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만난 디자이너 유형에 그를 대입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누구나 아는 그림체의 소유자도 아니고, '뜬 게임'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냉정하게 푹 묻힌 AD라고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 제가 인터뷰하지 않았겠죠. 그런 사람이 조이시티 총괄 아트 디렉터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요.

장희철 AD는 게임보다는 영화 쪽에서 이름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천 만 관객을 넘어서며 국민 영화 반열에 오른 '괴물' 아시죠? 그 괴물을 디자인한 사람입니다. 또, 최근 개봉한 '설국열차'의 콘셉트 아트도 담당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마음껏 선보인 바 있죠.

하지만 이번 인터뷰는 그의 화려한 약력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부분에 눈을 맞췄습니다. 장희철 AD가 몸담고 있는 조이시티의 채용 기간에 맞춰 진행된 본 인터뷰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 및 뛰어난 AD가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무엇인지를 담았습니다. AD가 아닌, 훌륭한 AD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본 인터뷰를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솔직하게 말할게요. 어두운 그림 성향 때문에 그런지 모르겠는데. 음, 게이머라면 다 알 만한 AD는 아니에요. 그러니까... 자기소개가 절실하다는 말이지요.

맞아요. 제가 게이머분들께 대중적이지는 않아요. 음, 전 장희철이라고 하고요. 현재 조이시티에서 총괄아트디렉터로 일하는 중입니다. 대학 때 전공은 의상 디자인이었고... 그림이야 어렸을 때부터 쭉 그렸고요. 제가 중학교 때였을 겁니다. 당시 한 컴퓨터 잡지의 세션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거기서 군대가기 전 까지 쭉 그림을 그렸고 덕분에 일찌감치 게임업계를 알게 됐고 기회도 많이 왔지요.

제대 후 애니메이션 회사 다니기도 하고 광고 쪽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조이시티(당시 회사명 JCE)에 와서 '프리스트'라는 온라인 게임의 원화를 담당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참 운이 좋았던 게, 게임 원화 뿐 아니라 다른 이것저것 일도 했거든요. 아트센터 구축할 당시 큰 역할도 맡았고 '프리스타일' 라이브 할 때 지원하는 일도 겸했고요. 솔직히 힘들기는 하지만 배우는 게 많고... 재미 있었어요.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시네요.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지스타 때는 부스 콘셉트도 저희 쪽에서 잡고 설치물, 홍보물 같은 것 디자인도 저희 담당이었어요. 그냥 원화 그리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게임회사에 필요한 전반적인 '아트'를 맡는 거라 보면 될 거예요. 흠... 2007년이었나? 그 때 지스타 나갈 때 조이시티는 오락실 콘셉트로 나갔는데 그거 디자인하느라 고생한 기억이 나요. 당시 출품작이었던 '에어로너츠' 홍보 영상 만들고, 상품으로 나눠 주던 모형 비행기 디자인도 했고.

일이 너무 많은 것 아니에요?

많기야 하죠. 하지만 조이시티 조성원 사장님께서 저희 팀에 원하는 게 그것이기도 하고, 또 지원도 엄청 잘 해주세요. 회사 내에서 아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시는 분이기에 아트 센터를 별도로 구성할 생각도 하신 거고요. 이게 다른 회사에선 아직 많이 보이지 않는 직군입니다. 기본적으로 최고 경영자의 마인드가 해당 분야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르거든요. 지원이 돼야 결과물이 나오는 거니까.

다른 회사에는 이런 아트 센터 개념이 없나요?

정확히 말하자면 아트 센터는 저희도 없어요. 예전과 다르게 개발 환경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저희도 아트 센터라 딱 정한 게 아니라, 현재 상황에 어울리는 조직을 갖추려 하는 겁니다. 지금 제가 구상하는 건 아트 센터의 장점과 정신을 계승하는 소규모 조직을 다양하게 두는 거죠. 이게 더 실용적이니까.

