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암살자'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흰색 후드, 그리고 히든 블레이드


잠입 액션이라는 장르를 접해본 것은 중학생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2000년대 초반, 다들 '디아블로2'와 '스타크래프트'에 빠져 있을때 혼자 집에서 즐기는 콘솔게임은 꿀과도 같았다. 그리고 접한 '메탈기어솔리드'는 충격과도 같았다. '달려간다 - 썬다 - 미션성공'의 삼박자 액션에 길들여져 있던 필자의 두뇌를 환기시키는 게임이 바로 잠입 액션 게임이었다.

들키는 순간 게임오버. 듣고 보면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감시하는 눈을 피해 탁자 밑을 기어다니거나, 관물대에 숨어 적의 접근을 기다리는 그 스릴은 즐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이후로도 여러 잠입 액션 게임을 접했다. 과거의 일본이 배경이던 '천주' 시리즈와 톰 클랜시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스플린터 셀' 시리즈도 빠짐없이 플레이해봤다.

그 중학생이 대학생으로 전직할 무렵, '어쌔신크리드'를 처음 접했다. 신선했다. 복잡한 공장과 대저택으로의 잠입은 더 이상 없었다. 이번 무대는 십자군전쟁 당시의 예루살렘. 이 게임 안에서 '나'는 첨단 기계설비로 무장한 스파이가 아닌, 후드와 칼, 그리고 숨겨진 단도를 보유한 시리아 암살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암살자들의 연대기는 계속해서 출시되었다. 그 영향력은 강력했다. 이제 콘솔게임을 제법 플레이해봤노라 하는 유저들은, '암살자' 하면 흰 후드를 쓰고 히든 블레이드를 감춘 채 벽돌 건물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모습을 떠올린다. 샌드박스형 오픈월드 잠입 액션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 역시 구축했다. 양지에서는 도시의 랜드마크마저 돈으로 사버리는 초특급 물주지만, 뒷골목 음지에서는 차가운 도시의 암살자가 된다.

3편에 이르자 배경이 다시 바뀌었다. 개항기의 북아메리카 대륙. 주인공은 원주민과 영국인의 혼혈로 태어난 메스티조 청년 '코너 켄웨이'다. 사실 3편의 평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방향성을 가늠하기 힘든 난해한 콘텐츠, 다소 루즈한 진행 등이 매번 발목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어쌔신크리드를 놓지 않았다. 데스몬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이야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3편. 그 이후의 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될까 하는 기대였을 것이다.

세상을 들었다놨다 하는 4인조


인벤 강남 사무실에는 두 명의 어쌔신크리드 광팬이 있다. 지스타 기간 중 최신작이 발매된다는 소식과 함께 한정판을 사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 각자 맡은 업무도 다르고, 글을 쓰는 방식도 다르며, 살아온 환경도 다른 두 명의 기자가 써낸 '어쌔신크리드4: 검은 깃발(Black Flag)'의 리뷰. 지금부터 시작할까 한다.


JeeK(지크) : 인벤 강남 사무실의 행정보급관(?)이자 우락부락 벌크업된 체격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유발하는 장본인. 하지만 실상은 남들과 엮일 필요없이 '혼자 노는' 게임을 선호하는 조용한 게이머다. 어쌔신크리드 시리즈를 다소 늦게 접한 뒤로 광적인 팬이 되었으며, '어쌔신크리드2: 브라더후드'를 가장 재미있게 플레이한 것으로 꼽는다. 본 리뷰에서는 그 동안의 어쌔신크리드 시리즈에서 말하고자 하는 공통된 컨셉과 이번 작품에서 느낀 주관적인 감상을 풀어낸다.

Laffa(라파) : 인벤 강남 사무실의 e스포츠 기자. 평소에는 각종 경기 취재를 위해 쉴틈없는 외근을 다니지만, 언제나 가슴 속 한 구석에는 콘솔 유저로서의 소울을 불태우고 있다. '출근 - 외근 - 퇴근 - 콘솔게임'의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소시민임을 자처한다. 시리즈 중 가장 즐겁게 즐긴 타이틀은 '어쌔신크리드2: 레벨레이션'. 본 리뷰에서는 이번 작품의 콘텐츠가 전작과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시스템적으로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본다.



