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벤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되는 E3 Expo 2013 관련 정보를 행사 기간 동안(2013년 6월 10일~13일) 실시간으로 공개합니다. 게임쇼 기간 동안 올라오는 행사 정보는 E3 특집 페이지를 통해 더욱 자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_ E3 특별취재팀

▲ '레인' 현장 플레이 영상
[※현장 사정으로 게임 사운드가 녹음되지 않은 점 양해 바랍니다]


빗소리가 들려 돌아본 곳에, 생각지 못한 기대작이 있었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재팬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있는 '레인'은 한 소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끝도 없이 비가 쏟아지는 어느 마을의 밤, 온몸이 투명한 어느 소년이 마을을 홀로 방황한다. 체험 플레이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이 소년이 일반적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빗속에서만 형체가 드러난다는 간단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여러 의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이 소년의 몸이 투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한밤중에 혼자 빗속을 방황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 마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가. 그런 의문점들이 해결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어둠 속 괴물들과 만나는 데는 금방이었다.




괴물이 쫓아오는 속도는 소년이 달리는 그것보다 약간 더 빠르다. 정처 없이 도망치다가 결국 따라잡혀 게임 오버를 당하기를 수 차례, 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를 맞지 않는 지점으로 들어가면 다시 몸이 투명해져 괴물이 소년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

게임은 그렇게 진행된다. 소년은 곳곳에 있는 은신처를 활용해서 괴물을 피해 나아가야 한다. 전투라는 것은 전혀 없지만, 그 과정에서는 은근한 긴박감이 느껴진다. 빗속을 헤치고 덤벼오는 괴물에 쫓기던 끝에, 간발의 차이로 처마 밑에 들어가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안락함은 직접 플레이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감정이었다.




비 오는 마을을 헤매던 소년은 어느 집의 난간 위에서 한 소녀를 발견한다. 소년처럼 몸이 투명한 소녀였다. '소녀가 나타났을 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라는 나레이션은 의미심장한 복선을 제공하는 것처럼 들린다. 소녀는 금세 저편으로 사라졌고, 소년은 소녀를 찾기 위해 다시 달려간다.

비가 없는 곳에서 안전하지만,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려면 빗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레인'은 얼핏 무난하다 할 수 있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전형적인 '보이 미츠 걸(Boy-Meets-Girl)의 스토리 구성과는 차별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게임 내내 비가 내리는 분위기, 특별한 대사 없이 출력되는 문장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리고 오감을 만족시키는 연출력과 함께 하기에 가능하다.

동화적 분위기지만 유치하지 않고, 내내 어둡지만 음산하지 않다. '레인'의 연출은 빛과 어둠 사이에서 절묘한 외줄타기를 시도한다. 그 결과 '비'라는 소재에서 가져올 수 있는 감정 재료들을 충실하게 구현해낸 모습을 보인다. 외로움과 슬픔, 낭만과 고요함 등 플레이어는 한 가지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선 속에서 움직이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투명해진 소년을 조작할 때 벌어지는 연출이다. 고요한 공간에 하나 둘 찍히는 발자국, 발에 부딪혀 움직이는 작은 소품들이 소년의 위치를 알릴 뿐이다. 다시 빗속으로 들어가면 소년의 몸이 빗물에 젖으면서 형체가 드러난다. 효과를 최소화시키자 어떤 화려한 연출보다 눈에 다가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하나의 감성적 요소는 '화면' 그 자체에 있다. '레인'의 진행 시점은 위치별로 고정되어 있다. 마치 유채화의 한 장면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최근 게임 추세와 맞지 않는 듯한 고정 시점 연출이 이 게임에서는 몰입감을 주는 무기가 된다.

사운드 역시 주목할 만했다. 언제나 비가 내리고 있기 때문에 비의 효과음이 청각을 모두 차지해버릴 위험도 있다. 하지만 각종 사물의 효과음, 그 속에서 아름답거나 불안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이 오히려 빗소리와 어우러져 완벽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감성적 연출과 스토리에만 매달리는 것 역시 아니다. '레인'은 어드벤처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 역시 제공한다. 전투 수단은 없다. 하지만 각종 지형 및 소품과 상호 작용을 통해 유저의 상상력으로 위험을 지나가야 한다. 괴물을 피하고 장애물을 넘어가는 과정 속에서 마을을 탐험하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어드벤처의 기본 소양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레인'은 PS3으로 출시 예정이다. 재미와 예술적 미학을 동시에 잡는 게임이 될지는 정식 발매가 되고 나서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라도 체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모험의 마지막을 만나고 싶지 않을까. 소년과 소녀가 폭우의 끝에 당도하는 그 순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