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솔 게임을 즐기거나 아니면 즐기지 않거나 온라인 게임만 하거나, 어쨌건 게임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라면 좋던 싫던 외국 게임 뉴스를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면 코믹스 중에 헌터X헌터를 읽어 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모든 것들과 관련된 하나의 키워드가 있다. 드래곤 퀘스트.



헌터X헌터도 못 봤고 드래곤 퀘스트라는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올드 게이머들 중에서 소싯적에 TV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중 아벨탐험대를 본 적은 있는가? 코믹스를 좋아한다면 타이의 대모험이나 로토의 문장도 생각해 보자. 혹은 TV나 각종 매체에서 게임 하나 사려고 텐트치고 줄서있는 일본의 게임 발매일에 관한 기사나 사진을 보면서 한 번쯤은 어이없음에 혀를 차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드래곤 퀘스트(ドラゴンクエスト, Dragon Quest, 이하 드퀘) 하나로 인해 벌어진 사건들이다. 드퀘 있음에 일본의 RPG가 있고, 드퀘로 인해 유명 코믹스가 연재 중지되며, 드퀘 하나 구입을 위해 발매일 며칠 전부터 텐트를 치고 매장 앞에 자리잡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드래곤 퀘스트의 기원

게임을 모르거나 드퀘를 안해본 사람의 눈에는 단순히 미친 짓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 광경이 벌어지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드래곤 퀘스트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게임이 재미있고 잘 만들었으니까 인기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왜 회사나 학교를 땡땡이치고 사러 가서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정도인가.



드래곤 퀘스트는 일본의 게임 프로듀서인 호리이 유지, 드래곤볼의 토리야마 아키라, 작곡가 스기야마 코이치 3명이 모여서 1986년 패미콤용으로 제작한 RPG이다. 최초는 패미콤용으로 제작되었지만 추후 대부분의 콘솔 기기용으로 이식되거나 리메이크된다. 발매 당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RPG의 양대 산맥인 울티마와 위저드리를 반씩 섞은 후 난이도를 낮추었으며 일본 문화에 맞는 용사와 공주 구출이라는 내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드퀘 발매 이전까지는 PC용 위저드리가 일본에서 RPG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시절이었고, 대부분의 게임들은 액션 위주였기 때문에 드퀘는 일본식 RPG의 시초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드퀘1의 필드 이동 방식은 추후 YS 시리즈에 영향을 주었으며, 전투와 스토리 진행 방식은 파이널 판타지에 영향을 주는 등 모든 일본산 RPG는 드퀘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의 RPG는 드퀘를 능가할 재미를 줄 수 있지만 드퀘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 패미콤용으로 발매된 드래곤 퀘스트 1 ]


툭하면 외전에 이름만 빌린 신작이 나오는 파이널 판타지는 사골 우리기 게임이라는 비난을 밥 먹듯이 듣지만, 드퀘 자체의 정통 시리즈는 3~4년에 하나 꼴로 나오는 셈이기 때문에 잊을만 하면 나오고 있다. 물론 중간 중간 드퀘 몬스터즈라던가 하는 식으로 외전도 나오기는 하나 파이널 판타지보다는 훨씬(?) 사골 우리기 수준이 양호하다.



일본의 국민 게임이 된 드래곤 퀘스트

아무리 역사와 전통을 늘어놓아봤자 수치가 없으면 실감하기 힘든 현실. 일단 실질적인 판매량만을 말하면 드퀘 시리즈 전체의 판매량은 4700만장이다. 그 중에서 가장 최근에 발매된 9편은 이번 TGS2009에서 출하량 400만장에 발매 380만장 돌파 기념 이벤트를 열었을 정도이다. 그 전작들은 7편이 410만장에 8편이 330만장으로 각각 PS1과 PS2 게임 발매 순위 최고봉을 달린다. 이미 파이널 판타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본의 국민 게임이 된 것이다.



