인 홍보의 부족 등 다양한 이유로 GSL은 예상외의 부진에 시달렸다.


특히 방송 자체의 콘텐츠나 편성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것도 문제였다. GSL의 경기 자체를 제외하면 시청자들의 눈에 들어오는 이벤트나 뉴스, 이른바 '재밋거리'가 없었다. 이런 방송 콘텐츠의 부재는 경기뿐만 아니라 외적인 요소에서 재미를 느끼던 시청자들이 흥미를 잃는 원인이 되었다. 물론 웹으로 한정된 접근성이나 KeSPA와의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


이유야 어찌 되었건, 많은 사람이 GSL에 등을 돌렸다. 오래 기다린 만큼 그에 따른 기대치가 컸다. 그리고 실망은 더욱 컸다. GSL의 시작. 환호를 받은 초반. 그 후 시들해진 GSL. 그리고 잊혀진 GSL...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다. 그리고 황량했던 GSL에서 기대와 호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이런 작전도 있었어?! - 다양한 전략전술의 출현



초기 GSL에 흥미를 잃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게임구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테란의 경우 초반에는 일단 찌르고 본다는 식의 경기 양상이 지속되었다. 만약 도박이 통하면 승리를 가져오고, 설사 도박이 실패해도 벙커 회수를 통해서 후반을 도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기가 진행되는 전략이나 방식이 갈수록 단순화되었고 경기의 러닝타임도 굉장히 짧았다.


물론 스타크래프트 2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반이라 유닛의 상성 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단순한 게임구조는 물론 성능상의 원인이 있긴 했지만, 우주모함이나 모선 등 전작에서는 결전병기로 취급되던 상위 유닛들이 경기에 등장하지 못하거나 등장하더라도 이벤트 비슷한 형태로 버려지는 유닛에 가까웠다.



▲ 이름 때문에 놀림 받는 건 유닛도 마찬가지!



그러나 시즌을 넘기면서 다양한 패치가 이루어지고 선수들의 경기력이 상승하면서 점차 쓸모없다고 여겨졌던 유닛의 활용도가 늘어나거나 활용법이 드러났다. 특히 프로토스의 유닛 중 가장 쓸모없다고 느껴졌던 모선을 이용한 경기까지 나타나면서 프로토스를 응원하던 시청자들에게 큰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렇게 경기력이 바뀐 것은 맵의 변화도 한 몫 했다. 기존에는 작은 맵으로 인해 어느 정도 치즈러쉬가 강제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프로게이머라면 누구나 경기에서 이기길 바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 치즈러쉬를 한 선수가 사과하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출처 : PlayXP)


이런 양상은 2011년의 GSTL을 거치면서 계속 변화되어 갔다. 초반의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 맵을 전체적으로 크게 만들어, 초반 정찰이 성공해서 빠른 압박이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도록 바뀌었다. 특히 '십자포화se'같은 맵은 광물을 많이 먹고 운영을 통해서 점차 난전으로 흘러가게끔 경기를 유도하기도 했다.



어둠 속에서 내가왔노라! - 새로운 영웅의 탄생



'영웅'의 등장은 그 말만으로도 사람을 설레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실력만으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웅에게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드라마가 있다.


한몸에 기대를 받았던 올드 게이머들이 4강의 문턱에서 고전을 거듭하고 있을 때 GSL에 혜성같이 등장한 새로운 선수들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GSL 시즌 3에서 기적과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승한 장민철 선수를 꼽을 수 있다. 기존의 GSL 시즌 1과 2에서 프로토스는 4강에 속하지도 못할 정도로 약세라고 평가받았다. 장민철 선수 역시 시즌 1과 시즌 2에서는 16강의 문턱조차 밟아보지 못했을 정도.


기존에도 눈길이 가는 선수가 없진 않았으나, 이 선수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이른바 '프징징(프로토스가 제일 나쁘다며 징징거린다고 붙여진 이름)'이 대세였던 시기였다. 그러나 장민철은 시즌 3에서 박서용 선수와의 혈전을 통해 4:1이라는 그림 같은 점수를 기록하며 우승을 거머쥐었다.


