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연전 방식에서 역올킬은 선봉올킬보다 더더욱 하기가 힘들다. 선봉으로 나선 선수가 멀티킬을 기록할 때는 상대 팀 입장에서도 그 후에 나올 선수들을 고려한 엔트리를 짜야 하기 때문에 고민할 거리가 많다. 하지만 최후의 1인이 등장한 상황에서 상대 팀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이 오로지 그 선수 하나만을 저격한다. 때문에 역올킬을 달성한 선수는 엄청난 환호를 받고, 팀의 영웅이 된다.

그 달성하기 힘들다는 역올킬이 바로 어제, 9월 22일에 펼쳐진 SK텔레콤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 2015 시즌 통합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펼쳐졌다.

■ 1일 차부터 예고된 김유진의 몽둥이질?

김유진(진에어)의 최대 강점은 끝을 알 수 없는 전략의 가짓수다. 김유진을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상대는 다시는 그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고, 경기를 치르게 된 선수는 김유진의 페이스에 서서히 말려들다가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김유진의 끝없는 전략, 마성의 경기력에 매료된 팬들은 '빠따'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김유진의 경기를 즐겼다. 그런 김유진이 준플레이오프 1일 차부터 kt를 때릴 '몽둥이'를 들고 나올 것은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 21일 펼쳐진 1차전 4세트, 바니연구소에서 주성욱(kt)을 만난 김유진은 자신의 기지 근처도 아닌, 가장 확보하기 힘들다는 맵 중앙 풍부한 광물 지대에 연결체를 건설했다. 김유진은 멀티를 짓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예 로봇공학 시설과 로봇공학 지원소까지 건설해 이곳을 전진 기지로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공격 타이밍을 앞당기기 위한 선택이었고, 이는 적중했다. 주성욱의 트리플 멀티가 활성화되기 직전 타이밍에 김유진은 공격을 시도했다. 양쪽의 거신 수는 동일했으나 평소와 다른 타이밍에 공격을 당한 주성욱은 위치를 잘못 잡고 싸운 탓에 교전에서 대패하면서 GG를 선언해야 했다.

■ '갓'도, '태양'도 피해갈 수 없었던 김유진의 칼날

22일에 진행된 2차전, 이영호(kt)가 정말 오랜만에 완벽히 부활하며 조성호, 이병렬, 조성주(이상 진에어)라는 강적들을 연달아 쓰러뜨렸다. 3킬을 기록하고 기세가 오를대로 오른 이영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 선수는 진에어 최후의 보루 김유진이었다.


이번에도 김유진은 앞마당을 생략하고 풍부한 광물 지대에 멀티를 했다. 이를 본 이영호는 해병과 건설로봇을 대동해 벙커 러시를 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이내 병력을 회군시켰다. 김유진이라면 함정을 파 놓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을 가능성이 크다. 자신의 존재감만으로 고비를 넘긴 김유진은 풍부한 광물 지대에서 수급되는 많은 양의 자원을 바탕으로 관문 병력을 이끌고 이영호의 앞마당을 두들겼다.

이영호는 막고 막고 또 막았다. 만일 김유진이 평범하게 앞마당만 가져간 상황에서 쓴 올인이었다면 이영호가 이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김유진은 일반적인 프로토스와 달리 풍부한 광물 지대를 가져가는 과감한 수를 선택했고, 차원관문에서 끝없이 소환되는 관문 병력을 감당하지 못한 이영호는 결국 GG를 선언했다.


김유진은 kt의 두 번째 타자 전태양(kt)을 상대로 점멸 추적자를 준비했으나, 실제로 전태양에게 보여준 추적자는 단 두 기 뿐이었고, 그나마도 점멸이 되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살짝살짝 간을 보기만 했다. 완전히 속아넘어간 전태양은 평소처럼 땅거미 지뢰 드랍으로 견제를 하기 위해 의료선을 떠나보냈다. 그러나 그 순간, 숨겨뒀던 김유진의 추적자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순식간에 벙커를 날려버리고 앞마당까지 진군했다.

이 과정에서 전태양은 오랫동안 앞마당이 마비됐고, 지뢰 견제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앞마당에 있던 보급고와 공학연구소까지 파괴당했다. 전태양의 바이오닉 관련 업그레이드가 늦자 김유진은 후속타로 차원 분광기에 암흑 기사를 태워 또 일꾼을 학살했다. 전태양은 끌어모은 병력으로 상대의 제 2멀티 연결체를 노렸지만 체력을 100 남기고 파괴에 실패했다. 이미 경기 초반부터 상대의 전략에 당해 심대한 타격을 입었던 전태양은 유일한 기회를 놓치고 결국 패배했다.

