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rival)'.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

세상에 존재하는 스포츠, 학술, 기술 등 장르를 불문하고, 한 명, 혹은 한 단체의 압도적인 지배 구도는 발전이 없는 정체 현상을 초래하기 마련입니다. 서로를 의식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한 상승 효과를 만들어내는 라이벌의 존재야말로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한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 라이벌은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이기도 하다


세계 여러 지역의 리그오브레전드 리그 중에서도, 자타공인 가장 뛰어난 실력을 인정 받고 있는 '롤챔스 코리아(이하 LCK)' 역시, 이런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오직 한 팀만이 계속해서 무패를 기록하고, 우승을 반복했더라면 매너리즘의 위기가 대두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2016년, LCK를 달궜던 최고의 라이벌은 과연 어떤 팀이 었을까요? 이번 한 해, 경기를 통해 현장과 유저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 넣고, 승패를 주고 받았던 두 팀을 감히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평가해 보려고 합니다.

기자는 2016년 최고의 라이벌로 'SKT T1(이하 SKT)'과 'ROX Tigers(이하 ROX)'를 꼽습니다. ROX는 지난 2015년에도 질풍 같은 11연승을 기록하는 등, 순식간에 강팀 반열에 오른 막강한 신예 팀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SKT를 상대 할 때에는 타 팀들을 상대로 보여주었던 강점마저 지워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승리를 거두는 데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이는 2015년, ROX와 SKT 상대 전적으로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2015년, ROX vs SKT 상대전적


3승 13패, 승률 18.8%. ROX가 유독 SKT 상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모습은 '상성' 관계로 까지 표현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대회에서 보여주는 분위기로 살펴보았을 때는 이정도 차이가 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이들도, 막상 펼쳐진 승부에서는 SKT의 압도적인 승리를 인정해야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2016 시즌에는 확실히 달라졌습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좋은 분위기를 이어간 ROX는 이번에는 SKT를 상대로도 뛰어난 경기력으로 승패를 주고 받으며, 진정한 호적수로서 거듭났습니다. 이들이 펼치는 '눈 정화' 경기에, 팬들도 두 팀이 펼칠 다음 대전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 2016년, 상대 전적 또한 대등한 수준을 기록했다


양 팀의 상대 전적도 ROX 9승, SKT 11승으로 각각 승률 45%와 55%로 대등한 수준까지 바뀌었지만,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매 번 수준 높고 치열헀던 경기 내용입니다. 각종 대회와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내용의 충실함은 용호상박, 혹은 라이벌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2016년,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했던 두 팀은 한 해 동안 어떤 모습으로 라이벌 관계를 만들었을까요?


▲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끌어줬던 2016년 최고의 라이벌!


■ 2016 롤챔스 스프링, '상성' 관계에서 '라이벌' 관계로

2016 시즌, 롤챔스 스프링은 ROX와 SKT의 '라이벌' 구도를 성립시켰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피넛' 한왕호 선수를 정글로 기용하면서 공격성에 공격성을 끼얹은 ROX는, 지난 2015 롤챔스 스프링 시즌과 마찬가지로 11연승을 기록하면서 변치 않는 강팀임을 입증했습니다.

거기에 숙적 SKT를 상대로 정규 리그전 1라운드, 2라운드를 통들어 2승을 챙긴 것은 꽤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ROX는 SKT를 상대로 거의 승리를 챙기지 못해왔었죠. 하지만 이번 2016 시즌에는 메타 적응까지 제대로 성공해낸 ROX가 1라운드 2:1, 2라운드 2:0의 세트 스코어로 SKT에 승리하면서, 2016 스프링 시즌에서는 ROX가 SKT를 누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다전제에서 'SKT' 꺾은 'ROX'. (영상 출처: OGN)


하지만 ROX가 강팀이라면, SKT 역시 강팀이었습니다. 오히려 '세계 최강'이라는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을 논한다면 단연 SKT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SKT의 '김정균' 코치가 말과 행동으로 증명해 보인 것 처럼, SKT에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었습니다. 바뀐 메타, 새로운 팀원의 적응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아 흔들리는 듯 했던 SKT는, 시즌 후반 팀을 성공적으로 정비, 포스트 시즌을 통해 2016 롤챔스 스프링 결승 무대까지 진출해냈습니다.

다시 결승에서 만난 SKT와 ROX. 두 팀의 통산 전적을 살펴보면 SKT의 압도적인 우세가, 최근 전적과 메타 적응 상황, 11연승의 기세를 고려했을 때에는 ROX의 우세가 점쳐지면서 전문가들과 팬들의 예측도 엇갈리는 상황.

