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전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나 사건 등에서 전설적인 시대를 이룩했던 인물이 현제까지 살아있거나 활동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죠. 빠르게 격동하는 e스포츠 판, 리그오브레전드 프로씬에도 이런 말이 잘 어울리는 선수가 있습니다.

'래피드스타' 정민성,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 '헬리오스' 신동진, '막눈' 윤하운 등 초창기부터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 판을 지켜본 유저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선수.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서 해설이나 코치로, 혹은 다른 길을 선택했음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몇 안되는 선수.

팀 동료 출신이자, 롤챔스 해설로 전향한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 해설위원이 했던 말처럼 '우직할 줄'아는 남자이자, 완벽함과는 거리가 멀지는 몰라도 포기보다는 도전을 찾을 줄 아는 꿋꿋함이 빛나는 남자. This Is 'Shy'! 박상면 선수가 이번 롤스타즈의 주인공입니다.

▲ This is SHY! 새로운 전설을 쓰고 있는 '샤이'


■ 진정한 잭스 장인! '샤이' 박상면, 세계에 이름을 알리다

'샤이'는 CJ의 전신이자, 롤 초창기 거대한 축을 이뤘던 강팀 아주부(이후 CJ) 프로스트에서 롤챔스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로코도코'가 나가고, '웅' 장건웅 선수가 원거리 딜러로 포지션을 전향하면서 공석이 된 탑 라인을 책임진 '샤이'. '샤이'는 아마추어 시절부터 '잭스' 장인으로도 유명했는데요. 강팀 아주부의 포지션과 선수의 변화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죠.

▲ 데뷔 이전부터 '잭스' 장인으로 유명했던 '샤이'


2012 롤챔스 섬머로 롤챔스 커리어를 시작한 '샤이'는 '잭스' 장인이라는 타이틀 답게 잭스를 잡으면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반대로 잭스 이외의 챔피언으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약점'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신인 '샤이'는 처음부터 완벽한 완성형 탑 라이너는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데뷔 직후, 2012 롤챔스 섬머에서 샤이는 잭스로는 6전 전승의 압도적인 승률을 자랑했지만, 이외에 다른 챔피언을 사용했을 때에는 9전 4승, 44.4%로 상대적으로 낮은 승률을 보였습니다.

▲ 진짜 '잭스' 장인! 잭스로 6전 전승 기록한 샤이 (2012 롤챔스 섬머)


그렇지만 '샤이'가 당시 신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미 충분한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당시 최강으로 군림했던 아주부 프로스트에 입단하여, 최고의 팀에 속했다는 부담감 속에서도 캐리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입니다. 또, 지금보다 밴 카드가 적었던 3밴 시절에, 다른 쟁쟁한 프로스트 선수들을 재쳐놓고 '샤이'의 잭스를 밴 해야하는 것도 타 팀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죠.

결국 2012 롤챔스 시즌 내내 '잭스'를 중심으로, 팀내 캐리를 보좌하는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샤이'는 신인에게는 버거울지도 모를 롤챔스 결승 무대까지 곧바로 직행하게 됩니다.

▲ 입단 첫 해, '잭스'로 활약해 롤챔스 결승에 직행한 '샤이'


해외 팀이 참가할 수 있었던 최후의 롤챔스로도 기억되는 2012 롤챔스 섬머 결승전. 상대는 당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CLG EU였습니다. 남다른 '애니비아' 사랑으로 유명한 '프로겐'부터 '레오나' 장인 '크레포', 탑에는 자신만의 고유한 빌드를 만들어낼 정도로 '이렐리아'를 잘 다루기로 소문난 '윅드'까지, 쟁쟁한 선수들을 상대하게 된 '샤이'.

'샤이'는 1, 2 세트에서 '윅드'에게 눌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의 진가는 3세트부터 드러났습니다. 이번에도 '샤이'와 팀의 위기를 구한 챔피언은 '잭스'였습니다. 1, 2세트 블라디미르와 제이스를 픽하였지만 '윅드'의 이렐리아에게 패배했던 '샤이'가, 위기 상황에서 꺼내든 필살기 '잭스'로 승리의 단초를 만든 것이었죠.

