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상용화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테라가 가진 이슈중 하나는 '개발비 400억' 이었다. 그간 개발비를 발표한 국내게임중 최고 기록이며, 상용화 이전까지 마케팅비를 포함하면 500억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사실 '400억'이라는 수치는, 예전 오픈베타때까지의 개발비를 320억 가량 예상한다는 인터뷰 답글이 그 시초였으며, 그 이후 오픈베타가 연기되면서 100억 가까이 개발비가 추가 투입되었을 것이기에 '400 억 개발비'라는 말이 공식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언급이나 멘트에 대해 개발사인 블루홀 스튜디오나 퍼블리셔인 한게임 역시 딱히 부정을 하지는 않고 있다.


100억 대작을 외쳤던 시기가 불과 몇년전이건만, 이제는 어지간한 MMORPG 게임이라면 100억은 기본 개발비가 되었기에 그만큼 게임산업이 발전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테라 이전에 개발비가 화제가 되었던 게임들은 과연 무엇무엇이 있었을까.





국산 블럭버스터 MMORPG, 그 시작에 아크로드가 있었으니.


국내 최초로 100억 원 이상의 개발비가 투입되며 NHN의 본격적인 게임사업 진출의 시작을 알렸던 아크로드. 한국 RPG 특유의 액션성 및 시스템과 서양 RPG의 시나리오 및 전략적인 요소를 잘 버무렸다며 그 당시 우세를 점하고 있던 리니지2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하 WoW)에 도전장을 냈드랬다.


서사적인 시나리오에서 나오는 수백여 개의 방대한 퀘스트와, 경이로운 수준의 그래픽, 런던 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사운드 등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와 리니지2와 WoW를 묘지 앞 ‘비석’으로 묘사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세간의 관심을 끄는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NHN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2005년 3월 30일 시작한 오픈베타. 첫 주말 동접속자가 무려 6만 5천명을 돌파하면서 드디어 국산게임이 WoW를 이겼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고, 증권가에서는 NHN이 제시한 '신작게임을 통한 매출액 120~150억 원'을 초과달성할 것이라고 장미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오픈베타 이후 발생한 복사사건을 비롯, 정작 게이머들의 요구수준에 크게 못미친 게임성은 유저들의 발걸을 돌리게 하면서 동시접속자수는 한 순간에 반토막이 났고, 결국 오픈베타를 시작한지 만 9개월이 지난 2005년 12월 8월 회생을 위한 '전면 무료화 선언'을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이후, 아크로드는 유저들의 입맛에 맞는 업데이트를 꾸준히 해오면서 NHN 게임스와 합병한 웹젠에 의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비스를 이어오고 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게이머들에게는 MMORPG의 흥행실패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망한 블럭버스터 게임의 원조’로 기억되고 있다.



[ ▲ 아직도 게이머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바로 이 광고 ]





충격과 공포, 빅3의 등장과 퇴장


사실 대한민국 게임계 역사상 빅3만큼 큰 기대를 받았던 게임들도 찾기가 힘들지 싶다. 그 전에 아크로드가 있었지만 NHN은 MMORPG에 대한 서비스 경험이 전무했던 반면, 제라, 썬,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각각이 기대를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태생적 이점이 있었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라그나로크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스타 개발자 김학규 대표(IMC 게임즈)가 5년만에 내놓는 신작이었으며, 제라는 캐주얼 게임의 명가 넥슨이 3년간 100억 원의 개발비와 노하우를 쏟아부어 야심차게 내놓는 첫 번째 성인용 MMORPG였다. 썬(SUN)은 또 어땠나? 가장 첫 번째로 3D 시대를 열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뮤의 후속작으로 오픈하기 전부터 중국의 더나인과 1천만 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빅3는 ‘더 좋게 더 많이’라는 단순한 컨셉에서 벗어나 각자 독특한 컨텐츠를 어필했는데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멀티캐릭터컨트롤 시스템(MCC)과 NPC 영입 시스템를 내놓았고, 제라는 수천, 수만가지 전략이 가능한 에고패널 시스템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썬은 실사와 같은 높은 퀄리티의 그래픽과 함께 MORPG의 형태의 룸방식을 선택해 빠르고 통쾌한 전투를 추구했다.


