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라 불리는 모든 종목에는 '규칙'이 있다. 가령 축구로 예를 들면, 상대 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그리고 골을 많이 넣기 위해서 골키퍼,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 등 포지션이 나뉘며 그들의 기량, 팀 호흡, 전략, 전술 등 다양한 정보를 종합하여 상대 팀과 우리 팀의 실력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스타2도 비슷하다. 스타2에서 승리하기 위한 조건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건물을 모두 파괴시키는 것. 하지만 이런 경우는 엘리전이 아닌 이상 극히 드물다. 선수들은 자원, 병력, 테크트리 등 다양한 지표로 유불리를 판단한다. 그리고 선수 스스로 상대방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항복을 선언하고 먼저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수들은 하루에 수십 경기를 연습하기 때문에 유불리의 판단이 굉장히 빠르다. 작게는 일꾼 한 기부터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상대방과 나의 유불리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종이한장 차이라는 말이 체감으로 다가오는 요즘, 작은 것 하나하나에 유불리를 체크하다 보니 역전의 가능성이 크진 않지만 있음에도 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들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누군가 '실수'할 확률이 점점 늘어난다. 패색이 짙은 경기야 역전이 힘들겠지만, 3:7정도만 되도 역전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특히 동족전은 더욱 그렇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비록, 역전은 나오지 않고 전태양이 승리했지만 한이석의 포기하지 않는 근성으로 팬들은 공허의 유산 최고의 테테전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 트렌드는 돌고 돈다. 허를 찌를 한이석의 은폐 밴시

▲ 은폐 밴시로 큰 이득을 챙긴 한이석


2:2 상황, 마지막 에이스 결정전. 요즘 누가 테란 잘해? 라는 질문에 TOP3 안에 손꼽는 전태양과 한이석이 만났다. 한이석은 최근 테테전 트렌드에서 사이클론에 의해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밴시를 꺼냈다. 은폐 연구까지 마친 뒤 은폐 밴시 두 기를 활용해 건설 로봇을 12기 이상 잡아주며 완벽히 초반을 주도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트리플 사령부도 먼저 과감히 가져갔고, 일꾼의 수에서도 당연히 앞설 수밖에 없었다. 모든 면에서 한이석에게 웃어주고 있었지만, 병력의 양과 질에서는 전태양이 조금 앞서나가고 있었다.

■ 세계 최강의 스피드 '전태양'

▲ 한이석의 본진을 장악


전태양은 해병으로 2차 견제를 시도하려던 한이석의 의료선까지 잡아내며 타이밍을 더 날카롭게 잴 수 있었다. 한이석의 제 2확장은 모르고 있던 상황이지만, 의료선을 끊어준 플레이로 인해 완벽히 진출 타이밍을 계산했다. 공허의 유산 테테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속도'다. 의료선으로 공성 모드된 공성 전차를 실을 수 있게 되면서 기동성이 단점이었던 공성 전차를 해병의 속도와 동일하게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태양은 자신이 유일하게 앞서던 '병력'으로 찰나의 타이밍을 만들어 한이석의 본진 외곽을 점령해 병영에 포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 트리플까지 파괴


교전에서 크게 이득을 취한 전태양은 후속 병력과 함께 한이석의 희망이었던 트리플에 타격을 입히며 쐐기를 박았다. 이로 인해 한이석이 앞서 나갔던 점이 모두 사라지며 판은 완벽히 전태양의 것으로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이석의 반격

▲ 결과적으로 무리였던 전태양의 공격


한이석의 본진에 피해를 입히고, 트리플 사령부를 마비시켰을 때 전태양의 머릿속에 '이겼다'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수 있다. '이겼다'까진 아니어도 본인이 매우 유리하다고 생각할법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실수가 존재한다.

그리고 전태양은 '실수'를 범했다. 완벽하게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승리로 가기 위해 가장 안정적인 선택은 제2 확장을 가져가면서 상대를 서서히 조여가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전태양은 의료선 두 기로 한이석의 본진을 견제하면서 동시에 앞마당을 타격해 경기를 끝내려 했다.

한이석은 매우 불리한 상황이지만, 전태양의 공격을 잘 받아치며 득점을 따냈다. 에이스 결정전이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한이석에게 포기하지 않는 근성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 한이석의 반격


한이석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드랍을 통해 전태양의 본진을 타격하며 제 2확장 활성화 타이밍까지 늦췄다. 이번 공격으로 상황은 미궁속으로 빠졌다. 그래도 전태양이 조금 유리했었지만, 한이석에게도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유효타였다.

■ 전태양의 빠르고 정확한 상황판단



이후 서로 소소한 견제를 주고받은 양 선수. 해병과 공성 전차 위주의 병력을 생산하며 몸집을 키워갔다. 그리고 주력 병력이 엇갈리면서 서로 엘리전 양상으로 흘렀다. 병력의 유불리를 정확히 판단하기 힘든 상황에서 전태양은 자신이 우위에 서기 위해 최고의 판단을 내렸다. 바로 '궤도 사령부'를 노린 것. 그리고 어떻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본진에서는 우주 공항을 가장 먼저 띄워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

당연한 판단이겠지만, 손에 땀을 쥐는 상황에서 전태양의 선택은 빛이 났다. 서로 자원은 모두 고갈 직전이고, 만약 한이석에게도 궤도 사령부가 살아 있었다면 경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서로의 병력 규모가 비슷한 데 공성 전차가 있는 병력에 먼저 공격을 시도하는 건 누가 봐도 손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태양의 판단이 한이석에게 '공격'이라는 선택을 강요했다. 결국, 한이석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최후의 공격을 시도했지만, 병력 싸움에서 패배하며 전태양의 최후의 승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