380만의 숫자란 9편의 기능 중에서 NDS의 근거리 통신 기능을 이용한 엇갈림 통신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를 자신의 여관으로 초대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아키하바라같은 곳은 통신 모드를 켠 지 30분 이내에 50명 전후를 만날 수 있고 지방의 소도시라고 해도 통신 모드를 켜고 마을 한 바퀴만 돌아도 3~40명은 가볍게 모일 정도의 수치인 것이다. 유명 연예인 공연과 같은 대형 행사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 드래곤 퀘스트 3, 1편과 시스템상 크게 바뀐 점은 별로 없는 편 ]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본'의 국민 게임이지 세계인이 즐기는 게임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그래픽과 캐릭터간의 스토리에 중점을 둔 파이널 판타지는 일본 외 문화권에서도 공감되는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드퀘는 철저하게 일본인을 위한 내용으로 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사무라이나 일본도와 같은 전통 문화가 나오는 것은 아니고, 일본인이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잔재미들이 가득한 탓에 일본 문화를 모르면 재미를 반도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드퀘의 문화적 요소는 제작자 3인방 중 한 명인 호리이 유지가 대부분의 대사 스크립트를 제작하는 까닭에 모든 시리즈마다 일관성과 일본식 개그 및 풍자가 어우러져서 일본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물론 최근에는 게임 자체의 볼륨이 커진 탓에 100% 전부 맡지는 않기는 하지만 직접 쓰지는 않아도 모든 대사를 하나하나 체크한다고도 한다.



아무리 드퀘 자체가 일본 문화에 익숙한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일본을 위한 게임인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는 용사와 악의 대왕의 대결이 중심 내용인 탓에 일본의 문화를 모른다고 해도 게임 자체만으로 즐기는 데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의 재미가 보장되어 있다.



드래곤 퀘스트 발매가 일본에 미치는 영향

최근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환상의 그래픽을 자랑하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에 비해 크게 눈에 띌 정도로 그래픽이 뛰어나지 않고 일본 문화의 정서상 문제로 한국을 포함한 일본 외의 국가에서는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의 인기가 더 높은 것도 현실이다.



드퀘 발매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위에서 말했지만 줄서기다. 발매일 몇 리전부터 텐트에 자리까지 깔면서 조금이라도 먼저 구입하기 위해 길고 긴 줄을 선다. 그렇게 게임을 받아 들면 광속으로 귀가하며 두문불출하고 드퀘를 즐기는 것이 기본 예의라고 불리고, 학교나 직장에서는 발매된 게임에 대한 갑론을박이 꽃핀다.



발매일에는 학교를 다니는 학생은 땡땡이는 기본이요, 직장인도 회사 땡땡이를 친다. 그런 이유로 사회 문제가 되기 때문에 드퀘나 포켓몬스터와 같은 킬러급 타이틀들은 일본의 주요 게임 발매일인 목요일을 피하고 주말이나 휴일 등으로 옮겼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사회 유명인들도 본업을 잊어먹는다. 특히 연재물을 그리는 만화 작가들 중에서 게임을 좋아하는 일부 작가들이 드퀘 삼매경에 빠져서 연재 중단을 하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은 헌터X헌터와 유유백서의 작가인 토가시 요시히로로, 워낙 게임을 좋아하는 작가라서 드퀘를 대표로 각종 게임 플레이로 연재 중단을 밥 먹듯이 한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드퀘때문에 연재를 중단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드퀘의 유명한 대사들이 일본의 연예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및 각종 애니메이션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이용되거나 패러디로 이용되는 일이 종종 생긴다. 즉 드퀘는 일본의 문화 코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드래곤 퀘스트9를 과연 끝낼 수 있을까

러브플러스 때문에 NDS를 구입했다가 우연히 오프라인 게임 매장에서 드퀘9를 발견한 이후 기자는 현재 드퀘 삼매경 인생에 빠져 있다. 과거에는 일본어만 알았지 일본 문화에 대해 지식이 부족한 탓에 드퀘보다는 파이널 판타지를 즐겨 했으나 최근 꾸준한 수행(?)을 거쳐서 드퀘의 잔재미를 알게 된 이후로 먹고 자고 드퀘다. 플레이타임 60여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아직도 엔딩을 못 보고 있다.