[JeeK의 시선] 날 때부터 암살자 될 팔자였다? 황금만능주의 해적, 에드워드 켄웨이


한 번쯤은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뒤늦게 시리즈를 접한 탓에 과거 타이틀을 플레이하느라 한동안 여가시간을 몽땅 쏟아부어야 했지만,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시리즈 전체를 아우르는 생각을 해볼 기회가 종종 있었다. 그 과정에서 혼자서만 담아뒀던 나름대로의 심오한 잡념들이 꽤 있었다.

그동안 써왔던 리뷰에서는 대개 게임의 세부 컨텐츠들에 초점을 맞춰 풀곤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게 써보고 싶었다. 이 타이틀에서, 이 시리즈에서 느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스스로도 지극히 주관적이라 여길 만큼 공감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법한 이야기들. 한 번쯤은 그런 이야기를 써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 자유를 향한 엇갈린 시선, 그 대립의 역사를 다룬 타이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나긴 이야기 속에 셀 수 없이 많은 대립과 투쟁이 자리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인권, 계급, 독립 등등 '~~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관용어구처럼 사용될 만큼 역사 속에는 무수한 갈등이 있어왔다. 그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것을 하나 꼽으라면, '자유'라는 개념에 얽힌 투쟁이 아닐까 싶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대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사람들조차도 선뜻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사전적 의미로 '자유'란, '무언가에 구속되거나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하지만 실제로 이 자유라는 단어는 굉장히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되곤 한다.

'자유'라는 단어에 대한 상반된 해석은 항상 존재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두 가지가 바로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완전한 자유'와 '어느 정도 울타리 안에서 주어지는 자유'다. 중고등학교 시절 배우던 윤리사상 개념으로 보자면, 소극적 의미의 자유와 적극적 의미의 자유, 더 나아가자면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의 대립 정도로 확대할 수 있다.

어쌔신 크리드를 플레이하면서 접한 스토리의 중심에는 '자유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진하게 묻어 있었다. 개인의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더 중요시하는 집단과 사회 전체의 질서를 명목으로 지배권력을 손에 넣으려 하는 집단 간의 첨예한 다툼. 얼마든지 긴 호흡으로 끌어갈 수 있을만한 소재였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럭저럭 잘 이어져왔다는 생각이다.


■ 개인주의 vs 전체주의, 어쌔신 vs 템플러, 여기에... 해적이라고?

철저한 교리에 따라 움직이던 일류 어쌔신 알테어, 가족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가다가 차차 마스터 암살자로 거듭나게된 에지오, 완전한 자유를 평생의 이상으로 좇던 인디오 청년 코너 켄웨이까지. 각 시리즈에서 보여준 캐릭터들은 수백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오며 암살자(Assassin)라는 존재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켜줬다. 아울러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추구하는 신념(Creed)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여서일까. 4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해적이 '갑툭튀'로 느껴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해적 역시 암살자 못지 않게 강렬한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잠입이나 은신, 치명적 일격과 같은 단어로 대표되는 암살자의 관념은 해적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몇몇 RPG에서만 보더라도 '암살자'와 '해적'은 엄연히 다른 '클래스'로 묘사되지 않던가.

'해적'과 '암살자',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에드워드 켄웨이'


그렇기 때문에 '뼛속부터 해적'인 에드워드 켄웨이라는 인물을 '암살자의 신조'(Assassin's Creed)라는 문구와 직결시키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바로 그 때문에 이번 타이틀을 비판하는 사람도 심심찮게 있었다. 암살자라는 이름을 내건 시리즈에서 해적이 등장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직설적인 의견이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해적이라는 집단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들 사이에서 영웅으로 추앙받는 이름이 생겨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나면 한 걸음 물러서고픈 생각도 든다.

게다가 싸움(은밀한 잠입 암살이든, 히든 블레이드로 펼치는 무쌍이든 어찌됐건 큰 카테고리는 싸움이니까)이라는 주된 컨텐츠와 '개인의 자유'라는 키워드를 조합하고 보면, 해적도 제법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다만, 왠지 멋있어보이는 '잠입'과 '암살' 대신, 덮어놓고 달려드는 '난투'를 선호하는 그들이기에 좀 낯설게 다가올 뿐.


■ 돈을 향한 일편단심, 신념으로 변해가다. '에드워드 켄웨이'의 정신적 성장에 대하여

이번 편의 주인공인 에드워드 켄웨이(Edward Kenway)를 보면 해적이라는 설정이 맞춤옷처럼 잘 어울린다. 게다가 본래 암살단 소속이 아니었던 인물이 그 신념에 서서히 동화되어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 그리고 2편과 3편, 에지오와 코너 사이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연결해준다는 점은 시리즈 전체 측면에서 꽤 큰 의미를 갖는다. 전작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헤이덤의 변절'에 대해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고.

