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라는 숫자는 누군가에는 절대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금기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예로부터 동양과 서양에서 모두 완전성을 의미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완전하지 못한 자가 완전하기 위해서 필요한 숫자. 그래서 숫자 '3'은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악마의 숫자임과 동시에 절대적 완결성을 결정짓기 데 필요한 숫자이기도 하다.

롤리팝체인소우를 통해 '약'을 과다복용한 개발자로 잘 알려진 '스다 고이치'가 드디어 숫자 3에 손을 댔다. 자신의 독특한 커리어를 완성하기 위한 대망의 킬러 3부작의 완결을 '킬러 이즈 데드(Killer is Dead)'를 선택한 것이다. 여고생이 남자친구 머리통을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전기톱으로 좀비를 써는 작품을 만들 때부터 예상하긴 했지만 이 작품도 만만치 않다. 스다 고이치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도대체 약국을 몇 번이나 들린 것인가.

▣ 드디어 완성되는 스다 고이치의 : 킬러 3부작

▲왼쪽부터 '킬러7', '노모어히어로즈', '킬러이즈데드'

시곗바늘을 8년 전으로 돌려보자. 스다고이치는 킬러 시리즈의 오프닝을 장식할 게임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찾아 나선다. 당시 온가족이 즐기는 플레이스테이션의 컨셉을 저주했던 스다 고이치는 대중성 따위는 함께 언인스톨하고 자신의 B급 감성을 극대화해줄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캡콤의 이단아이자 바이오하자드의 아버지인 '미카미 신지'다. 본새부터 음습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던 미카미 신지는 음란마귀의 대명사인 스다 고이치를 알아보고 곧바로 '킬러7'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거장의 만남치고는 스토리는 제법 정상적이었다. 7가지 인격을 가진 주인공이 정부 의뢰를 받아 인류를 위협하는 적을 처치한다는 스토리. 그러나 역시 멀쩡한 것은 이것뿐이었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시나리오와 맨정신으로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각가지 괴랄 한 연출력은 게임을 접한 게이머에게 형용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해 주었고 덕분에 '희대의 괴작'이라 폄하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수 매니아들로 부터 "병맛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라는 평가를 이끌어냄으로써 스다고이치의 특유의 선 굵은 B급을 시장에 어필하는데 성공한다.

▲스다 고이치와 미카미 신지, 혹자는 "치킨과 맥주의 극적 랑데뷰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두 번째 킬러 시리즈인 '노 모어 히어로즈'는 출시 플랫폼부터 파격적이었다. '건전함'이라는 단어 자체에 심한 알레르기를 보였던 스다 고이치는 당시 닌텐도의 구세주이자 온 가족이 즐기는 건전 게임기로 이름을 날렸던 'Wii'에 자신의 두 번째 킬러 시리즈를 출시한다.

이 게임은 스토리부터 스다 고이치스러웠다. 삼류 킬러이자 오타쿠인 주인공 트레비스가 옥션에서 구입한 '광선검'을 가지고 킬러 세계의 랭킹 1위를 넘본다는 내용. No.1 킬러가 되기 위한 주인공의 동기는 킬러세계의 에이전트인 실비아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다. 이렇게 피와 폭력 그리고 섹스라는 3가지 키워드를 녹여낸 '노 모어 히어로즈'는 그렇게 전 세계 닌텐도 유저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의미있는 판매량을 거두는 데 성공한다.

'노 모어 히어로즈' 이후 스다고이치는 자신의 독특한 B급 감성을 아무런 필터링없이 게임에 온전히 담아내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평범한 범부의 시선에서 이를 해석하자면 그것은 '비정상'과 '부조화'의 결합이었다.

정상적이고 조화롭게 정리된 세상을 쪼개고 비틀어 게임에 녹여낸다. 단테의 신곡을 사이버펑크로 재해석한 '새도우 오브 더 댐드(Shadows of the damned)'가 그랬고 '롤리팝체인소우'가 보여준 그런 정신세계를 완성함으로써 그의 정신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보여주기도 했다.


