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DG 스프링 우승 당시(출처 : JDG 공식 트위터)

올해 LPL은 참 이변이 많은 리그였다. 평소 정규 스플릿부터 상대적으로 순위가 떨어지는 팀이 상위권 팀을 꺾는 이변이 종종 나왔다. 기존 강자라 불리는 팀 역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못 했다. 2018-19 롤드컵 우승팀인 IG와 FPX가 섬머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탈락했고, 그들을 넘어 쑤닝-LGD가 섬머 플레이오프에서 3-4위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2년 연속 롤드컵 4강에 오른 IG나 롤드컵 디펜딩 챔피언 FPX이 떨어질 수 있는 곳이 LPL 무대다.

그런 LPL에서도 최상위권 두 팀은 흔들림이 없었다. 섬머 정규 스플릿 1위 TES와 2위 JDG는 일찌감치 준결승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롤드컵 진출을 확정지은 것이다. 여전히 건재한 두 팀은 스프링 결승에 이어 섬머 결승에서도 만나게 됐다. 스프링 LPL-미드 시즌 컵(MSC) 우승이라는 굵직한 성적을 나눠 가졌던 두 팀 중 진정한 LPL 최강자, 롤드컵 1번 시드를 가릴 차례가 왔다.

두 팀의 대결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다. 분명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두 팀인데, LPL 결승전이라는 도착 지점에서 만난다. 밴픽부터 운영-한타 같은 큰 판을 잘 그리는 JDG, 개개인의 슈퍼플레이 능력을 바탕으로 변수를 만드는 TES. 색다른 스타일의 두 팀이기에 매번 만날 때마다 어떤 팀이 승리할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2020 징동 게이밍(JDG) VS 탑 E스포츠(TES) 상대 전적

LPL 정규 스프링 스플릿 - JDG 0 VS 2 TES
LPL 스프링 결승전 - JDG 3 VS 2 TES
JDG 정규 섬머 스플릿 - 0 VS 2 TES
LPL 섬머 결승전 TES VS JDG (27일 오후 6시)


큰 그림 완성할 줄 아는 JDG의 진가

▲ LPL 1st 팀에 이름 올린 TES-JDG

LPL 1st 팀에 선정된 선수들만 보더라도 JDG와 TES가 어디가 중심인지 잘 알 수 있다. JDG는 1st팀에 정글러와 서포터 '카나비-리마오'가 이름을 올렸다. 딜량과 킬 스코어라는 지표로 어렴풋이 게임 전반을 이해하면, 서포터-정글러의 활약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JDG의 두 선수는 라이너 캐리 이상의 판을 만들어갈 줄 안다.

이는 스프링 때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스프링 정규 스플릿 MVP '카나비' 서진혁과 스프링 결승전 MVP '리마오'의 수상과 섬머 1st팀이라는 결과가 이를 잘 말해준다. 팀 스타일 역시 크게 바뀌진 않았다. 리마오는 자신을 상징하는 바드를 필두로 플레이메이킹에 능한 서포터다. 그리고 ‘카나비’는 섬머 정규 스플릿에서 킬 스코어-분당 대미지-평균 골드 획득 1위로 최고의 정글러 지표를 자랑하고 있다. 무서운 건 스프링과 큰 변화는 없지만, 여전히 JDG의 스타일이 위력적이라는 점이다.

이는 PO 4강 LGD와 대결에서 잘 드러났다. 당시 LGD는 WE에 이어 IG를 완파하고 올라온 상태였다. 하지만 JDG는 LGD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정글러 '피넛' 한왕호를 찌를 줄 알았다. 이전까지 '피넛' 중심의 카운터 정글과 교전으로 승리했던 LGD인 만큼 JGD 입장에서 확실한 공략이 필요했다.


▲ 상대 정글러는 '카나비' 손바닥 위에...