에드워드 켄웨이는 기존까지와 다르게 정통파 암살자와 연줄이 없던 사람이다. 하지만 능숙한 파쿠르와 자연스러운 신뢰의 도약 등 암살단 멤버로서 필요한 신체적 능력은 모두 갖췄다. 마치 새로운 암살자로 하늘이 점지해준 인재처럼 묘사된다. 물론 주인공이니까 그렇게 설정했겠지만.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한 인간은 매력적이지 못한 법. 전작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없는 숭고한 이상을 보여줬던 모호크족 청년은 꽤나 혹독한 평을 견뎌야 했다. 다소 철이 없었을 수도 있는 어린 시절부터 너무 성숙하고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진부하다는 평도 다소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뭐야 쟤... 재수없어'라는 의미라고나 할까.

그런 점에 비추어보면 에드워드라는 인간은 '신념' 부분에서 치명적 결함을 가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다. 황금만능주의의 충성스러운 추종자이자, 세속적인 근성으로 피부조직 하나까지 무장한 사람이니만큼 현실적으로 훨씬 흔하게 '있음직한' 인물인 것.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성장'이라는 플롯, 그 중에서도 '정신적인 성장 과정'을 그리는 스토리는 흔히 사용되는 좋은 구조다. 훌륭한 피지컬로 무장했지만 일편단심 '돈바라기'였던 에드워드가 암살단의 일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바로 이 구조를 따르고 있다.

'돈'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던 사내가 진짜 가치있는 신념을 찾아가는 과정이 4편의 이야기


2편의 에지오라는 인물이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는 이유는, 그가 3개의 타이틀에 걸쳐 옴므파탈을 뽐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일대기 전체가 정신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그렸기 때문이라는 점도 큰 몫을 차지한다. 이와 비슷한 구조를 택했지만 다소 짧은 호흡으로 압축된 이야기. '어쌔신 크리드 4'의 스토리에 후한 평을 내리고 싶은 이유다.


[Laffa의 시선] 노략질과 약탈로 그려진 암살자 이야기. '어쌔신크리드4'의 달라진 점


어쌔신크리드의 팬이라면 3편의 주인공인 '코너 켄웨이'의 첫인상을 기억할 것이다. 세련된 유럽남자의 모습을 지키며 스마트한 암살과 날쌘 움직임을 보여주던 '에지오 아우디토레'나, 헤엄은 못치지만 사람들 사이에 서있기만 해도 자동 은신이 되던 '존재감 제로'의 '알테어 이븐 라 아하드'와는 확실히 달랐다.

솔직히... 좀 띨띨해 보인다


어딘가 좀 띨띨해 보이는 메스티조 소년을 처음 본 순간 '내 암살자는 이렇지 않아!'를 외쳤고, 폭풍성장을 경험한 후 왠만한 떡대쯤은 한순간에 눕혀놓을 듯한 인디오 청년의 모습은 분명 내가 생각하던 암살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살육머신 MK-3 '코너 켄웨이'


그리고 기대 속에 출시된 '어쌔신크리드4'. 암살자보단 차라리 야만용사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코너 켄웨이'의 조부 '에드워드 켄웨이'는 손자인 코너보다도 더 암살자란 단어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암살단의 상징이던 '독수리 부리 스타일' 후드는 사라졌고, 제작 코스튬이라도 입혀놓으면 이게 대체 암살자인지, 쿠바의 어촌 청년회장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 에드워드의 모습을 보다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어쌔신 크리드는 이제 '암살단'이란 단어에서 완벽히 벗어난 브랜드가 되었구나.'

차가운 어촌남자이지만 내 여자에겐 생선을 구워주겠지


단순한 '암살 게임'에서 유비소프트의 대표적인 '오픈월드 액션 게임'이 된 작품. 어둠 속에서 표적을 처리하던 냉혹한 암살자가 아닌, 바다를 누비며 노략질을 일삼는 글로벌 용역깡패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암살자의 신조'. '어쌔신크리드4: 검은 깃발'이 가진 매력은 무엇이고, 어떤 점들이 바뀌었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자.


