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n Air TRUE' 방태수. 사실 방태수는 그저 그런 저그 선수였다. 프로리그에서도 특출난 활약을 보이는 편도 아니고, 개인리그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낸 적도 없는 평범한 선수였다. 지난 2013 WCS 코리아 시즌1 망고식스 GSL에서 정명훈(SK텔레콤)과 혈전을 펼치며 잠시 주목받는 듯 했으나 거기까지였다.

방태수는 좋게 말하면 스타일리쉬한 선수, 나쁘게 보면 최신 트렌드에 뒤쳐진 고집불통이었다. 특히 대 테란전에서 아무리 유리한 상황에서도 번식지 단계를 유지하며 뮤탈리스크, 저글링, 맹독충만 고집하는 모습은 많은 저그 팬들로부터 화끈하고 멋지다는 평도 있었지만, 너무 자신만의 틀에 갇혀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솔직히 기자도 방태수의 스타일이 멋지긴 하나 8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큰 오산이었다. 방태수의 독특함과 의외성은 이미 한계를 뛰어 넘었다. 남들과는 다른 발상과 개념으로 지난 시즌 우승자 주성욱(KT)을 3:1로 격파했다. 최근에는 새로운 운영과 색다른 플레이를 자주 펼치는 방태수의 매력에 빠져드는 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방태수는 항상 맞춰가야 하는 종족인 저그가 조금만 발상을 전환하면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특히 세트스코어 1:1 상황에서 주성욱과의 펼친 8강 3세트에서는 그야말로 발군의 모습을 보여줬다.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



주성욱은 경기 초반 세종과학기지에서 유행하는 광자포 러시를 준비했다. 주성욱이 그동안 대 저그전에서 광자포 러시를 선보인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만큼 광자포 러시는 현재 저그와 프로토스전 트렌드에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주성욱의 광자포 러시는 김유진(진에어)이나 김도우(SK텔레콤)에 비해 미흡했다. 수정탑의 위치 자체는 좋았지만, 광자포 건설 타이밍이나 일벌레가 달라붙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어용 수정탑의 위치가 좋지 못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다. 비록 수많은 연습을 통해 시전했던 광자포 러시였겠지만, 방송 무대에서 선보인 주성욱의 광자포 러시는 위협적이지 않았다.


■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 방태수

▲ 바퀴따윈 모른다!


주성욱의 광자포 러시를 막아내며 기분 좋은 초반을 보낸 방태수는 일벌레 확보에 주력했고, 주성욱은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불사조 운영을 선택했다. 불리한 출발이지만, 운영을 통해 후반으로만 이끌면 방태수 정도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주성욱은 불사조와 함께 공1업 광전사 견제를 시도했다. 보통 대부분 저그들은 불사조를 견제할 소수의 여왕과 점막의 이동 속도 상향을 활용한 바퀴 컨트롤로 이를 막아낸다. 그러나 방태수에게 바퀴 소굴은 없었다.

대신 방태수는 여왕을 꾸준히 생산했고, 10여기의 여왕과 다수의 저글링을 통해 주성욱의 2차 공격을 무난히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여왕은 애벌레 펌핑과 점막 설치 용도로만 인식되어 있지만, 공격력도 나쁘지 않고 수혈을 통해 지속싸움 역시 강력한 유닛이다. 방태수는 바로 그 점을 적극 활용했다.


■ 주성욱의 심리전, 방태수에겐 무용지물



주성욱은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 2확장을 가져갔고, 꾸준한 정찰을 통해 방태수가 빠르게 군락으로 넘어간다는 정보를 얻어냈다. 저그가 군락으로 빠르게 넘어갈 경우에는 저그의 체제는 3가지 경우로 예측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바퀴와 히드라리스크, 살모사, 두 번째는 타락귀와 감염충, 무리 군주, 세 번째는 울트라리스크다.

첫 번째는 바퀴 소굴 자체가 없었고, 두 번째 경우는 프로토스가 우주 관문을 보유한 상황이라 폭풍함의 추가가 빠르다. 그렇기 때문에 주성욱은 울트라리스크 체제에 대한 맞춤 운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주성욱은 환상 거신을 통해 방태수에게 거짓된 정보를 흘려 타락귀를 강요하면서 자신은 두 개의 로봇공학 시설에서 불멸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태수는 이에 속지 않았다. 어쩌면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방태수는 울트라리스크와 무리 군주를 동시에 준비했고, 거신을 확인했음에도 미리 타락귀를 생산하지 않아 자원적인 손해도 전혀 보지 않았다. 제대로 된 큰 교전은 없었지만, 흔히 프로게이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을 인용하면 저절로 이겨져 있었다.

■ 저그 조합의 꽃은 다름 아닌 '여왕'이었다.

▲ 보기만해도 무시무시하다.


방태수는 8가스를 채취하는 동안 자원에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 저글링과 여왕만으로 프로토스의 견제를 막아낸 뒤 무난히 감염충과 무리 군주, 울트라리스크를 생산하기 이르렀다. 이 조합은 극 후반에 갖춰져도 굉장한 화력을 발휘하는 조합이다.

보통 이러한 조합을 갖추기 위해서는 중간 과정, 즉 바퀴나 히드라리스크를 통한 힘싸움을 거치며 넘어가게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방태수는 초반부터 확보한 자원으로 중간 과정 없이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조합을 갖췄다.



반면, 주성욱의 조합은 방태수에 비해 부족했다. 어떻게든 소수의 폭풍함을 확보하긴 했지만, 집정관이나 고위 기사의 부재가 크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미 방태수의 병력은 주성욱의 마지노선까지 도달했고, 피할 수 없는 대규모 교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역시 저그의 압도적 승리였다. 방태수는 감염충의 진균 번식으로 폭풍함을 묶은 뒤 프로토스의 주력 병력을 유인했고, 무리 군주와 울트라리스크가 프로토스의 병력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체력이 높은 울트라리스크나 무리 군주에게 여왕의 수혈이 거의 무한으로 들어가면서 압승을 거두고 승리했다.

이날 방태수는 승자 인터뷰 중 '"주성욱 선수는 래더 순위가 높기 때문에 나를 만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전략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진 않았던 것 같다."고 밝혔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간혹 래더 최상위권 유저들은 래더 랭킹이 낮은 유저의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아 허무한 패배를 당하곤 한다.

그러나 방태수의 승리는 단순히 그런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방태수는 자신만의 색깔이 확실한 선수다.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의 스타일을 믿었고, 디펜딩 챔피언 주성욱을 꺾으며 실력을 입증했다. 저그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구원자는 방태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