사람들은 그가 저그, 테란, 프로토스가 아닌 제 4의 종족으로 경기를 펼친 것 같다면서 제 4의 종족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 우승 소감으로 '(상금으로)억만장자가 되겠다.'고 밝혀 억만장자 프로토스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장민철 선수는 시즌 3에서 4강에 안착하며 특유의 경기력으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 프로토스가 어렵던 때 우승해 '프통령'에 등극한 장민철 선수!



반면 이정훈 선수는 2010년의 시즌 2와 2011년의 1월, 두 차례나 준우승을 하는 등 안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음에도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나뉘는 독특한 선수이다.


테란의 기본 유닛인 해병 콘트롤에 탁월해 '해병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지만, 치즈러쉬를 자주 사용하는 스타일이 문제. 팬들에게는 기본 유닛의 활용과 경기 초반의 판단력 등 실력이 평가를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치즈러쉬에 기대어 경기력이 나쁘다는 평가를 받는 계기가 되었다.


시즌을 거치면서 우승의 문턱에서 번번아 좌절을 맛보는 그에게 새로 생긴 별명은 제2의 홍진호. 물론 안정적인 경기력에 세밀한 해병 콘트롤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만큼 차후 시즌 우승으로 이 별명을 떨쳐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주목받고 있는 신예에 관심이 있다면 강초원 선수도 빼놓을 수 없다. 2011 GSL Mar. 32강에서 임요환과 임재덕이라는 거물 선수를 잡아내며 16강에 올라선 강초원 선수는 현재 4강까지 올라간 상태이며 신예답지 않은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으로 경기마다 화제가 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한국인들로만 구성되어 그들만의 축제라고 비난받던 GSL에 조나단 워시(Jonathan Walsh), 그렉 필즈(Greg Fields), 크리스토퍼 로렌저(Chris Loranger) 등 해외 선수들의 선전도 GSL의 열기를 고조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2010년 시즌 3, 조나단 선수는 4강의 문턱에서 뼈아픈 패배를 맛보았지만 해외 선수들의 저력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멋진 경기를 펼쳤다.


한편으로 올드 게이머들 또한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거듭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GSL Mar. 에서 박성준(Z) 선수와 이윤열(T) 선수가 보여준 팽팽한 경기력은 오랫동안 지속 된 패배로 안타까워하던 팬들의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했다.


한 달에 한 번 우승자가 탄생하기에 여전히 메리트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우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초기와 비교하면 우승자에 대한 환호는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GSL의 경기력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다.



뭐 화끈한 거 없나요? - 다양한 콘텐츠



초기 GSL은 1:1의 방송만을 계속 진행하면서 다양한 콘텐츠를 바라는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면서 호평을 받고 있다.


1) 아내의 유혹이 안 부러운 복수전! - 승격강등전과 조 지명식


갈등은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이후를 기대하게 한다. GSL에서는 조 지명식을 통해서 대립구도를 형성함으로써 단순해질 수 있는 게임에 스토리를 부여했다.


조지명식이 같은 Code 내에서의 수평적 갈등을 유도했다면, 승격 강등전은 수직적 갈등을 유도한다. 승격강등전은 Code S의 하위 8명과 A의 상위 8명이 겨뤄 언제라도 Code S의 선수가 A로 떨어질 수도,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게 함으로써 선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주목할만한 선수를 시청자에게 알려준다.


2) 도전을 좋아하는 전사라면!! - 간판 깨기


만화나 소설책을 보면 실력있는 무사가 여러 도장을 돌아다니면서 승부를 요청하고 승부에서 이기면 상대의 간판을 깨부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른바 간판 깨기(혹은 도장 깨기)!


GSL 방송경기 중간에 삽입된 이벤트성 경기인 간판 깨기는 팀에 소속된 한 선수가 상대 팀에 쳐들어가 5명을 연속으로 이겨 상대의 간판을 깬다는 콘셉의 방송이다.



▲ 최배달만이 도장 깨기의 명수는 아니다!


