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5일. 자그마치 10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무언갈 간절히 꿈꿀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더 나아가 아무리 지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그 목표에 도달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닳도록 원하던 소환사의 컵이 닿지 않는 신기루처럼 희미해져 갈 때 즈음, '데프트'의 꿈은 기적처럼 현실이 됐다. 대부분이 불가능할 거라고 이야기했던 자신의 7번째 롤드컵에서, '데프트'는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섰다. 모두가 '데프트'의 이름을 외쳤고, 그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로써 '데프트'는 자신의 퍼즐판에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었다. LCK, LPL, MSI에 이어 롤드컵까지 정복하면서 유의미한 기록을 달성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데프트'의 우승 커리어를 따라 그의 지난 3,505일을 되짚어봤다.


첫 번째 조각 - 2014 LCK 스프링

2013년 2월 19일 MVP 블루(이후 삼성 갤럭시 블루)로 입단한 '데프트'는 그 해 4월 3일, 2013 LCK 스프링을 통해 데뷔했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신인으로 인정 받고 있었지만, 데뷔 첫 해까지만 해도 그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이즈리얼 플레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1년이 흐른 2014 스프링. 실전 감각을 키운 '데프트'는 소문으로만 듣던 그 경기력을 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최고로 평가 받던 이즈리얼 뿐만 아니라 코그모, 트위치, 루시안 등 다양한 챔피언으로 활약했다. 그렇게 8강에서 CJ 엔투스 프로스트, 4강에서 형제 팀 오존(이후 삼성 갤럭시 화이트), 결승에서 나진 실드를 차례로 꺾고 생애 첫 LCK 우승을 달성한다.


두 번째 조각 - 2015 LPL 스프링

2014 시즌 종료 후,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LoL 엑소더스'가 열린다. '데프트' 역시 이 대열에 합류했고, 옛 동료인 '폰'과 함께 LPL의 EDG에 새 둥지를 튼다.

2년 만에 LCK 정상급 원딜로 거듭난 '데프트'는 당연하다는 듯 LPL에서도 활약상을 이어갔다. 새로운 환경에도 빠르게 폼을 끌어올린 '데프트' 덕분에 EDG는 2015 LPL 스프링서 정규 시즌 4주 차부터 줄곧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후 '데프트'는 결승에서 형제 팀 출신이자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임프'를 꺾고 LPL 로얄로더 자리에 오른다. 유명한 시비르 펜타 킬 장면도 이날 5세트서 나왔다.



세 번째 조각 - 2015 MSI

2015 LPL 스프링에서 우승 컵을 들어 올린 '데프트'와 EDG는 당해 MSI에 참가한다. '데프트'에게는 4강 탈락의 아픔을 겪었던 2014 롤드컵에 이어 통산 두 번째 국제 대회였다.

자국 리그에서 매우 강력한 모습을 보여준 EDG였기에 MSI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 받았고, EDG는 결과로 증명했다. 그룹 스테이지서 SKT T1에게 패하며 2위에 머물긴 했지만, 결승에서 다시 만난 SKT T1을 상대로 복수에 성공하며 트로피까지 거머쥐었다. '데프트'는 훗날 플레이 수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높은 승률을 갖추게 되는 징크스로 MSI 우승에 기여했다.


네 번째 조각 - 2016 LPL 서머

2016 서머, '데프트'는 새로운 동료 '스카웃'과 '마우스'를 맞이한다. 스프링을 준우승으로 마친 EDG가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그리고, 이는 '데프트'의 두 번째 LPL 우승 커리어로 이어진다.

당시 '데프트'는 솔로 랭크에서 물오른 폼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게 대회까지 이어졌다. 스프링부터 이어진 상승 가도가 서머에 최고점을 찍은 듯한 모습이었다. 거기에 팀의 불안 요소로 꼽히던 탑-미드가 로스터 교체로 안정감을 찾자 EDG의 전력은 급등했고, 전승 우승이라는 대업을 달성하게 된다. 팀의 확고한 에이스로 준우승과 우승을 견인한 '데프트'는 LPL 연간 어워드서 올해의 선수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는다.



다섯 번째 조각 - 2018 LCK 서머

2017년, LCK로 리턴한 '데프트'는 kt 롤스터에 새 둥지를 튼다. '데프트'를 포함해 이름값 높은 선수로만 로스터를 꾸린 kt 롤스터는 슈퍼 팀이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LCK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롤드컵 진출에 실패하며 2017 시즌을 마친다.

이 시기 동안 '데프트'에게 붙은 꼬리표는 멘탈 이슈였다. 유독 중요한 게임마다 흔들리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2018 스프링까지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정규 시즌 내내 에이스 역할을 했던 것과 반대로 플레이오프에서는 부진했다. 하지만, 각성의 시간은 찾아왔다. 서머 스플릿, 캐리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단단한 멘탈을 장착해온 '데프트'는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약 4년 만에 LCK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게 된다.


여섯 번째 조각 - 2022 롤드컵

'데프트'는 유독 롤드컵과 인연이 없었다. 2014년부터 무려 여섯 번의 롤드컵을 경험했지만, 최고 성적은 4강. 그마저도 첫 롤드컵이었고, 이후 매번 8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경기력이 전성기 수준일 때나, 다소 부진할 때나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프로게이머로서 마지막 시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시작한 2022년. 우여곡절 끝에 선발전을 뚫고 '데프트'는 자신의 일곱 번째 롤드컵 무대를 밟게 된다.

LCK 4시드인 DRX는 당연하게도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우승 후보와는 거리가 멀었고, 우승 후보들에 비해 전력도 한 수 아래로 보였다. '데프트'도 마찬가지였다. 정규 리그 동안 부침을 겪었기 때문에 국제 대회에서의 경쟁력에는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장 가능성이 낮아 보였던 7번째 롤드컵에서 '데프트'는 그토록 원하던 소환사의 컵을 들어 올렸다.

'데프트'는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롤드컵 우승을 간절히 꿈꿨다. 아무리 지쳐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엔 그 목표에 도달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데프트'의 스토리는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과 희망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