궁극적으로는 저희 회사의 모든 아티스트가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단지 게임 개발만 성공시키는 걸 넘어, 아티스트로써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죠. 그래서 이번 조이시티 AD 채용 때도 그저 아티스트로서 성공할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조직을 동시에 성공시킬 사람을 더 유심히 보고 있어요.

이런 개념의 조직이 국내에선 보기 어렵지만, 외국엔 많지 않나요?

그렇죠. 대표적인 회사가 애플입니다. 지금 애플의 부사장인 조나단 아이브(Jonathan Ive)라고 있어요. 잡스가 살아있었을 때 제품 디자인하고 앞으로의 방향성 같은 걸 제시하던 사람이었어요. 아마 이 쪽 분야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겁니다. 또 픽사에도 담당자가 있고요.

저희 직종의 기본원칙이 그런 겁니다. 각기 다른 직군을 이어주고, 서로 존중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거죠. 우리나라는 일단 결과물이 중요한 구조라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여유가 생기는 추세라 차츰 수면위로 떠오르는 직종이예요. 왜, 테크니컬 아티스트(TA)도 예전에 비해 인식 훨씬 좋아졌잖아요. 유능한 분들도 많고.

[▲ 그의 아트 감각이 묻어난 '프리스트 온라인']


작업물에 대해 이야기좀 해 볼게요. 온라인 게임 '프리스트' 원화가, 영화 '괴물'에서 괴물 디자인... '설국열차'에서 열차 디자인... 게임보다 외부 활동 경력이 더 화려한 것 같은데요.

진짜 부끄러운 일이죠. 본업인 게임 쪽에서 내세울만 한 커리어는 없는게. 영화 쪽은 운이 좋아 약간 알려지긴 했는데...그래도 부끄러워요. 게임 쪽에서 더 유명해질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해야죠.

디자인 참여하신 영화들 보니 전부 봉준호 감독 작품들인데요. 뭔가 계기가 있었나요?

괴물이 언제더라... 2003년인가 2004년 초에 봉준호 감독님께서 그림 그리는 사람을 찾았는데 어떻게 제게 연락이 왔어요. 친구 통해서. 그 땐 제가 정말 적극적으로 해보겠다고 했죠. 괴물 디자인하는 걸 너무 하고 싶었어요. 열심히 하다 보니 감독님께서 절 좋게 봐 주신 것 같아요. 괴물 제작하는 중에 '희철아. 이거 다음 작품으로 구상중인 거야. 설국열차라고 하는데, 이것도 같이 해 볼래?'라고 하셨고, 그게 쭉 이어진거라 보면 돼요.

작업물들이 대체로 약간 어두운 분위긴데, 취향이 그 쪽이신 거예요? 밝은 느낌의 작품은 없었는지.

제 작업물이 좀 어둡기는 해요. 어릴 때부터 음악 취향이든 패션이든 좀 어두운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지금이 그나마 많이 순화된 건데.(웃음) 그런 게 그림에도 반영된 거겠죠.

그리고 사실 저 귀엽고 밝은 것도 좋아해요. 입사 초기 제가 디자인을 총괄했던 '에어로너츠'도 진짜 밝은 분위기의 게임이었고요. 그림으로써 어느 한 쪽을 편애한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확 어둡거나 확 밝거나 그런 상반된 것을 좋아하는 것 뿐이죠.

이건 사담이긴 한데, 봉준호 감독님은 제가 같이 일한 경험을 떠나 정말 존경하는 사람이예요. 그 분의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한 가지 감정에 빠지지 않아요. 무서운 듯 흘러가다가 재밌는 장면 탁 터지고 그러잖아요. 그런 느낌이 제가 추구하는 거랑 비슷해요.

'프리스타일' 작업에도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요.

'프리스타일1'에 일장춘몽이라는 맵이 있는데 그거 프로모션 영상 만들었어요. 그래피티 느낌 나도록 연출하는 데 신경 많이 썼죠. 제작 과정도 일반 영상 제작 방식과 달랐는데 결과는 좋게 나온 것 같아요. 당시 아트 센터 팀원들과 같이 만들었는데, 어떻게보면 그 영상 속에 우리 조이시티만의 철학과 개성이 묻어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작품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죠.

