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제게임컨퍼런스(KGC2013)’의 마지막 날, 리그오브레전드와 언피니시드 스완의 아트디렉터 임호교씨와 함께 비디오게임의 아트와 디자인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한국 게임시장의 비전을 토론하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임호교씨는 “반갑습니다. 저는 LA에서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트 디렉터 일을 하고 있으며 굉장히 도전적이고 특별하면서 모든 유저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아트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의 소개로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자신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fox애니메이션에서 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영화사가 문을 닫게 되고, 같이 일하던 다른 사람들은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나 ‘픽사’ 같은 애니메이션 기업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어릴 때 오락실에서 즐겼던 게임들을 만들어 보고 싶은 꿈이 있었고, 그 때문에 게임사에 취업하기로 했다고 한다.

서커펀치라는 회사에 처음 취업했을 때 직원이 10명도 채 되지 않고, 캐릭터 디자인조차 없었는데, 어떻게 더 만화 같고 컬러풀 한 게임을 만들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도둑질하는 게임이라 배경이 굉장히 어두워서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색감을 주고 컬러풀하게 광원효과를 사용하며 캐릭터 자체에 아웃라인을 주어 배경과 캐릭터가 섞이는 것을 막았다고 설명했다.



6~7년을 서커펀치에서 일을 했고, 이곳에서 배운 것이 많다. 아트 팀이 3명밖에 없었지만, 게임아티스트라기보다는 만화가에 가까웠다. 만화적인 배경 때문에 특별한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잠 못 드는 시애틀에서 깨어나기 위해 LA의 계신 부모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때 유비소프트 같은 거대 회사들과 면접을 자주 봤지만 1%가 부족한 무언가를 느낀 그는 1여 년간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라이엇 게임즈라는 회사와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설립된 지 한 달도 안 된, 스튜디오라고 볼 수도 없는 창고같이 생긴 곳이었다. 직원은 3명, 브랜든 벡과 마크 메릴 그리고 리드 프로그래머인 닐 패트로우 세 명밖에 없는 작은 회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순간, 그들의 비전과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굉장히 임호교씨 자신을 믿고 원하는 것을 느껴, 단 3일 만에 결정을 내리고 라이엇 게임즈에 입사하게 되었다.



Passion 열정
처음 라이엇 게임즈의 로고나 리그오브레전드의 로고도 만들면서 회사의 살림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제 막 시작한 회사이기 때문에 엄청난 아티스트보다는 열정 있고 패기 있는 젊은 인재들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턴제도를 시작했는데 그렇게 뽑힌 사람 중 단 한 명도 베테랑이 없었다.

그 인턴들에게 시키는 일만 할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표출하라고 요청했으며, 그러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길잡이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 열정이 가득하다 보니 일주일간 집에 들어가지 않고 데모를 만든 적도 있을 정도였고, 그런 점 들이 회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개발자의 처지가 아닌 유저의 입장에서 항상 보고 일을 해왔으며, 자신이 작업한 결과물들도 같은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나 디자이너 등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피드백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유저들의 입장을 고려해봤을 때 캐릭터가 눈에 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 그는 “굉장히 안 좋은 컴퓨터로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뛰어난 그래픽은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유저들이 잘 이해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Ownership

라이엇게임즈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임호교씨 자신도 주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부딪쳐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이 회사에 입사해 출시할 때까지 전쟁터에서 일하는 기분이었으며 회사가 작았기에, 아웃소싱 디자인, 마케팅 아트 등 14분야 이상의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오너쉽을 가지고 일하는 부분을 직원들에게 교육하고, 리더들의 리더쉽을 키워주는데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밝힌 그는, 이런 것들이 얼마나 회사에 크게 작용하는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Experience

많지 않은 경력이지만 그동안 일을 해왔던 회사들이 작은 회사로 출발했으며 이미 커다란 회사보다 처음 들어가 회사가 발전해나가는 모습과 함께하는 것이 굉장히 즐겁다는 그는,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잠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입사한 곳이 ‘자이언트 스패로우’라는 회사였는데 이 회사는 소니 본사내의 조그마한 공간을 빌려 지원을 받는 회사였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년간 게임을 개발하면서 아트가 하나도 없고, 줄기들만 가득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소니 자체에서 일정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프로젝트를 취소하겠다고 통보했고, 그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여러 아트를 시도해 봤는데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어느 날 가구점에서 침대를 보고 영감을 얻은 그는, 하얀 배경에 칼라풀한 포인트를 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생각해서 지금의 아트들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Art Direction, Decesion

언피니시드 스완 안의 여러 챕터 중, 스타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짧은 프로덕션 타임들이 있다. 그런 변화된 스타일 챕터를 만들어 내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었다. 2~3주 안에 스타일링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안된다는 말은 해선 안 되기 때문에, 머릿속으로 많이 그려보고, 시도했었던 것.

모델러 한 명과 텍스쳐 한 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팀이었었고, 레벨 자체가 매우 커서 게임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자꾸 할 일이 늘어나 어려움을 느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떤 산업이든 간에 일을 진행할 때는 전쟁터로 생각하고 있다는 임호교씨는, "우리는 프로이기 때문에, 결과물이 한 번에 나와야지 자주 왔다갔다할 수 없다. 더욱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이 게임산업의 재미있는 점"이라며 자기 생각을 전했다.

게임 자체가 리그오브레전드와는 많이 다르므로 인디게임 자체의 독창적인 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무너져가는 회사를 일으켜 세워야 했으며, 시간에 쫓겼기에 결단을 내리는 것들이 중요 했다. 그리고 처음 리그오브레전드를 개발할 당시 했던 실수들을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고 한다.




Dream

아버지가 디자이너였던 임호교씨는, "어릴 때부터 이상한 도형이 있는 책이나 이미지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며 자신이 어떻게 디렉터의 길을 걷게 됐는지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는데도, 주위 사람들보다는 더 낫더라"고 말했다.

집에서 내놓은 자식에 가까운 삶을 살았고 노는 게 더 좋았다는 그는, '버츄어 스트라이커'를 접하는 순간 이런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평소의 행동 때문인지 아버지는 자신을 믿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부를 위해 일부러 친구들이 없는 지역으로 떠나고 폭스사와 관련된 학교에 입학한 그는 폭스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그 학교의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까지도 폭스사에 들어가고 싶어했을 정도로 엄청난 경쟁률과 난이도를 자랑했기에 그런 임호교씨를 모두가 비웃었다고 전했다.

폭스사에 취업하기 위해 매일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영화사에 3~4통씩의 전화를 했는데, 고맙게도 그 전화를 항상 상냥하게 받아주었다는 것.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는데 "네가 정식직원이 되었으며, 내일부터 출근하면 된다"는 통화내용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의 기분을 잊을 수 없다는 임호교씨는 파블로 피카소의 명언 'Everything you can imagine is real'을 볼 때마다 전율이 일어난다며,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오너쉽을 가져서, 스스로 리더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KGC에 초청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꺼내며, 언젠가는 5000년의 역사를 지녔고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이 정말 많은데 한국을 대표하는 게임을 만들어 보고 싶고", '어? 저거 한국게임이네.", "저거 한국 게임이야!" "이런 소리를 듣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