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이냐, 더빙이냐?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연령대별로, 관객별로 선호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자막으로 영어 대사 고유의 느낌을 우선시하는지, 혹은 한국어 더빙으로 의미 전달이 먼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냐에 따라 선택이 다르죠. 게임 역시 다양한 언어로 표현되고 주로 활용하는 언어가 지역마다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당장 언어 클라이언트만 바뀌어도 굉장히 생소한 환경을 맞이하고, 해외 해설을 듣는 순간 아는 게임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두 언어의 온도 차이를 줄여주는 역할을 해온 분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통역하는 '통이유'로 불리지만, OGN 글로벌 팀에서 해외 사업, 글로벌 마케팅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채동희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이제는 '통누나의 롤드컵 훔쳐보기'라는 방송까지 진행할 정도로 다양한 매력을 팬들에게 선사하고 있답니다. 통역에 대한 아쉬움도 있지만, 앞으로 더 e스포츠의 세계화를 위해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당당한 그녀를 지금 만나보시죠.




Q. 한 달 동안 진행된 롤드컵이 끝났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요?

오랫동안 팀에서 자리를 비워서 팀에 얼굴을 한 번 비추고 휴가로 부산 가서 바다를 보고 왔어요. 부산행 열차 티켓을 끊고 나니까 이번 주에 지스타 업무 때문에 부산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다들 왜 휴가를 부산으로 갔느냐고 의아해하더라고요(웃음).


Q. 미국에서 한 달 정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생활은 어땠나요?

미국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출장이 처음이었죠. 한국에서는 일하고 집에서 쉴 수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방송팀과 함께 생활하면서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을 하고 왔어요.


Q. 음주가무를 좋아해서 OGN 해설진과 쉽게 친해졌다고 봤어요. 미국에서도 세계 관계자들과 친해질 기회가 있었나요?

롤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같이 방송을 한다는 소속감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PapaSmithy'라는 친구가 새롭게 OGN 글로벌 중계진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자주 보게 됐어요. LCS 해설자인 'Riving ton'도 사회성이 뛰어나서 그런지, 인사도 잘하고 많은 분들을 살갑게 대하더라고요. 술은 가끔 호텔방 몇 호로 모이라는 말이 있으면 관계자들끼리 모여서 마시기도 했죠.




Q. '통누나의 롤드컵 훔쳐보기' 코너를 통해 '쇽즈'를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혼자서 방송하는 건 처음인데, 어떻게 진행까지 맡게 된 건가요?

편성 마케팅팀 선배가 저한테 이 방송을 제안했어요. 2014 롤드컵 예선 당시에 조은정 전 아나운서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롤드컵 다이어리'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여행기 같은 것을 한 번 찍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조은정 전 아나운서는 특별한 컨셉 없이 맛있는 음식 먹고 소개만 해도 그림이 나오잖아요! 저는 뭐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어요.


Q. 뉴질랜드 유학부터 외고, 국제학부, 영어 토론 대회까지 영어와 관련된 활동을 참 많이 해왔어요.

뉴질랜드에서 가족들과 2년을 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입시를 준비하면서 영어라는 특기를 살리기로 했어요. 토론은 명확한 답변과 그 근거를 찾는 과정이 좋아서 계속하게 됐죠. 제가 승/패가 명확한 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직접 몸으로 하기는 힘들어서 그런지 말로 하는 토론을 선택했나 봐요.


Q. 토론이나 인터뷰를 보면 영어로 말하는 것에는 익숙한 것 같아요. 통역은 처음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통역은 두 개의 언어에 모두 익숙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LoL 아이템과 같은 전문 용어들은 두 언어를 왔다 갔다 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아이템, 챔피언 명을 공부하기로 하기도 했죠. 그리고 영어 인터뷰를 듣다가 놓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런 부분을 보완하려고 했는데, 연습해도 정신을 실수로 놓으면 빠지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못 들은 부분은 덧붙이지 않고 듣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방송과 통역을 처음 해서 어려워한다는 점은 시청자분들에게 상관이 없잖아요. 저도 방송에 좋은 모습과 정확한 정보가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Q. 방송을 하면서 다양한 반응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팬들의 반응이 있나요?

전용준 캐스터님이 제가 통역으로 활동을 시작할 때, 아무리 본인이 잘했다고 생각하더라도 반응은 확인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회 반응은 잘 살펴보지 않으려는 편인데, 이번에 촬영한 '통누나의 롤드컵 훔쳐보기'는 방송에 나가니까 안 볼 수가 없더라고요. 특히, '포기븐' 선수 인터뷰를 제가 하고 싶다고 주장해서 하게 됐는데, 카메라 사운드와 촉박한 시간, 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영상에 직접 나오다 보니 반응을 살필 수밖에 없더라고요. 레딧에 인터뷰가 올라갔는데, 제가 걱정했던 화질이나 편집에 대해서 큰 말이 없어서 다행이었어요. 그런데 '저 여자애는 왜 저렇게 고개만 끄덕거리냐?'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저도 제가 그러는 줄 몰랐는데, 다시 영상을 보니 그 반응이 기억나더라고요.


