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진행된 조 추첨식을 통해 2017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 게이머들에게만큼이나 구단 관계자들에게도 조 추첨식은 굉장히 중요한 행사였다. 같은 조에 어떤 팀들이 있는지 알아야 이번 월드 챔피언십이 힘들지, 혹은 쉬울지 대략적인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조의 팀들은 달랐다. 그들은 지역 리그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었든, 이번 월드 챔피언십은 쉽지 않은 무대가 될 것이 뻔했다. B조 소속이 확정된 세 팀. '롱주 게이밍'과 '임모탈즈', 그리고 '기가바이트 마린즈'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세 팀 모두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롱주 게이밍은 LCK 섬머에서 세계 최고의 팀으로 불리던 SKT T1을 당당히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임모탈즈는 전 시즌에 아쉬운 성적을 냈지만, 여름에 이르러 굉장히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완전히 바뀐 모습을 보여주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기가바이트 마린즈'는 작년까지 그냥 그런 중위권 강팀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올해 들어 지역 리그 우승을 휩쓸었다.

달리 말하면, 올해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이들은 최고의 팀이라 불리기엔 손색이 있었다. 때문에 국제 경기 경험도 적고, 기껏 나간 대회에서도 딱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이들에게 있어 이번 월드 챔피언십은 검증의 자리다. 지역 리그에서 거둔 준수한 성적이 그저 운으로 따낸 것이 아님을, 국제 대회에서도 통할지 가늠하는 도전의 장이다.


■ 상대 전적 제로... 누구도 알 수 없는 승부

B조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이라면, 진출이 확정된 세 팀이 아직 한 번도 정식으로 격돌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롱주 게이밍'은 지금의 모습을 갖춘 2016년 이후 이렇다 할 국제 대회에 나서지 않았고, IEM에 한 번 출전했을 뿐이다. '임모탈즈' 또한 마찬가지. 임모탈즈는 지난봄, 'IEM 경기'에 출전해 '삼성 갤럭시', 그리고 '콩두 몬스터즈'와 대결했지만 모두 패배했다. 하지만 당시의 임모탈즈가 지금의 임모탈즈와는 전혀 다르다는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기가바이트 마린즈' 또한 비슷하다. 이들은 2017년 열린 두 번의 MDCS에서 모두 우승을 거두며 지역 리그의 최강자 자리를 굳혔지만, 정작 MSI에서는 딱히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는 준우승을 했지만, 사실 리프트 라이벌즈는 월드 챔피언십에 비하면 매우 작은 규모의 대회일 뿐이다. 결국, 이들 또한 제대로 된 국제무대에서 검증받진 못했다.


그 때문에 이들의 상대적 비교우위를 증명할 어떠한 자료도 없다. 로마군과 중국 고대 국가가 전쟁을 벌이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 없듯, 이들의 대결 또한 지금까지 그들이 서로 다른 지역에서 보여준 모습을 보고 비교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만큼이나 예측이 힘들고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조 또한 B조다.


■ '롱주'만 잡으면 진출은 안정권

하지만, 세 팀이 가지는 무게감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B조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가진 팀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롱주 게이밍'을 말할 수 있다. 일단, 가장 큰 스케일의 국제 대회인 '월드 챔피언십'이 주는 부담에서 롱주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는 롱주의 명실상부한 간판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봇 듀오 덕분이다. '프레이' 김종인과 '고릴라' 강범현은 롱주 합류 이전에도 수년 간 프로 생활을 해왔고, 네 번에 이르는 월드 챔피언십 출전 경험이 있다. 사실상 이들 두 명에게 있어 월드 챔피언십은 매년 돌아오는 연례행사라 해도 무방하다. 그저 소속 팀이 바뀌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이 LCK의 제왕으로 거듭난 과정 또한 롱주 게이밍에게 무게감을 실어 준다. LCK 섬머 결승에서, 이들은 무려 SKT T1을 3: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SKT T1 2015년 MSI에서 EDG에게 3:2로 패배하면서 우승을 놓치기 전까지 BO5 이상의 결승 다전제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SKT T1은 불패 행진을 이어갔고, 마침내 그 덜미를 잡은 팀이 롱주 게이밍이었다. 결승전에서 롱주 게이밍은 SKT T1을 완벽하게 잡아냈다.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리고 그 경기로 인해, 롱주 게이밍은 세계 최강의 팀이란 타이틀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제 이 타이틀을 지키느냐, 혹은 뺏기느냐는 월드 챔피언십에서 가려지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임모탈즈나 기가바이트 마린즈의 경우 롱주 게이밍만 잡을 수 있으면 조별 리그는 퍽 쉽게 풀어갈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근거가 더 있다. 지금까지 '프레이' 김종인이 출전했던 네 번의 월드 챔피언십에서, '프레이'의 팀을 꺾고 진출한 팀은 모두 우승을 거두었다.


■ 가장 강하진 않다 해도, 가장 재미있을 B조

B조는 그런 조다. 힘들었던 시기를 이겨내고 마침내 정상에 근접한 세 팀이 마치 운명처럼 한 조로 모였다. 그리고 이제 시험이 시작된다. 그들이 쌓아온 노력과 보여주었던 실력이 세계 정상급의 팀들 사이에서도 통할지, 혹은 그저 그들의 연고지에서만 통할 정도의 실력이었는지 냉정하게 검증받는 자리다.

단 한 번도 서로 맞붙은 적이 없기에 어느 팀이 더 유리하다고도 말할 수 없고, 예상 못 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비록 LCK 결승에서 SKT T1을 꺾은 롱주 게이밍이지만, 지금의 롱주 게이밍은 어떨지 모른다. 진짜 세계 최고의 팀이 되어 있을지, 혹은 LCK 섬머에서의 퍼포먼스가 잠깐의 전성기였는지 드러날 것이다.

NA LCS 그룹스테이지에서 엄청나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며 준우승까지 질주한 '임모탈즈'도 이번 월드 챔피언십이 또 한 번의 도약을 할 기회다. 하지만 그룹 스테이지에서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하고 주저앉는다면, NA 팀은 역시 국제무대에 약하다는 편견만 더해질지도 모른다.


'기가바이트 마린즈'도 같은 입장이다. 두 번의 MDCS에서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지만, 그 실력이 국제무대에서 통용될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저 그런 지역구 강팀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팀이 되기 위해서 월드 챔피언십은 기가바이트 마린즈가 꼭 거쳐야 할 시험대다.

B조의 팀들이 월드 챔피언십에 진출한 모든 팀 중 가장 강한 팀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B조의 경기는 어떤 조보다도 더 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경기들로 채워질 것이 확실하다. 세 팀에게 한 번에 찾아온 기회. 이 중 두 팀만(어쩌면 한 팀만이...)이 가치를 증명하고 진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과연 이들의 희비는 어떻게 갈릴까? 아마 기대할 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