그대로 패배할 것만 같았던 프로스트는 3세트 승리를 통해 팀을 재정비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기억되는 패패승승승의 기적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매드라이프'의 '프로겐' 무력화나 '레피드스타'가 보여준 '진혼곡' 쿼드라 킬에 가려진 활약이었지만, 언제나 보험처럼 '샤이'의 뒤를 받쳐준 잭스의 존재는 팀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최고의 무기 '잭스'로 우승의 영광까지 안았다.


'잭스 장인' 샤이는 2012 롤챔스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죠. 롤챔스 섬머 우승으로 서킷 포인트 1위를 달성한 아주부 프로스트는 같은 해 2012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진출도 자동으로 확정 짓고, 세계 무대 정복을 위해 나섰습니다.

'샤이'는 롤드컵 무대에서도 자신의 솜씨를 제대로 보여줬습니다. 특히 당시 거의 쓰이지 않았던 '신지드'를 꺼내들어 좋은 모습을 보였을 뿐만아니라, 자신이 가진 최고의 무기 '잭스'가 세계에서도 제대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특히 A조 플레이오프 5경기, CLG Prime 간의 경기에서 '샤이'의 잭스가 폭발했습니다. CLG Prime의 탑 라이너 'Voyboy'의 올라프와 'HotshotGG'의 문도 박사를 상대로 2:1을 펼쳐, 그대로 둘을 쓰러뜨려 버린 것이죠.

어쩔 수 없이 잡히는 상황에서 생존을 포기하고 동귀어진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장면은 간혹 나오기도 하지만, 2:1을 그대로 이겨버리는 것은 거의 볼 수 없는 장면이죠. 하지만 '샤이'의 잭스는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 2:1도 거뜬하게! '샤이'의 잭스를 널리 알린 명장면
(영상 출처: vert Re 유튜브)


잭스를 잡았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샤이'였습니다만, 제이스나 블라디미르도 역시 잘 다루었고, 깜짝 픽으로 사용한 신지드로도 훌륭히 활약하며 월드 클래스급 탑 라이너로서 관객들에게 확실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CLG EU를 완파하고 결승에 오른 샤이와 아주부 프로스트였습니다만, 아쉽게도 당시 돌풍의 주역이었던 TPA에게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2012 롤챔스 섬머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새파란 신인, '샤이'의 성장과 활약을 지켜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잭스 장인으로 유명했던 샤이. 그는 분명 롤챔스 기간 중 기복있는 플레이와 좁은 챔피언 폭을 단점으로 꼽히는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2012 롤챔스 섬머와 시즌2 롤드컵을 거치면서 지적된 단점은 메꿔지고, 안정감을 갖추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샤이에게 전해! 실력도, 인기도 최고라고!

시즌2 롤드컵 기간까지가 신인이었던 '샤이'의 프로 적응과 성장의 시간이었다면, 그 이후 '샤이'는 안정적이고, 듬직한 최고의 탑 라이너로 발전하여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샤이' 본인과 팀 모두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할 수 있는데요.

'샤이'는 해설로 전향한 '클템' 이현우의 이탈로 바뀐 로스터와 팀 분위기에도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에이스이자, 고참으로 성숙했습니다. 이전까지 잭스가 아니면 무력하다는 평가와는 달리, 성장한 샤이는 잭스뿐 아니라 럼블, 제이스, 엘리스, 라이즈, 케넨까지 당시 메타와 잘 어울리는 챔피언들을 잘 다루면서 물오른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안정된 실력과 좋은 성적, 닉네임이 알려주는 것처럼 조금은 'shy'한 그의 매너있는 모습에 이를 지지하는 팬들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죠. 덕분에 당시 화려한 공격 스타일과 뒤를 보지 않는 다이브로 함께 인기를 누렸던 '막눈' 윤하운 선수와의 치열한 경쟁끝에, 유저들이 뽑은 2013 리그오브레전드 올스타(이하 2013 올스타) 한국 대표로 선출되기도 합니다.

