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보다는 '장인'이 되고 싶다는 이 남자. 지금은 350명이 넘는 직원들을 책임지며 MMORPG '아키에이지'를 개발하고 있는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의 모습이다.

지난 2006년 하반기를 시작으로 무려 6년 동안 개발하고 있는 아키에이지는 지난 3월 11일 4차 테스트 종료를 기점으로 7부 능선을 넘었다.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다', '콘텐츠의 짜임새가 없다', '최적화가 안됐다' 개발자들 기운 빠지게 하는 평들도 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좋은 소릴 듣기 위해 시작한 테스트도 아니었고 맛보기용 마케팅으로 이용할 생각도 없었다. 차라리 지금 욕먹고 출시 때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갖춰 나오자는 것이 송재경 대표의 생각이다.

국내 게임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95일간의 비공개테스트도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내부에서도 모두 미친 짓이라고 말했지만, 기어이 끌고 갔다. 6년을 개발하든 10년을 개발하든 개발자가 만든 콘텐츠만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는 끝났다. 중요한 것은 순환구조를 가진 엔드 콘텐츠고 이것만 확실하게 만들어 놓는다면 MMORPG의 골격은 완성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생각이다.

콘텐츠간 짜임새가 없다고 평가받았던 퀘스트, 하우징, 공성전, 해상전투는 지난 테스트까지는 여전히 따로국밥이었지만 각각의 재료가 맛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제 '아키에이지'라는 그릇에 넣어 불만 댕기면 된다. 시기는 다음 테스트인 5차 비공개테스트. 쌀독에 바가지 긁히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장인의 망치질은 느려도 빗나가는 법이 없다.


▲엑스엘게임즈 송재경 대표



4차 비공개테스트는 애초 계획했던 80일간에서 15일을 더 늘려 무려 95일간 진행했다. 어떤 의도였나?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4차 테스트는 매주 크고 작은 패치나 콘텐츠를 붙여나가는 식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좀 더 테스트가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돼서 기간을 늘린 것뿐이다. 뭐 덕분에 버그도 늘었고 5차 테스트에서 해결해야 할 것도 늘었지만(웃음).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쩔 수 있나 따라와야지(웃음). 농담이고. 아무래도 테스트 기간이다 보니 평소보다는 쉬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렇게 테스트를 거치면 진행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고 게임이 변화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다들 몸은 피곤하지만 업무적인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유저들이 좋아한다.

만약 처음부터 게임을 다시 개발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테스트할 것인가?

=할 것 같다. 이제 노하우가 더 쌓였으니까. 시행착오 없이 더 잘할 것 같다.



▲유저들이 변화시킨 95일 동안의 '아키에이지'


불안하진 않나? 유저들의 콘텐츠 소모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6년을 개발한 '디아블로3'도 6일만에 불지옥이 정복됐고 'B&S'도 활력시스템을 넣었다가 결국 유저 항의로 삭제됐다.

='디아블로3'나 '블레이드&소울'이나 플레이 스타일을 보면 모두 빠른 템포의 게임이다. 아키에이지는 그에 비하면 조금 느린편이다. 그렇다고 이걸로 콘텐츠 소모속도를 조절할 수는 없겠지만, 이미 아키에이지는 '노동력'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과도한 플레이에 대해 대비를 하고 있다.

또, 그간 테스트를 통해 알아본 바로는 유저들은 레벨업이나 아이템 파밍에 집착하기보다는 집을 짓거나, 길드를 만들어 공성전을 하거나 나무를 심거나 배를 만들어 해적이 되는 등 각자의 플레이 방식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개발자가 여기서 해줄 일은 유저들이 가지고 놀 수 있는 도구들을 더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디아블로 이야기도 했는데 6년 개발한 게임이 3일 만에 최종 난이도 보스를 잡았다고 해서 그것이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 그 뒷단에 아이템 파밍과 같은 요소가 있고 그것이 개발자들이 의도한 콘텐츠다. '블레이드&소울' 역시 이를 대비한 콘텐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키에이지를 보면 사용자의견을 반영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많이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개발자의 소신보다 유저들에게 끌려다닌다는 느낌도 든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플레이는 유저가 하는 것이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제공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유저들이 무조건 원한다고 해서 우리가 아키에이지에 우주선이나 외계인을 넣을 순 없다. 유저들도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범위가 있고 그 안에서 개발하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많은 콘텐츠가 추가된 4차 비공개테스트


작년 행사에서 '콘솔게임은 미래가 없다'라는 발언으로 이슈가 됐다. 어떤 의도의 발언이었나?

=기억이 난다. 그것 때문에 콘솔 게이머들에게 어그로를 많이 쌓고 욕도 실컷 먹었다(웃음).

사실 그 발언에만 초점이 맞춰서 기사가 나가서 그렇지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행사는 발표회가 아니라 패널과의 대화형태로 진행됐었고 패널중 한 명이 '콘솔쪽 게임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나? 어디에 취업하면 좋나?' 이런 요지의 질문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한국에서 콘솔 게임 개발자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그때 조금 더 어른스럽게 대답했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힘드니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찾아보면 좋겠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분의 커리어를 위해서라도 조금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콘솔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라고 생각한다. 아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더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나같이 죽을날만 기다리는 사람은 모르겠지만(웃음) 앞날이 창창한 사람에게 게임을 추천해준다면 모바일이나 소셜, 온라인게임을 당연히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그래서 그렇게 발언을 했었다. 앞으로는 안 그래야지 후회하고 있다(웃음).

5차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데 또 어떤 콘텐츠가 들어가나?

=새로운 콘텐츠라... 뭐 해양 콘텐츠, 인스턴스 던전, 무역 등 몇몇 신규 콘텐츠가 들어가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게 주가 아니다. 5차 테스트에서는 그간 벌여놓은 콘텐츠를 조립해 매끈하게 플레이가 잘 되도록 가다듬는 작업이 주목적이 될 것이다.

테스트 기간에 '아키에이지'는 콘텐츠의 짜임새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5차 테스트에서는 현재까지 개발한 콘텐츠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5차 CBT에서는 해양콘텐츠가 대거 추가될 예정이다

해양 콘텐츠에 대해 공을 들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것 때문에 대륙 간 텔레포트 기능이 축소됐다.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게 바뀔 것이다. 시간이 넉넉한 사람은 배를 타고 가고 시간은 부족한데 돈이 많은 사람들은 상점에서 재료를 사서 이동하는 식으로 밸런스를 잡아가려고 하고 있다.

해양콘텐츠는 말 그대로 조금 더 즐길 수 있게 추가된다. 대표적인 예로 수산물같이 채집형 콘텐츠가 추가되서 배를 타고 배달을 하게 된다든지. 물품을 배달하는 과정에서 뺏고 빼앗기는 형태의 소규모 전투도 유도할 생각이다.

근해에서는 해양 목장(양식)이나 수상주택 등도 고려하고 있다. 이 부분은 현재 R&D단계이기 때문에 5차에서 등장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우징 콘텐츠는 달라지는 부분이 있나?

=유저들이 집을 지어야하는 이유에 대한 동기부여를 많이 해줄 생각이다. 가령 집을 지어야만 채집이나 가공할 수 있는 것이 있다던가 하는 식으로.

올해 출시된다면 다른게임과 다른 '아키에이지'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테라'부터 시작해서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트랜드는 타격감, 타겟팅 등 전투에 집중되고 템보가 빠른 익사이팅한 게임이었다. 그에 반해 '아키에이지'는 느리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취향 차이니 어느 게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런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들이라면 게임이 어떤지 한 번쯤 평가를 받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