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eam Dark', 세상을 항해 멋지게 '한 방' 먹였다?

▲ 예선전 승리 후 본선에 진출했던 'Team Dark'의 모습


11월 23일, 패기 넘치던 아마추어 Team Dark가 일을 냈다. 판도라TV 롤챔스 16강 5회차 경기 Team Dark와 삼성 갤럭시 오존의 대결에서 Team Dark는 2세트에서 성의 없는 경기를 펼치며 불과 8분 24초만에 경기를 내줬다.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종목에서 8분 경기가 나왔다면 이상할 것이 없으나, 챔프의 성장 등이 관여되는 롤챔스에서 8분만에 경기가 끝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경기 내용도 형편없었다. 챔프의 픽밴부터 이기겠다는 의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세 명의 팀원이 강타를 들고 1렙 인베이드에 나서기도 했다. 소환사 스펠은 그렇다 쳐도 챔프도 1렙 싸움에서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렇게 헌납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쳤고, 기껏 구매한 아이템은 전부 되팔고 와드를 구매해 맵을 아름답게 수놓기까지 했다.

이 경기가 고의패배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클템' 이현우의 헌정픽이었다, 팬들에게 즐거운 경기를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여기서는 논외로 치자. 어제의 경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프로답지 않은 경기에 화가 났다."는 반응과 "집단트롤을 방송경기에서 보게 되어 웃겼다."란 반응이다.

어쨌거나 Team Dark는 자기들의 바람대로 경기를 순식간에 내줬고, 당연히 엄청난 화제에 올랐다. '팀 다크'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까지 장악하며 팬들의 많은 관심을 끌어냈다. 악행으로 인한 관심도 관심이니까, 어쨌거나 그들은 그들의 바람대로 많은 팬들에게 멋지게 '한 방' 먹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 e스포츠의 태동,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아름답기에 현재가 있다

▲ 게임에 스포츠란 개념을 정립한 최초의 e스포츠 스타리그


그러나 롤챔스 무대를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현재 e스포츠의 주력 종목으로 거듭나고 있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지금의 위치에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었다.

1999년, 스타크래프트가 전국을 휩쓸고 신드롬을 일으킬 당시의 이야기다. 마치 지금의 리그 오브 레전드 열풍과도 흡사한 일면이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온게임넷도 없었고, 게임 중독법이 입안될 정도로 게임 산업이 크게 번창하지도 않았을 시절이었다. 오히려 당시의 게임은 '전자오락'으로 비하당하며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절정에 달할 시절이었다.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인 투니버스에 한 PD가 있었다. "현재 열풍이 불고 있는 스타크래프트를 방송 소재로 삼아서 리그를 진행하고, 그 경기를 중계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물론, 이런 무모한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계획은 착착 진행되었다. 스튜디오를 구할 수 없어서 투니버스 지하실에 탁구대를 올려놓고 그 위에 천을 덮어 탁자를 만들었다. 관전을 제대로 구현할 기술도 없어 경기 화면을 그대로 내보내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팬들의 열띤 호응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 성공을 기반으로 게임이라는 소재가 투니버스에서 분사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걸을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온게임넷이 개국했고, 여기서 언급된 PD가 바로 온게임넷의 황형준 전 국장이다. 현재 롤챔스를 주관하는 온게임넷의 기틀은 이렇게 세워진 것이다.

'우리가 이 판을 세웠으니 너희는 수긍해야 해'라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초창기 게임의 부정적인 인식을 덜어내는 데 '스포츠맨십'이 크게 작용했다. 승리를 위해 노력하고, 정당한 승부를 약속하며 그로 인한 경기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이것이 구 스타리그가 가졌던 정신이었다. 이렇게 e스포츠의 태동이 시작되었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 '스포츠맨십'은 아마추어에겐 해당 사항 없나? 우리 모두에게 통용

▲ 23일 사태는 e스포츠 정식 종목화를 추진 중인 협회의 움직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 e스포츠 협회의 전병헌 회장은 지스타가 열리던 부산 벡스코 현장에 들러 액션플랜과 함께 몇 가지 발표를 한 바 있다. 여기서 전 회장은 "협회는 경기, 서울 지회 설립 마무리 단계에 진입"했고, "2014년은 e스포츠의 정식 종목화 원년의 해"로 삼아 대한체육회 가맹에 e스포츠 주체들과 힘을 모아 모든 역량을 쏟을 계획이라 밝힌 바 있다.