▲ 장희철 AD가 제작에 참여한 '프리스타일' 일장춘몽 프로모션 영상


오늘 인터뷰 하기 전에 자료를 좀 봤어요. 영화 매체와 인터뷰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 중 한 매체에서 설국열차 콘셉트 아트를 게시했는데...뭐랄까. 냉동생선 자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참고로 제가 설국열차 디자인을 총괄한 것은 아니에요. 저는 여러 시안을 낸 건데 그 중 몇 개가 기사에 실린 거겠죠. 최종 디자인은 제가 아닌 다른 훌륭한 아티스트가 하셨어요. 음... 제가 낸 설국열차 초안은, 설원위 고래 같은 느낌이었어요.

설원 위 고래요?

고래 잡아서 설원에서 도륙하고... 그 붉은 색과 흰색이 강하게 대비되는 그런 느낌을 주려 했어요.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갈라지고 단면 보여지고 잘려나가고 이런 느낌들을 나타내려 한 겁니다. 냉동참치라면... 잘 보신 것 같아요.(웃음)

작업물이 뭐랄까. 어둡고 약간 그로테스크해서... 'HR 기거(에일리언 디자이너)'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 분과 제 작업 성향의 테이스트가 비슷하긴 해요. 분명 좋아하기는 하지만, 음... 존경하는 그런 느낌은 아닌 것, 아... 이게 말로 설명하기 어렵네요. 그 왜 있잖아요. 좋아하는 것과 존경하는 건 다르잖아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그럼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작가가 누구죠?

흠... 진짜 너무 많은데. 굳이 한 명만 꼽으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요.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이 마음에 들어요. 훌륭한 예술가로서 필요한 게 있다면 그 중 하나가 바로 일관성이라 보거든요. 그 부분은 현존하는 아티스트 중 꼽을 만 한 사람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게임 쪽에서는... 아이덴티티게임즈의 '박정식' 이사님 좋아해요. 그 분이 '드래곤네스트' 개발 총괄하셨는데, 일단 그림을 너무 잘 그리세요. 프로듀싱 능력도 출중하시지만. 조이시티에서 '에어로너츠' 만들 때도 그 분께서 많은 조언을 주셨어요.

[▲ 이게 바로 설국열차의 초기 콘셉트 아트 중 하나


영화 쪽과 게임 쪽, 작업 방식에 차이점이 있을 것 같아요. 회사나 감독의 요구도 다를 것이라 생각되거든요.

음... 근본적인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영화 쪽에서는 감독님이 원하시는 그림 그려드리는 거고, 게임 만들 땐 프로듀서나 기획자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거니까. 게임이든 영화든 결과물이 끝까지 나올 수 있도록 책임있게 하는 거죠.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전달되는 과정 같은 건 조금 달라요. 영화는 콘셉트 일러스트를 그린 뒤 제출하고, 그 뒤는 나머지 스탭들이 하는 거지만, 게임은 좀 더 복잡해요. 그림이 완성이 아니잖아요. 게임 만들 때 아트의 최종 결과물이라면 3D리소스 만들어 프로그래머 위해 구현해놓는 게 일반적이예요. 이게 여러가지 협업이 거쳐져야 되니까 영화보다는 과정이 길죠.

두 산업쪽에서 일을 하면서 도움되는 것도 많았어요. 영화 쪽 아티스트가 자주 하는 것 중 하나가 모형 만드는 건데, '에어로너츠'만들 때 이걸 써먹었어요. 미리 전장 모형을 만들어 본 거죠. 그 다음에 배경 아티스트팀과 상의 했죠. 이렇게 만들어볼 건데 너희 생각은 어때. 이러면서요. 이 방식의 장점이 중요한 기획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다는 거죠.

