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S 장르는 그 게임의 종류를 막론하고 항상 소위 '핵'이라고 불리는 비인가 프로그램과 전쟁을 벌인다. 상대를 정확히 조준하지 않아도 총알을 박을 수 있게 해주는 에임 핵과 벽을 관통하게 해주는 월 핵, 사용자의 이동속도를 빠르게 만들어주는 스피드 핵 등. 핵의 종류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그 업데이트 속도 또한 빨라서 게임 개발사는 핵과의 전쟁에서 늘 밀릴 수밖에 없다.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에도 핵이 정말 많다. 커뮤니티에는 '배그 새로운 핵'과 같은 제목의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팔이 늘어나는 핵이 있는가 하면 원하는 지역에 안전 지대를 형성하거나 아이템을 만드는 핵까지 등장했다. 이제 기존 FPS 장르의 게임에서 판을 치던 에임 핵이나 스피드 핵, 월 핵 정도는 핵 유저들에겐 '기본 요구 사항'이 된 듯하다.

갑자기 핵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낸 이유가 궁금할 지도 모르겠다. 그 이유는 내가 직접 플레이한 장면을 수록하는 앤서의 수양록의 이번 주제가 바로 핵 유저를 만난 것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핵 유저와의 만남
그게 내 이야기는 아닐 줄 알았지


핵 유저와 만나 일방적으로 학살당했다는 글은 배그 커뮤니티라면 어디에서라도 쉽게 발견됐다. '집 안에 잘 숨어있었는데 헤드샷 한 방에 죽었다'거나 '차량을 타고 가다가 쉴새 없이 날아오는 화살에 차량이 터져서 죽었다'는 황당무개한 이야기들이 실린 글들 말이다.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각종 영상 콘텐츠에서도 핵 유저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직접 만났던 건 아니었지만 유명 BJ나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고 있으면 심심찮게 핵 유저를 보게 됐다. 저 멀리서 순식간에 다가오는 핵 유저도 봤고, 상대가 벽 뒤에 있는 줄 모르고 연신 벽에 총알을 박아대는 핵 유저도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30여명을 혼자서 쓸어버리는 킬 로그를 본 적도 있었다.

사실 난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이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어차피 핵 유저는 이미 최상위권으로 올라갔기 때문에 나랑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 유명한 가수 이적의 노래 제목처럼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먼 세상의 이야기인줄만 알았던 배그 핵 유저를 직접 목격하게 될 줄은.

내가 만난 핵 유저가 썼던 핵의 종류는 그나마 기본적인 것들이었다. 에임 핵과 월 핵, 스피드 핵을 하나씩만 쓰는, 나름대로 착한 핵 유저들이었다. 모두를 경악케 했던 '블랙홀 핵'이나 팔이 늘어나는 '루피 핵', 원하는 지역에 아이템을 만들어내는 '엘릭 형제 핵' 등은 다행히 만나보지 못했다. 혹시나 이번 수양록에서 저런 극악무도한 핵 유저들을 만난 이야기를 원했다면, 본인이 평소에 너무 잔인하다는 평가를 듣고 다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데스캠의 등장
의심되면 여지 없이 '그 친구들'이었다


배그가 정식 출시되면서 '데스캠'이라는 것이 생겼다. 말 그대로 내가 어떤 식으로 상대에게 쓰러졌는지 다시 볼 수 있는 기능. 이를 보면서 자신의 플레이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다음에는 같은 방식으로 죽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있게 해주는, 아주 좋으면서도 다소 잔혹한(?) 기능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유저 대부분은 데스캠을 보고 건설적인 피드백을 잘 하지 않는다. 그냥 본인이 죽은 장면을 다시 보면서 절망에 빠지곤 하지.

▲ 이런 부끄러운 영상도 다 볼 수 있다

아무튼 이 데스캠이 등장한 이후, 배그에서는 내가 핵 유저에게 죽었는지 그냥 실력으로 박살이 났는지 판가름할 수 있게 됐다. 예전처럼 상대가 어디서 쏘는지도 모른채 풀밭 혹은 모래밭에 누워버렸다면 날 죽인 사람이 핵을 쓰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냥 감으로 "저 친구 핵을 쓰는구나... 허허허(물론, 실제로는 더 화끈한 표현을 쓰겠지만)"하면서 신고하기 버튼을 눌렀을 뿐.

하지만 이제는 날 죽인 상대 시점에서 그 친구가 날 어떻게 저 세상으로 보내 7번의 재판을 받게 했는지 알 수 있게 됐다. 물론, 난 억울하게 죽었으니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이승을 떠도는 원귀가 됐지만 말이다.