3) 이제 개인이 아닌 팀을 응원한다! - GSTL


GSTL은 초기의 스타2 리그만을 관람한 사람에게는 생소한 개념일 것이다. GSTL은 팀 리그 방식으로 8강에서 4강까지는 7전 4선승제의 승자 연전 방식, 결승전은 9전 5선승제의 승자 연전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기맵은 샤쿠라스 고원, 고철 처리장, 금속 도시, 잃어버린 사원, 젤나가 동굴, 종착역, 탈다림 제단, 십자포화 SE, 크레바스까지 총 9개의 맵을 사용한다. 2월에 처음 선보인 GSTL은 개인과 개인 간의 대립구도에서 벗어나서 팀 간의 대항전으로 새로 눈길을 끌었다.



▲ 첫 GSTL의 승리자는 IM팀이 되었다.



조금 더 다채로운 전략과 흥미로운 선수들의 등장. 1대1 매치 외 다양한 볼거리를 위한 새로운 콘텐츠 못지 않은 GSL의 커뮤니케이션 역시 GSL의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 특히 위에 언급한 핵심적인 변화들이 모두 시청자와 주최자 간의 끊임없는 의견교류에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공식홈페이지의 게시판뿐만 아니라 채팅방을 통해 시청자의 의견이나 궁금한 점을 바로 답해주고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경기 자체에 대한 해석이나 감탄사를 곁들이는 등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함께 호흡한다. 이러한 소통은 GSL 성장의 가장 큰 자산이다.


한 때 GSL을 즐겨 보았던 사람, 그러나 지금은 GSL에 흥미가 떨어진 사람에게 GSL은 그리 재미없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변화된 모습조차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의 벽을 허문다면 시즌1의 GSL과는 또다른 새로운 설레임을 마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GSL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 경기 수가 너무 많아서, 또는 한 동안 GSL을 시청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인벤이 선정한 추천경기를 소개한다.


1. 올드게이머를 좋아한다면?

별명을 애교스럽게 합성하여 '제육덮밥 매치'로 불리기도 하는 이 경기는 두 전설의 만남으로 시작 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1세트 십자포화, 2세트 종착역, 3세트 금속도시, 4세트 크레바스, 5세트 젤나가 동굴을 거쳐 올드 게이머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경기.

2011년 3월 8일. GSL Mar. Code S 8강 박성준(Z) VS 이윤열(T)


2.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 반전드라마!

스타1과는 다르게 스타2에서는 ‘/춤’, ‘/환호’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다. 스타테일과 IM팀의 결승전 6경기에서 벌어진 희대의 반전경기, 혹은 예능경기! ‘경기에 확신하기 전까지 환호하지 마라.’라는 교훈(?)을 안겨준 경기이기도 하다.

2011년 2월 8일. GSTL Mar. 결승전STARTALE vs IM 6경기


3. 웃긴 경기가 좋아!

경기를 보면서도 코믹한 것을 좋아한다면 2010 10월 21일에 있었던 GSL 시즌2 64강 D조 2경기. 박종혁(T)과 공진세(P) 선수의 경기를 추천한다. 비장의 카드 한 수가 될 것인지, 그 비수가 나에게 돌아올 것인지. 당시 GSL에서 보기 어려운 유닛을 뽑아들어 더욱 유명해진 이 경기는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

2010년 10월 21일. GSL Season2 64강 D조 2경기 박종혁(T) VS공진세(P)


4. 북미와 유럽의 자존심 대결!

그렉 필즈(Greg Fields)선수와 조나단 워시(Jonathan Walsh)선수의 대결은 외국 시청자뿐만 아니라 한국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2011년 1월 19일. GSL Jan Code S 8강 경기. 북미와 유럽 간 자존심 대결이기도 했다. GSL2011 시즌2의 불참을 선언한 그렉 필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1년 1월 19일. GSL Jan. Code S 8강 Greg Filds(Z) VS Jonathan(T)


5. 도시계획

김원기(Z) 선수와 안홍욱(P) 선수와의 대결. 날카로운 초반 압박을 도시계획(?)을 통해 지속적으로 막아내고 일격을 가한다. GSL 시즌3 8강. 2010년 12월 6일 경기.

2010년 12월 6일. GSL Season3 8강 김원기(Z) VS 안홍욱(P)






▲ 3월 GSL 일정.
[ 출처 : GSL 공식홈페이지 ( http://esports.gomtv.com/gs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