▶ [2013 올스타] 0.1% 차이로 탑 라인은 샤이! 올스타 멤버 확정 -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아직도 '행복 롤'로 기억되는 2013 당시 한국 올스타


각 지역 유저들의 투표 짜여진 2013 올스타는 인기 투표 형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Diamondprox ', 'Doublelift', 'Alex Ich', 'Misaya', 'Troll(ClearLove)' 등, 당시 절정의 실력을 뽐내던 선수들이 대거 포함되었는데요.

2013 올스타 대전은 이벤트 형식의 대전이었지만, 지역별 대항전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후 진행될 2013 롤드컵의 진출권이 하나 걸려있던 만큼 올스타에서 한국의 강한 면모를 보여주길 기대하는 유저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기대는 곧 현실이 됩니다. 2013 올스타 지역 대항전에서 한국 팀은 단 1패도 기록하지 않고, 6전 6승의 무패 행진 끝에 우승 컵을 들어 올렸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행복 롤'을 즐겼다고 평가할정도로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 했음에도, 전승을 챙기면서 한국과 세계의 격차를 보여준 셈이죠.

'샤이'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 라이즈, 럼블 등의 챔피언을 꺼내들어 항상 안정적이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플레이를 선보인 샤이는 결승전, 당시 중국내 최고의 챔피언 폭과 실력으로 평가 받고 있던 'PDD'의 자크를 상대로 제이스를 꺼내들어 3연속 솔로 킬을 만들어내며 자신이 현존 최강의 탑솔러임을 증명했습니다.

▲ 부활 패시브를 가진 자크를 세 번이나 솔킬 낸 '샤이'!
(영상 출처: 2013 올스타 인벤 중계)


'PDD'와 '샤이'의 인연은 여기서 끝은 아니었습니다. 한국 팀의 승리로 막을 내린 2013 올스타 이후, 리그전이 진행되면서 'PDD'가 사용했던 챔피언 자크가 강력한 OP 챔피언으로 떠올랐는데요.

'그럼 2013 올스타에서 PDD가 사용했던 자크는 뭐였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샤이-PDD'를 연결해주는 재밌는 인연의 짤방이 유저들 사이에서 다수 양산 되었습니다. 그만큼 '샤이'의 제이스가 강력했던 것도 다시 한 번 상기 되기도 했고요.

▲ '~~에게 전해!' 많은 유저들이 사랑했던 PDD 짤방


위 짤방이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수 많은 상황에서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PDD'와 '샤이'에 대한 사랑과 관심도 집중되었습니다. 특히 인벤에서 'PDD'의 인기는 올스타 이전보다 훨씬 높아져서 하늘을 찌를 듯 했었고, 결국 독특한 인터뷰(?)가 성사되기도 했습니다. 두 선수의 밀당이 보통이 아닌 것 같네요.

▲ 그래서 직접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PDD'에게 '샤이'란?



PDD: '샤이' 선수는 제 사랑이자 결혼식에 납치해서 데려가고 싶은 남자입니다

샤이: PDD 선수에게 저도 사랑한다고 전해주고 싶네요. 음... 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해요(웃음). 그냥 좋은 마음만 가지고 갔으면 합니다.

▶ 자크가 죽었을 때의 기분은… 'PDD에게 전해!' iG 리우 'PDD' 모우 인터뷰 -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인터뷰] '윈터와 프로스트, 어울리지 않나요?' CJ 프로스트의 리더, '샤이' 박상면을 만나다 -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정상을 찍은 후 다가온 시련, 긴 부진의 시간

'샤이'는 2012 롤챔스 섬머 데뷔를 시작으로 2013 올스타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처음 '잭스'만 잘 다루는 장인에서, '제이스', '신지드' 등 다양한 형태의 챔피언을 폭 넓게 다룰 줄 아는 플레이어로 성장했습니다.

2013 올스타전에서 보여준 강력한 라인전 능력과 항상 보여주는 든든한 안정감은 그를 최고의 탑 라이너로 평가 받게 했습니다. 이런 실력과 함께, 여러 인터뷰에서 옅볼 수 있었던 그의 부드러운 성품이 더해지면서 '샤이'는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선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렸죠.

하지만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고, 황금기가 있으면 쇠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샤이' 역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되는데요. 롤드컵, 올스타의 성공적인 개최와 국내외 리그오브레전드의 인기가 늘어나고, 리그에 뛰어드는 새로운 선수들의 도전이 이어졌습니다.

