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에서 '이건 비밀인데 너만 알고 있으라'며 들려오는 정보들은 죽은 정보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알고 있거나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정보일테니까. 게임 산업에 대한 정보도 비슷하다. 기자나 개발자가 한두다리 건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의 정보들은, 대략적인 도움은 될지언정 치밀한 사업의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

말이 통하는 한국의 시장조차 이럴진대, 만약 해외 시장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한번 더 신중하게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나 언론의 홍보를 너무 맹신하면 현실과 전혀 다른 오판을 내릴 수도 있으니, 해외에 진출하기 전에 미리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지 사정을 파악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시장이다. 매출의 규모로만 따져도 세계 1~2위를 다투는 시장이고 1인당 매출은 세계에서 최고 수준, 특히 한중일 삼국을 관통하는 한자 문화권에다 아시아라서 문화적인 코드까지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많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많은 게임사들이 일본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 10월 초 일본 앱스토어 순위. 한국과 달리 캐주얼보다 미들코어 게임들의 순위가 높은 편.



그런데 막상 진출하려면 또 막막하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보다는 적지만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할만큼 세부적인 면에서 다르다.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온라인 게임 시장이지만 일본은 블리자드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출시를 포기했을 정도로 게임 취향도 천차만별이다.

일본의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싶다고 아무나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다. 지나가는 행인 A가 우연히 내게 필요한 전문가 수준의 정보를 설명해주는 일은 게임 속의 퀘스트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서 궁금한 질문을 하기 전에 앞서,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누구에게 물어볼까? 백번을 물어봐도 한번 보느니만 못하고, 백번을 보더라도 한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으니 정답은 뻔하다. 싱싱한 생선을 보고 싶다면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면 된다. 싱싱한 모바일 게임 산업의 정보를 듣고 싶다면? 지금 이 시간 일본의 현지에서 온 몸을 부딪히고 있는 스타트업을 찾으면 된다.

일본의 스타트업이자 퍼블리셔인 피타야 게임즈. 우연한 만남의 시작은 지난 차이나조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세계의 유명 개발자들이 모인다는 소식을 듣고 추콩의 네트워크 파티에 들렀는데, 주변은 죄다 외국인이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난감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게 술잔만 기울이며 어색해하는 기자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넨 사람이 바로 피타야 게임즈(pitayagames.com)의 해리슨 COO 였다.


물론 당시에는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술도 얼근하게 취해 있어서 손짓까지 섞어가며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영어가 오가는 기묘한 대화를 나눠야 했지만 막 태동을 준비하는 회사의 열정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결국 다음을 기약하며 아쉽게 헤어졌는데, 이 인연이 도쿄 게임쇼까지 이어진 것이다.

피타야는 드래곤 프루츠, 흔히 용과(龍果)라고 불리는 선인장 열매의 이름이다. 진짜 피타야라면 과일에서 끝나겠지만, 피타야 게임즈는 좀 더 높은 목표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방금 출발선을 끊은 이들이라면 진짜 생생한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이다.

"피타야 게임즈는 2012년 2월에 설립된 회사로, 캐쥬얼한 네이티브 어플리케이션을 위주로 개발하고 있다. 신생 회사이기 때문에 해외에까지 이름을 알릴만한 성과는 없지만, 오는 11월에는 일본에서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해외 시장에서 양질의 게임들을 찾아 일본 시장에 퍼블리싱하려는 계획을 갖고 함께 사업을 진행중에 있으니 한국의 게임에도 관심이 많다."


피타야 게임즈 해리슨 류 COO
해리슨 류 COO는 피타야 게임즈에서 회사 및 제품의 운영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피타야 게임즈의 목표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창조해 제공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 뛰어든 이유 역시 빠르게 성장할 것 이라는 믿음때문이다.

"지금까지 게임을 즐기던 사람들도 많지만, 앞으로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게임을 전혀 해 본 적이 없었던 이용자들까지 게임을 접하고 즐기게 될 것이다. 피타야 게임즈는 앞으로 이런 라이트 유저들은 물론 미들 코어 유저들에게까지 최적의 게임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일본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에 대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특히 일본 모바일 시장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현재의 37%에서, 2014년에는 모바일 시장의 절반인 50% 이상이 될 것이라는 설명. 한국보다 속도는 느릴지 몰라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올해 3월에 조사된 통계에 의하면 일본의 모바일 시장에서 스마트폰이 차지하는 비율이 37%까지 상승했다. 계속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아마 50% 이상으로 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플랫폼별 비중은 일본 스마트폰 가입자 수 4061만 건 (2013년 1월 자료) 중에서 안드로이드는 2570만 건 (63.3%)이고, iOS는 1412만 건 (34.8%) 정도라고 조사된 바 있다.

