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전의 달이 떠오르다


30일. 이날은 이스 온라인 유저들에게 뜻깊은 날임이 틀림없다. 이스 온라인의 레아오르하서버 유저들은 레아오르하서버 유저들대로 수호배틀을 치루며 길드vs연합길드의 힘을 검증하는 날이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기자도 캐릭터를 하나 만들려고 했는데, 다른 기자들이 다들 뜯어말렸다. 무슨 일일까? 왜 미니 기자의 캐릭터를 덮어쓰고 가야만 했을까? 모든 것이 다 끝난 지금에서야 느낀 거지만, 그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처음 시작하고 보니 웬 사냥터에 떡하니 한복입고 서 있는 기자 캐릭터. 레벨은 11. 아무리 본서버 캐릭터가 아니었다지만 이건 좀 심했다. 여기가 어디지? 이건 또 웬 한복이냐. 기자 제복인가...? 일단 수호배틀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이동했다.



이 황량한 시츄에이션
고렙 캐릭터도 아닌데 왜 다른 기자들은 기자가 캐릭터를 만드는 것을 만류했을까




일단 이 캐릭터의 평판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 유저를 붙잡고 길을 모르는 척 질문했다
헉! 친절하다니!




버프를 얼마나 많이 주던지 버프에 맞아 죽는 줄 알았다



레아오르하서버의 수호배틀 상황은 생각보다 치열했다. 상황은 데스노트 길드가 이미 그리트, 투비칼의 두 성지를 점령해 둔 상황. 그에 따르는 각종 특혜와 보상들이 특혜받지 못하는 기자의 군침을 돌게 만들고 있었다. 이에 반해 바람의 탑 길드는 록의 성지 하나만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언뜻 보면 데스노트 길드가 전 성지의 통일을 위하여 기세를 올리는 것 같았고 바람의 탑 길드가 홀로 거기 맞서는 것 같았지만, 데스노트길드는 썬길드, 하나길드와 연합한 상태였고 혈풍길드와 천상초길드, 참사랑 길드는 이미 다른 길드들과 연합하여 두 길드의 독주를 견제하고 있었다.


즉 엄청난 수의 유저들을 보유한 막강한 상대가 링에 올라온 것이다. 바람의 탑 길드와 데스노트 길드로서는 어어 하는 사이 제삼의 상대가 갑자기 파워업한 상황. 통일과 침공이 문제가 아니라 이제 수세로 전환해야 할 판이었다.



일견하기에 대충 상황은 이렇다




수호배틀존에 진입한 기자



전투의 구도


이 전투는 길드vs길드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었다. 바람의 탑 길드는 길드vs길드로 데스노트 길드와 붙은 것이 아니라, 혈풍길드와 천상초길드, 참사랑길드 등이 연합길드를 구성하여 데스노트 연합길드와 한 판 뜨고 있는 중이다(이하 바람의탑 vs 혈풍연합 vs 데스노트). 삼파전을 벌이는 이상 인원차가 대단히 컸지만 데스노트 길드는 협곡을 틀어막고 방어진을 구축한 상태였고, 혈풍길드는 다른 곳에 있는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



저 멀리 오늘의 적(?), 데스노트 길드가 보인다




어쩌나 보기 위해 단기 돌진




비록 당연한 결과긴 하지만 종군기자 캐릭터를 죽이는건 언론 탄압이라는 사실
게다가 웃다니!!



전세의 변화


중간에 대량팅이 있었다. 4명을 제외한 모든 유저가 우루루 팅기면서, 전세가 확 바뀌었다. 데스노트 길드의 공격적 방어는 대량팅을 계기로 수동적 방어로 바뀌었지만, 그 방어선은 대단히 단단했으며, 수호배틀 종료 10분전까지 방어선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어떻든간에, 전세야 바뀌든 말든, 기자 캐릭터는 족히 수십번은 죽은 것 같다. 이제 부활지점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과 걸음 수까지 세고 있을 지경이다. 어차피 기자의 캐릭터는 아니지만 하도 죽다보니 슬며시 약이 올라서 문을 닫아보려 했다. 물론 문은 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절대 닫히지 않는다.



안될 것이 뻔했지만 혹시나 해서 닫아보려 노력했다



비굴비굴 빌면서 한켠으로 살살 가서 데스노트 길드의 뒤로 빠졌다. 물론 기자가 인벤마크를 달고 있음을 알아보아서 데스노트 측 유저들이 넘겨주어 가능한 거지, 다른 캐릭터는 이거 따라하다간 뼈도 못 추린다. 특히 노약자와 임산부, 어린이는 따라하지 말것.