▲그나마 대중적이었던 새도우오브댐드와 롤리팝체인소우


▣ 킬러이즈데드, 피와 폭력 그리고 섹스

자! 그리고 돌아왔다. 대망의 킬러 시리즈 3부작의 완성판은 제목은 '킬러 이즈 데드'로 결정했다. 세월이 무게가 그를 바꿔놓았는지 웬일일까 음란한 생각도 멈췄다. 적응되진 않지만 일단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스다 고이치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킬러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할 '킬러 이즈 데드'에게 더는 B급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픽은 싸구려일지언정 스타일리쉬한 액션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던 그의 스타일대로 게임 색깔은 더 진해졌고 액션은 곱절 과감해졌다. 비주얼만 보더라도 확실히 개성적인 게임이지만 스다 고이치의 게임이기에 이것또한 평범해 보인다. 캐릭터와 스토리 설정도 별로 '스다 고이치'스럽지 않다. 여전한 점은 언제나 그의 게임을 아울렀던 3가지 키워드다.

[Keyword 1 - 폭력]

인체 개조를 통한 생명 연장이 가능해진 20세기 미래 배경, 주인공 몬도 자파(35세)는 어느 날 국가 비밀기관인 '처형 사무소'로 부터 채용 통지서를 받게 되고 기구한 운명의 수레바퀴에 몸을 얹게 된다. 임무는 간단하다. 국제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테러리스트를 '처형'하는 것. 오른손엔 일본도, 그리고 언제 개조되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은 특수 변형 왼팔을 무기로 자신의 본업인 폭력을 자행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연필로 사람을 죽이는 킬러도 나왔건만 스다고이치의 킬러는 여전히 칼을 휘두른다. 스다 고이치는 지난 2월 대만 게임쇼에서 현대 무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검를 무기로 쓰는 배경에 대해 "전통적인 킬러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단 한장의 스틸 컷을 보더라도 이 게임이 무슨 게임인지 알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게임이 될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아직까지 킬러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의 감각은 여전하다.

▲저..정신 차렸나 스다 고이치!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닌 것 같다...


[Keyword 2 - ]

폭력이 있는 곳엔 피도 있는 법. '킬러 이즈 데드'에서 피는 단지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돋보이기 위한 미적 장치만은 아니다. 생체 개조된 몬도의 왼팔은 전투에서 획득한 피를 전략적으로 흡수한다. 피가 일정량 모이면 '아드레날린 버스트(Adrenaline burst)'가 발동하고 학살이 시작된다는 설정이다.

▲자~ 피의 노래를 시작해 보자


[Keyword 3 - 섹스]

전작 '노 모어 히어로즈'의 주인공처럼 음란하기 짝이 없는 변태 오타쿠 설정은 아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슬립 핏 수트가 보여주듯 역대 킬러 시리즈 주인공 중 가장 멀쩡하며 또한 잘 생겼다. 함정이 여기에 있다. 말끔한 얼굴을 이용해 언제든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믿는 이 남자. 달달한 말솜씨까지 겸비하면서 여자가 꼬여든다는 설정. 게임에서는 처형 사무소에서 조수로 일하는 미카(Mika)와 동료이자 라이벌인 비비안 스콜 (Vivienne Squall), 그리고 게임 중간 나타나는 수수께끼 미녀 스칼렛이 등장하면서 주인공 몬도를 생물학적 위기로 내몬다.

▲냉혹한 킬러의 세계에 어울리는 차가운 도시의 남자 몬도 자파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아닌 것 같다...



▣ 얌전해진 스다 고이치, 과연 반전이 있을까?

'킬러7'과 '노 모어 히어로즈'에서 보여준 스다 고이치의 색깔은 분명 한 단어로 정리되지 않은 느낌의 총체였다. 그저 음란하고 변태스러운 줄 알았더니 때론 진지하게 때론 뒤통수를 치는 반전을 보여주며 현세대를 비꼬는 블랙코미디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지독할 정도로 멋대로인 스다 고이치의 색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신작 '킬러 이즈 데드'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어 있으며 대중성을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한 것처럼 보인다. 세월의 무게가 스다 고이치를 변화시킨 것일까. 아니면 팬들을 위한 깜짝 반전 카드를 숨겨둔 것일까? 어떤 답이 되었든 스다 고이치 팬들이라면 이번 시리즈를 구매하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스다 고이치의 킬러 3부작을 완성할 '킬러 이즈 데드'는 2013년 여름 Xbox360과 PS3를 통해 발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