▲ 최고의 탑 라이너 자리를 노리는 많은 도전자들의 등장.
(좌: '루퍼' 장형석, 우: '임팩트' 정언영)


한편, '샤이'가 활동하던 팀에서도 변화가 계속 되었습니다. CJ의 전신인 MiG부터 함께 해왔던 '클템' 이현우가 해설로 전향하고, '웅' 장건웅, '래피드스타' 정민성 선수가 은퇴하는 등 CJ의 선수 층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를 대체하여 '갱맘' 이창석, '헬리오스' 신동진, '스페이스' 선호산 등 많은 선수들이 기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조합, 다른 분위기에서 새로 부각한 여러 강자들의 도전까지, 위기는 계속해서 '샤이'와 CJ를 괴롭혔습니다. 리빌딩 실패 등의 원인으로 팀의 전체적인 부진은 계속 되었고, 고통은 2014시즌까지도 계속 되었습니다. 과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CJ 엔투스는 약팀에 강하고, 강팀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등 어딘가 답답한 경기력으로 제 색깔을 찾지 못했습니다.

▲ 삼성 오존에게 완벽히 파훼당하며 패배한 CJ.
(영상 출처: OGN, 2014 롤챔스 스프링 8강전 오프 더 레코드)


결국 2014 롤챔스 스프링 에서는 8강으로 탈락, 이어진 2014 롤챔스 섬머에서는 16강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두 번 연속 NLB에 진출, 더 이상 강팀이나 우승 후보라는 타이틀은 CJ 엔투스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 긴 부진의 늪은 '샤이'에게 어둠을 드리웠다.


■ '우직한' 주장 '샤이'... CJ 엔투스와의 결별

계속된 위기와 부진. 이러한 상황은 리빌딩으로 선수가 바뀌어도 계속되었지만, '주장'이라는 역할을 맡은 '샤이'는 최고참 '매드라이프'와 함께 어려운 상황 속에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팀을 이끌어갑니다. 이런 그를 딱 알맞게 표현하는 단어는 '우직함'이 가장 어울렸습니다.

2015 롤챔스 스프링 시즌, 샤이는 기존과는 다른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법을 찾아냅니다. 당시 많은 팀들이 선택하던 '나르' 대신 '문도 박사'와 '룰루', '쉔'이라는 카드로 돌파구를 마련한 샤이는 강호 SKT를 상대로 2015 스프링 시즌 첫 승리를 기록하며 분위기 반등의 신호탄을 쏘아냅니다.

▲ 최강 SKT를 상대로 따낸 시즌 첫 승! (영상 출처: OGN)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돌파구를 마련한 '샤이'. 그렇다고 과거 잭스 장인 시절처럼 특정 챔피언에만 머무른 것도 아니었습니다. 시즌 중반에 들어서며 '샤이'를 집중 밴 하는 상황이 닥치자 '럼블'이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 활약하면서 넓은 챔피언 폭을 보여주었죠.

거기에 메타 적응 능력 또한 다시 한번 입증했습니다. 시즌 후반기, '강타'를 사용하는 탑 챔피언들이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샤이' 역시 강타-헤카림을 누구보다도 잘 활용하면서 최신 메타에도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준 '샤이'는 오랜만에 팬들이 보고 싶었던 'This Is Shy'였습니다.

▲ "클템: 오랜만에 드리는 말씀인데, 이거 진짜 This Is Shy 였어요." (영상 출처: OGN)


'샤이'의 부활과 팀의 전반적인 발전으로 CJ 엔투스는 2015 롤챔스 스프링 3위, 2015 롤챔스 섬머 4위를 기록합니다. 물론 과거의 영광에 비하면 아쉬울지 모를 성적이었지만, 그동안의 부진을 생각해보면 장족의 발전처럼 느껴지는 성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고, 결과는 냉혹한 법. 발전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3~4위에 머문 성적과, 결정적으로 2015 시즌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진출을 놓고 진에어 그린윙스와 경합, 5세트 블라인드 픽까지 간 접전 끝에 아쉽게 탈락하면서 또 다시 롤드컵 진출이 좌절되었습니다. 거기에 케스파 컵에서는 당시 아마추어 팀이었던 ESC Ever에게 무기력하게 패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러한 모습은 긴 부진과 함께 CJ 엔투스의 대규모 리빌딩으로 연결됩니다.