비굴비굴모드 : 스샷만 점~




이라고 하고 왔지만 이왕 온 김에 스샷도 몇 장 찰칵
궁금하신 분을 위한 설명을 달자면 뒷편에는 다른 성지로 빠지는 길들이 있다



와보니 의외로 분위기도 좋았다. 전쟁터에서 흔히 상상하는 비속어나 상대비방이 전혀 난무하지 않는다. 도무지 전쟁터 같지 않았다. 이렇게 살벌하지만 젠틀한 길드전이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뭔가 화끈하고 십원짜리 인신비방이 오고가는, 그런 전쟁터의 익숙한 분위기는 어디에 있을까? 다들 턱시도만 입고 있다면 흡사 사교 무도회에 온 듯한 느낌일 것 같다.



데스노트 진영. 이곳도 역시 분위기는 다르지 않다
힐 점, 버프 점, 감사감사 등등 전쟁터에서 들을 수 있는 말들



하여간 지금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이것은 어쩌면 마지막 전면전이 될 듯 하다고 열혈마루치 유저가 답을 해 주었다. 그제야 웬 쪼렙 적의 존재를 알아챈 데스노트 유저. 단 한방에 기자의 경험치를 잠시 깎아서 다시 아군 진영으로 배달해 준다.


은하철도999에 등장하는 시공성의 기계백작은 철이에게 영원한 부자가 되는 법을 속삭인다.

" 남자는 사소한 곳에서도 앙심을 품어야만 부자가 될 수 있다 "

기자는 앙심을 품었다. 이제부터 기자를 죽인 아이디를 적어두기로 했다.



마쓰모토 레이지의 명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 에서
사상 최고의 나이스가이로 등장하는 기계백작




난공불락의 협곡 방어선


협곡방어의 핵심을 담당하는 것은 아이스스톰을 위시한 각종 광역마법을 끊임없이 사용하여 상대의 진격을 저지하는 임무를 가진 위자드 계열들이다. 그 죽음의 광역지대는 협곡의 비좁음으로 인하여 밀도가 집중되며, 상대의 이동속도를 늦추는 아이스 슬리트 스킬과 동시에 사용되면 무서운 파괴력을 가진다.


게다가 이것은 컴퓨터 사양이 시원찮은 적 유저에게는 끊김과 팅김이라는 시스템적 공격을 가할 수도 있는 치명적 공격이다. 이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바람연합은 압도적인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진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의탑 길드와 혈풍연합 측은 질서정연하게 돌파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처절한 횟수로 죽었던 기자는 안전지대에 짱박혀 전황을 주시하기로 결정했다
안전지대는 누구나 쓰는 것인지, 데스노트 길드원도 한명 보인다




자신의 길드 길드원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아낸 어느 길드원
이스를 떠났던 많은 유저들이 수호배틀에 대한 기대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



드디어 전략물자들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구슬이 오링났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하면서 종료까지는 겨우 15분이 남은 상황이 되었다. 아직도 데스노트의 방어선은 견고하고, 쉽사리 뚫릴 듯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초조해 진 기자는 혹시 별동대가 뒤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싶어서 달려나갔지만, 저 광역존을 통과하지 못하고 뻗어버렸다. 이제 기자는 횟수도 헤아리기로 결심했다. 이번 사망이 이십 네 번째. 킬수 올리신 분들 축하합니다.


결정적 변화


종료 10분 전. 전황에 결정적 변화를 일으킬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혈풍길드가 록의 성지를 점령한 것이다! 데스노트 길드원들은 급격하게 방어선을 거두고 후퇴, 록의 성지로 달려갔고, 바람의 탑 길드원들도 자신들의 성지가 달아난 판이니 맨발에 땀나게 달렸다. 기자도 열심히 뛰었다. 이 와중에도 컴 사양이 좀 딸리는 유저들은 여전히 팅기고 있었다.



록의 성지는 여기다. 이곳을 혈풍 연합 길드가 장악한 것이다




철수하는 병력들 사이로 잠입한 기자. 그러나...



철수하는 데스노트 병력을 따라 달리던 기자. 철수하는 마당에 적병이 따라오니 데스노트 길드로서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한방에 죽었다. 그런데 기자를 죽인 유저 아이디가 낮익다. 그렇다! 기자만 골라 죽이는 유저들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가 기자를 죽인 횟수는 10번 정도 넘긴 상태라서, 더 이상의 헤아림을 포기했다.