'롤챔스 결승'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비록 결과는 3:1, SKT의 승리였지만 경기 내용을 보았을 때 그 누구도 SKT의 일방적이고 압도적인 승리라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누구나 승자의 자격을 갖춘 최고의 경기력을 펼쳐보였고, 그 중에 좀 더 잘 한것은 바로 'SKT'였습니다.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양 팀의 치열한 공방전! (영상 출처: OGN)


ROX에게는 아쉬웠지만 많은 것을 얻은 스프링 시즌이었습니다. '상성'처럼 느껴졌던 SKT를 상대로 다전제 승리를 거두기도 했고, 후회 없는 결승 대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SKT 역시 뜻 깊은 시즌을 보낸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메타의 급변과 팀 변경이 잘 어우러지지 않은 상황에도 최적의 방향을 찾았고, '몰락' 없는 '챔피언'의 위상을 떨쳐 보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 "부진은 있어도 몰락은 없다" 현실로 만들어낸 SKT! (영상 출처: OGN)


■ 2016 롤챔스 섬머, 뒤바뀐 운명? '왕좌' 차지한 ROX

이어진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이하 2016 롤챔스 섬머)'에서 ROX와 SKT는 '강팀'이란 어떤 것인지, 경기를 통해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ROX는 지난 스프링 시즌에 이어서 섬머 시즌에도 정규 리그 최강자로 군림하며 승수를 쓸어 담고, 압도적인 성적으로 리그 1위를 차지했습니다. SKT역시 중간 중간 몇 팀에 패배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13승 5패라는 훌륭한 성적으로 2위 자리에 앉았죠. 또, 'Mid-Season Invitational(이하 MSI)' 대회를 재패해 보이면서 자신들의 여전한 경기력을 과시했습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 정규 리그에서 SKT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했던 ROX. 하지만 패배를 통해 교훈을 얻은 SKT는 이번에도 패배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특히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페이커'의 다시 등장한 '르블랑' 플레이가 돋보였습니다. '세체미끼'라는 별명이 그 어떤 때 보다도 잘 어울렸던 순간, 각성한 '페이커'와 SKT는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ROX를 상대로 리그전 2:0 승리를 거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 누구도 잡을 수 없는 '세체미끼' 페이커의 활약! (영상 출처: OGN)


또 다시 SKT에 상대적 약세를 보이면서 패배한 ROX. 하지만 정규 리그 순위는 오히려 앞서면서 먼저 결승 무대로 직행했는데요. SKT는 빼어난 경기력으로 ROX를 물리치는 등, 시즌 내내 활약했지만 롤챔스 섬머 결승 진출자를 가리는 플레이오프 대전에서 또다른 라이벌인 'kt 롤스터(이하 kt)'에게 패배하면서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습니다.

SKT 없이 치러진 롤챔스 섬머 결승, 결국 우승은 ROX가 차지했습니다. 운명은 참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스프링 시즌 정규 리그에서 SKT를 2:0으로 누르고도 결승에서 패배했던 ROX가, 섬머 시즌에는 정규 리그에서 0:2로 패배하고도 결국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니 말입니다.

▲ 롤챔스 섬머는 ROX가! 드디어 '우승' 맛 본 호랑이들


결국 2016 롤챔스 섬머, SKT와 ROX의 관계는 리그 전에서는 SKT가 웃고, 결승에서는 ROX가 웃으면서 묘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SKT를 꺾은 kt를 ROX가 결승 무대에서 꺾었으니 우세승 판정을 내려야 할까요? 어쨌거나, 이 두 팀의 직접적인 대결은 다음 2016 롤드컵으로 넘겨집니다.


■ 2016 롤드컵, 최고의 라이벌, 최고의 경기 만들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정말 많았다.

김동준 해설 위원의 말처럼, 롤드컵 4강전에서 만난 ROX와 SKT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LCK, 2016 스프링(SKT)-2016 섬머(ROX) 우승 팀 다운 엄청난 경기를 펼침으로서 현지 관객과 LoL 팬들의 기대에 보답했습니다.

조별 리그부터 치러진 2016 시즌 월드 챔피언십(이하 2016 롤드컵)을 차근 차근 승리하며 올라온 ROX와 SKT는 결승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4강전 무대에서 드디어 마주쳤습니다. 2016 롤드컵은 '라인 스왑' 전략이 봉쇄 되면서 챔피언과 전략 운용면에 있어서 더 '공격적인' 메타로 변모한 상황이었는데요. 이런 변화와 두 팀의 만남으로 '꿀잼'이 예약된 가운데, 롤드컵 결승으로 향한 양팀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이 펼쳐졌습니다.

경기는 많은 이들의 기대처럼 치열하고, 또 충실했습니다. 두 팀은 롤드컵 현지에서 정착되고 있는 최신 메타를 직접 선도하는 모습까지 보이면서 관중들을 열광시켰습니다. 1세트 '페이커'의 활약을 앞세운 SKT의 승리 이후, 이번에는 ROX가 '애쉬-미스 포츈'이라는 독특한 카드로 반격, 2, 3세트 승리를 따냈습니다.