2016 시즌, 대부분의 선수가 계약 종료로 나갔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팀을 이끌었던 강현종 감독 등의 코치진도 바뀌는 대규모 리빌딩이 진행되었습니다. '샤이'와 '매드라이프'만이 남은 CJ 엔투스에 새롭게 박정석 감독과 장누리 코치가 부임, 부족한 시간속에 빠른 속도로 리빌딩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급작스런 변화와 비판 여론에 시달린 '샤이'. 설상 가상으로 부상 문제까지 겹치면서, '샤이'는 2016 시즌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하지 못했습니다. 인벤과의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힘들다는 표현까지 하면서 멤버들의 교체로 인한 변화와 비판 여론에 대해 많은 압박감을 느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Q.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 어떻게 자신을 유지하고 있나?

박상면 : 담담하게 보이지만, 멘탈은 항상 깨지고 다시 붙고 그런다. 내가 그 상황이 아닐 땐 몰랐다. 이런 상황은 계속 봐왔다. '클라우드 템플러' (이)현우형 부터 시작해서, '웅' (장)건웅이 형, '빠른별' (정)민성도 그랬다. 그땐 '왜 저걸 못 견뎌 하지?', '나 같으면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혼자 견뎌내기 힘든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을 잘 하지 않는다.

Q. 2016년 CJ 엔투스는 많은 변화가 있다. 기존 팀 멤버들이 나갈 때 어땠나.

박상면 : 공허했다. 내가 제일 맏형이고 주장인데, 부담감과 책임감을 많이 느꼈다. 나가야 할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이 나갔다. '내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슬펐다. 미안했다. 기회가 있었을 때 다섯 명 모두 열심히 했다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 [팀 프리뷰] ③ - 두 남자 이야기, CJ 엔투스 - 관련 기사 바로가기


결과적으로 CJ 엔투스의 2016 리빌딩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1라운드 '매드라이프-크레이머'를 바탕으로 하여 좋은 모습을 보였던 때도 있었지만, 후반기에 접어들어 다른 팀들의 대처가 이어지면서 다른 '답'을 갖지 못했던 CJ 엔투스는 2016 스프링 시즌 8위, 2016 섬머 시즌 10위를 기록하며 다시금 추락했습니다.

'샤이' 역시 간혹 출전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트런들' 등의 챔피언을 활용하며 중간 이상을 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습니다. 2016 롤챔스 섬머, 최하위를 기록한 CJ 엔투스는 승강전에서도 ESC Ever에게 패했습니다. CJ 엔투스의 2부 리그 강등, 충격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 2016 승강전, 충격의 패배. CJ 엔투스는 2부 리그로 향한다. (영상 출처: OGN)


2016 시즌이 마무리되고, CJ 엔투스와 계약이 종료된 '샤이'. 프로스트 시절부터 함께 프로게이머 커리어를 쌓아왔던 그 길었던 시간만큼이나 팀을 나온다는 것은 그에겐 더욱 남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많은 1세대 프로게이머들이 은퇴를 고민하고, 이미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상황. 많은 비판 여론과 팀과의 결별. '샤이'가 어떤 생각을 어떤 심정으로 했을지, 감히 추측하기 조차 어렵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항상 우직한 모습으로 발전해왔던 '샤이'가, 이대로 그냥 끝내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였죠.

▲ CJ 엔투스, '샤이'를 기념하며.


■ 신생 락스 타이거즈 입단! '샤이', 그가 쓰는 새로운 역사

2016 시즌, '우승'이라는 염원을 이룬 호랑이는 가죽만을 남긴채 여러 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코치진부터 선수까지, 완전히 바뀐 락스 타이거즈에 강현종 감독이 부임하면서 새로운 모습의 팀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요. 좌절과 부끄러움 끝에 일어난 '샤이', 그가 2017 새로운 시즌을 '신생' 락스 타이거즈와 함께하게 됩니다.

