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폐막한 지스타 2013은 지난 해에 비해 볼거리, 놀거리가 줄었다는 의견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협소해진 출품작 라인업 때문이다. 하지만, 빅 타이틀 출시도 꽤 많았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의외의 작품도 몇몇 나온 이번 지스타에 그런 말이 어울리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쨌든 누리스타덕스의 '와일드버스터'는 후자에 가깝다. 바로 옆부스였던 블리자드가 공룡급 타이틀을 잔뜩 선보였기에 그늘에 가려진 감이 없잖아 있는 건 사실. 하지만, 대규모 게임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을 빼는 상황에서 시연버전을 들고 참가했다는 것 자체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 타협따윈 없다. 개성있는 분위기에 몰이사냥 맛은 진국!

일드버스터의 지스타 2013 시연 버전은 정식 버전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일단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 되었으며, 이로써 짧은 시간 내 빠른 레벨업이 가능했다. 단기간에 게임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개발사의 의지가 느껴진다.

처음 와일드버스터가 공개될 때, SF 콘셉트의 디아블로 스타일의 액션 RPG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막상 조작 방식이 공개되고 난 후에는 이러한 의견이 사그라들었는데, 키보드로 이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다. 스팀 무료게임인 '에일리언 스웜'의 조작 방식과 같다. 다수의 몬스터를 모으고 모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쾌감만이 디아블로와 비슷한 정도라 생각하면 되겠다.

몰이사냥이 즐기기에는 쉽지만, 제대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여러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 몬스터가 우르르 쏟아져야 하는지부터 봐야 하고, 이에 따른 유저의 대응 동선도 미리 그려봐야 한다. 또 타겟팅 스킬, 논타겟팅 스킬이 조화롭게 구성되어야만 하며, 움직이면서 사용 가능한... 혹은 움직일 때 발동되는 스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체크해야 한다. 기존 아류작들은 이러한 부분을 간과한 게 다수였고, 결국 '디아블로가 그래도 낫네'라는 소리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와일드버스터는 세계관에서 오는 특성으로 해당 부분에 강점을 발휘한다. 근미래, 그리고 칼보다 총이 자연스러운 SF 배경은 대담한 스킬 디자인을 쏟아내도록 만들었다. 또, 범위 공격을 기반으로 한 논타겟 스킬들도 다수 포진되어 액션의 맛을 살렸다. 즉, 접근 방법은 다르지만 몰이사냥 맛은 디아블로가 보여준 그 느낌과 거의 흡사하다.

[▲ 와일드 버스터 공식 플레이 영상]

▲ 몰이사냥 느낌은 매우 뛰어난 수준


■ 그래서 더 아쉬운 타격감의 부재

지만 거기까지다. 이 말이 곧 와일드버스터의 타격감을 대변해주지는 않는다는 말씀. 시원한 맛은 있지만 손에 착 감기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피격시 유저에게 전해지는 피드백이 너무나 적기 때문이다.

몬스터 디자인은 개성이 꽤 강한 편으로, 이는 와일드버스터의 장점으로 오롯이 승화됐다. 괴수, 마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온라인 게임에 비하자면, 와일드버스터의 로봇 몬스터들은 신선도 면에서 만점을 줄 만 하다. 하지만 움직임까지 로봇처럼 뻣뻣한 게 문제다. 꿈뻑한 움직임은 '저 놈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의지를 전투 전부터 깎아낸다.

과묵한 모션은 죽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사지분해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최소한 죽을 때 나오는 화끈한 제스처가 필요했다는 거다. 스킬 효과는 모니터를 부숴버릴 만큼 화끈하다. 그런데 그걸 맞은 적들은 마치 뜨개질을 하는 것처럼 서정적으로 죽는다.

액션 RPG에서 타격감을 살리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며, 이 중 몇가지는 공식처럼 굳어졌다. 대표적인 게 타격시 화면 흔들림을 주거나 살짝 경직 효과를 삽입하는 것이다. 이외 조금 더 비용이 많이 드는 방법으로는 몬스터의 사망 모션을 바꾸거나, 보다 현실적인 물리엔진을 도입하는 것. 하지만 와일드버스터는 세 가지 모두 없거나 너무 약하다. 이 부분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

▲ 스킬 효과는 매우 화려하지만...

▲ 이펙트에 파뭍혀 캐릭터가 안보이는 부분도 개선이 필요


■ 기본기는 탄탄... SF 불모지인 한국 게임시장에 시작의 발자국이 되기를 바라며

터페이스는 게임의 전체적인 콘셉트에 잘 부합하나 특색이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기존 MMORPG에서 흔히 몰 수 있는 프레임에 SF 스킨을 씌운 정도. 익숙함 면에서는 가산점을 줄 수 있으나 식상함은 감점 요소다. 어차피 한국에서 SF는 모험이고 도전이다. 이 부분은 개발사가 조금 더 과감해져도 좋을 듯 싶다. 완전히 바꾸라는 게 아닌, 대규모 게임사에서 볼 수 없는 '스타일'이 필요하다는 거다.

단점만 지적한 듯 싶으나, 바꾸어 말하면 체험기에서 언급하지 않은 내용들은 거의 다 장점이라 말해도 무방하다. 보스 등장시 나오는 연출은 제법 깔끔한 모양새로 게임 진행 리듬을 조절하는 데 일조한다. 급하게 만들지 않고 하나하나 열심히 다듬었다는 증거로도 활용된다. 한마디로 게임의 가치를 높여준다.

개발에 사용된 메인 엔진이 유니티 엔진이기에, 언리얼이나 크라이 엔진과 비교하면 다소 그래픽의 무게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싸구려 티는 나지 않는다. 또, 몬스터나 배경 디자인이 특징이 강해 세세한 단점은 금세 잊도록 만든다. 그럼 결론은 간단하다. 기존 게임 대비 최적화 면에서 가산점만 남았다.

결론을 내 보자. 지금보다 강화된 확실한 손 맛만 구현된다면, 개발진과 유저가 원하는 이상에 근접하는 게임이 아닐까. 어쨌든 기본기는 좋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디아블로 스타일 핵앤슬래쉬 액션 RPG 중에서는 매우 뛰어난 편에 속한다. 또, 기본적인 콘셉트가 다르기에 아류작을 넘어서는 가치도 분명히 탑재했다.

일러스트나 게임 분위기가 국내보다는 해외에 포커스에 맞춰졌다는 게 다소 아쉽지만, 놓치지 말고 즐겨봐야 할 작품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