물론 선수들의 경기 한 번이 이런 대승적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도 없고 걸려서도 안 된다. 하지만 정말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Team Dark'의 행위가 재미를 위한 행동이었고, 아마추어가 벌인 짓이니 용인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는 것은 심각하다. 23일의 경기는 정당한 대결도 아니었고, 따라서 스포츠도 아니었다.

일각에서는 말한다. 'Team Dark'는 프로가 아니다. 프로가 아니니까 프로게이머로서 요구되는 덕목은 그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하지만 그들이 선 무대는 명백한 '프로'들의 무대였다. 그들이 아마추어라는 것은 관계없었다. 프로의 무대에서 프로들과 마주했다면 팬들 역시 프로다운 멋진 모습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팬들의 기대를 땅바닥으로 던져버렸다.

체육학 사전에서는 '스포츠맨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리고 있다. "스포츠맨이 지녀야 하는 바람직한 정신자세. 훌륭한 스포츠맨십을 가진 선수는 공정하게 경기에 임하고, 비정상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불의한 일을 행하지 않으며, 항상 상대편을 향해 예의를 지키는 것은 물론 승패를 떠나 결과에 승복한다."

스포츠맨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통용된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한다면 그 순간은 우리가 모두 스포츠맨이다. 아마추어라고 해서 '스포츠맨십'을 지키지 않을 권리는 없다. 물론 프로라면 더욱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겠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면제가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추어가 하는 동네 축구라면 반칙이 허용되는가? 상대에 대한 모욕이 용인되는가?

결국, 23일과 같은 사태는 게임을 스포츠로 바라보는 시선이 출전하는 선수들조차도 인식이 덜 됐다는 사례의 반증이 되어버렸다. 'Team Dark'만 특수한 사례일까? 다른 팀의 선수들은? 다른 종목의 선수들은 괜찮을까? 즉, 이 사건은 e스포츠 전체에 '스포츠맨십'의 실종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이 된 것이다.


■ '선수'는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재미보다는 감동을 위해 살아가길…

▲ 같은 시각, 강남 곰TV 스튜디오에서는 '진짜 스포츠'가 열리고 있었다


e스포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재미'임은 분명하다. 게임이 재미가 있어야 시청자들도 늘고 종목도 더욱 번성하게 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팬들이 원하는 재미가 일반 게임에서나 벌어질 법한 성의 없는 픽과 고의 죽음, 와드를 맵에 도배하는 행위 등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이런 것들은 광대놀음에 가깝다.

게임은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e스포츠는 다른 종목과는 다소 다른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프레임은 비슷하다. 선수가 있고 관중이 있으며, 스폰서를 통해 팀을 유지하고 경기에 출전해 상금을 획득한다, 승리를 위해 연습을 하고 전략을 수립한다. 이러한 과정이 승리의 환희와 감동으로 연결된다.

물론, 팬서비스 차원에서 쇼맨십이 필요하고 이와 같은 행동은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면 23일의 'Team Dark'가 벌인 행동은 팬서비스였을까? 아니면 고의적인 패배였을까? 이 부분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팬들이 더욱 잘 아는 수준이 됐다.

팬들의 수준이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낮지 않다. 팬들은 어떤 행동이 팬서비스고, 어떤 행동이 팬을 기만하는 행위인지를 익히 잘 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상대의 본진에 건물을 짓는 행위, 항복을 받아내기 전에 춤을 추는 행위 등이 세리머니이고 본진에 와드를 도배하는 것이 상대 팀에 대한 조롱이라는 것을 구분할 줄 안다.

결국, Team Dark의 팀장 이상현 선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기재했다. 사과문을 보면 초등학생인 팬이 "알리스타 너무 잘하세요. 팬이에요."란 말에 마음이 찡해졌다고 언급되어있다. 나를 바라보는 팬들 덕에 자신이 빛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셈이다.

선수들은 엔터테이너가 아니다. 선수들은 관중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관중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역할이다. 승리의 감동을 위해 당연히 실력이 선수들의 1순위 덕목이긴 하지만, 팬들의 지지 없이 선수들은 유지될 수 없다. 실력이 전부가 아님을 이번 기회에 많은 선수들이 깨닫길 바란다.

▲ 결국, 팀 다크의 팀장 이상현 선수는 사과문을 기재했다. '팬이에요'란 말이 그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