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롤챔스는 역대 최대의 변화를 선보였다. 3년 이상 유지하던 '토너먼트' 방식을 '풀리그' 방식으로 개편했고, 큰 틀의 변화만큼이나 많은 세부조항이 바뀌었다. 사상가 카를 힐티가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시기는 나쁜 날씨가 계속될 때가 아니라 구름 한 점 없는 날들이 계속될 때라고. 그의 말로 봤을 때 한국 e스포츠는 걱정이 없다. 스타크래프트 이후 한국 e스포츠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음에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매년 변화를 추구한다.

특히,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도전을 계속해서 추구하는 롤챔스는 다른 종목들에 귀감이 되어 한국 e스포츠 대상 최우수 종목으로 꼽혔다. 이에 인벤은 2015 롤챔스의 변화를 돌아보고 더 나은 차기 시즌을 위해 무엇을 더 고민해야 하는지 일 년간의 이슈를 돌아보며 정리해보는 자리를 가졌다.


■ 토너먼트에서 풀 리그로! '리그제 개편'


2015년 들어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역시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의 '리그제 개편'이다. 기존 토너먼트 형식의 대회에서 풀리그 방식으로 대회의 틀을 바꿨다. 그간 안정적으로 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던 팀과 선수들의 고민을 해결함과 동시에 팬들에게 더 많은 경기를 보여줄 수 있어 모두가 만족하는 방안이었다. 또 안정적인 경기 수 보장으로 중하위 팀들의 전략적인 픽 사용을 기대했고, 리그제의 장기성에서 탄생할 각종 스토리를 통해 즐길 거리가 더욱 풍성한 롤챔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롤챔스의 주류 메타는 '운영'으로 굳어졌고, 모든 팀이 이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 탓에 롤챔스의 경기 대부분이 장기전으로 가는 흐름이 펼쳐졌다. 팬들은 많은 경기 수에 즐거워했지만, 이율배반적으로 토너먼트 시절 짜릿함을 맛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팀들 간의 라이벌 구도나, 선수들의 전체적인 경기력 향상을 가져온 실보다 득이 훨씬 컸던 성공적인 개편이었다.


■시드팀 선발 축소, 10인 로스터 취소로 보여준 '소통'


리그제를 개편하면서 각 게임단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모든 프로팀은 안정적인 경기력과 연습 환경을 위해 2팀 체제를 조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그제 출범을 위해 2개의 기업 팀은 1개 팀으로 합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 e스포츠 협회(이하 협회)는 롤챔스 참가 팀의 경기력 향상을 보존하기 위해 '10인 로스터 의무화'를 발표했다.

선수들과 팀의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내부 스크림 시스템을 유지하자는 협회의 취지는 좋았지만, 팀들의 재정적인 부담과 식스맨 체재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던 처사였다. 협회는 2군 리그를 만들어 나머지 5명의 선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2군 리그가 개최된다면 기존에 존재하던 세미프로들을 위한 리그의 존재감이 투명해질 것은 뻔했다. 새로 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이 10인 체제를 갖추기 어렵다는 것도 한몫했다.

이에 협회는 팬들과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국, 리그제 개편 최종안 발표에서 '10인 로스터 의무화'를 취소했다. 시드 팀 선발에서도 총 8개의 팀 중 7개의 팀이 시드를 받던 초안에서 한 팀만 롤챔스에 참가할 수 있다는 비판에 2014 누적 서킷 포인트가 높은 6개의 팀으로 수정했다. 그동안 협회는 고지식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최종안 발표에 앞서 팬들과 관계자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공청회를 열어 '소통'을 하겠다는 제스쳐와 함께 이를 반영해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행보를 보였다.


■ 새로운 스타의 등장의 환호와 세계 대회 부진의 아쉬움이 공존한 스프링 시즌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시즌4의 우승팀이었던 삼성 화이트와 그들의 대항마로 꼽혔던 형제 팀 삼성 블루가 LPL로 떠났다. 슈퍼 스타를 대거 잃은 롤챔스는 많은 팬의 우려 속에 프리 시즌을 시작했다. 그러나 삼성 형제 팀을 배출해낸 한국의 e스포츠 인프라는 남아있었고, 타이거즈라는 올드 루키들로 구성된 팀이 엄청난 경기력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들의 독주는 스프링 시즌 1라운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스프링 시즌 2라운드 도중 진행된 IEM 마스터즈에서 CJ 엔투스와 함께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뒀다. 우승팀은 북미의 맹주 TSM, 준우승은 LPL 최하위권의 WE가 거머쥐었다. 이때부터 삼성 형제 팀이 떠난 롤챔스 수준이 LPL에 미치지 못한다는 의견이 팬들뿐만 아니라, 라이엇 게임즈에서 매주 발표하던 파워 랭킹에도 반영됐다.