그러나, 세 게임 모두 원래의 기대치에는 한참을 못미치는 모습을 보이며 '실패’라는 단어를 재정립시키는데 일조했다. 서비스를 종료한 제라를 제외한 두개의 게임,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썬은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여전히 서비스되고 있으며, 세 게임중 가장 상황이 나은 편이었던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개발사 IMC 게임즈는 흑자로 전환하였지만, 기대감에 비해 너무나도 낮았던 현실이었기에 빅3에 대한 게이머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


빅3의 몰락은 한빛소프트, 웹젠 등 게임계 시장 재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전체 게임계 또한 100억 이상 규모의 개발비가 투입된 블럭버스터 대작들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온라인 게임 신작을 부를 때 ‘빅3’라고 표현하는 것이 칭찬이 아닌 ‘비난’으로 받아들여졌던 시기도 이때부터였다.



[ ▲ 빅3중 가장 먼저 서비스를 종료했었던 비운의 '제라' ]




닯은 꼴 블럭버스터의 운명 , 라그나로크2와 프리스톤테일2


빅3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시고 게임계도 다시 활력을 찾아갈 때쯤 라그나로크2와 프리스톤테일2는 비슷한 시기에 출현에서 시차를 두고 오픈베타를 시작하게 된다. 사실 두 게임은 닮은 데가 상당히 많았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1세대 온라인 게임의 직계 후속작이면서, 100억 이상의 개발비가 투입되었고, 비록 버전은 다르지만 둘 다 언리얼 엔진을 사용했다.


게임 외적인 마케팅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는데 프리스톤테일2가 지금은 슈퍼스타가 된 가수 손담비를 통한 홍보에 집중했다면, 라그나로크2는 애니메이션 ‘카우보이 비밥’ 등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작곡가 칸노 요코를 기용, 한국에서 열린 라그나로크2 콘서트가 예매 3시간만에 전부 매진될 정도로 화제를 낳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게임 모두 오픈베타를 시작한 이후 쇠락하는 과정까지도 역시 닮았다는 점이다. 빅3 이후 가장 많은 유저들을 동원했었지만 부실한 컨텐츠와 각종 버그, 미숙한 운영, 불안정한 서버 문제 등으로 인해 게이머들로부터 가장 주목받았었던 두 후속작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각종 게임커뮤니티에는 라그라로크2와 프리스톤테일2에 한맺힌 유저들의 분노의 댓글을 종종 발견할 수 있으며, 앞서 언급한 아크로드와 더불어 MMORPG의 흥망성쇠에 대한 유저들의 토론에 단골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단, 라그나로크2는 현재 '라그나로크 온라인2: 레전드 오브 더 세컨드'라는 이름으로 리뉴얼 오픈을 계획 중이며, 25일(어제)부터 케어 CBT를 시작해 서버 부하와 기본적인 게임조작 및 밸런싱을 테스트 중이다. 라그나로크2가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아직도 많은 게이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 ▲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2 ]



※ 아이온이 출시하기전 조이온의 '거상2', 액토즈소프트의 '라제스카'와 같은 게임들이 새로운 블럭버스터 게임으로 기대를 받았으나, 클로즈베타만 수차례 진행하다 결국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된 비운의 게임으로 남기도 했다.




블럭버스터 최초의 성공작, 엔씨소프트의 아이온


아이온이 정말 대단한 이유는 아크로드부터 빅3를 거쳐 라그2와 프테2까지 4년 동안이나 이어져왔던 국산 대작 MMORPG들의 '실패의 악순환'을 끊고 비로서 최초의 성공을 이뤄냈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리니지2 이후 성공한 대작 게임으로 아이온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엔씨소프트 스스로가 ‘결자해지’를 한 셈.


4년의 개발기간과 200억 원 이상의 어마어마한 개발비가 투입되었지만, 2008년 11월 11일 오픈베타 이후 상용화를 시작해 지금까지도 좀처럼 게임순위에서 1위를 놓치지 않을 만큼의 큰 성공은 국산 블럭버스터 MMORPG도 승산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증명해 냈다.