팀원들이 '능력자'여야 된다는 전제조건이 붙지 않나요.

그렇죠. 하지만 저는 이게 저희 회사만의 장점은 아니라고 봐요. 어떤 사람은 프로그래머인데 악기 잘 다루고, 기획자면서 그림도 잘 그리는 그런 사람 우리나라에 진짜 많거든요. 원화가인데도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 능력 갖춘 분들도 있고요. 그분들이 서로 숨겨진 장기를 알아 보고 회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다른 회사들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비용 발생으로 인한 오해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전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넌 아티스트니까 캐릭터만 잘 그리면 돼.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발전하면서도 다른 부분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데 너무 아깝잖아요. 그런 분들이 저희 회사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거죠.



아, 이번 인터뷰가 조이시티 채용 시즌과 관련해서잖아요. 조이시티 AD를 뽑을 때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보나요?

실력이나 경험은 기본이겠죠. 그건 다른 회사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음... 그보다 저희는 게임 아트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자부심을 갖췄는지를 봅니다. 서로 도와가며 정말 멋진 작업물을 내는 사람이 최고죠.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회사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것도 소홀하지 않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일반적인 채용 기준보다 더 높은 것처럼 들리는데요.

아니에요. 훌륭한 사람이라면 저희는 없던 TO도 낼 준비가 됐어요. 실제로도 저희가 블로그 같은 데 둘러보면서 '이 사람 괜찮다'싶으면 연락 주고 그렇게 면접보는 사람 비율이 훨씬 많아요.

지난 주에 어떤 아티스트를 본 적 있는데, 아직 신입이라 포트폴리오가 딱 3개 뿐이더라고요. 이 정도로는 구체적인 실력 파악이 어려운 경우죠. 근데 딱 느낌이 오더라고요. 자기소개에 쓰인 글만 봐도 이 사람 열정이 대단한 사람인 걸 단번에 알 수 있었어요. 인사팀에 보고했죠. 이 사람 알아봐야 한다고. 그런데 막상 면접날되니 연락이 오더라고요. 다른 회사 합격하게 됐다고.(웃음) 아무튼 그 정도예요. 저희 채용기준 진짜 안 높아요. 오히려 그런 분들을 찾아내는 게 더 어려운거죠. 많은 분들께 열려있으니까 고민하지 말고 도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이시티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면 좋은 점, 이런 부분을 언급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저희 회사가 타 게임사에 비해 이직률이 낮은 편입니다. 그 이유론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라고 봐요. 제 개인적인 목표도 그것과 연관되어 있거든요. 한 회사에서 처음과 끝을 보고 은퇴하는 겁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조이시티에서는 '이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회사 차원에서나 개인 차원에서 뭔가 발전하고 완성되어가는 모습을요. 회사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줬어요. 그러니까 제 스스로도 뭔가 성과를 내고 싶은 겁니다.


마지막으로 게임 아티스트 분야에 꿈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조언 한 마디 부탁합니다.

인터뷰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항상 마지막 질문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웃음) 음... 제가 최근 느끼는 건데, 게임 아티스트 직종이 예전에 비해 사회적 위상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요. 확실한 직업의식도 갖춰졌고, 일찌감치 공부하는 분들도 많으시고요. 교육환경도 엄청 발달한 것은 말할 것도 없죠.

그 때문에 신입이고 취업 준비생인데도 불구하고 왠만한 경력자 못지 않은 감각 가지신 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분들에게 부족한 것은 딱 하나예요. 경험이죠. 이것만 없지 사실, 다 준비된 분들이거든요. 이 부분을 발달시키기 위해선 다른 직군과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해요.

예술가로서의 자존감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소양이 있어야한다는 거죠. 그게 없다면... 게임 아티스트로서는 모르겠는데 훌륭한 아티스트는 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걸 꼭 기억하고 준비하시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조이시티, 2013 하반기 신입 및 경력 공개채용 실시

[▲ 소통할 줄 아는 사람들의 많은 지원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