후퇴하는 길 중간중간에 이제 입장이 바뀌어버린 연합길드가 내분을 일으켜 소규모 전투를 벌이고 있고, 길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려있다. 슬슬 육두문자도 오가기 시작하고, 참 바람직하고 익숙한 터프가이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중간에 입장이 바뀌어 피아가 갈리는 곳, 이곳이 진정한 수호 배틀이란 말인가!





바람의탑 길드원을 두들기는 혈풍,천상초,날개 길드원들. 록의 성지를 얻어낸 혈풍 연합길드원들로서는 바람의 탑 길드원은 수호배틀존 안에서는 적일 뿐이다. 대량 팅사태는 누구나 겪었지만, 데스노트 길드로서는 잃은 것이 없고 연합길드로서도 뭔가 하나 얻어낸 격이나, 얻은 것 없이 잃기만 한 바람의 탑 길드원으로서는 중간의 대량팅이 그야말로 천추의 한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 바람길드원은 수적 열세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기자는 옆에 있다가 덩달아 벼락맞았다



포연과 화약연기로 가득찬 협곡 내의 전사자. 마크를 보니 방금까지만 해도 방어선을 구성하고 있던 유저인 듯 하다. 비애와 비감이 지배하는 철수의 와중에 낙오되어 아군에게 참살당한 듯 하다.



그나저나 아이디는 상황과 참 잘 어울린다



최후의 결전


록의 성지로 달려갈까 했다가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그리트의 성지로 달려왔다. 지금은 데스노트 길드의 성지이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반드시 다른 전투가 여기서 벌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비록 5분 정도 남았지만, 기세를 올린 연합길드로서는 여기도 한번 노려볼 만한 시간이긴 하기 때문. 그리트의 성지 가디언 앞에서 기다리자니 기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데스노트 길드의 일부 병력이 그리트의 성지 방어를 위해 달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연합길드의 병력이 우루루 그리트의 성지로 달려온다. 길드가 없던 기자는 선견지명을 스스로 자랑스러워 하다가 또 연합길드원으로 몰려 죽었다.



한복입은 쪼렙이 쫄래쫄래 들어오는데 가만 놔둘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달려오기를 포기하고 자리에서 상황을 보기로 했다
유저 하나가 말 위에서 일어선 채 당당한 기세로 진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멋진 스샷을 찍기 위해 마우스를 돌리는 사이 죽었다




기자의 시체 위로 쏟아지는 광역공격. 이미 전광판 시계는 멎었고, 마지막 전투가 벌어지는 중이다




이 마당에 버프를 요구하는 어느 유저




드디어 성지의 문이 닫히고 수호배틀은 종료되었다




비방은 GM이 유저의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 매달려 다 먹어 주었다
덕분에 유저들은 어제의 전우이자 내일의 적과 악수를 나누며 헤어질 수 있었다




수호배틀이 종료된 상황은 이러하다




기자킬 20번을 달성한 아까 그 유저를 찾아다녔지만 그는 이미 접속종료한듯



2차 수호배틀 리포트


수호배틀에 참여한 기자로서는 사실상 방어선 구축에도 참가 못했고, 그렇다고 방어선 공략조에도 참가 못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카메라만 휘두르고, 다른 유저 킬 수만 일인당 열번 씩은 얹어준 듯 하다.


시종일관 상황은 데스노트 vs 바람의탑vs혈풍연합의 구도였다. 첨예한 대치상황은 혈풍길드가 록의 성지를 공략하면서 격변하였고, 마지막 몇분은 피아가 뒤엉켜 칼 마크만 뜨면 무작정 아무나 두들겨 패는 혼전의 양상으로 치달았던 듯 하다. (기자가 가장 많이 죽었을 때가 바로 이 때다).


대량팅을 유발시킨 진범은 GM이 아니었지만 결국 시스템의 대표자로서 유저들의 비방은 GM이 다 먹어주었고, 유저들은 상대와 악수를 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중간중간에 십원짜리 비방이 가끔 나오긴 했지만 그거야 전쟁의 와중에 안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고, 이스 온라인만의 전쟁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자 이제 다음 수호배틀은 언제일까? 그리고 그 상대는?



여담이지만, 기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인터뷰나 취재를 나가면 반응이 이렇다
미니 기자의 캐릭터를 바라보는 유저의 시각 vs 대남 기자의 캐릭터를 바라보는 유저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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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배틀의 규칙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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