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LoL 경기를 치른 프로들의 인터뷰를 보면 놀랍다. 관전자들이 보기에 승리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팀원 간 '후반만 가면 이길 것 같았다'는 말을 자주 하곤 한다. 불리해 보이는 경기임에도 승리하는 방법을 확실히 알고 있어서인지 극적인 역전승이 크게 놀랍지 않은 모양이다.

C9 역시 이번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수많은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다. 결과는 4전 전승이라는 깔끔한 성적을 냈지만, 경기가 끝날 때까지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다. 매 경기 불리한 순간이 찾아왔고, 시시각각 경기 흐름이 바뀌곤 했다. 그런데, 올해는 북미팀에 관한 즐거운 생각이 들 만하면 줄곧 역전승으로 마무리할 줄 알았다. 롤드컵 단골인 EDG와 G2 역시 1패씩 한 것을 고려했을 때, C9 전승의 의미는 새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C9이 거둔 확실한 승리의 핵심은 무엇이었을까. 다른 지역팀들이 준비해온 경기력 역시 매서웠지만, 이를 모두 넘을 수 있는 C9만의 공식이 궁금했다. 그리고 매 경기 스스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만들어간 선수들이 있었다.


판을 읽는 탑 라이너 '리코리스'
경기 흐름을 자신의 손으로 바꾸다


▲ 거의 이겼... DFM 발목잡는 리산드라

불리한 경기를 뒤집으려면, 상대가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필요하다. 상대가 힘이 더 좋고 바론 버프를 두르고 있는 상황에서 평범한 한타와 대치만으로 게임을 뒤집기 힘들기 때문이다. 플레이-인 스테이지의 C9에게도 힘든 상황이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그대로 무너지지 않고 역전을 위해 꼭 해야 할 플레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런 역할을 해낸 게 바로 C9의 탑 라이너 '리코리스'였다. 첫 경기에서 아트록스로 우르곳을 찍어누르며 그저 힘 좋은 탑 라이너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후 경기에서 리산드라 플레이로 승부의 맥을 짚을 줄 아는 프로라는 점을 입증했다. 먼저 들어가 상대를 끌어들이는 어그로 플레이부터 교전을 여는 이니시에이팅, 그리고 핵심 딜러를 끊어주는 역할까지. 다채로운 플레이가 가능한 리산드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 챔피언에 대한 이해도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플레이의 향연이었다.

'리코리스'의 슈퍼플레이는 단순히 화려한 플레이가 아니었다. 팀 상황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 제대로 집어낼 줄 알았다. 1일 차 경기에서는 데토네이션이 장로-바론 버프를 두르고 경기를 끝내기 위해 진격했다. 강력한 상대의 발을 한 번에 묶기 위해 먼저 들어간 선수가 바로 '리코리스'였다. 이번 한타 승리하지 못하는 순간 게임이 끝나는 걸 알았고, 가장 중요한 순간 해낸 것이다.

▲ 상대 심장을 얼리는 C9 '리코리스' 리산드라


리산드라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는 끊이질 않았다. 플레이-인 스테이지에서 카붐! e스포츠의 마지막 저항이 의외로 거셌다. 원거리 딜러 '타이탄'의 트리스타나가 이전 교전에서 킬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상황. 이대로 가다간 공성에서 밀리는 시기가 찾아올 법 했다. 그런데, 벽 뒤에 매복해 있던 리산드라가 트리스타나를 끊어주면서 카붐의 기세가 한 번 꺾이고 말았다. C9은 '리코리스'의 슈퍼 플레이를 바탕으로 다시 역전의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새롭게 북미를 대표할 만한 탑 라이너 후보가 등장했다. 그동안 북미의 탑은 '임팩트-썸데이-후니' 등 한국인 선수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해왔다. 이제는 한국인이 아닌 LCS를 대표할 만한 선수가 등장한 것이다. 오랫동안 LCS를 대표해 출전한 TSM과 '하운처'마저 꺾고 말이다. '리코리스'는 북미에 흔하지 않은 판을 읽을 줄 아는 신예다. 이전과 다른 북미팀 경기의 재미를 느낄 가능성을 보여줬다. 롤드컵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리코리스'가 LCS NA 수준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숨은 MVP? 원거리 딜러 '스니키'
의외의 폭발력, 승부의 쐐기를 박다


'스니키'는 많은 부분에서 베일에 싸인 의문의 선수였다. LCS NA 외 글로벌 팬들에게는 LoL 캐릭터 코스프레로 더욱 유명했으니까. 경기 내에서도 초반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라인전, 슈퍼플레이를 선보이진 못했다.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원거리 딜러처럼 보였다.

하지만 원거리 딜러가 해야 할 후반 한타 캐리 장면은 빠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타에서 적절하게 파고들어 상대를 쓰러뜨릴 줄 아는 선수가 바로 '스니키'였다. 상대 역시 충분히 승리할 기회가 찾아왔지만 놓치고 말았다. 반대로, '스니키'는 4전에서 이 기회를 모두 놓치지 않고 승부를 굳혔기에 C9이 모두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 리듬 탄 '스니키' 드레이븐은 막을 수 없다


플레이-인 스태이지 마지막 경기에서 '스니키'의 픽은 드레이븐이었다. 이전 경기에서 드레이븐-베인과 같은 캐리형 챔피언이 모두 패배를 기록한 상황에서 뽑았기에 '과연?'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미드 라이너 '옌슨'의 르블랑마저 연이어 끊겼기에 드레이븐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반이 되자 '스니키'는 당연한듯이 제 역할을 해냈다. 킬을 주고받는 상황이 이어졌으나, 마지막 한타에서 '스니키'가 본격적으로 딜을 넣자 한타 대승과 함께 경기가 끝나고 말았다. 이전 경기에서 주로 기용했던 카이사로도 파고들어 킬과 함께 모든 변수를 차단해버렸다.

'스니키'의 화려하진 않지만, 확실한 플레이는 팀원들도 인정하고 있었다. '리코리스'는 인터뷰를 통해 '스니키'를 "꾸준히 잘하는 선수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확실한 C9의 승리를 견인한 숨은 MVP가 바로 원거리 딜러 '스니키'라고 할 수 있다.


C9의 저력 어디까지
2년 연속 8강 주자, 세 번째 이야기 결말은?


C9은 2016-2017 롤드컵 8강에 진출한 북미의 마지막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다. 매년 TSM이 1위로 올라와 그룹 스테이지에서 무너졌지면, 플레이-인 스테이지도 거쳤던 C9이 8강에 올랐다. 두 해 연속으로 이런 결과를 냈다는 건 확실한 저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

올해 C9에게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 역시 남았다. 주전 로스터가 신예들로 많이 바뀌면서 실수하는 장면 역시 눈에 띄기도 했다. 그룹 스테이지에 올라가면, 작은 실수 하나만으로 승리를 확정 짓는 강팀들이 기다리고 있다. 올해 최고의 기세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RNG와 2년 연속 롤드컵 결승 주자인 한국의 젠지. 두 팀에게 승리하려면 이전처럼 빈틈을 주면 안 된다는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 남았다. 그룹 스테이지부터 지난 롤드컵과 비교할 수 없는 험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C9은 강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이기도 했다. 플레이-인 스테이지 단계부터 승리하기 위해 자신들이 어떤 플레이를 해야 할지 아는 감각적인 팀이다. 매 경기 단단해지면서 또 다른 롤드컵의 이변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제 C9이 넉아웃 스테이지와 그룹스테이지를 통해 진정한 승부사가 될지, 그 갈림길에 서 있다.

영상 출처 : LoL esports 공식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