데스캠이 도입된 이후, 난 내가 죽었을 때 어떤 실수를 했는지 확인도 하고 날 죽인 사람이 핵을 쓰는 유저인지 확인도 할 겸 꼭 데스캠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았던 죽음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견착 사격 초고수'에게 죽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사촌 동생들과 오랜만에 PC방에 모여 스쿼드 모드를 즐겼다. 우리는 대도시 하나의 왕으로 등극, 아이템 부자가 되어 가방을 꽉 채운 채 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는 유비와 관우, 장비처럼 도원결의를 하지도 않았는데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죽었다. 마치 초겨울 불어오는 찬 바람에 힘없이 땅으로 추락하는 4개의 낙엽 같았다.

데스캠으로 확인해보니 우리는 약 400m 밖에서 견착 사격 자세에 연발 모드로 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었던 우리만 정확히 노리는 적에게 사살당했다. 우리 차량의 체력은 하나도 닳지 않았던 것이 기억났다. 마치 무릎 반사처럼 그 화면을 보자마자 우리는 "저 친구 핵을 쓰는구나(실제로는...)" 라고 동시에 외쳤다. 그 친구가 핵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는 곧 APL이나 PSS에서 견착 사격 만으로 상대를 유린하는 프로게이머를 보게 될 것이다. PC방이라 영상이 남지 않아 여기에 담지 못하는 점이 매우 아쉽다.

비슷한 일을 집에서 스쿼드 모드를 즐길 때 겪은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영상이 남아 있기에 기사에 첨부하겠다. 에란겔 감옥에서 파밍을 마친 우리는 차량을 타고 그곳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우리 뒤쪽에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평소 차량으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데 도가 텄던 나는 차량의 이동 경로를 바꾸기 위해 키보드를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나와 팀원 한 명은 총알 단 4방에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신세가 됐고, 나머지 두 명 역시 곧장 쓰러졌다.

▲ 띠용?


▲ 여러분도 한 번 판단해보시길


물론, 데스캠이 가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에임을 이상한 곳으로 잡아주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우리를 죽인 친구가 4배율 스코프도 장착 중이었기에 무조건 핵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이상했다.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해도 차량으로 이동 중이던 우리를 총알 몇 발에 모조리 쓰러뜨릴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그 친구를 신고했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핵 의심 유저를 만나봤다. 정식 출시 전에 안개맵이 존재했을 때, 나도 다른 유저들처럼 얼른 안개맵으로 진행될 게임에서 나가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안개맵에서는 각종 핵을 더 마음 놓고 쓸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개맵에서 플레이를 하면 두 판에 한 번 꼴로 내가 숨어있는 집의 벽에 수없이 많은 총알이 박히는 경험을 했다.

스피드 핵을 처음 봤을 땐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듀오 중에 자기장이 좁아지기 시작했고 나와 내 팀원은 차량이 없어 맨발로 뛰어가야 했다. 그러다가 뒤에서 누군가 격발한 총에 의해 내가 먼저 기절했다. 아직 내 팀원이 살아남아 내 캐릭터의 시야로 주변을 볼 수 있었다. 그때 내 뒤에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누군가가 날아왔다. 그리고 내 앞을 뛰어가던 다른 상대 바로 옆에 붙어 재빨리 그를 죽이고 또 다른 곳으로 후다닥 날아갔다. 그 모습은 정말 기괴했다.


'핵'고통
잡아도 잡아도 계속 늘어나는 그 친구들


배그의 펍지주식회사는 핵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유지 중이다. 매번 핵을 활용한 유저들을 적발해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핵을 사용했던 프로게이머에게 영구 제명이라는 철퇴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펍지주식회사의 강경 대응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수많은 유저가 핵 유저들에게 고통받고 있다. 하긴 이건 단순히 펍지주식회사나 배그에서만 일어나는 문제는 아니다. FPS 장르에서는 거의 숨 쉬는 것만큼 당연한 일이고, 다른 장르의 게임에서도 핵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너무나도 많다.

최근 한 커뮤니티에는 중국 PC방에는 자리마다 배그 핵이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다는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유저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워낙 핵에 이골이 날 정도로 당하다 보니 '역시 그랬군' 정도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그만큼 배그 유저들은 지금 핵과의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고통받고 있는 입장이다.

잡아도 잡아도 계속 늘어나는 바퀴벌레 같은 '그 친구들'을 어찌 해야 할까. 사실 딱히 묘수가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이미 모든 게임 개발사가 그 방법을 통해 핵 유저들과 핵 개발자들을 싸그리 감방으로 보내고 '클린'한 게임을 만들었을테니까. 하지만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고, 펍지주식회사도 핵에서 홀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펍지주식회사를 포함한 모든 게임 개발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핵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럼 우리 일반 유저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귀찮더라도 꼭 데스캠을 확인해서 충분히 의심이 된다면 곧장 신고하기 기능을 활용해야 한다. 핵과의 전쟁에서 게임 개발사와 유저는 같은 편이라는 걸 항상 명심하자. 약간 유치한 공익광고 멘트 같지만 말이다.

▲ 형님들~ 나가기 전에 꼭 신고하기 버튼 눌러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