“2017 롤챔스 시즌은 저한테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한 번 제대로 부딪혀 보려고요. 은퇴나 전향은 프로 생활이 끝나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LoL e스포츠가 걸어온 역사가 있을 거예요. 마지막까지 팬분들 기억에 남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습니다"

-2017년 1월 9일, 인벤과의 인터뷰 중에서

▶ [인터뷰] 락스 타이거즈 '샤이' 박상면, 그의 부끄러움에 대해 - 관련 기사 바로가기

▲ '신생' 락스 타이거즈에서 새로운 시작!


구 아프리카 프릭스의 선수 층이 대거 영입된 락스 타이거즈는 그들만의 색깔을 자랑했습니다. '미키'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스타일은 락스 타이거즈의 무기이자 특색이 되었습니다. 때론 무모할정도의 공격성이 독이 될 때도 있었지만, 신생 팀 답지 않은 과감성으로 승리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샤이'의 역할도 중요했습니다. 무게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한 '샤이'. 리그가 진행될수록, 힘들었던 비판 여론은 잦아들었고, '샤이'도 자신의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했습니다. 공격적인 락스 타이거즈에 옛날부터 잘 다루기로 유명했던 '쉔'을 조합하면서 '샤이'가 팀에 전체적인 안정감을 만들어냈습니다.

'쉔'이 좋은 카드로 떠오르면서 많은 팀들이 쉔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샤이'만큼이나 쉔의 활용에 정통하고, 스플릿 푸쉬에 정통한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 락스의 공격성에 안정감을 실어준 '샤이'의 쉔 (영상 출처: OGN)


한때 샤이의 보험이자 비밀무기였던 '잭스'처럼, 이제는 '쉔'이 샤이를 대표하는 무기가 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쉔을 잘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현재 해설이자, '쉔'을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클템' 이현우 해설위원의 현역 시절의 성과라고도 전해지죠.

▲ '클템'에게 쉔을 전수 받은 '샤이'? 실력이 남다를 만도 하다.
(영상 출처: OGN 인터뷰)


'샤이'의 무기는 '쉔' 뿐만이 아닙니다. 현재 락스 타이거즈가 과감한 공격성을 무기로 하고 있는 만큼, '샤이' 또한 이에 발맞춘 무기가 있죠. 바로 '레넥톤'이 그것인데요. 한 때 최고의 OP 챔피언으로 부상한 '카밀'을 견제하려는 의미도 있는 '레넥톤' 픽은 공격성이 필요할 때 샤이의 또 다른 무기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얼마전 있었던 경기에서도 SKT T1에게 아쉽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3세트 '샤이'의 레넥톤은 '후니'의 노틸러스를 상대로 CS 차이를 크게 벌리며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줬죠. 강한 픽을 뽑더라도, 실제로 상대를 압도하고 CS 차이를 크게 벌리는 것은 프로 단계에서 힘든 일임을 생각하면 이런 장면들이 과거 최고의 탑 라이너로 불렸던 '샤이'의 부활을 알리는 듯해 보입니다.

▲ '샤이'의 또 다른 무기 '레넥톤'! (영상 출처: OGN)


후반기 바짝 승을 챙기면서 드라마를 썼던 락스 타이거즈. 3월 29일, 3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SKT T1에 패하면서 포스트 시즌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어쩐지 그렇게까지 슬픈 기분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샤이'가 보여준 부활의 전조 때문이었을까요? 락스 타이거즈가 보여준 후반기 분위기는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아직 팀을 이룬지 얼마 되지 않아 만들어낸 성과였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아직 '샤이'의 완전한 부활을 말하기엔 이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화려했던 그의 전성기와 대비되는 부진의 시기, 거셌던 비판 여론을 모두 이겨내고 다시 한번 일어선 '샤이'의 모습이 진흙 속의 진주처럼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포기해버렸을지도 몰랐던 2017 시즌 '샤이'의 프로게이머로서의 길. 그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가 쓰는 역사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끄러울 줄 아는, 꿋꿋한 남자 '샤이'. 그가 보여줄 새로운 역사 책은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갈지 정말로 궁금합니다.

▲ 그의 '새로운' 이야기에는 즐거움만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