다만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는 신규 계약의 숫자를 보면 iOS와 안드로이드의 비율은 49.2 % vs 45.8 %로 iOS가 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2013년 9월부터 일본 가입자 수의 50%를 점유하고 있는 DoCoMo가 아이폰을 판매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iOS의 기세는 더욱 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일본 모바일 시장에서 스마트폰의 점유율은 37% 정도 (2013년 3월 기준)


▲ 일본 스마트폰 OS 점유율의 변화 추이


▲ 스마트폰의 신규 판매 비율은 iOS가 더 높다.



그런데 문득 하나 궁금한 점. 2009년 11월 28일 첫 아이폰이 출시된 이래, 불과 3~4년만에 한국의 모바일 시장은 스마트폰이 점령했다. 그런데 일본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아직 40% 미만, 한국과 달리 전세계 스마트폰의 주요 시장 중 한 곳인 일본이 왜 이렇게 점유율이 낮을까?

"일본 모바일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일본에서 흔히 케타이(피처폰)라 불리는 기기들은, 해외에서 떠올리는 피처폰과 달리 상당히 높은 성능과 사양을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일본에서는 스마트폰이 없어도 피처폰의 iMode를 통해 인터넷을 자유롭게 즐겼고, 앱을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는 것도 상식이었다.

즉 피처폰으로도 충분했으니 굳이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넘어가야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피처폰은 공급자들이 휴대폰 산업의 최고 위치에서 생산 및 콘텐츠의 전송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었는데 반해 스마트폰은 공급자들의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도 있었다. 일본의 상황에 맞게 시스템을 정비하고 적응하는 것에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 일본은 피처폰을 보통 '케-타이' 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휴대(携帯)인 'けいたい'와 같은 말, 한국어로 치면 휴대폰이다. 이후 스마트폰 못지않은 높은 사양에 다양한 기능까지 함께 갖춘 피처폰들이 출시되었는데, 이런 기기들이 ガラケ- (가라케 - 갈라파고스 케타이)로 불리면서 스마트폰의 도입을 늦추는 시장이 되었다. 위의 모바일 점유율 표에서 언급된 가라케가 바로 이런 기기들을 뜻한다.

닌텐도, 소니, 세가, 스퀘어에닉스... 게이머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일본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비디오 게임의 왕국이다. 그러나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비디오 게임 못지않은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해리슨 COO는 "이미 일본에서조차 모바일 게임이 비디오 게임을 뛰어넘었다."며 통계를 보여주었다.

"게임 잡지 출판사인 엔터브레인이 지난 5월 2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2년 일본 게임 시장의 규모는 9976억 엔(한화 약 11조원)으로 전년 대비 15.3%가 성장하며 사상 최대 규모가 되었다. 그런데 가정용 게임 시장(게임기 및 게임 소프트의 합계)의 규모는 0.1% 증가한 4833억엔에 그쳤다.

반면 온라인 (GREE나 DeNA 등 모바일 및 SNS 게임 포함) 게임 시장의 규모는 4943억 엔으로 전년 대비 35.5%나 성장했다. 매출 규모로 보자면 이미 가정용 게임을 넘어선 것이다. 올해 2013년은 퍼즐앤드래곤을 필두로 모바일 게임들이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고, 내년부터는 모바일 게임이 가정용 게임을 압도하는 시기가 시작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희망적인 예측이 많지만 모바일 게임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 못지않게 경쟁도 치열하다. 한국의 경우 서서히 레드 오션이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는데, 일본 게임 시장은 어떨까? 해리슨 COO의 설명에 의하면 '여전히 블루 오션이지만, 경쟁도 치열하고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올해 3월 일본의 스마트폰 보급율(37%)을 생각해보면 여전히 가능성이 많은 블루 오션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난 1년여의 폭발적인 성장때문에 대형 게임 업체들 역시 모바일 게임의 가능성을 인정했고, 차츰 차츰 모바일 게임에 힘을 쏟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LINE 역시 게임 사업에 적극적이기 때문에 최근 일본의 앱스토어 및 구글 플레이 순위를 확인하면 상위권은 대부분 대형 게임 회사들이나 LINE 계열의 게임들이 차지하고 있다.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비용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중소 게임 업체들의 성공은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 비디오 게임은 제자리, 온라인(모바일 및 SNS 포함)은 폭발적인 성장! (출처: 패미통 게임백서)


▲ 일본에서 LINE과 LINE게임의 인기는 명불허전!