■ 이제는 바다! 땅을 디뎠던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어쌔신크리드4의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한 눈에도 보이는 '무대'의 변화다. 기존의 출시작들은 주로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하던 1편과 피렌체, 로마, 이스탄불까지 이어지던 에지오 트릴로지의 2편이 대표적이다. 3편에선 숲과 산을 포함한, 이전보다 확장된 무대를 제공하긴 했지만 결국 게임의 주 무대는 개항기의 보스턴과 뉴욕이었다.

어쌔신크리드2: 브라더후드의 주 무대였던 로마


하지만 이번 작의 무대는 도시를 거의 완벽히 벗어났다. 드넓은 바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섬들이 바로 이번 작품의 배경 스테이지다. 결국 게이머는 육지에서 달리기를 하는 모습보단 기함인 '잭도'의 키를 잡은 모습을 더 많이 접하게 된다.

이는 분명 호불호가 갈릴 요소다. 도시라고 있는 하바나, 나소, 킹스턴 등은 사실 미션을 위해 잠시 거쳐가는 거점에 불과하다. 2편에서 빌딩 숲(어째서 중세에 빌딩숲이 있는가는 차치하고서라도)을 누비는 파쿠르와 잘 정련된 도시를 보는 맛을 즐기던 게이머들로선, 지금이라도 철거 공보가 뜰 것 같은 판자촌을 '도시'라고 말하며 만족할 수는 없을 거다.

그에 반해 당장 역병이 돌아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4편의 도시 '나소'


그렇다고 육상 콘텐츠가 적은 것은 아니다. 후술할 테지만 어쌔신크리드4는 그 어떤 게임에도 꿀리지 않는 '파고들기 요소'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높은 뷰포인트에 올라 오연히 밑을 굽어보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선원들과 노래를 부르며 파도를 뚫는 주인공의 모습을 봐야 한다는 점은 분명 팬들의 평가가 갈릴 요소다.

서..선장사마! 나..난다고래!



■ 더이상 '형제단'은 없다. 이제 '함대'가 있을 뿐.

무대가 해상으로 변화하면서 기존의 콘텐츠들 또한 해상전에 걸맞게 변화되었다.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뷰포인트'를 통한 동기화와 애니머스 데이터 조각은 이제 바다 곳곳의 섬에서 찾을 수 있다. 3편에서 바람에 날리는 5만원권 지폐를 쫓는 마음가짐을 갖게 했던 '연감'은 이제 '노래가사'가 되어 날아다닌다.

바람에 날리는 지폐를 쫓는 마음가짐


그동안 큰 재미를 주던 '형제단'은 이제 사라졌다. 내 손으로 모집한 사람을 공들여 교육시킨 후 은신처의 마스터 암살자로 삼는 것은 나름 괜찮은 재미거리였기에 개인적으로 내심 아쉬워하긴 했다만, 뼛속부터 암살자보단 해적이나 깡패에 가까운 에드워드에게 형제단은 사실 별로 어울리는 콘텐츠가 아닌것 같긴 하다. 그 대신 에드워드는 술집에서 선원을 모집하고, 함대를 구성한다.

죽을 뻔한 해적 구해줘봤자 금방 또 죽어나가긴 한다


해상 전투를 치르며 나포한 선박을 통해 꾸리는 켄웨이의 함대는 전작의 암살자 파견과 비슷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무역을 보내거나, 항로를 개척하는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더군다나 함대 콘텐츠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도 연동해 게임을 하지 않을때도 함대를 보내거나, 무역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목숨을 버리면 배는 살려주마

원래 강도질과 노략질은 남의 동네에서 하는게 매너다



■ 폭풍과 해일이 난무하는 바다. 곰치는 위험한 물고기

또 한가지 중요한 변화를 꼽자면 '날씨'와 '잠수'시스템이다. 날씨 시스템은 지난 3편에서 처음으로 선보여졌다. 항상 맑은 날씨만을 자랑하던 2편의 중세 도시에 반해 눈이 오고 비가 내리던 개항기 미국의 도시들은 팬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은 콘텐츠다.

같은 도시, 같은 위치에서 찍어도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다른 느낌


4편에 이르러 날씨 시스템은 한번 더 진화했다. 이유를 묻자면 오늘날 부두에서 일하는 많은 어업 종사자들이 아침마다 날씨를 확인하는 이유와 같다 할 수 있겠다. 우리의 주무대는 이제 비가오나 눈이오나 활동 가능한 뭍이 아닌, 핵폭탄급 파도와 용오름에 맞서 싸워야 하는 바다이니까. 이제 플레이어들은 템플러와 스페인, 영국의 군인들 외에도 대자연과 맞서 싸워야 한다.