그리고 JDG와 ‘카나비’는 LGD와 2세트에서 '피넛'의 동선을 완벽히 예측했다. 일반적으로 초반이 강력한 올라프가 빠른 정글링 속도와 힘을 바탕으로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데, '카나비' 이블린의 카운터 정글에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6레벨 이전에 올라프에게 먼저 싸움을 거는 이블린 플레이는 생각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카나비'의 이블린은 '리마오'와 함께 들어가 킬까지 만들어냈다. 덕분에 올라프를 상대로 첫 드래곤을 손쉽게 챙긴 뒤, 캐리형 챔피언인 이블린의 성장에 속도가 붙었다. 핵심을 찔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줄 아는 JDG의 플레이메이킹이었다.

해당 장면은 '카나비'의 판을 읽는 남다른 능력을 잘 보여준다. 승자 인터뷰에서 서포터 '리마오'는 "갑자기 정글로 부르는 '카나비'의 콜을 듣고 의아했는데, 정말로 '피넛'의 올라프가 나타나서 놀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카나비'는 프로들과 심리-동선 싸움에 있어서도 우위에 서 있었다.

그런 정글러가 '피지컬'까지 갖춘다면, 막을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카나비'는 LPL 섬머 정규 스플릿에서 정글러 중 킬 스코어 1위를 달리고 있다. 동시에 킬 관여율은 정글러 중 최하위라는 의외의 지표도 공존한다. 상대 움직임을 파악해 카운터 정글을 들어가거나 역갱킹을 해낼 수 있는 '카나비'이기에 나올 수 있는 지표다. 킬 관여보단 본인이 킬을 더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정글러다.

이는 LGD에게 유일하게 패배한 4세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군이 라인전이나 교전에서 밀리는 상황에서도 '카나비'는 리 신으로 침착하게 킬을 만들어냈다. 흔들리는 봇의 뒤를 봐주는 역갱킹을 시작으로 들어오는 상대의 헛점을 노리는 플레이로 혼자 5킬(탑-미드-원딜 각각 2킬)을 달성한 경기였다. 팀 라이너의 킬을 빼앗은 게 아닌 위기마다 빛나는 킬 캐치 능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다. 이렇듯 '카나비'는 일반적인 정글러의 평가 기준의 틀을 벗어나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카나비' 서진혁 섬머 정규 스플릿 정글러 지표

킬 스코어 1위
분당 대미지 1위
분당 평균 골드 획득 1위
분당 CS 획득 2위
킬 관여율 LPL 정글러 최하위

밴픽적으로도 JDG는 탄탄해보인다. 칼 같은 밴으로 상대가 만들어낼 수 있는 변수를 제거한 다음, 아군에게는 변수를 만들어낼 챔피언을 적극적으로 쥐어준다. 2020 LPL 스프링 결승에서도 JDG는 1:2로 밀리는 상황에서 무엇을 가져오면 이길지, 무엇을 자르면 될지 정확하게 판단했다. 해당 내용은 스프링 결승전 밴픽 단계에서 절박함을 다룬 아래 연관 기사에 있는 '옴므' 감독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났다. 이번 섬머 LGD전 역시 마찬가지로 '피넛'의 핵심 픽인 니달리-그레이브즈를 모든 세트에서 확실히 자르고 킨드레드를 가져오면서 시작했다. 그동안 LGD를 상대하는 IG-WE는 해당 픽을 나눠 갖거나 밴을 하지 않고 안일하게 임했다가 그대로 패배했다면, JDG는 강자의 입장임에도 칼같이 '피넛'의 주요 픽을 잘라냈다.

