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따갑다. 이 밝은 하늘은 언제까지라도 이어질 것만 같다. 하지만 떠오르고 싶은 것들에게 가장 잔혹한 하늘이기도 하다. 신성이 자신의 빛을 드러내기에는, 태양이 너무 밝기 때문이다.

날씨 이야기가 아니다. AOS(MOBA) 장르에 대한 말이다.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Aeon of Strife'에서 시작된 이 장르는 '도타 올스타즈'를 통해 순식간에 메이저로 떠올랐고,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서 대세 장르로서의 꽃을 피웠다.

그렇다면 AOS가 블루오션일까? 이 의문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AOS 장르 신작들은 'LOL'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스타크래프트'의 황금기 시절 출시된 RTS 게임들이 무수한 비교 속에 스러져간 모습과 비슷하다. 게다가 왕년의 챔피언이 귀환했다. 전작을 완벽히 계승한 '도타2'가 드디어 본격적인 승부에 나선 것이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 '킹덤언더파이어 온라인: 에이지오브스톰(이하 에이지오브스톰)'은 세 번째 일출을 들어올리려 한다. 얼핏 무모하다. 하지만 가치 있는 도전이다. 유저들 사이에서 종교 전쟁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AOS 전장에 국산 게임이 깃발을 세울 수 있을까. 8일 오픈한 도전의 전장을 방문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유저님 잠시만요, 템 자동구매하고 가실게요 - 진입장벽

▲ 정글 몬스터와 정글링 루트를 튜토리얼에서 안내한다


들은 대로 친절했다. 튜토리얼은 백뷰 시점이라는 특징을 쉽게 안내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었고, AOS 장르 자체를 처음 겪는 플레이어를 위해 직관적인 설명 역시 잊지 않았다.

디테일이 좋았다. 어디에나 제공하고 있는 공격과 스킬 사용을 넘어서 cs를 획득하는 요령, 정글 몬스터 설명과 사냥, 타워와 중간-최종 보스를 상대하는 방법 등 게임 시작과 끝까지 기본적인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튜토리얼 미션을 클리어한 등급별로 보상을 달리 지급해 플레이어에게 동기부여를 한 것도 좋은 시도였다.

눈에 띄는 친절함은 더 있었다. 스킬 자동 선택과 아이템 자동 구매였다. 해당 옵션을 체크하면 레벨업 시 추천 스킬 트리가 찍히고, 본진 귀환 때 추천 아이템이 구매된다. "템 트리를 어떻게 가야 할까" 같은 고민이 완전히 사라진 셈. 이렇게 고민거리 없이 게임을 익힌 다음에는 옵션을 해제한 후 자신에게 맞는 스킬 트리와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또다른 매력이었다.

단점을 꼽자면, 알아서 해주는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겠다. 아이템 슬롯이 여섯 칸인데 추천 아이템이 여섯 가지라는 점은 결국 다른 템트리를 개발할 필요성이 없어진다는 결과로 나타난다. 숙련자의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앞으로 추가될 장비의 개성을 더 살려서 추천 아이템을 상황에 따라 세분화하면 어떨까. 그 점은 '도타2'를 조금 더 따라가도 괜찮을 것 같다.

▲ 아이템 구매 화면, 인터페이스가 깔끔하다



눈과 귀가 즐겁다, 이펙트만 좀 세련되었다면! - 비주얼

▲ 쉬프트 키를 누르는 동안 뒤를 살펴볼 수 있다. 도망가자!