1세트 선취점을 내준 상황에서, 아무래도 불확실한 수 였던 '애쉬-미스 포츈' 조합을 꺼내든 ROX의 배짱과, 이를 구상해내는 독창성은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이를 승리라는 형태로 구현할 수 있는 '실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ROX와 SKT입니다. '명궁'으로도 불리는 '프레이'는 롤챔스 섬머 21일차에서도 보여주었던 명장면은 SKT와의 2세트 대전에서도 또 다시 성공시키면서 현장을 열탕처럼 뜨겁게 달궜습니다.

▲ 대담하게 꺼내든 ROX의 '애쉬-미스 포츈' 조합 (영상 출처: OGN)

▲ '보이지 않는 것을 봐라'. 프레이의 4강 명장면 (영상 출처: OGN)


2, 3세트를 내리 내주면서 위기에 몰린 SKT. 하지만 SKT에게 위기는 익숙했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야 말로 이들의 유일한 관심거리였습니다. 이 때 등장해 팀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벵기' 배성웅이었습니다.

SKT의 위기의 순간 등장한 '벵기'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SKT'의 플레이로 경기를 풀어나갔습니다. 4세트, 한 번도 '니달리'를 픽하지 않았던 '벵기'는 팬들의 불안과 의아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캐리하면서 최종 승자를 가리는 5세트 경기로 팀을 인도했습니다.

▲ 맏형 '벵기'의 팀을 구하는 '니달리' 플레이! (영상 출처: OGN)


결국 마지막 세트까지 이어진 치열한 4강 대전에서, '다전제의 강자'라고도 불리는 SKT가 맞수 ROX를 물리치고 승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롤드컵에서 만난 두 팀의 대결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3:2, SKT의 승리였지만 누구도 쉬운 승리라고는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매 세트 대결에서는 서로를 노리는 비장의 수와 독창성이 번뜩였고, 이를 구현해 내는 뛰어난 경기 능력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누구 하나는 패배자가 결정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지만, 관객들은 모두가 즐거운 승자가 되었던 일전이었습니다.


■ 이번에는 케스파컵에서? 뒤바뀐 4강전의 승자

2016년, 한 해동안 치열한 대결을 펼쳤던 라이벌, ROX와 SKT의 마지막 무대는 '2016 LoL KeSPA Cup(이하 케스파컵)'이었습니다. 운명인지, 이번에도 롤드컵 때와 마찬가지로 4강전에 만난 두 팀은 라이벌 다운 대결을 펼쳤습니다.

ROX는 식스맨 '크라이' 해성민을 케스파컵 8강 경기에 이어 투입하였고, 이에 보답하는 것 처럼 '크라이'의 경기력이 폭발했습니다. 1세트 '카시오페아'와 2세트 '블라디미르'는 전체적으로 게임을 지배하면서 ROX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여기에 1세트 '스맵'의 '케넨' 플레이와 2세트에서는 '피넛'의 '리 신'이 적절한 조미료로 활약, ROX의 여전히 강력한 전 라인 선수 진용을 보여주었습니다.

▲ 전 라인이 강한 팀! ROX, 롤드컵 4강전의 복수 성공!


한편 2016년 국내외 많은 대회를 재패하며 웃었던 SKT는 지난 2015 케스파컵에 이어서 2016 케스파컵에서도 4강에서 머무르는데 그치며, 케스파컵과의 악연을 이어갔습니다. 이번 한 해 동안 맞대결을 거듭했던 ROX를 상대로 패배를 기록한 것도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ROX와 SKT, SKT와 ROX는 2016년 한 해 동안 서로에게 9승과 11승을 따내면서 경합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역시 '세계 최강' SKT가 상대 전적을 앞서는 모습을 보이기는 합니다만, 이들이 펼친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 치열했던 경기력과 전략에 두 팀을 라이벌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리그전, 단기 대회, 롤드컵 등 다양한 경기에서 엎치락 뒤치락, 장군 멍군을 주고 받았던 SKT와 ROX. 이들은 2016년 LCK를 빛낸 최고의 라이벌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2017년,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SKT와 ROX는 지난 시즌과는 달리 선수 폭이 크게 변하는데요. SKT는 새로운 정글러로 ROX 소속이었던 '피넛' 한왕호 선수를 영입, 탑 라이너로는 '후니' 허승훈과 '프로핏' 김준형 선수를 채움으로서 달라질 2017 시즌 'SKT T1'을 예고했습니다.

ROX의 경우, 기존의 모든 선수들과 계약을 종료했을 뿐 아니라, 코치진 역시 전 아프리카 사령탑 '강현종' 감독을 선임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보여집니다.

최고의 라이벌이었던 ROX와 SKT. LCK 로스터에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그 어느때보다도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는 2017년 LCK에서는 더 이상 두 팀의 라이벌 관계는 예전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16년 한 해를 즐겁게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준, 서로를 의식하며 고취시켰던 두 팀의 이상적인 라이벌 관계는 쉽게 뇌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네요.

다음 2017 시즌, 관객들의 즐거움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리그의 질 까지 끌어올려 줄 수 있는 또 다른 '최고의 라이벌'의 등장을 고대하면서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