JDG는 픽창에서 판을 만들어갈 줄 알았다. '카나비'는 MSC에서 확인했듯이 당시 유행하지 않은 챔피언도 과감하게 꺼낼 줄 알았다. 당시 에코-니달리와 같은 AP 정글러가 유행하지 않았음에도 니달리의 버프 소식이 들리기 무섭게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이었다. 최근 LPL 경기 역시 릴리아와 이블린이라는 카드를 뽑아 모두 승리를 경험한 바 있다. '카나비' 개인뿐만 아니라 팀적으로 해당 챔피언의 활용에 맞게 움직이면서 성능을 극대화한 경기들이었다. 스프링 결승 MVP인 서포터 '리마오' 역시 놀라운 바드 플레이로 바드가 유행하는 메타를 이끌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판이 깔리면, 그때부터 JDG의 라이너들이 한타 때 활약한다. 한타 승부에 자신있는 JDG는 이번 LPL PO에서 가장 경기 시간(32분 57초)이 긴 팀이기도 하다. 여전히 탑 라이너 '줌'이 PO에서도 오른을 뽑을 수 있고, 후반을 책임질 원거리 딜러 '로컨' 이동욱이 든든히 버텨주고 있기에 그렇다. 오른이 수차례 너프를 받으면서 예전 '국밥'의 명성을 잃었지만, JDG는 여전히 자신들의 스타일에 맞게 활용 중이다. 한타 때 상대의 핵심인 미드-원거리 딜러를 노리는 '줌'과 '로컨'의 한타 집중력은 아래 영상에서 특히 빛났다. 이렇게 JDG는 밴픽부터 판을 짜는 정글러-서포터, 뛰어난 한타 능력까지 큰 판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강한 팀이다.

'줌-로컨', '리마오'의 놀라운 한타 집중력(출처:LPL ENG)


▶연관 기사 : LPL 봄에 나타난 새로운 주인공, JDG 이유 있는 이변

실수-하드 캐리 사이… 개개인 모두 변수인 TES

▲ 출처 : TES 공식 SNS

JDG가 큰 '숲'을 완성하려고 한다면, TES는 '나무' 몇 그루가 숲을 뚫고 올라오길 바라는 팀이다. 팀원 개개인의 경기력이 폭발할 때 막을 수 없다는 건 이미 MSC에서 확인한 바 있다. 앞서 1st팀 이미지에서 보았듯이 '나이트-잭키러브'라는 미드-원거리 딜러 캐리력이 가장 폭발적인 팀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슈퍼플레이로 수많은 변수를 만들어가는 게 TES 스타일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선수는 역시 '나이트'다. LPL 섬머 스플릿 전반에서 캐리 역할을 해내면서 MVP까지 선발됐으니까. 패배하는 경기에서도 '나이트'의 슈퍼플레이는 빠지지 않았다. '나이트'의 V5전 카시오페아나 IG전 조이는 불리한 경기를 거의 뒤집을 법한 힘을 자랑하곤 했다. MSC 우승 이후 물오른 '나이트'는 KDA 1위, 분당 평균 골드 획득 1위, 분당 대미지 2위, 솔로 킬 1위(21회)라는 탄탄한 지표를 바탕으로 꾸준히 캐리력을 뽐내는 중이다.

'나이트' 섬머 정규 스플릿 미드 라이너 지표

KDA 1위
분당 평균 골드 획득 1위
분당 대미지 2위
솔로 킬 1위(21회)

'잭키러브'는 한동안 주춤했으나 최근 케이틀린과 진을 중심으로 다시 힘을 되찾고 있다. 라인전 단계부터 한타까지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력이 준결승전인 쑤닝과 대결까지 이어진 듯하다. 잠시 방황할 때 KDA가 떨어지긴 했지만, 섬머 LPL 원거리 딜러 중 딜량 1위라는 지표는 건재하다. 그만큼 딜을 넣는 능력만큼은 최고라는 뜻이다.