오랜 제작 기간 동안 게임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부적으로 오가던 우려가 있었다. 그래픽이 세련되어 보이지 않고, 액션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원맨(One-Man) 캐리 플레이가 자주 일어나면서 실력 격차가 극심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기분 좋은 오판이었다. 최신 게임들과 비교할 때 평이한 그래픽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돌발적인 스킬 이펙트에서 나오는 역동적인 타격감은 그 허전함을 메우고도 남는다. 적을 경직시킬 때나 적에게 경직당할 때 이펙트 역시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적정한 수준이다. 어떤 스킬이 사용되고 있다는 가시성 역시 놓치지 않는다. 5:5 게임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을 잘 잡아냈다. 다만, 이펙트의 색채 등이 너무 기존에 봐오던 것들이라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상을 여전히 주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사운드. 소위 말하는 '타격감'이란 이펙트와 음향이 어우러질 때 극대화되는 개념이다. 에이지오브스톰의 음향과 더빙은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굳이 흠을 잡자면 원거리 딜러들의 평타 음향이 날카로운 편이라 한타 때 조금 시끄럽다는 정도. 그밖에는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비주얼 구성이 돋보인다.

▲ 오스카의 궁극기 발동 시 "죽지 마!" 라는 절규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OP 영웅의 장기 집권? 그런 것 없다 - 영웅 밸런스

▲ 인기 캐릭터 중 하나인 암살형 영웅 '모루인'


플레이어끼리 서로 대결하게 되는 게임에서 가장 민감한 화제가 밸런스다. AOS 장르에서 수많은 캐릭터의 성능을 동일하게 맞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밸런스 패치는 정확하면서도 쉬지 않고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다.

이런 부류에서 밸런스를 맞추는 방향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로 모두의 무기를 식칼 정도로 낮춰버리는는 하향 위주 패치, 둘째로 이쪽이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면 저쪽에 핵 무기를 선물하는 상향 위주 패치, 마지막으로 일정 주기별로 강세 캐릭터를 바꿔주는 OP 순환 방식이 있다.

'에이지오브스톰'은 어떤 방향일까. 8일 오픈 이후로 진행된 두 차례의 업데이트에서는 하향이 조금 더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아직 표본은 적다. 하지만 백뷰 시점의 특성상 기습에 더 노출되어 있고, 데미지가 강할수록 진입 장벽이 올라가게 된다. 이 게임에서는 능력치 하향을 기본 바탕으로 'LOL'식 밸런스를 디자인하는 것이 기존 취지에 적합할 것으로 보인다.

정식 오픈 이후 플레이를 한 결과 밸런스는 무난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정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너무 단단한데 스킬 대미지까지 높아 다대 다 전투에 심하게 강했던 미너토어의 경우 의견이 수렴되자마자 두 번에 걸쳐 빠른 너프가 진행되었다. 반면 타라칸 같은 영웅은 연달아 상향을 받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이름이 뭐예요? - 작명에 관한 소고

▲ 영웅의 이름은 화면에 자주 노출될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 조금 더


사소해 보이지만 짚어보고 싶은 부분이 있다. 작명 이야기다.

게임에서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유저에게 게임 속 세계의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름을 통해 캐릭터의 첫 인상이 결정되고, 그것은 곧 캐릭터의 개성으로 나타난다. 김춘수 시인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구절은 게임에서도 유저 심리 내면에 자리잡는 중요한 의미에 통용된다.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에이지오브스톰'의 영웅 이름은 조금 아쉽다. 일단 길다. 4음절 이상의 이름들이 많다. 그리고 캐릭터의 특성을 한 눈에 파악하기 쉽지 않다. '레오디오스', '베인폴트', '엔즈아인', '가르카스', '탄크레디' 등의 이름만 듣고 어떤 느낌의 인물인지 바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해볼 일이다. 시리즈의 예전 작품에서 이어진 캐릭터가 많기 때문에 생기는 일일 수 있다.

다시 한번 기존 대작들을 살펴보자. 'LoL'의 초창기 챔프들은 짧으면서도 직관적인 의미의 이름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애니'나 '뽀삐' 같은 이름에서는 귀여운 여자 아이라는 느낌을 바로 받을 수 있다. '티모'에서는 귀여운 마스코트의 이미지, '잭스'는 싸움꾼, '피들스틱'은 무언가 빼빼 말랐다는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마스터 이' 역시 소드마스터의 이미지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좋은 작명이다.