아이온 오픈베타를 시작하기 바로 직전인 2008년 10월 31일, 2만 2천원까지 내려갔던 엔씨소프트의 주식이 지금은 거의 10배에 가까운 20만원대를 유지하고 있으니 엔씨소프트에게 아이온의 존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아이온이 성공했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이 비단 엔씨소프트 직원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그동안 얼마나 국내 게임계가 ‘성공’에 목말라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이 예가 되기도 했다.


상용화 이후, 1.5, 2.0 대규모 업데이트를 차근차근 진행했으며, 현재 최대의 적수로 떠오른 테라와 경쟁하기 위한 2.5 대규모 업데이트를 최고 본서버에 실시한 아이온. 현재 테라와 점유율을 두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중이지만, 장기적으로 아이온이 앞으로 등장할 신작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얼마나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가 매우 궁금하다.



[ ▲ 26일 본서버에 업데이트 된 아이온 2.5 '주신의 부름' ]





한게임과 블루홀, 400억 블럭버스터 MMORPG ‘테라’의 탄생


온라인 게임과 관련된 어디를 가도 ‘테라’에 대한 정보와 소식이 넘쳐나는 요즘이니, 각설하고 간단한 산수문제부터 풀어보자.


테라는 25일부터 월정액 19,800원으로 유료화를 시작했고, 유료화 첫날 하루 게임트릭스 PC방 점유율은 11.97%를 기록했다. 테라 오픈베타 첫날 동시동접자수가 16만 5천 명이었고, 그 당시 점유율이 14% 정도였던 걸 감안한다면 테라 유료화 첫날의 동시접속자 수는아무리 적어도 13만 명에서 14만 명은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유료화 둘째날인 26일은 테라가 PC방 점유율에서 15.18%를 기록하면서 다시 1위를 차지했다. 유료화 둘째날이 아이온 2.5 업데이트 시기였기에 아이온이 장시간에 걸친 서버 점검을 진행한 것도 점유율이 높았던 이유중 하나이지만, 현재 발표되는 각종 지표나 추세로 볼때 테라의 동시접속자가 10만대 초반이 아닌 중후반대는 될 것으로 미루어 짐작케 한다.


한편, 엔씨소프트의 실적발표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테라와 정액 요금이 동일하고 동시접속자 25만 명을 꾸준히 유지했던 아이온의 2009년도 1분기(3개월) 국내 매출액이 자그만치 426억 원이다. 여기에는 정액 요금을 결제한 유료계정의 매출은 물론, PC방 매출까지 포함되어 있다.



[ ▲ 아이온의 런칭 이후 2008년, 2009년 분기별 국내 매출 실적 (단위: 억원)
해외 로열티 및 해외 매출이 제외된 순수 국내 매출이다. ]



아이온의 경우, 19,800 원에 300 시간이라는 시간 개념이 포함되었던 터라, 시간 제한 없는 정액제를 택하고 있는 테라와 일률적으로 비교하기엔 쉽지 않다. 하지만, 테라와 상당히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었던 아이온의 1분기 매출을 볼때, 테라가 동시접속자 수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흐름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개발비 이상의 매출액을 기록하고 투자비를 모두 회수하는 데에는 몇달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정확한 유료 계정 수에 따라, 그리고 향후 테라의 성적에 따라 위의 계산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만약 테라가 동시접속자 10만 명 이상을 지속적으로 끌고만 가준다면 아이온에 이어 국산 MMORPG에서 ‘규모의 경제학’이 통함을 몸소 증명하는 두 번째 게임이 되는 것이다. 특히나, 테라는 전통적인 MMORPG에서 탈피, '프리타겟팅'이라는 조작체계를 가져 기존에는 없는 새로운 유저층의 진입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근 6년 동안 전 세계 MMORPG를 주름잡았던 월드워브워크래프트 오리지날의 개발비는 600~700억 원으로 알려져있다. EA가 투자하고 바이오웨어가 제작 중인 대작 MMORPG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개발비에 1억 달러(한화 1,100억 원 이상)이 투입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국내 상황과는 별개로, 테라는 이미 규모와 완성도를 아우르는 전 세계적인 대작 MMORPG들의 무한 경쟁에까지 동참하고 있으며, 동시에 국산 블럭버스터 MMORPG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