1st팀에 속한 미드-원거리 딜러의 캐리력은 이전부터 잘 드러났다. 아래 영상은 LPL 스프링 결승전 3세트로 TES의 세 명이 먼저 끊긴 상황이다. 팀원 모두가 생존한 JDG가 바론 버스트를 하는 상황에서 '잭키러브-나이트'가 2:5 전투를 벌인다. 자칫 미끄러질 수도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2:5 싸움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승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두 선수가 뭉쳤을 때, 캐리력이 얼마나 폭발적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불리한 2:5? 교전 압도하는 TES '나이트-잭키러브'(출처:LPL ENG)

의외로 정글러 '카사'는 이번 LPL 대표 1st-2nd-3rd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메타의 변화와 함께 흔들린 것일까. 지표 역시 다른 정글러에 비해 크게 특별하지 않다. 리 신-트런들 중심의 라인 개입이 주요하던 시절과 달리 성장형 정글러가 뜨면서 정규 스플릿 경기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중요한 경기에서 '카사'는 정말 독하다. 상대 핵심 라이너가 약점을 드러내는 순간, 그곳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 경기 판도 자체를 바꿔버린다. 여러 라이너들이 '카사'의 연이은 갱킹에 회복조차 못 하곤 했다. 단단함으로 유명한 JDG '줌' 역시 섬머 정규 스플릿 TES전에서 오른을 들고도 크게 흔들렸다. 심지어 아군 탑 라이너 '369'의 챔피언이 갱킹 호응이 좋지 않은 케일임에도 '카사'는 갱킹을 연이어 성공시켰다. 이런 장면이 다시 한 번 나왔을 때 정글러 '카사'가 해당 세트를 지배하는 경기가 나오곤 한다.

탑 라이너 '369'는 팀의 지원을 받으면 힘을 내는 선수다. '카사'가 봐줬을 때, 한 번 잘 풀리기 시작하면 그 흐름을 이어간다. LPL PO 준결승전에서 쑤닝과 첫 세트 역시 '369'의 잭스가 사이드를 밀어버리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물론, 팀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못할 때 상대에게 정신없이 휘둘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팀에서 가장 아쉬운 라인을 뽑으라면 TES는 탑일 것이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를 보면 뛰어난 TES 역시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자주 나오진 않았지만, TES가 패배한 경기를 보면 치명적인 실수가 나온다. LPL 스프링 결승이라는 큰 무대를 시작으로 섬머 정규 스플릿 패배 때마다 큰 실수가 나오곤 했다. 스프링 결승전은 '나이트'의 사일러스가 홀로 상대에게 달려들다가 잘리는 뼈아픈 장면이 나오며 준우승을 한 바 있다. 이후 섬머 첫 패배인 V5전은 시작부터 상대 정글로 무리하게 들어가는 잘못된 판단으로 '카사'를 비롯한 팀원들이 잘렸고, 지체없이 비전 이동을 앞으로 쓰다가 '잭키러브'가 친정팀인 IG에게 발목이 잡힌 적이 있다. 슈퍼플레이와 '트롤링'이 한 끗 차이라는 말처럼 큰 실수 한 번으로 패배를 경험한 팀이 TES다.

반대로 그런 실수 없이 우승까지 달려가는 모습을 MSC에서 확인하지 않았는가. 좋은 방향으로 변수를 만들어가는 TES의 고점은 기대치를 넘어설 수 있다. 이번 섬머 결승에서 실수를 줄이고 MSC 이상의 고점을 선보인다면, JDG 역시 스프링과 같은 승리를 장담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LPL 섬머 결승전이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2018-2019의 롤드컵 우승자는 모두 LPL 섬머 결승 주자였기에 그렇다. 작년 LPL 섬머의 우승자인 FPX가 롤드컵을 들어 올렸고, IG 역시 2018 LPL 섬머 준우승 이후 세계 최강자로 거듭난 바 있다. 2년 연속 이와 같은 기록이 나온 만큼 세계에서 LPL 결승 주자들의 경기력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연이은 롤드컵 우승으로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LPL. 그곳에서 우승자-1번 시드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는 확실히 남다를 것이다. 게다가, JDG-TES 모두 과감한 플레이가 장점인 팀으로 자신감마저 붙는다면, 그 누구도 쉽게 막기 힘든 기세로 롤드컵으로 향할 듯하다.

▶연관기사 : [MSC 리뷰] 절대 죽지 않을 영화 속 주인공처럼, TES ‘나이트-카사’

이미지 출처 : 라이엇 차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