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세계 최고의 자리를 가리기 위해 TPA와 Azubu F.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경기를 치렀다. 양팀 모두 최고의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으나, 승부는 언제나 냉정한 법. TPA가 3:1로 Azubu F. 물리치며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그렇다. 롤드컵이 끝났다. 내년에 새로운 시즌이 열린다고 하지만 굳이 기자의 입장이 아닌, 한 해를 롤드컵과 같이 한 리그오브레전드의 팬으로서도 시원 섭섭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번 결승전이 정말 아쉬워만 해야 할 경기였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한국팀이 세계 재패를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번 결승전을 단순히 하나의 경기를 넘어 이스포츠로서 생각해본다면 조금 달라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신이 사랑하는 팀명을 외쳤고, 신호도 없이 박자를 맞춰가며 응원을 보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어떤 사람들은 바디 페인팅을 하거나, 코스프레를 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으며, 어떤 이들은 관련 캐릭터 상품을 사기 위해 한참동안 줄을 서며 자신의 순번을 기다렸다.


경기가 없는 사이 잠시 돌아다니는 선수들을 만나 환호하는 팬들,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방송을 구경하는 사람들 등등..


기자에겐 그 모든 것이 매우 특별해 보였다. 야구장이나 농구장, 축구장 등 다양한 스포츠 경기가 치러지는 곳에서는 매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이스포츠 현장에서는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태까지 이렇게 사랑받았던 이스포츠 행사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였다.








리그오브레전드의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의 브랜든 벡 CEO는 진정한 스포츠는 그저 많은 관중만으로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그는 스포츠가 스포츠일 수 있게 만드는 요소로 '스토리 라인'을 꼽았다. 이를 그가 이야기하려고 했던 본질에 맞게 좀 더 적절하게 바꾼다면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의 격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승부를 단순히 보는 것을 떠나 그 과정을 함께하며 승리와 패배를 선수와 관중이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는 스포츠에는 있으나 이스포츠에는 부족한 것으로 그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날의 결승전 현장에는 분명히 그러한 감정의 격류가 있었다. 기자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뭉쳐 순수한 열의로 경기를 관전했고 응원했으며, 이를 즐겼다.



▲ 선수와 하나되길 두려워하지 않은 관중들, 그리고 거기에 화답한 선수들



물론, 스타크래프트가 불을 당긴 이스포츠의 태동부터 생각해본다면 대규모 이스포츠 행사가 이번은 처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꼽는다면 광안리에서 치러졌던 프로리그도 당시 이스포츠 규모를 생각해본다면 엄청난 수준이었고, 블리즈컨에서 치러졌던 GSL 결승의 열기도 이 날 현장 못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NA 대표를 뽑았던 PAX 행사, EU 대표를 뽑았던 Gamescom까지.


이스포츠의 종주국인 한국에서는 단일 게임의 단일 행사가 그리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해외에서는 단일 게임의 행사가 이렇게 크게 진행되고, 큰 호응을 얻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 행사가 더욱 특별해 보였던 것이다.



▲ 이렇게 비어있던 관중석이..



▲ 경기가 시작되자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중들로 가득찼다



오래전부터 이스포츠는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인식되어 오긴 했지만, 단일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문이 제기되어 왔었다. 한국의 경우, 이스포츠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반이 탄탄한 상황이기에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이스포츠는 다른 행사와 함께 치러지는 이벤트전의 느낌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큰 게임쇼가 있을 때 함게 진행되는 것, 메인 이벤트라고 할 수는 있지만 행사 그 자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 그것이 여태까지의 이스포츠였다.


그러나 이러한 공식을 리그오브레전드가 하나씩 깨고 있다. 이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인기가 전 세계적인 것도 있겠지만 과거와 달리 이스포츠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과 인식이 달라졌고 이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자세 역시 달라졌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점차 이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이 말하기 꺼려지는 취미가 아니게 되고 있으며,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누구나 따라해볼 수 있는 일반적인 것이 되어 가고 있다. 물론, 아직 '스포츠'라고 부르기에는 한참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옛날 이스포츠가 생겼을 때와 비교해본다면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걸 재해석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스포츠를 즐기는 데에 익숙해졌고 자신이 그 주최가 되는 것 역시 서슴치 않으며 그것을 숨기지도 않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이스포츠인의 변화는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라이엇 게임즈는 리그오브레전드의 이스포츠 활성화를 위하여 손에 꼽을 정도로 높은 상금을 걸고, 전 경기를 무료 온라인 HD 생중계하는 등 유저들이 경기를 즐기는 데에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유저들이 이스포츠를 남의 일이 아닌, 나와 관계된 것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실제로 상당수의 유저들이 이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경기를 봄으로써 자신의 실력 향상을 꾀하게 되었다. 롤드컵에 쏟아진 유저들의 관심은 이러한 것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전 세계 무료 생중계되었던 롤드컵



라이엇 게임즈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리그의 결승전을 많은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 경기가 어떤 가치가 있고 거기서 우승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인지 그 방송을 보던 전 세계인 모두가 인지하도록 만들었다.


일반 게임 경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등장하여 경기의 무게를 더했으며, 우승자에게 주어질 트로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그저 게임 경기'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세계 최고의 명예를 두고 펼치는 승부를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을 관중들에게 제공했다.  



▲ 그저 게임 경기 이상에 도전한 라이엇 게임즈. 오케스트라와 합창단까지 동원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뿐만 아니라, 트로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트로피가 더욱 값지게 만들었다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데에 아낌없는 투자를 한 것이다



▲ 입구에 전시되었던 트린다미어 동상, 아트팀 10명이 한 달은 걸려 만든 작품이라고..



▲ 유저들 역시 그러한 가치를 나눠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캐릭터샵



이러한 라이엇 게임즈의 행보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들이 가치를 만드는 데에 투자한 덕분에 리그오브레전드에서 이스포츠를 체험한 사람들은 이후 리그오브레전드를 그만 둔다 하여도 다른 이스포츠에도 같은 수준의 체험을 원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 장기적으로 이스포츠계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는 쪽으로 발전 방향을 잡을 것이며, 그러한 발전은 분명 이스포츠를 탄탄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순환이 자연스럽게 고리를 형성하는 데에 성공하게 된다면 이스포츠의 진정한 스포츠화도 꿈만은 아닌 이야기가 된다.


이번 시즌2 월드 챔피언쉽 현장에서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었기에 응원하던 한국팀 패배했지만, 아쉽기보단 앞으로가 기대되는 바이다. 또한 그런 미래를 볼 수 있게 해준 그 자리의 주인공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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