말이 나온 김에 일본의 LINE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한국은 카카오 게임하기를 빼놓으면 말이 안될 정도로 점유율이 높은 편인데, 얼마전 일본 LINE에 등록된 한국의 게임 포코팡이 엄청난 성장때문에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일본 스마트폰 이용자들 중의 90%가 LINE을 이용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당연히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현재 가장 인기있는 LINE 게임인 '포코팡'은 잠깐이긴 해도 퍼즐앤드래곤의 매출을 넘어서기도 했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iOS와 구글플레이의 인기 게임들을 살펴보면 LINE 계열의 게임들이 항상 상위에 있다. 다만 아직 한국처럼 독점에 가까운 형태는 아니다. 전면적으로 게임을 받아들인 카카오에 비해, LINE은 등록을 신청한 게임들의 99%가 거절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로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LINE의 영향력은 한국의 카카오 게임하기 못지않다. 일례로 일본의 게임 업체들 사이에서는 LINE과 같은 날짜에 게임을 출시하지 않는다는 규칙(?)이 있다고 한다. LINE 계열 게임이 출시되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다운로드를 기록해서 바로 인기 1위를 차지해버리니 정면 대결은 피한다는 것이다.

일본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어떤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을까? 최근의 트렌드에 대해 묻자 네이티브, 하드코어, 해외 게임의 진출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특히 일본은 과거 피처폰에서 맹위를 떨쳤던 브라우저 기반 앱들 대신 빠른 속도로 네이티브 앱들이 출시되며 시장이 재편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네이티브 앱들이다. 피처폰 시절의 GREE나 DeNA는 브라우저 기반의 카드 배틀 게임들을 많이 출시했었는데, 지금은 네이티브 앱들이 대부분이다. 두번째는 하드코어 게임이다. 1년 넘는 시간과 수억엔 이상의 비용을 들인 정통 RPG 풍 게임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데, 체인 크로니클이나 브레이브 프론티어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은 해외 게임들의 일본 시장 진출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Koramgame은 일본에서 TV CM을 진행할 정도로 상당한 홍보 비용을 지출하면서 MMORPG 게임들을 출시하고 있다. 올해의 도쿄 게임쇼에도 한국 및 중국의 게임업체들이 많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



▲ 중국 게임 사업 컨퍼런스(CGBC)에 참여해 발표중인 해리슨 류 COO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 해리슨 COO는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이 비디오 게임 못지않은 장점을 갖춘 매력적인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의 보급률을 보면 일본은 앞으로도 매력적인 시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특히 캐쥬얼 게임들의 가능성이 크다. 다만 NDS나 PS VITA같은 게임기들과 비교해도 크게 뒤쳐지지 않는 재미를 제공해서 하드코어 이용자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용자를 얻기 위해 들여야할 노력이 증가하고 있으니 LINE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고, 일본에서 해외로 또는 해외에서 일본으로 진출하려는 활동도 활발해질 것이다. 일본의 모바일 게임 시장은 일방향에 가까웠던 일본의 비디오 게임 시장과 달리 훨씬 더 글로벌한 가능성을 갖춘 시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일본의 게임 시장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개발사가 있다면, 어떤 점이 가장 중요할까? 피타야 게임즈는 퍼블리싱 사업 역시 준비하고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국의 게임 회사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일본의 문화와 게임 시장을 이해하는 컬쳐라이즈, 그리고 현지에 맞는 운영을 해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한국에서 개발되는 모바일 게임들의 퀄리티는 분명히 좋지만, 전체적인 디자인이나 과금 포인트 등에서 적절한 조언을 받는 것이 좋다. 그래야 좀 더 쉽게 일본의 게이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또한 게임을 출시하고 나서 이용자들의 접속이나 행동 데이터를 확인히고, 지속적으로 게임을 수정해나가면서 시기적절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피타야 게임즈도 오랜 기간 동안 일본 시장을 위한 게임 개발 및 운영과 퍼블리싱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