'도타' 시리즈는 아예 영웅의 특성과 역할 등을 고유명사로 삼아버리면서('저격수', '늑대인간' 등) 이런 문제를 원초적으로 비켜나간 경우다. 처음 만나게 되는 요소인 이름에서 직관적인 이미지를 제공하는 것은 AOS 장르에서 입문자들이 빠르게 감정 이입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앞으로 추가될 영웅들에게는 더 멋진 개성이 드러나는 이름이 붙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군에게 내 cs를 알리지 마라 - 팀워크

▲ 현재 플레이어의 매너 척도가 아이콘에 나타난다


유저들의 매너 개선과 규칙 위반에 대한 처벌은 AOS 장르에서 반드시 가져야 할 장치다. '에이지오브스톰'에서는 신고 시스템에 더해 매너 점수를 환산한 뒤 개인의 아이콘으로 보여주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매너 점수는 차후 업데이트에도 활용될 요소가 많아 보인다. 기본적인 틀은 잘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다른 플레이어의 cs와 데스 수치가 보이지 않도록 설정된 것은 좋은 선택인지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물론 이것은 같은 팀원의 각종 스코어를 보고 비난하며 참견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다. 하지만 데스 수치와 cs는 한편으로 팀원의 실력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운영을 할 수 있는 소중한 정보가 되기도 한다. 데스를 줄이는 데 신경 쓰지 않고 높은 킬에만 열을 올리는 현상이 생기는 것도 생각해볼 일이다.

▲ 게임 중 아군의 부끄러운(?) 수치를 볼 수 없다. 좋은 시스템인지는 유저분들의 판단에 맡긴다



'포텐'이 터지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운영이다

▲ 현재까지는, 장비 아이템이 크게 밸런스를 해치지 않아 보인다


라인전에서 말려도 운영 싸움에서 팀워크로 충분히 극복되는 것은 큰 장점이다. 백뷰 시점임에도 한 타가 중요하다는 것은 광역 스킬이 많은 것에도 연유가 있는데, 이 시점에서 장거리의 논타겟 스킬을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원근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질수록 영역 설정이 까다로운 것이다. 이 점에 대한 고민까지 이루어진다면 좋지 않을까.

2주에 한 번꼴로 계속 신규 캐릭터를 내놓겠다는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장기적인 볼륨에 직결되는 문제다. 그리고 아직 결과를 기다려야 알 수 있는 유료화 모델의 경우도 네오위즈에서 표방하는 '착한 유료화'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꾸준한 보완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요하게 허점을 노리고 있는 핵 유저들에 대해서도 더 완벽한 조치가 내려지길 바란다.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이 게임이 지금 당장 'LoL'과 '도타2'에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까? 누구나 같은 답을 할 것이다. 냉정하게 답하면 '아니오'다. 캐릭터 숫자와 개성에서 아직 압도적인 차이가 나고, 맵 종류와 게임 진행 역시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아직 구현되지 못한 기능도 상당히 많다.

하지만 '에이지오브스톰'은 당장의 완성보다도 잠재력을 가진 게임이다. 동종 장르 속에서 가지는 고유의 개성과 다양한 유저 배려는 무시할 부분이 아니다. 지금 세계적 대세가 된 'LoL' 역시 고작 17개 챔프에 미숙한 완성도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LoL'은 잠재력을 가진 게임이었고, 그것을 폭발시킨 것이다.

물론 후발 주자로서의 난관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다. 현재 AOS 장르 판도에서 이 정도 출발은 선방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게임 본연에서 갖추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때다.

국산 기대작이 언제나 어려움을 겪곤 했던 운영과 업데이트 부분에서 정성을 이어나간다면, AOS 장르 마니아와 입문자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에이지오브스톰'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 님의 유리아 일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