안개 때문에 앞이 잘 안보이는가 하면

비바람 부는 바다도 돌아다녀야 한다


잠수 시스템 역시 눈여겨볼 만 하다. 1편의 물만 닿아도 사망하는 '알테어'와 다르게 2편과 3편의 '에지오'와 '코너'는 어느정도 헤엄을 칠 수 있었지만 , 어디까지나 육지의 연장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노략질과 해전으로 다듬어진 에드워드는 본편에서 왠만한 수영선수 못지않은 헤엄실력을 뽐낸다.

물 속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너란 남자


그러나 이 부분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잠수를 통해 난파선을 탐색한다는 의도 자체는 괜찮았지만, 바닷 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바닷 속에는 상어와 곰치를 비롯해 해파리와 성게까지 에드워드를 괴롭히는 온갖 요소들로 가득하다. 어쩔 수 없이 에드워드는 바닷속에서마저 상어를 피해 수초로 숨고, 잠입을 반복해야 한다. '잠수'라는 개념 자체를 포함시킨 것은 좋았지만, 세부적인 면에선 아직 개선이 필요한 점이 보인다.


■ 데스몬드는 이제 없다.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가는 스토리라인

어쌔신크리드에서 게임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있다면 바로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일자 진행형 RPG나 어드벤처 게임에 비해 깊은 스토리 텔링이 힘든 샌드박스형 액션 게임임에도, 어쌔신크리드는 훌륭한 시나리오를 지니고 있는 편이다. 1편에서 2편 시리즈, 그리고 3편까지 연계되는 데스몬드의 이야기는 어쌔신크리드 시리즈의 팬덤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봐도 무방하다.

이제 1인칭으로 진행되는 현실 페이즈


그리고 마침내 데스몬드의 이야기가 끝난 3편 이후 나온 4편, 이제 스토리의 중심을 만들어가는 인물은 바로 게이머 본인이 된다. 그 때문에 더이상 현실의 이야기를 진행할 때 게이머들은 캐릭터의 뒤통수를 보지 않아도 된다. 1인칭으로 구성되는 현실 단계에서 주변 인물들은 '나'의 이름도 부르지 않으며, '나'의 외모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도 않는다. 이제 플레이어는 템플러들이 만든 '앱스테르고 엔터테인먼트'의 신입 사원이 되어 템플러와 암살단 사이의 가려진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두 가지 시선] '유비소프트식 샌드박스 게임'의 새로운 지평이 될 수 있을 것인가


JeeK -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기다렸던 어쌔신크리드4. 한정판을 주문해놓고도 조금 꺼림칙한 마음이 남아있었던 이유는 3편에서의 캐릭터성과 루즈함에 내심 실망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어쌔신크리드4는 생각 이상으로 진국이었다. 타이틀을 받은 첫 날 12시간을 내리 매달리도록 한 것은 물론, 방대한 수집 요소와 서브미션 지표들로 알차게 채워져 있었으니까.

애시당초 '어쌔신크리드'는 '암살단'을 모티브로 제작된 게임이다. '암살단을 배경으로 했지만 더 이상 암살자라는 존재에 얽매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현재 이 시리즈의 현주소인 듯 싶다. 어쩌면, 아예 다른 브랜드로 시작하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Laffa - 다른 한 편으로, '어쌔신크리드'는 이제 락스타의 GTA나 볼리션의 세인츠 로우처럼 유비소프트를 대표하는 오픈월드 브랜드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기억해야할 것은 '어쌔신크리드'라는 게임의 정체성은 '어쌔신'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아닌 게임 전체의 콘텐츠가 만들어간다는 사실.

'과연 '어쌔신크리드4'를 좋은 게임이라 말할 수 있는가?' 이 추상적 질문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모든 사람이 '좋다'고 평하는 게임이 본인에게도 좋은 게임일 수는 없을 테니까. 이제 유비소프트는 '와치독스'라는 또다른 샌드박스형 액션 게임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 시점에 제법 심오하면서도 다양한 의견을 얻을 수 있을 법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어쌔신크리드4: 검은 깃발'은 과연 새롭게 변화하는 '유비소프트식 샌드박스'의 교차점이 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