중국의 EDG, LGD, 스네이크, QG 등이 매번 상위권을 장식했고, 각 대륙의 전문가들도 중국의 강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운영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한국과 달리, 교전 중심으로 빠르게 스노우 볼을 굴리던 LPL의 화려함은 다른 리그에서 찾아보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IEM 마스터즈의 부진에 LPL이 세계 최강의 리그라는 것이 기정사실로 돼버렸다.


IEM 마스터즈의 부진과는 관계없이 시간은 계속 흘렀고,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SKT T1과 CJ 엔투스가 풀세트까지 접전을 펼쳐 명경기를 탄생시켰다. 결승전에서는 SKT T1이 IEM 마스터즈 이후 분위기 침체에 빠진 타이거즈를 3:0으로 꺾고 463일 만에 왕좌를 탈환했다. 리그 자체는 흥행에 성공했다. 전석 매진을 달성했고 SKT T1의 기량은 '정점'에 도달했다. 문제는 이후에 발생했다. 각 대륙 우승자들이 맞붙는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 시작이 롤챔스 스프링 시즌 결승전과 불과 일주일도 차이 나지 않았다.


SKT T1 선수들은 우승의 여운에 빠질 새도 없이 곧바로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번에야말로 세계 최강의 리그가 한국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떠난 SKT T1은 중국의 EDG에게 2:3으로 아쉽게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IEM 마스터즈에 이어 MSI에서까지 LPL에 밀린 롤챔스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했고, 결과론적이지만 OGN의 빠듯한 리그 일정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 뜨거운 날씨보다 더 치열했던 섬머 시즌


MSI의 아쉬움도 잠시 섬머 시즌이 승강전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아나키와 스베누 소닉붐이 승강전을 통해 섬머 시즌 합류에 성공했다. 아나키는 교전 중심의 운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스베누 소닉붐은 프로팀답게 밴픽부터 운영까지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 미래를 바라봤다.

섬머 시즌은 혼돈 그 자체였다. 롤드컵을 진출하느냐 마느냐가 달린 시즌인 만큼 모든 팀이 사활을 걸고 경기 준비를 했다. SKT T1을 제외하고 역대 최고의 중상위권 싸움이 이어졌다. OGN 또한 스프링 시즌은 문제점으로 꼽혔던 빠듯한 경기 일정을 수정하기 위해 주 4회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목요일 낮 시간대 경기 편성이 이뤄졌고, 경기 외적인 요소지만 선수들의 평소 생활 패턴과 어긋나 여러 선수가 불편함을 호소했다. 팬들도 관람하기 불편한 시간이라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스프링 시즌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리그 일정을 조율한 것은 호평받아 마땅하다. 섬머 시즌에서 SKT T1의 독주는 계속됐고 압도적인 실력으로 국내 리그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MSI 준우승 지역이라는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았다.


■ 아쉬움과 기대가 공존한 2016 스프링 시즌 승강전


롱주 IM과 스베누 소닉붐이 리그 9, 10위를 차지해 승강전에 나섰다. 그들의 상대는 하위 리그인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1, 2위를 차지한 다크 울브즈와 에버였다. 사실상 한 번 롤챔스에 올라온 팀의 강등은 여러모로 봤을 때 어렵다. 롤챔스에 속한 팀들은 좋은 환경에서 수준 높은 연습 상대를 맞이해 실력을 쌓는다.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롤챔스 현장의 실전 감각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5판 3선승으로 진행되는 승강전에서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로 2세트 이상 따낸 적은 없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아마추어가 프로를 이기고 승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의 e스포츠 시장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최하위권 팀을 승강전 없이 무조건 강등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기회의 공평성을 생각해보면 실질적으로 챌린저스 코리아 팀들에게 가혹한 처사다.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1, 2위를 달성해도 롤챔스를 경험한 '프로'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데 열정을 불태우며 도전에 나설 수 있겠나. 이 벽은 리그가 진행될 수록 더욱 견고하고 높아져 뚜렷한 계층을 만들 것이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승강전에 대한 팬들의 관심도 점점 사그라들 것이다.