■ 위기 속에서 빛났던 김유진의 이중 견제

3:0 상황에서 두 세트나 내준 kt는 주성욱을 출격시켜 빌드 상성을 크게 타는 프프전을 준비했다. 1차전과 맵까지 똑같은 상황, 주성욱은 전 날의 패배를 갚으려는 듯 초반부터 빌드, 멀티 수에서 확실하게 앞서가며 경기를 끝낼 준비를 했다. 김유진은 상대 병력에 추적자 수가 얼마 없음을 간파하고 차원 분광기에 광전사를 태워 견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성욱이 불멸자, 거신 등 강력한 병력들을 더 많이 보유한 상황. 차원 분광기까지 생산한 김유진은 그만큼 주 병력의 힘이 약한 탓에 언제 밀릴지 모르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이에 김유진은 차원 분광기를 하나 더 생산하고 프프전의 생명과도 같은 거신을 따로 빼서 차원 분광기에 태워 견제를 보내는 선택을 했다.


거신까지 보낸 탓에 정면 교전에서의 힘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김유진은 오히려 먼저 상대 앞마당까지 진군해 공격적인 움직임을 펼쳤다. 그 사이 두 기의 차원분광기에서 거신과 광전사가 뒷마당에 드랍됐고, 추가 광전사들이 주성욱의 앞마당에 소환됐다. 동시에 김유진의 주 병력은 주성욱의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도로 당황한 주성욱은 갈팡질팡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뒷마당에 떨어진 엄청난 수의 광전사를 무시할 수도 없는데, 힘도 약한 김유진의 주 병력이 앞마당에 나타나자 어디를 막아야 할지 빠르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뒤늦게 병력을 배분해 양측을 막으러 나섰지만 이미 뒷마당은 김유진의 손에 떨어진 후인데다 수비에 나선 거신까지 잃었고, 더 막강한 병력으로 김유진의 주 병력을 처리하러 나서자 김유진은 대규모 귀환으로 도망갔다. 김유진은 여전히 거신 한 기를 차원 분광기에 태워 아케이드 컨트롤을 하며 주성욱의 혼을 뺐고, 손이 꼬인 주성욱은 거신을 흘리는 등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폭풍함을 생산하려던 주성욱의 계획은 처음부터 끝까지 김유진의 손에 철저하게 망가졌고, 순식간에 자원 격차를 벌린 김유진의 지상군이 주성욱의 폭풍함과 거신을 쓸어버리면서 kt 최강의 카드가 무너졌다.

■ 등잔 밑. 김유진과 경기할 때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장소.

3:0으로 리드하던 kt가 3:3까지 따라잡혔다. kt 최후의 선수는 바로 정석 운영의 대가 중 한 명인 김대엽이었다. 김대엽은 점멸 추적자를 데리고 김유진의 앞마당까지 당도해 상대를 본진 안에 밀봉시켰다. 김유진은 로봇공학 시설에서 불멸자를 생산할 준비를 했지만 아직 불멸자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고, 추적자 수에서 김대엽이 앞선데다 김유진은 점멸 업그레이드조차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김유진은 상대의 점멸 추적자에게 농락당하며 허무하게 경기를 내줄 수도 있었던 상황. 그러나 일찌감치 밖으로 나가 있던 김유진의 탐사정 한 기가 모든 상황을 뒤집었다. 김유진의 탐사정은 슬그머니 상대 본진 안에 잠입해 수정탑을 건설했다. 11관문 푸쉬를 선택했던 김대엽은 모선핵을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두어 기에 불과한 김유진의 광전사에 엄청난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본진이 쑥대밭이 된 김대엽은 앞점멸로 진입하면서 김유진의 추적자를 몰살시키려고 했지만, 때맞춰 불멸자가 등장하는 바람에 결국 전원 후퇴해야 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은 김대엽은 이후 트리플을 따라가며 격차를 차근차근 좁혔으나 결국 김유진의 한 방 병력을 막지 못해 GG를 선언했다.


김유진은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 총 5번 등판했다. 그 중 평범하게, 무난하게 흘러간 경기는 하나도 없었다. 김유진은 항상 무난함에서 한참 벗어난 플레이를 했고, 상대 선수들은 이를 예측하지 못해 김유진의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사파'의 수장으로 불리는 김유진은 그 '사파'라는 특색 때문에 역올킬은 힘들 것이란 사람이 많았지만, 보란듯이 역올킬에 성공했다. CJ를 상대로 선봉 올킬을 기록한 적도 있는 김유진인 만큼 다가올 통합 플레이오프에서 그의 활약을 더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