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 첫 출시 이후 iPod은 경이적인 속도로 성장해 왔습니다. 단순한 아이디어 하나가 세계적으로 7,0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가며 쇠망해가던 애플을 현재의 모습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단순히 MP3 플레이어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 코드로 포지셔닝한 iPod의 성공은 깔끔한 디자인, 좋은 성능의 MP3 플레이어 정도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애플에는 광적인 팬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애플 제품은 지나치게 '매니아' 지향적이라는 오명을 자주 들었죠. 90년대 말 다시 CEO로 복귀한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출시하며 라이트유저라 불리는 일반인을 겨냥해 갑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뒀고, MP3 플레이어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시장에서도 그 인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플에서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폰이나 아이팟터치 2세대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으로 확장성을 엄청나게 끌어올렸고, 그 어플리케이션 중 게임에 대한 관심도 대단히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팟/아이폰 신드롬이 과연 한국에서도 통할까요? 아이팟을 처음으로 접해본 그 느낌을 소개합니다.



◆ 환율 크리! iPod Touch 가격 급등! 그것은 오히려 지름신의 원동력이 되었다.

올해 3월 애플은 1100원 대의 원-달러 환율에 맞춰져 있던 아이팟 가격을 1400원 안팎의 환율 기준으로 기습 조정합니다. 그로 인해 아이팟의 가격은 최대 38% 인상되었습니다. 아이팟터치 8GB 제품은 28만원에서 37만 9천원으로, 32GB 제품은 48만 9천원에서 65만 9천원까지 상승했으니 실로 엄청난 가격 조정이었습니다.



[ 갑작스럽게 엄청나게 올라버린 아이팟의 가격 ]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애플의 가격 조정은 아이팟터치 구입을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으며 판매량을 급감시켰습니다.


아이폰의 한국 출시를 기다리고 있던 기자에게 애초에 전화 기능이 빠져 있는 아이팟터치는 관심사항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환율 크리로 말도 안되는 가격 인상을 보고나니 더더욱 아이팟터치는 관심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것입니다.


점차 환율이 안정화되었지만 애플 코리아에서 조정한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급감한 판매량을 보면 가격을 다시 낮출만도 한데 현재까지도 가격 조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환율이 떨어지자 각종 오픈마켓에서 예년 가격으로 아이팟을 판매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현재 아이팟터치 8GB의 공식 가격은 37만원인데, 오픈마켓에서는 28만원 수준에서 판매하고 있으니까요.


공식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오픈마켓 가격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셈입니다. 저는 이 시점에서 지조(?)를 잃어버렸습니다. 아이폰이 나오면 지르겠다고 작정하고 있었지만, 올 초로 예상되던 아이폰의 출시가 기약도 없는 상태가 되었고, 급등한 아이팟터치의 정식 가격은 환율이 떨어짐에 따라 지금이 가장 구입하기 좋은 시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아이폰을 판매하는 날짜를 기다리느니, 정가보다 한참 싼(?) 가격으로 아이팟터치를 구입해 사용하다가 아이폰이 출시되면 갈아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저는 아이팟터치 16GB를 들고 있었습니다. -_-;; ]





◆ 이게 설명서야? 어쩌라고..


처음 아이팟터치를 받아보았을 때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40만원 가까운 돈을 잡아먹은 이 첨단 기기는 흔히 말하는 꽁짜폰들보다 작은 상자에 들어있었고, 기기 설명을 위한 매뉴얼은 라면의 조리방법만큼이나 심플했습니다.







일단 켜보자라고 생각하고 아이팟터치에 전원을 넣었으나, 화면에 보이는 아이콘은 몇 개 되지도 않고, 어떻게 사용하라는 것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기존에 아이팟을 사용했던 유저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아이튠즈를 찾아서 설치하고, MP3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 컨텐츠를 동기화시키고, 앱스토어를 통해 인기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사용하겠지만, 처음 아이팟터치를 잡아본 기자에게는 ‘어쩌라고?’ 라는 말만 내뱉게 했습니다.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매뉴얼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뒤져 아이팟터치 관련 정보들을 찾아가며 사용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터치가 첫 사용자에게 이렇게 불친절한 상품이었다니..



[ 아이팟터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iTunes 사용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





◆ 국적을 미국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아이폰/아이팟터치 성공의 일등공신 앱스토어.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제공되는 어플리케이션이야말로 아이팟, 아이폰을 휴대용 MP3 플레이어 이상의 물건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물론 기기적인 성능도 뛰어나지만 이를 뒷바침 해주는 수많은 어플리케이션들은 어떤 휴대용 기기도 따라오지 못하는 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난 해 7월 애플이 앱스토어 서비스를 시작한 후 9개월만에 프로그램 다운로드 회수가 10억 건을 돌파했으며, 현재 앱스토어에는 4만개 이상의 컨텐츠가 등록되어 있고, 월 평균 1억건 이상의 다운로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앱스토어에 힘입어 아이폰/아이팟터치의 전세계 판매량은 지난 해 1억 4,000만대에 넘어섰고, 이 수치들은 더욱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플리케이션 중 게임이 차지하는 비율은 30%를 넘어갑니다. 앱스토어에 하루에 등록되는 어플리케이션이 약 150여개인데 이 중 게임이 50여개 이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국 앱스토어와는 관계없는 수치입니다.