또한 챌린저스 코리아에서 1위를 해도 성과가 계속해서 나타나지 않는다면 챌린저스 코리아는 유명무실한 하위 리그가 될 것이며, 라이엇이 추구하는 아마추어부터 프로까지 오르는 e스포츠 저변 확대 계획인 'e스포츠 에코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KeSPA 컵은 가뭄의 단비 같은 대회였다. 프로부터 아마추어까지 참가해 대결을 벌인 KeSPA 컵은 우승팀에게 IEM 쾰른 출전권을 주는 한국 LoL 최초의 단기 컵 대회였다. KeSPA컵 같은 대회가 많아질수록 세미프로들이 프로를 상대로 실력을 어필할 기회가 많아지고, ESC 같은 기업이 단기 컵대회의 홍보 효과를 노려 세미프로에게 투자해 더 나은 연습 환경을 조성해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끌어 올릴 수가 있다. ESC 에버는 단기 컵 대회가 e스포츠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을 증명한 팀이다.

만약 KeSPA 컵을 진행하지 않았다면 ESC 에버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길을 가거나, 프로의 꿈을 접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성과가 보이지 않는 기다림과 노력은 가혹하다. ESC 에버와 같이 잠재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증명할 무대가 적어 자신의 꽃을 피워볼 기회도 얻지 못해선 안 된다. 한국이 계속해서 e스포츠 강국으로 군림하기 위해선 세미프로와 아마추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 한해 대미를 장식한 분할 중계 이슈


올해의 대미를 장식한 최대의 이슈는 롤챔스 '분할 중계'였다. 그 시발점은 라이엇 코리아의 복수 중계 고려 선언이었다. 라이엇 코리아는 분할 중계를 통해 롤챔스 섬머 시즌의 문제점으로 꼽혔던 부분을 대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방송사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롤챔스 방송 퀄리티 향상까지 개선책을 통해 가능 할 것으로 라이엇 코리아는 예상했다.

그러나 OGN의 입장은 달랐다. 라이엇 코리아에게 이미 '2016 롤챔스 운영 보완책'을 제안했고, 그 내용에는 '다수의 유저가 겪는 불편함'과 '유연한 시간 편성'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서 분할 중계가 예정된 섬머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내년 4월 개관 예정인 상암동 IT 컴플렉스 e스포츠 전용 경기장에서는 동시에 두 경기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이로써 명확한 매치업 시작 시간도 가능하다는 것을 라이엇 코리아에 고지했다며 분할 중계에 대한 우려를 밝혔다.

'분할 중계' 이슈가 각종 매체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자 라이엇 코리아가 다시 한 번 입장 발표에 나섰다. OGN의 오해의 여지가 있는 입장 발표에 유감을 표하며 이에 대응해 인과관계를 분명히 밝히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쟁이 e스포츠 전체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것이기에 3자 협의체를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한 뒤,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라이엇 코리아와 OGN의 입장 차이에 한국e스포츠협회도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한국 e스포츠 협회는 세간에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게 3자 협의체로 LCK 리그 전반에 대한 협의는 계속 진행했으나, 2015년 9월 이후 리그 편성 및 방송사 문제는 OGN의 요구로 3자 협의체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며 협회는 이번 '분할 중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고, 조속하고 원만한 협의가 이뤄져 프리시즌 진행에 문제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3자 협의체는 논의에 들어갔고 '분할 중계' 논란은 최종 합의안이 나오는 대로 종료될 것 같았다. 이때 라이엇 코리아가 LCK에 대한 상표 출원을 한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공개된 정보로는 라이엇 코리아는 'LEAGUE OF LEGENDS CHAMPIONS KOREA'에 대한 상표권을 출원했으며, 이를 두고 라이엇 코리아가 롤챔스 분할 중계와 관련된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라이엇 코리아와 OGN의 관계자와 확인 결과 "LCK 상표 출원은 최근 발생한 분할 중계 이슈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상표권 출원은 3자 협의체에서 오래전부터 논의해왔던 사안이라는 입장이었으며, 중계권을 둘러싼 일력 다툼일 것이라는 추측은 해프닝으로 일축됐다.

분할 중계의 최종안은 라이엇 코리아의 첫 발표 이후 13일이 지난 12월 16일 공개됐다. 16년 롤챔스 스프링은 지금까지 방식대로 OGN이 모두 진행한다. 하지만 16년 롤챔스 섬머부터는 롤챔스를 OGN의 중계로 즐기고자 하는 팬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를 OGN을 통해 즐길 수 있으며 SPOTV에서 중계하는 일부 경기에서도 OGN의 중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최종안을 발표했다.

올 한해는 시작부터 끝까지 쉴 틈 없이 치열했다. 새로운 리그제부터 분할 중계까지 민감하지만 필요한 변화를 한국 e스포츠 업계는 두려워서 외면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로 한국은 롤드컵 3연패를 기록했고 NA LCS, LPL 등이 롤챔스의 풀 리그제의 방식을 따라 차기 시즌 리그제 개편에 나섰다. e스포츠의 시작을 만든 한국이 앞으로도 어떤 변화를 통해 세계 e스포츠 문화를 선두에서 이끌어 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