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강전의 막바지. 이제 슬슬 8강전에 진출할 팀들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는 챔피언스에서는 매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경기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챔피언스 스프링에서는 '입롤의 구현'이나 일반 게임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대역전'. 특이한 챔피언을 선택한 '깜짝 전략' 등 다양한 장면들이 연출되어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중이기도 합니다.


지난주에도 많은 경기들이 있었지만 유독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경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12강 B조 12경기 SK텔레콤 T1 1팀과 KT롤스터 B의 1세트 대결입니다.


e스포츠계의 영원한 라이벌, KT롤스터 B와 SK텔레콤 T1의 통신사 더비. e스포츠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물론 그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정말로 기자의 눈을 끈 것은 놀 만큼 놀아본(?) 선수들의 자존심 대결이었습니다.



◈ 보이지 않는 위협. - 최인석의 샤코 선택



SK텔레콤 T1 1팀의 선픽으로 시작된 1세트 경기, KT롤스터 B팀은 마지막 픽 순서가 될 때까지 SK텔레콤 T1에게 정글러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SK텔레콤 T1이 카직스를 선택하며 5명의 챔피언을 모두 드러내자 KT롤스터 B는 마침내 마지막까지 숨겨든 카드를 꺼내 듭니다. 바로 '코리안 시크릿 웨폰' 샤코였죠.


▲ 미드 / 탑을 모두 보여주며 '칼픽' 한 것은 다름 아닌 샤코였다.



미드 / 탑 라인을 먼저 보여주고 챔피언 선택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내주면서도 KT롤스터 B의 정글러인 "Insec" 최인석 선수는 암살형 챔피언, '샤코'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습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점멸이 아닌 순간이동을 선택하며 그 의도를 확실히 상대에게 보여줍니다.


"이건 깜짝 전략이고, 난 너희를 고통받게 할 거야." 라는 의도를 말입니다.


▲ 경기 시작 3분이 지나기도 전에 선취점을 따내는 샤코



사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이미지를 대변하는 최인석 선수의 사코는 그 기량만큼이나 유명했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시작하자마자 박스를 이용하여 더블 버프를 깔끔하게 가져가며 실력을 보여준 최인석 선수는 탑 라인에서 "Reapered" 복한규 선수의 카직스를 잡아내며 SK텔레콤 T1 1팀을 위협합니다.


정교한 작전이었습니다. 노릴 수 있는 요소들도 많았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상대 라이너들을 위협하고, 순간이동을 보여주면서 백도어 / 카운터 정글의 깜짝 전술을 사용할 수 있다는 압박감을 심어줍니다. 또한, 경기 중 김동준 해설이 이야기한 것처럼 이렐리아와 함께 몰락한 왕의 검을 장착하여 깜짝 바론을 시도할 수도 있었습니다.


◈ 순간 이동 샤코 전술의 기대치

1.극 초반 빠른 정글링과 치명적인 습격 루트
- 적 라이너들을 압박하고 아군 라이너의 성장을 돕는다
- 극 초반 한쪽 라인 습격에 성공하면 곧바로 다른 라인을 습격할 수 있다.


2.순간이동의 빠른 기동성
- 초반 와딩을 통한 정글 몬스터 스틸
- 중후반 백도어 플레이로 상대의 운영을 강제함


3.이렐리아 + 샤코의 2몰왕검 선택
- % 대미지의 힘으로 빠른 바론 사냥 가능
- 샤코는 백도어 플레이 후 순간이동으로 바론 사냥에 합류 가능



하지만 경기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샤코는 이상하리만치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아무리 중반에 힘이 떨어지는 샤코라고 하더라도 올스타전에서 압도적인 투표율을 자랑할 만큼 뛰어난 최인석 선수의 센스가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사실 이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SK텔레콤 T1 1팀에는 이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으니 말이지요.


◈ 감히 나에게 샤코를? - SK텔레콤 T1 1팀의 반격






한국에 리그오브레전드가 서비스하기도 전인 북미 시절, "Reapered" 아이디를 사용했던 복한규 선수는 '엄청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샤코를 사용하며 유명해졌습니다. 당시 최고의 정글러였던 '세인트비셔스'에게서도 "샤코만큼은 나보다 잘한다." 라고 평가를 받았었죠.


또한, 지난 챔피언스에서 제닉스 스톰의 "Nolja" 이현진 선수가 샤코를 사용했을 때 사석에서 만난 복한규 선수는 "감히 저에게 샤코를 쓰시다니.." 라고 말하며 샤코에 대한 자신감을 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H0R0" 아이디를 사용했던 조재환 선수도 엄청난 샤코 플레이어로 북미 고위 랭커들에게 악명(?)을 떨친 경력이 있습니다. 복한규 선수와 마찬가지로 그의 명성은 당시 최고의 선수였던 CLG NA의 '핫샷GG'도 조재환 선수의 샤코를 보면 고개를 흔들게 할 정도.


이렇게 샤코로 놀만큼 놀아본(?) 선수들이기에 최인석 선수의 샤코는 변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북미 시절 샤코 플레이로 2377점까지 달성한 복한규 선수



두 선수는 위에 설명한 깜짝 전략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깜짝 바론 사냥만, 백도어만 안 당하면 이긴다" 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죠. 그에 따라 정말 신경 쓰기 힘든 위치에 와드를 설치하며 샤코에게 고통을 안겨 줬습니다.


▲ 21분 경에 드래곤에 와드를 설치하는 조재환 선수


▲ 핑크 와드에 감지되지 않는 위치에 정확하게 설치, 깜짝 드래곤을 방지한다.


▲ 이후 바론 지역에서도 똑같이 와드를 설치하며 변수를 없앤다.



샤코의 정교한 플레이가 돋보였던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패배한 것도 현실. 한켠에는 KT롤스터 B는 "8강행이 확정된 상황" 이라는 환경이 있다 보니 많은 팬들 사이에서 "세 선수들 간의 자존심 싸움이 아니었나." 하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샤코에게는 장인이 3명이나 포진된 화려한 경기가 펼쳐졌지만 챔피언스 승률 0% '샤필패'의 오명을 씻어낼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은 것이지요.


▲ 샤코의 승리는 다음 기회로...




1세트 MVP로 선정된 복한규 선수는 "1~2 킬쯤은 그냥 줄 줄 알았다. 어차피 샤코니까 피할 수 없다.","처음만 잘 스무스하게 대처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했다." 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기자가 지난 경기에서 찾은 뷰 포인트는 두 가지입니다. 최인석 vs 복한규 + 조재환 세 샤코 장인의 자존심 대결, 그리고 복한규 선수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샤코 장인들이 내놓은 샤코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샤코 장인들이 낸 샤코에 대한 해답. 그것은 와드도 조합의 힘도 아닌 "쿨함" 이라는 것을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