앱스토어는 국가별로 별도로 운영되고 있고, 가장 큰 시장 규모, 가장 많은 어플리케이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미국 앱스토어입니다. 최근 한국의 모바일 게임사들도 경쟁적으로 아이폰/아이팟용 게임을 출시하고 있지만, 한국 앱스토어가 아닌 미국 앱스토어에 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앱스토어에서는 한국 게임사가 만든 게임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게임 심의 때문입니다. 한국의 앱스토어 카테고리에는 ‘게임’ 항목이 아예 빠져있습니다. 간간히 심의를 받고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로 게임들이 등록되기도 하지만 그 양은 매우 적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이폰/아이팟용 게임을 해보고 싶다면 아이튠스 미국 계정이나 홍콩 계정을 따로 만들어 게임을 다운받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국적의 계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고 결제도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 한국에 살고 있어도 미국을 거주지로 등록해야 하다니.. 이게 무슨.. ]



6월 2일 전세계 60개국에 22개 언어로 번역되어 동시 출시된 심즈3는 아이팟/아이폰용으로도 출시되었고, 미국에서는 며칠째 다운로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 앱스토어에는 등록도 안되어 있습니다. 만약 아이팟/아이폰용 심즈3를 즐기고 싶다면 미국인으로 위장해 아이튠즈 계정을 만들어야 하고, 해외 결제가 가능하게 신용카드를 변경하고, 한글판도 아닌 영문판을 다운받아야만 합니다.


물론 아이팟/아이폰이 휴대용 게임용기가 아니기 때문에 게임 한 가지로 아이팟/아이폰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이폰/아이팟으로 다양한 게임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은 열악하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 앱스토어에서 엄청난 인기를 받고 있는 심즈3, 한국 앱스토어엔 없습니다. ]




◆ 애플도 불법 복제는 피해갈 수 없나?


아이팟/아이폰용 어플리케이션들의 가격은 비싸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게임의 경우 매우 인기 있는 신작의 경우에도 $9.99달러이며, 하루에도 수십개가 쏟아지는 판국에 높은 가격을 유지하며 인기를 끌 수 있는 게임은 극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유료 게임들도 $0.99달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한국인 개발자가 개발하여 전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헤비매크 또한 $0.99에 구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아이팟터치를 해킹해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정상적으로 구입하지 않고 불법 복제를 통해 사용하는 일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아이팟터치 해킹 = 불법 복제 라는 공식이 100%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불법으로 복제해 사용하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아이팟터치의 바탕화면을 바꾼다거나, 폰트를 바꾸는 등 해킹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용자들은 해킹을 통해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무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이폰/아이팟터치 정보를 공유하는 카페나 블로그에서는 해킹에 대한 강좌가 버젓이 노출되어 있고, 누구나 쉽게 자신의 아이팟터치를 해킹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유료 어플리케이션 파일의 공유는 공개적으로 오고가지 않지만 구하려고 한다면 구하는 일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들은 한국 앱스토어에서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어플리케이션들의 가격이 저렴한데도 해킹이 성행하고 있는 이 상황은, 어쩌면 한국 앱스토어의 부실함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요?



[ 아이팟터치의 해킹은 한국에서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





◆ 흙 속의 진주를 찾아라. 매일 쏟아지는 수백개의 게임들

수천 수만개의 아이폰/아이팟용 게임들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아이팟터치를 구매했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루에 등록되는 게임만 수십 종이고, 이 모든 게임을 모두 구입해 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떤 게임이 재미있는 게임인지 사전 조사하는 시간만도 적지 않게 들어갔으니까요. 그리고 역시나 괜찮은 평가를 받는 게임들은 90%이상 한국 앱스토에선 찾을 수 없었고, 홍콩이나 미국 앱스토어를 이용해야 했습니다.



[ 한국 앱스토어 첫화면, 게임 카테고리가 없습니다. ]



[ 미국 앱스토어 첫화면, 게임 카테고리가 보이시죠? 심즈3가 1등이군요. ]



그렇게 힘들게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도, 막상 게임을 해보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모바일 게임사가 앱스토어에 뛰어들며 자신만만하게 발표한 게임들마저도 실제로 해보면 ‘속았다’라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아이팟터치의 터치와 틸트라는 독특한 조작 체계를 십분 활용하면서도 게임으로서 대단한 매력을 지닌 작품들도 있었습니다만..


아이팟/아이폰용 게임이 돈이 된다고하니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혼란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싼 맛에 이것저것 게임들을 받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카드 고지서’에 찍힌 금액은 기자를 좌절하게 했습니다.



◆ 한국에서 아이팟터치는 아직까지도 때이른 상품이 아닐까.


아이팟터치는 분명 빼어난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임이 틀림없습니다. 미디어 플레이어로서의 완성도, 미려한 디자인과 탁월한 조작감, Wi-Fi를 이용한 네트워크 능력,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한 막강한 확장력은 그 어떤 휴대용 기기도 따라올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선사합니다.


그러나 아이팟터치의 휴대용 게임기로서의 능력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듭니다. 터치와 틸트라는 조작체계가 가지는 기기 자체의 한계성을 제외하고라도, 현 시점의 한국에서는 너무나 부정적입니다. 아이팟터치를 빛나게 하는 앱스토어는 한국에서는 너무나 제한적이고, 해외 앱스토어는 너무나 불편하니까요. 아직은 말이죠.


얼마 전 게임물등급위원회는 게임 심의 온라인 신청과정을 수정해 개인이 심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앱스토어와 같은 오픈마켓을 통해 서비스 되는 게임을 더 쉽고 빠르게 심의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이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한국의 앱스토어에도 게임 카테고리가 등장하게 될 것이고 아이팟터치로 게임을 즐기는 분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질러버린 저는 간절히 희망합니다. 하루 빨리 그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