사실 40시간 정도면 웬만큼 엔딩을 볼 수 있긴 하지만 드퀘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무한 전직 시스템에 빠져서 하나의 캐릭터를 서로 다른 직업으로 10번을 키우고 있으니 당연히 시간이 한 없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아직 마지막 던전을 들어가지 않고 엔딩을 못 봐서 현자와 슈퍼스타 상급직업 2개는 전직 불능).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본편의 엔딩은 드퀘9의 콘텐츠 중에서 30%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드퀘의 전통적인 특징인 엔딩 후의 플레이와 NDS의 통신 기능을 이용하여 배포하는 퀘스트, 지도에 따라 랜덤으로 생성되는 던전 등은 엔딩 후에도 지속적으로 플레이를 할 동기를 부여해 준다. 아니, 사실상 엔딩 후부터 본격적인 드퀘9의 플레이가 시작되는 셈이다. 과거 시리즈와 스토리상 연관성은 거의 없지만 1~8편의 주요 캐릭터들이 깜짝 출연하여 의상을 주거나 하는 식으로 전작과의 연계가 이루어지고, 심지어는 일본의 아케이드장의 카드배틀 드퀘 게임과도 데이터가 연동된다.



인간적인 주인공으로 감정 이입

게임 전투시스템 자체는 전작들와 비슷하고 마법도 비슷하고 이리보고 저리봐도 역사와 전통의 드퀘다. 파이널 판타지는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시스템을 선보이는 반면에 드퀘는 아주 서서히 변해간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큰 뿌리는 변하지 않고 드퀘만의 재미를 꾸준히 준 탓에 패미콤으로 초기작을 했던 청소년이 아버지가 되어 자식과 같이 최신작을 플레이하는 국민게임이 된 것이 아닐까.



또한 드퀘 시리즈에서는 정의의 용사가 하면 안 되는 일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집마다 들어가면서 주인이 뻔히 보는데 옷장을 털고 집기를 부수질 않나, 부인이 있는데 자식과 여탕 훔쳐보기를 하러가질 않나, 카지노에서 하루 종일 동료들과 도박을 하는 등 판타지 세계에서 정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용사의 인간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드퀘만의 재미다.




[ 장비 교체나 2개의 화면 및 온라인 기능 등으로 드퀘9는 인기가 높다 ]


특히 이런 행위들이 게임 내의 텍스트로 표시되기 때문에 글을 읽고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게임 속의 용사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감정이입의 효과가 다른 게임들보다 더욱 드퀘 시리즈의 주인공 인기가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9편의 주인공은 천사이기 때문에 좀 행실이 올바른 편이지만 집집마다 옷장 뒤지기는 전통 아닌 전통으로 지켜지고 있다.



드래곤 퀘스트는 일본 문화 그 자체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미 드퀘는 단순히 게임이라는 차원에서 다뤄야 할 물건은 아니다. 드퀘 자체가 하나의 일본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어떤 게임이 발매될 때는 좋건 싫건 당시의 환경을 반영하는 법인데, 그것을 가장 잘 반영하면서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게임이 바로 드퀘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기자의 입장에서 드퀘라는 게임을 플레이하면 좋다고 권하기는 사실상 무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일본의 문화를 알아야 본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일본어라를 문화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고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게임이라면 강력하게 플레이 해볼 것을 추천한다.



만약 게임을 좋아하고 여러가지 게임을 즐겨본 사람이라면 드퀘를 하면서 자신이 했던 게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찾아보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가를 뛰어넘어 하나의 게임이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좋은 게임이 충분히 팔릴 수 있는 시장과 인식이 갖춰진 한국의 콘솔 시장을 볼 수 있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