Q. 시즌5부터 LoL을 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좋아하는 팀이나 LoL 챔피언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야구는 한화 팬이고 LoL은 락스 타이거즈와 롱주 게이밍을 좋아해요. 저는 스토리가 있는 팀을 좋아해요. 그리고 제가 원거리 딜러 꿈나무인데, 맨날 구박듣고 쉽지 않더라고요. 게임할 때는 저라도 즐거워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챔피언은 애쉬에요. 나머지 챔피언은 잘 못하지만, 애쉬가 롤챔스에 잘 안나오던 시절부터 ‘궁셔틀’ 역할을 해왔거든요. 그리고 롤드컵 가기전에 제가 원거리 딜러로 쓰려고 미스포츈을 샀어요. 그런데 미국에서 롤드컵이 끝나고 돌아와서 원거리 딜러로 해보려고 하니 다른 게이머들이 시작부터 "니가 '고릴라'냐?"며 가만두질 않는 거에요. 물론, 저는 '고릴라' 선수의 팬이에요. LCK에서 더 보고 싶어요(웃음).


Q. LoL을 해설할 때 각 지역리그에서 활용하는 전문 용어들이 있죠. LoL 해설 용어에는 익숙해졌나요?

해설할 때 쓰는 용어와 개념이 다르긴 하더라고요. OGN 글로벌 중계진이었던 몬테-도아 방송을 처음으로 접했어요. 예를 들어 해외 해설진은 상대를 위협하는 라인전 관리 전략으로 'Zoning'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잘 안 쓰잖아요. 게임에서 해외 해설진이 우리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주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한국은 어떤 전문 용어를 많이 하는지 알아야겠다고도 생각했어요.




Q. 세계 대회가 열릴 때마다 해외 매체 반응을 살펴보는 역할을 해왔어요. 해외와 국내 커뮤니티의 반응은 어떻게 다른가요?

한국 선수들을 바라보는 감정의 온도가 다른 것 같아요. 덜 감정적이고 그냥 바다 건너 재미있는 사건처럼 바라보더라고요. 한국의 LCK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배하면 비판적인 의견이 많이 나오는데, 해외 팬들은 '패배하니까 재미있네' 정도로 가벼운 반응이었어요.

사건이 있을 때 세계 관계자들의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정서의 차이일 수 있는데, 한국 관계자들은 말을 아껴요. 반면, 해외 관계자들은 SNS나 언론을 통해 자신의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내요.


Q. 롤챔스 현장에서 개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발견했어요. 사진에도 관심이 있나요?

제가 사진이나 영상을 찍고 보정, 편집하는데 관심이 많아요. 아무래도 글로 읽는 것보다 보는 컨텐츠가 시청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OGN에 입사해서 글로벌 SNS 채널을 관리하는데, 팔로워 수 목표치를 어떻게 달성할지 고민했어요. 그 방법으로 롤챔스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로 했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라 재미있게 할 수 있었어요.

OGN 글로벌 페이스북이 있는데, ‘좋아요’를 누르고 질문을 영어로 하면 제가 답변하는데, 한국어로 질문이 와도 못 읽는 척 할 수 없으니 많은 관심과 질문 부탁드려요.




Q. 본인이 도발적이고 섹시하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도대체 어떤 분을 만나면, 그런 모습을 보여줄 건가요?

아이고...(웃음). 저는 자신의 일을 잘하는 분들이 멋있더라고요. 저도 '100세 시대'에 나의 적성과 일자리에 대해서 아직 방황하고 있거든요. 무언가 확고하게 주관이 있고 잘하는 사람이 남녀를 떠나서 멋있는 것 같아요.


Q. 이제 OGN 직원으로 활동하게 됐는데, 앞으로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저는 e스포츠가 현재 발전하는 시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1~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미에서 컴퓨터 게임 문화는 소수 사람만 즐기는 문화라고 여겨졌어요. 그런데 이제 LCS 결승전이 메디슨 스퀘어 가든처럼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서 열렸고, 오버워치에서도 NFL처럼 지역 리그제를 생각할 정도로 입지가 많이 올라왔다고 봐요.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이런 논의가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고 시장이 커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죠. 한국 선수들이 이 분야에서 엄청난 성적을 내고 있으며 OGN 역시 오랫동안 게임 관련 방송을 해왔기 때문에 e스포츠가 더 세계적인 무대가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해요. 저 역시 한국인이고 ‘e스포츠의 세계화’를 실현할 수 있는 일원이 되고 싶네요.

사실, LCS나 해외 리그를 보면 예산이 어마어마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적은 예산으로도 훨씬 더 훌륭한 양질의 방송을 만들어나가죠. 조금만 더 좋은 기회가 온다면 정말 세계적인 방송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동안 저를 좋아해 주는 분들은 못 보던 새로운 친구가 왔다는 호기심으로 좋아해 주는 것 같았어요. 궁금증이 해결되는 순간 제가 하는 역할로 저를 바라볼 텐데,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잘 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요.



사진 = 남기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